1.


 오전 05:00

 날씨: 맑음


 어스름이 막 걷힐 무렵, 좀 부지런하다 싶은 사람도 이제 침대에서 눈을 떴을 시간대.


 오퍼레이터 제이는 이미 아침 단련까지 마친 채로 훈련실을 나서고 있었다. 물론 다른 오퍼레이터들에게 폐가 안 가게끔 썼던 기구는 제자리에, 샤워실도 물기 없이 꼼꼼히 청소 완료.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조심성이었지만 이것도 이제 그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 정도도 안 하면 몸이 굳어서 안 되지 말임다.


 어쨌든 용문에선 이것도 늦잠 축에 속한다고요.


 그런 변명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자기 생활 패턴을 남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까 대신 이렇게 아침에 몰래-그야 훈련실은 어지간하면 아침엔 안 쓰니까-운동 겸 단련을 하고 돌아가는 건데, 마침 복도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어라라, 제이?”


 “에……. 아, 클로저 씨.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일찍은 무슨, 아직 일하는 중인데. 가공소 설비가 고장 났다고 해서 겨우 고쳐놨더니 그 다음엔 발전소 설비가 고장 났다고 가보라고 그러고. 정말이지 여기저기 여기저기. 어휴, 아무리 정비팀들이 죄다 임무 때문에 나갔다곤 하지만 박사도 사람을 너무 부려먹는다니까.”


 “그, 그렇슴까. 고생 많으십니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와악-하고 하루 동안 쌓였던 설움을 풀어내는 클로저. 아마 마주친 게 그가 아니라 원석충 한 마리였더라도 똑같이 말했으리라.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클로저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남한테 불평할 거리가 아닌데 괜히 화풀이했네. 잊어줘.”


 “아닙니다. 뭐 별일이라고요.”


 “아, 근데 이렇게 아침 일찍 훈련실은 왜? 전투 훈련이라도 받은 거야?”


 클로저의 의문은 당연했다. 보통 훈련실이 그런 용도니까. 게다가 알게 모르게, 오퍼레이터 제이의 전투력이 보기보다 출중하다는 소문은 그녀 귀에도 들어가 있었다. 물론 사실은 그게 아닌지라 제이는 손사레만 칠 뿐이었다.


 “아뇨, 아님다. 그냥 아침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서요. 그렇다고 남들 주무시는데 괜히 아침부터 시끄럽게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해서, 간단하게 운동이라도 하는 겁니다.”


 “헤에, 운동? 이해가 안 가네. 나 같으면 그냥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잘 텐데.”


 “아, 아침에 땀 흘리면 기분 좋다고요. 하루도 길게 느껴지고.”


 “난 지금도 하루가 충분히 길어.”


 클로저가 험악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자 그제야 아차 싶은 제이였다. 하긴 방금까지 철야 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죄송함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킥. 장난이야, 장난. 정말 생긴 거랑 다르게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그건 그렇고, 오늘은 주방 안 가?”


 “갑니다. 오늘 마침 활어들이 들어온다고 해서요. 봐서 상태가 괜찮으면, 횟감으로라도 써 볼 생각입니다.”


 “회?! 진짜로? 정말로?”


 “…상태가 괜찮으면요.”


 언제 밤 꼴딱 새웠냐는 듯 클로저는 드물게 두 눈을 빛냈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한 게, 로도스가 식재료에 박한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횟감으로 쓸 생선을 공수해 온다는 건 아무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식당 일을 도와주면서 넋두리처럼 싱싱한 생선 한번 잡아봤으면, 이라 했던 게 어디 윗분들 귀에라도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클로저의 들뜬 얼굴만큼이나 제이도 덩달아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용문에서 횟집 했다고 했었지. 아아, 박사 정말 최고야. 내가 또 회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이런 선물을 준대니.”


 “…….”


 아니, 굳이 클로저 씨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니겠죠.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은 거지 눈치가 없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럼 오늘 아침으로 회 나온다는 거지? 햐, 아침이고 뭐고 자려고 했는데 무조건 아침은 먹고 자야겠다! 나 그럼 일하러 갈게! 이따 봐! 그리고 고마워!”


 “살펴 가십쇼.”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는 제이. 그런 그를 향해 클로저는 만날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손을 흔들며 불 꺼진 복도 저 너머로 사라졌다.


 아니 깜깜한데 괜찮으세요, 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벌써 어둠 저 너머에선 발소리밖에 안 들려왔고 말이다.


 로도스에는 저렇게 묵묵히 날밤을 꼬박 새면서도 일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클로저가 경박한 성격이라고는 하나, 농담으로나 그러지 남들에게 일부러 힘든 척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중심에는 박사가 있다.


 박사.


 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중심이자, 그의 고용주. 보통 그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잘난 체를 할 법도 한데, 놀랍게도 박사는 그런 점에선 완전히 무해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일하고, 절대 티 안 내고. 그 밖에도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어쨌든 존경할 만한 인물이란 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뭐랬더라, 클로저 씨가 박사의 부탁으로 함내 설비들을 고치고 있다고 했지.


 그 말인즉슨, 박사 역시 클로저 씨만큼이나 철야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렴 일 시켜놓고 혼자서 자는 성격의 인물은 결단코 아니었으니까.


 “…좋아, 힘 좀 써볼까.”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제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생선 손질은 그도 나름대로 전문가라 자부할 수 있는 솜씨다. 다른 요리에서만큼은 밀리지만 어패류만큼은 그의 영역이니까.


 그렇게 오퍼레이터 제이의 평범할 것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글쎄, 평범할 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