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사.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휘관이자 최종 결정권자, 라고 하면 맞으려나.


 대외적인 결정은 그 아미야라고 하는 카우투스 아가씨가 하는 것 같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그 아가씨마저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한발 물러서서 그의 결정을 기다린다.


 그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어쩌면 본인도 눈치 못 챌 정도의 신뢰 관계.


 그녀는 그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 거라 믿고,


 그는 그녀가 되는 대로 자신에게 의존하는 그런 유약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신뢰 관계, 라 봐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적어도 제이의 눈에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손톱만큼도.


 솔직히 말해서 박사에 대한 제이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대외적인 처리는 2인자에게 맡겨 놓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서는 꼴이, 꼭 거들먹거리는 갱단의 보스 같았으니까.


 갱들. 마피아들. 구역질 나는 녀석들.


 성실히 일해서 돈 벌 생각 따윈 하나도 안 하는 주제에, 남의 것이나 탐내고 영역 싸움이나 하는 승냥이 같은 놈들.


 그는 갱이니 마피아니 하는 것들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말종들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그런 말종들을 닮은 인간도 싫어했다.


 그에게 있어 로도스 아일랜드는 그런 인상이었다. 광석병 치료니 어쩌구 하는 걸 핑계로 대며 힘을 불리고 제 잇속을 챙기려 하는 녀석들이었다.


 위선적인 자식들 같으니라고.


 [안녕하심까, 두목. 제이라고 합니다. 호시구마 경관님께서 여기가 일하기 좋다고 해서 왔슴다. 수산물도 잘 알고, 요리도 어느 정도 하고……. 어, 또 칼질도 좀 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겁니다.]


 첫 만남에서 박사를 일부러 ‘두목’라 부른 건 그런 비꼼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경멸이라 봐도 좋으리라.


 그 당시의 그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어딘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이고, 그때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남을 평가하네 어쩌네 했던 거람…….”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고개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라, 제이는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맹한 눈에 드물게 활기(?)가 돌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물론 그 누구에게도(심지어 박사 본인에게도) 말한 적 없는 자신만의 흑역사이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법.


 자신의 생각 따윈 한낱 치졸한 오해에 불과했음은 굳이 끌 것도 없이 낱낱이 까발려진 지 오래. 지금 와서는 그야말로 밤에 자다가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찰 만한 기억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로도스는 그가 생각하던 그런 마피아나 갱 따위에 비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저 오로지 저주받을 광석병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하루 힘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금자리이자 최후의 등대 같은 곳이었다. 


 “쩝. 두목, 이거 좋아하시려나. 회 못 드신다고 한 적은 없으셨는데.”


 확실히 박사는 기름진 걸 좋아하긴 하지만 회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지만.


 아무에게도 말 안한 흑역사라지만 제이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고, 표현을 제대로 못한다뿐이지 이런 일방적인 오해를 그냥 없었던 일로 덮고 넘어갈 만큼 막되먹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그였기에, 방금 해체한 참치살 중 가장 비싸고 맛좋은 부분만 골라내서 박사의 아침 식사로 들고 가는 중이었다. 먹을 것으로 진심을 전한다라. 그답다면 그다운 참회(?)의 방법이었다.


 똑똑


 [들어와.]


 “……?”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뎁쇼.


 그가 누군지도 밝히기 전에 박사의 집무실 너머에선 허락이 떨어졌다. 뭐 하기야 딱히 누군지 확인이 필요할 정도로 아침 시간이 바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제이는 들어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르셨슴까, 두우…….”


 목, 이라는 말이 끝나기 전 제이는 가까스로 목구멍까지 솟은 그 말을 다시 밀어 넣으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우우우 분께서 같이 계신 줄 몰랐슴다. 죄송함다.”


 집무실 안에는 박사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라고 한 것도 박사가 아니라 이 사람이었구나. 박사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깊고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사과하지? 선약이라면 네 쪽인데.”


 “아니 그, 지금 뭔가 하고 계신 거 방해한 건 아닌가 싶어서…….”


 “전혀. 그럴 거였다면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


 뭐 그거야 그렇긴 하겠죠, 네.


 녹색 머리의 가녀린 필라인 의사, 켈시. 로도스 의료 오퍼레이터들의 총책임자이기도 한 그녀는 제이에게 말하면서도 박사의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아 채혈을 계속하고 있었다.


 애초에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자신을 귀찮은 날파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걸까.


 그녀는 대화를 거기서 뚝 끊고 제 할 일에만 집중했다. 차라리 문밖에 있었다면 그냥 끝날 때까지 문밖에나 있으면 될 것을. 이미 들어온 마당이라 제이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건 잠자코 있던 박사였다.


 “미안하네, 불러놓고 딴짓이나 하고 있어서.”


 “아, 아뇨. 별말씀을 다하심다. 어젯밤도 철야하셨던 거 아닙니까?”


 “오? 그야 그러긴 했지. 어떻게 알았어?” 


 “오늘 아침에 우연히 클로저 씨와 만났거든요. 박사님께서 시설 점검 좀 부탁하셨다고……. 이전에도 그러실 때마다 밤을 새우셨길래, 혹시나 해서 여쭤봤슴다.”


 “하하, 역시 기억력이 좋구나, 너는…아얏.”


 “움직이지 마라, 박사. 혈관 찢어져서 수술실로 가고 싶지 않다면.”


