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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와 어묵


0.


 때로는 간단하게 생각했던 일이


 막상 열어보면 더없이 복잡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1.


 박사와의 면담으로부터 2주 후


 13:00 p.m


 카시미어 그랜드나이트 영지



 엄청 크다.


 “자, 쌉니다, 싸요! 플라스틱의 기사 상품 컬렉션을 큰맘 먹고 할인 판매합니다!”


 “오늘 오후 경기 일정 확인해봤어?”


 “보자, 토너먼트 투어 프로그램에 따르면……. 좀 이따가 제2 경기장에서 검은 활의 기사랑 철벽 방패의 기사의 경기가 열린다는데?”


 “검은 활? 아, 그 카우투스 기사 말이지! 그 기사 좋더라! 귀엽고 잘 싸우고.”


 “으휴, 기사가 귀여운 게 자랑이니? 기사는 자고로 노련미가 있어야지.”


 “니가 하도 빨아재끼는 그 느릅나무의 기사처럼?”


 “빠, 빨아? 야! 느릅나무의 기사님이 니 친구니? 어?!”


 그리고 엄청 소란스럽다.


 “이야…….”


 그게 용문 토박이이자 로도스 아일랜드의 스페셜 오퍼레이터, 제이가 카시미어에 대해 느끼는 첫인상이었다.


 “오? 아저씨, 이 빵 뭠까? 맛있게 생겼네요.”


 “아니 형씨, 무슨 쉐라그 산 중턱에서 수도 생활만 하다 나왔어? 촛불빵도 몰라서야 원! 형씨는 기사 경기도 안 봐?”


 “아, 실은 카시미어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허, 형씨 진짜 인생 절반, 아니 그 이상 손해 본 거야! 세상에 카시미어의 기사 경기도 한번 안 보고 무슨 낙으로 살아! 그러지 말고 자자, 촛불빵 좀 사 가. 내가 촛불의 기사님 팜플렛 하나도 특별히 껴 줄 테니까, 응! 공짜로!”


 “…….”


 확실한 건 어딜 가도 상인은 역시 상인이라는 거였다. 그냥 처음 보는 길거리 음식이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팔자에도 없는 수도사 취급부터 시작해 촛불의 기산지 아궁이의 기산지 하는 사람 팜플렛까지 쥐어졌으니 말이다. 노점상을 하나 지나갈 때마다 제이의 손에는 그런 식으로 길거리 음식 하나에 팜플렛 하나가 쥐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한 손에 겨우 들 정도로 잔뜩 사서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


 “…아, 신기한 음식을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그는 요리도 좋아했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아했다. 자고로 요리사란 먹는 걸 좋아해야 한다는 동씨 아저씨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제이, 요리사란 말이다, 항상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거다. 그러니 내 이 아랫배는 내가 진정한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다는 훈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자기 아랫배를 탕 치며 호탕하게 말하던 동씨 아저씨. 그런 그를 떠올리며 제이는 피식 웃었다. 아저씨, 그거 음식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술을 하도 드셔서 술배 나온 거 아닙니까. 술 좀 줄이시라구요. 그가 그렇게 핀잔을 줄 때마다 그는 늘 똑같은 말로 받아쳤다.


 “저기 저 사람, 좀…….”


 “가자, 가. 눈 마주치지 말고.”


 “…….”


 제 딴에는 추억에 잠겨 웃어본 건데 역효과였던 걸까. 아무래도 그의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는 영 마이너스 조합이었던 모양인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유독 그의 곁에만 오면 다들 슬슬 피해 다녔다.


 말을 거는 거라곤 돈만 낼 수 있다면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는 시장 상인들뿐.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한 제이였지만 구태여 오해를 풀려고 뭘 하진 않았다. 평생을 살아온 용문에서도 이놈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는데, 생전 처음 와 보는 카시미어에서 그래 보라고? 퍽이나 가능성 있는 소리였다.


 그래도 음식은 맛있겠네, 응. 하며 아까 산 빵 하날 입에 물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팍


 “어엇.”


 “…….”


 제이는 뒤에서 누가 툭 밀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어이구, 죄송…….”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반사적으로 사과가 튀어나오는 건 대체 착한 걸까 멍청한 걸까. 어쨌든 제이는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꾸벅 숙이다가, 그제야 제 다리에 부딪힌 사람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꼬마란 걸 알 수 있었다.


