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 마지막 감자가 드디어 땅에서 올라오고..."


마치 연극 배우처럼 낮은 목소리로 무게감을 잡으면서 박사가 말했다. 

헬멧은 벗었으면서 후드를 낀, 그러면서도 가벼운 셔츠를 입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말할 패션의 그는, 있는 힘껏 땅에 손을 꽂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두들을 향해, 익숙해진 솜씨로 재빠르게 캔 감자를 들고 박사는 외쳤다.


"드디어! 끝났다! 모두 고생했어!"

"""""""와!!!!!!!!!!"""""""


이어지는 환호성,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서 백파이프가 박사에게 수건을 건넸다.


"박사! 수고했사! 오늘 밤으느 감자 파-티를 하겠사!"


웃으면서 수건을 받아 든 박사는 후드를 벗고 머리를 한 차례 수건으로 닦은 다음, 수건을 자연스럽게 목에 두르고

자신에게 다가온 백파이프를 내려다 보았다. 본인은 별로 관리는 안한다지만 윤기가 넘치는 주황빛 머리카락, 

따지고 보면 귀엽다고 본인이 어필하는 것 처럼 누가 봐도 귀엽다고 생각할 법한 얼굴,

농사를 그렇게 지으면서도 거의 타지도 않은 새하얀 피부까지 

어디 하나 빠진 곳이 없으니 누가 봐도 건강해요~. 라고 인증해줄 법한 그녀는 감자를 받아들고는, 이내 박사에게 해맑게 웃으면서 달라붙었다.


"거 봐라! 박사! 하다보믄 된다고 안했나?"

"어...어어. 그렇지. 그렇긴 한데..."

"엥 박사? 어째 맥아리가 영 없사! 와 그렇나?"


그건, 네가 그렇게 얇은 옷을 입고 그리 달라붙으니까...라고 말할 뻔한 박사는 초인적인 이성으로

갸우뚱거리는 백파이프의 양 어깨를 잡고 침착하게 밀어낸 다음, 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아,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봐. 아무래도 농사일은 좀 힘드니까."

"아!"


양 손을 짝! 하고 마주치며 백파이프는 웃었다.


"하기사, 지금 시간이면 배가 고프는 시간이 됐아!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어...어어?! 잠깐만!"

"괜찮타! 박사! 나에게 맡기라!"


순식간에 백파이프는 박사의 손을 낚아채고 식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뒤에서 환호와 야유가 반반 섞인 휘파람을 들으며

거의 반쯤 날아가듯이 끌려가던 박사는, 역시나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제발 코너에 부딪히진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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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세 달쯤 전,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의 집무실.』


"...종합검진 결과다. 박사."


많은 오퍼레이터들이 가져 온 장식들로 예전의 살풍경한 모습은 벗어났다지만 여전히 무기질스러운 냉랭함이 감도는 방에서

더더욱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켈시. 나는 어떻지?"

"...그것도 모르는건가."


짧은 녹회색 머리카락, 이지적인 녹색 눈동자, 로도스 메딕 오퍼레이터의 표준 제복이지만 치프라서 어레인지가 조금 들어간 옷,

켈시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하기사...예전부터 너는...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그래서 그 고양이 같은 화법은 집어치우고 대체 어떻다는 건데!"


켈시를 따라 똑같이 무게감을 잡던 박사는 인내심의 한계가 왔는지, 켈시의 손에 들려 있던 진료 차트를 재빨리 빼앗더니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영겁같은 시간이 지난 끝에 박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진료 차트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결과적으로는 운동부족이라는 거잖아."

"그렇다. 구체적으론 동물로 태어났기에, 우리들은 너도 나도 예외 없이 칼로리를 섭취한다면, 그만큼 칼로리를 소모해야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박사, 너는 두뇌 노동으로 칼로리를 꽤나 소모하는 모양이지만, 그 칼로리 소모량이 정량에 도달하진 않은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몸의 균형은 점점 무너지게 되고..."

"아니, 그 고양이 같은 화법은 좀 그만두라고...하..."


그렇게 탄식하면서 책상위로 엎어지는 박사를 향해, 켈시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입꼬리를 올린 다음, 박사의 손에서 차트를 회수하고

몇 번 톡톡 친 다음 입을 열었다.