 웃느라 어깨를 들썩인 박사가 영 거슬렸던 모양인지 켈시는 사납게 그의 팔뚝을 꼬집었고, 박사는 바람 빠진 풍선이라도 된 듯 다시 쭈그러들었다. 거기까지는 제이도 켈시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 다음 이어진 말을 듣고 생각을 고쳐야 했다.


 “애초에 네가 어제 예정에도 없던 철야를 하지만 않았어도 이럴 필욘 없었다, 박사.”


 “아니 우연찮게 기반시설 쪽을 둘러봤는데 어째 영 시원찮아서…….”


 “그렇다 해도 오늘 당장 고칠 필요는 없지. 그렇게 기분 따라 없던 일을 끼워 맞출 거면 대체 회의는 왜 있고, 명령 체계는 왜 있는 거지? 오리지늄에 뇌가 절여지기라도 한 건가, 박사? 말만 해라. 바로 머리에 구멍을 뚫어 줄 테니.”


 “…….”


 켈시의 말이 어째 염려라기보단 위협처럼 들린다면 기분 탓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바짝 선 칼날처럼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박사야 뭐 능글맞게 웃으며 슬슬 넘어가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제이는 그 정도로 넉살이 좋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외관이 어떻게 생겼건 평범한 소상인이었고, 내면은 그보다 더 평범했다. 한마디로 이런 숨 막히는 공기는 영 체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이는 어떻게든 이 숨통 조이는 주제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제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겨우 돌파구를 찾은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아참. 아직 아침 안 드셨죠, 박사님. 이거 오늘 아침임다. 마침 연락받았을 때 주방에 있었거든요. 시장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미안하게 뭘 또 가져오고 그래. 이래 봬도 밥 정돈 알아서 챙겨 먹는다고.”


 그러면서도 박사는 대체 안에 든 게 뭘까 궁금해하는 눈치라, 제이는 재빨리 가방 안에 든 것들을 척척 꺼내 들었다.


 “몇 주 전에 들어온다던 생선이 오늘 들어왔거든요. 근데 커다란 참치가 두 마리씩이나 왔지 뭡니까. 횟감으로 쓸 만큼 싱싱하겠다, 양도 많겠다. 아침 식탁에 참치 회 올리는 김에 가져왔습니다. 기왕 드실 거 싱싱할 때 드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제이는 멋쩍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 죄송함다, 켈시 선생님.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챙겨올 건데.”


 “괜찮다. 끼니도 거르는 누구완 다르게 나는 내 발로 식당에 걸어가는 법 정돈 아니까.”


 “하하, 켈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굳이 지목을 해줘야 알아듣는 건가? 박사, 나는 당신의 주치의지 보모가 아니야. 그건 아미야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겠으면 앞으론 내가 봐주지. 위루관(위에 직접 연결해 음식물을 주입하는 튜브) 수술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하하, 정말 네 걱정은 알아듣기 어렵다니까.”


 “글쎄, 네 고막을 전두엽까지 밀어 넣으면 좀 듣기 편해질 수도 있겠지.”


 “보통 그 정도면 사람은 죽는다고?”


 “죽었으면 좋겠군.”


 켈시는 신경질적으로 검진 가방에 주사기며 혈액 샘플을 쓸어 넣은 뒤 탁 소리가 나게 닫으며 말했다.


 “재검진은 이틀 뒤다.”


 “살펴 가.”


 무슨 사형 선고라도 하듯 내뱉고선 켈시는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나가버렸다. 그리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째 오늘따라 유난히 표정이 더 굳어 있는 그녀였다. 저 표정, 그리고 저 태도. 이건 제이가 여자 경험 없는 숙맥이라도 알 법한 표지였다.


 “…저, 켈시 선생님 많이 화나신 거 아닙니까?”


 “하하, 많이 화난 건 아니고, 최후통첩이야.”


 “…….”


 아니 그쪽이 더 나쁜 거잖아요. 제이의 맹한 얼굴이 평소 이상으로 더 맹해져도 박사는 전혀 걱정 따윈 없다는 투였다.


 “다음번 검진은 정말 제대로 받아야겠어. 안 그러면 켈시가 날 반쪽으로 나누려고 할 거야.”


 “…꼭 받으십쇼. 켈시 선생님이라면 그러시고도 남을 겁니다.”


 “응. 그 전에 우리 일부터 먼저 처리하자고.”


 어서 앉아, 라며 박사는 제이에게 의자를 권했다. 그 말은 짧게 끝낼 얘기는 아니라는 것. 


 심각한 얘기일까. 일단 제이는 박사의 요청대로 앉으면서도 마음 한쪽에 도사린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도 남들이 보기엔 또 모르는 거니까.


 그런 제이를 보며, 박사는 마침내 그를 여기로 부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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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성 고민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박사는 성격이 거의 무채색에 가깝고


켈시도 성격이 워낙에 꼬여서 원본 그대로 조합하면 이거 뭐 대화 상황 자체가 뜬구름 신선놀음 비스무리하게 흘러가더군요


머릿속에서 상황이 그려져야 뭘 대화를 구성하는데 상황을 구성 못하긋습느드...


그래서 박사 성격을 조금 바꿨어요


켈시는 원본 최대한 따라하려 했는데 잘모르겟슴


계속 써야 하나 고민이 듭니다


일단 구상한 데까진 써야지...


아 제목이 진짜 븅신같다고는 생각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제목 짓는 재주가 더럽게 없어서


제목 추천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