 쿠란타 소녀였다. 갈색 귀에 갈색 꼬리.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소녀. 단지 그 나이 또래의 천진난만한 미소 대신 바짝 긴장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


 정적. 그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딱 여기 둘 사이만 소리를 지워버린 것 같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뭔가를 숨기는 듯 겁에 질린 눈동자. 제이는 그 꼬마가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는 이유가, 뒤돌아본 자기 모습이 생각 이상으로 험상궂어서란 걸 꿈에도 모른 채 그저 당황스러운(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기엔) 표정으로 그 꼬마를 볼 뿐이었다.


 “으, 으아아!”


 “어이쿠.”


 “리지, 도망쳐!”


 대립을 깬 건 옆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다른 소년이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옆구리에 푹, 그리고 슬쩍. 품에 손이 들어왔다는 감촉을 느꼈을 땐 이미 소년이 소녀의 손을 잡고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진 뒤였고, 그 짧은 소란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반사적으로 제이를 피하느라 방금의 상황을 못 봤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


 그러니까 소매치기란 거지, 응.


 뒷머리를 긁적이는 제이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짜증도 분노도 아니었다. 외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그리움에 더 가까웠다. 용문 슬럼가엔 저런 소매치기가 길가에 널린 돌멩이보다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소매치기를 당해본 게 얼마만인지.


 제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릴 때 도저히 먹고 살 길이 궁해서 소매치기에도 손을 댄 적이 있었지만, 그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정도로 소매치기니 물건 훔치기니 그런 것에 재주가 없었다. 천상 험악한 외모가 눈에 너무 잘 띈 탓이리라.


 그것도 오래전이었다. 동씨 아저씨네 어묵 가게에서 어묵을 훔쳐 먹다가 걸리고, 거기서 일을 배우고 난 뒤로 그는 두 번 다시 소매치기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가 소매치기를 한 사람들은 동씨 아저씨가 그와 함께 한 명 한 명 찾아가 직접 머리를 숙이고 배상을 해줬다.


 ‘이놈아. 너는 그 돈을 훔치는 데 고작해야 1분 들였을 테지만 그 사람들은 그 돈을 버느라 하루 내내 뼈 빠지게 고생했을 거란 말이다.’


 ‘자고로 돈이란 무서운 놈이다.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하긴 한데, 있으면 자꾸 갖고 싶어. 그러니까 내가 땀 흘려 일한 돈 말고 다른 돈 욕심 내면 계속 욕심난다. 그러다가 벌 받는 거야.’


 그 말 하면서 머리통에 알밤 네 대만 안 박으셨어도 좀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저씨. 제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품속과 가방을 뒤져봤다. 중요한 건 딱 세 개뿐. 그거 말고 나머지는 뭐, 불우이웃돕기라도 한 셈 치면 된다. 그러는 자신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일단 오퍼레이터 급여가 어묵 장사보다는 짭짤하니까.


 일단 가방 속에 있는 식칼 세트, 확인. 사실 가방을 통째로 가져가거나 물건을 통과할 재주가 없는 이상 가져갈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 싶어서 확인해 봤다. 이게 또 나름 추억의 물건이라서 말이지. 욕심대로라면 한번 꺼내 들어 보고도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길 한복판에서 식칼을 꺼낼 정도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진 않았다.


 그 다음은 지갑. 좋아, 확인. 박사가 여비 정도는 넉넉히 챙겨준다는 걸 멋 부리느라 딱 여비만 받고 와버려서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껴 쓰면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충분히 지낼 금액이고, 그 이후에 돈이 없다면 일하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여기도 용문만큼이나 거대한 도시였고 사람도 북적거렸다. 이런 데서 노점상이라도 내면 잘 되겠지. 이미 오자마자 새벽시장부터 둘러본 그는 카시미어의 싱싱한 채소며 다양한 식재료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편지. 떠나기 전 뵈었던 니어 아가씨께 받은 편지로 무려 귀족의 물건처럼 인장까지 찍혀 있었다. 아……. 니어 ‘가문’이랬으니까 니어 아가씨도 귀족이 맞나? 어쨌든, 그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귀족이니 기사니 뭐니, 슬럼가 출신인 그에겐 문자 그대로 ‘그거나 그거나’였다.