"따라서, 박사. 너에게는 앞으로 의무적으로 하루에 칼로리 소모를 체크하는 기계를 부착하겠다. 물론 아프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 문제도 없을거다."

"...그 기계는 어디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나."

"아나 *용문 욕설*. 진짜. 이 *용문 욕설* 귀여운 년아. 빨리 내놓기나 해..."


결국 지쳐버린 탓에 표정이 완전히 풀린 채 육두문자를 쓴 박사를 보고 켈시는 다시 한 번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 다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박사의 손목에 재빨리 채웠다.


"이게 뭔데...?"


박사는 켈시가 채운 것이 일종의 손목시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기계는 왼쪽과 오른쪽에 숫자를 하나씩 띄웠다.

좀 더 만지작거리던 박사는 이것 외에는 별 기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숫자를 읽었다.


"왼쪽의 숫자는 508...?"

"그렇건가...박사. 네가 지금까지 소모한 칼로리는 508칼로리군."

"...그럼 이 오른쪽의 숫자는 당연히 내가 지금 까지 먹은 칼로리고?"

"그렇다 박사. 오늘 하루 지금까지 네가 먹은 칼로리는...2400칼로리군...많이도 먹었군. 이제 점심 조금 지났을 뿐인데..."


뭔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은 켈시는 박사를 동정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고, 

박사는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나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게 그런 눈빛을 받으니 짜증나서 미치겠다!"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박사."


태연하게 대답하는 켈시를 보며, 저거 어떻게든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에 주먹을 잠깐 움켜 쥔 박사였지만 상대할 시간조차도 아깝다는 판단을 재빠르게 내리고 어깨도 돌리고 중간 중간 폴짝 폴짝 뛰면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신 시계를 보며 열심히 움직이던 박사는 숫자가 간신히 1 올라간 것을 보고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박사를 보며 다시 한 번 이번엔 대놓고 보이게 웃음 짓던 켈시가 쐐기를 박듯이 표정과는 다르게 냉철하게 말했다.


"참고로 권장되는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2500칼로리다. 힘내도록 해라. 박사."

"야 임마! 너!"

"그럼, 나는 메딕 오퍼레이터 미팅이 있어서 나가도록 하지. 다시 말하지만 힘내라 박사."


그렇게 재빨리 말한 켈시는, 박사의 원망 맺힌 눈을 뒤로 한 채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린채로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다이어트. 말이지. 풋."

"켈시! 이 망할 고양이가! *용문 욕설!* *빅토리아식 가족 안부 묻기!* 야!"


박사의 한 맺힌 절규를 뒤로 한 채, 그렇게 박사의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안에 남은 박사는 분노의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걸로는 전혀 효과가 없잖아. 하지만...커피라도 안 마시면 머리가 전혀 안 돌아가는데..."


한참을 움직이던 박사는 이리저리 해봐야 칼로리 소모량이 거의 늘지도 않았다는 것에 절망한 채, 책상에 엎어졌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순간적으로 열리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반쯤 구르듯이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 보다는 돌진했다에 가까운 주황색의 그것은 균형을 잃었는지 넘어지더니 박사의 책상으로 일직선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더니 

성대한 소리를 내며 충돌 사고를 일으켰고...

...책상에 금이 갔다.


"...이거 나름 그래도 방탄 기능을 줬다고 하지 않았나...?"

"...왜서 여기에! 박사를 방해하며는 혼난다구 했사..."

"...백파이프?"

"아! 백파이프! 치사하잖아! 거기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 나는 못 들어가겠잖아!"

"...그라니?"


문이 열린 밖에서 보이는 것은 회색 머리카락, 특유의 모자를 쓰고 있는 체구는 작지만 누구보다 빠른 기마경찰 그라니.

그리고 지금 내 책상에 보험도 없이 교통 사고를 낸 것은 백파이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렇게 혼란에 빠진 박사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ㅡ백파이프가 지금 이 안에 있다.

ㅡ그라니는 백파이프를 쫓던 중이였다.

ㅡ둘이서 추격전을 할 만한 이유가 있다.

ㅡ분명 백파이프가 또 무언가를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생각도 잠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박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백파이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바...박사. 미안하다...이...뿔 좀 빼는 거 도와도..."