 그런데.


 “어랍쇼.”


 없다. 분명 점퍼 안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어, 어라?”


 너무 놀래서 말까지 더듬었다. 사람은 당황하면 행동이 빨라진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인 제이도 그 범주에 속했고,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가방까지 막 뒤지는 그의 몸놀림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주변 사람들이 그를 더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게 만든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아, 물론 그런다고 사라진 편지가 나올 리는 없었다. 여기 오는 도중에도 편지는 안주머니에 잘 있나 몇 번이나 확인했었고, 한 번도 꺼낸 적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즉. 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요놈의 꼬맹이들…….”


 방금 마주친 그 두 명이 훔쳐 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이미 아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다 마주한 것에 불과했지만 제이의 표정은 금세 핼쑥해졌다. 그야,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생면부지의 카시미어에서 믿을 건 그거밖에 없지 않던가.


[제가 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대장께서 말씀해주신 목표. 그거 하나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거기 가서 뭘 하더라도요.]


 “어흑.”


 아니, 그렇게 있는 대로 잘난 척하고 나왔는데 카시미어에 발 딛고 얼마나 지났다고 소매치기나 당하냐. 제이는 그야말로 예전에 복어 잘못 먹고 죽네 사네 했을 때도 안 찾았던 위장약을 입에 털어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냥 니어 저택으로 가볼까? 위치는 들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저택 위치만 아는 거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갔다 한들 뭘 어쩌겠는가? 박사의 계획을 떠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애초에 그 자신도 뭘 할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편지 한 장 없이 니어와의 관계를 설명하라고? 개인적인 얘기를 할 만큼 친하지도 않았는데? 제이에게 그 정도의 말재주가 있었다면 진작에 로도스는 물론 용문에서도 자길 수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오해부터 싹 풀었을 터였다.


  “하……. 차라리 먹을 걸 훔쳐 가지. 얄밉게 먹을 건 손도 안 댔네.”


 바로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었을 음식이 손에 한가득 들려 있었는데 왜 꺼내기도 힘든 편지를 가져간 걸까. 제이는 갑자기 들고 있는 만두가 든 비닐봉지며 빵 봉지가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젠장, 이 얼마나 깜찍한 도둑들인가.


 “쓰읍, 어쩔 수 없지.”


 예정 변경이다. 이대로 며칠 정도는 이곳 시장도 좀 돌아다녀 보고, 그놈의 기사 경기가 대체 뭔지도 찬찬히 보면서 뭘 해볼지 생각해볼 작정이었지만 제일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무겁게 한숨 한번 푹 내쉬고선, 신경질적으로 만두 하나 꺼내 베어 물며 으슥한 골목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 역시 용문 뒷골목 출신. 뭐 카시미어라고 뒷골목이 다르겠는가.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비슷하지. 일반인이라면 이 단계에서 근위국 경찰이나 뭐 그런 사람들을 찾겠지만 그는 달랐다. 동네가 달라도 그런 류의 공무원들이 이런 일에 열을 올릴 리가 없단 건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꼬맹이들, 꼭꼭 잘 숨어 두십쇼. 잡히면 아주 볼기짝을 불나게 때려줄 테니까.”


 그는 심술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소매치기 애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어떻게 찾냐고?


 그 소매치기가 커서 된 게 나다,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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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이전 화까지 제이가 박사를 두목이라고 했는데 대장으로 명칭 변경했습니다. 인게임 자막도 대장이고 발음도 대장인데 나는 왜 두목이라 했을까....바병슼의 바병이란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2. 루트가 세 가지가 있었는데 왜 선택 안 한 나머지 두 루트가 탐나 보일까.


3. 캐릭터성 살릴려고 많이 고심 중인데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4. 기존 마리아 니어 스토리에서 초반부는 아주 약간의 차이만 있지만, 나중엔 그 차이 때문에 결과가 꽤 크게 벌어질 겁니다.


5. 소감이나 그런 거 써주심 매우 감사합니다. 관심 먹고 삽니다. 관심 보여주면 츄르 본 냥냥이마냥 달려듭니다.


6. 워낙에 마이너만 파는 게 습관이 돼버렸는지라 쓸 때마다 무섭습니다. 마지막까지 쓸 수 있도록 힘 좀 주십쇼. 파이팅~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