"..."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쉰 박사는 그제서야 책상을 내려다 보았고, 뿔이 박힌 채 어정쩡한 자세로 엎드린 백파이프를 볼 수 있었다.

이미 문은 닫힌 채, 아마 밖에는 그라니가 있겠지.


"...후...그래. 알았어."

"고...고맙다. 박사."


이내 엎드린 백파이프의 뒤로 다가간 박사는 백파이프의 허리를 끌어안으려다가, 묘한 자세라는 것을 인지하고 조금 더 뒤로 돌아가 발을 붙잡았다.


"아니...이 자세도 좀...그런가..."

"바, 박사~! 빨리 빼주사...! 머이 문제라도 있나?!"

"그게..."


네 팬티가 이러면 보이는데, 아, 오늘은 흰색이구나.

그런 말은 차마 더 잇지 못하고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그리 생각하면서도 박사는 있는 힘껏 백파이프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야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대체 얼마나 강하게 박힌거야...!"

"박사! 발을 잡으면 별로 힘이 안 들어가니 다른 곳을 잡는 게 좋사!"

"잡으라고 해도 어딜..."


몇 번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도저히 빠지질 않아서 답답한지, 백파이프는 박사에게 다른 곳을 잡으라고 재촉하기 시작했고,

박사는 하는 수 없이 발에서 손을 놓고, 백파이프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서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다.


"아...그게 좀 간지럽사...그치만 어쩔 수 웂으니..."

"응? 뭐라고 백파이프?"

"아아! 아무것도 아니니 빨리 빼면 좋겠사! 하나! 둘!"


박사의 손길을 느끼고 나서야 어떤 자세인지 깨달은 백파이프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박사에게 거의 안 들리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워낙 가까운 탓에 어느 정도는 들었는지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상체를 백파이프의 등에 밀착하고 엎드린 채 말을 걸었고

거의 귀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박사의 말에 더 붉어진 얼굴을 최대한 머리카락으로 감춘 채, 백파이프는 구령을 넣었다.


"하나에 당기고 둘에 힘을 빼는 거사! 하나! 둘!"

"크윽...!"

"조금만 더...! 아!"

"윽...!"


그렇게 둘의 신음 섞인(?) 미묘한 접촉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책상의 앞 면이 거의 부서지고 나서야 

마침내 해방 된 백파이프는 박사와 함께 뒤로 엎어졌다.


"아...아야. 고맙사...박사."

"어...응. 그래."


박사의 품에 안긴 채 뒤로 넘어진 백파이프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에 두른 박사의 손을 어루만졌고, 박사는 허둥지둥 백파이프의 밑에서 빠져나왔다.

잠시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재빨리 일어서서 헛기침을 한 박사는 백파이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그래서, 백파이프."

"으...으응. 박사."

"어째서 내 방에 그렇게 급하게 들어온거야?"

"아...아하하. 그게..."


박사의 손을 잡고 일어난 백파이프는 잠시 뺨을 긁적이더니, 이야기 하자면 좀 긴데, 라고 운을 떼더니, 입을 열었다.




"음...그러니까, 감자 농사를 하기 위해서 안 쓰는 온실을 좀 빌린 김에 감자를 구하러 갔는데, 그 감자는 우리가 사온 씨감자였고."

"응응! 몇 개 집어왔는데, 들켰었댔아."

"그걸 발견한 그라니가, 너를 잡으려고 했는데 너는 당연히 도망을 갔고."

"그러다가 여기로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아..."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쉰 박사는, 자신의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 백파이프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손날로 내리쳤다.

물론 내려쳐봐야 자신만 아프지만, 반드시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을까? 백파이프도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아야! 박사! 폭력으느 옳지 않사!"

"당장 가서 사과하고 그냥 정식으로 달라고 하란 말이야. 이 아가씨야!"

"그치만 이게 더 재밌아!"

"같이 가서 사과나 하자! 자!"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머리를 감싸쥔 채 찡그린 표정의 백파이프의 손을 박사는 있는 힘껏 잡고, 앞장 서서 집무실의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내...이제 시집은 글렀사...역시...박사가..."


저항도 없이 끌려가면서 박사의 손의 감촉을 느끼던 백파이프가 그렇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녀는 평소의 그 활기찬 소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 '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앞서가는 박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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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사투리는 어렵다.

여기까지만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2화를 보고 싶은 명붕이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