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타순정물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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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박사.”

 

“왜?”

 

“우리 오빠랑 무슨 사이야?”

 

“…어?”

 

“어제도 오빠 박사랑 만난다고 밤에 나가던데… 둘이 혹시…?”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지인짜아?”

 

“진짜라니까…”

 

여우 같은 계집애, 촉은 또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확실히 엔시오와 나는 사적으로 몇 번 만났었다… 

그러면 뭐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일방적인 마음은 품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으으으…”

 

머리를 쥐어 싸고 책상에 내려쳤다.

그와 조금은 가까워진 줄 알았다. 

쉐라그 사건도 있었고, 우리가 꽤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엔시오는 늘 나에게 매정하게 선을 그었다.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저기 엔시아, 너희 오빠 혹시 남자 좋아하니?”

 

“뭐?! 어…. 아닐…껄?”

 

“왜 몰라!”

 

“그야, 보통 그런 거 안 물어보잖아.”

 

“그..그런가?”

 

“어라~? 박사, 역시나!”

 

“으으… 그래! 네 오빠 좋아해. 좋아한다구! 근데 그러면 뭐하냐구… 일방적인 마음인데…”

 

“사랑에 빠진 여자란, 정말 무섭구나…”

 

엔시아는 나를 갑작스럽게 껴안았다. 

 

“뭐..뭐하는거야, 간지러워~”

 

“진짜 귀여워 죽겠어! 그래서,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데?”

 

“으으… 모르겠어. 그냥 이대로 있을까 봐…”

 

“대단한 전략가께서 싸움을 포기하신다구?”

 

“그렇지만 방법이 없잖아… 만약에, 정말 만약에 차이면?”

 

“에이… 이렇게 귀여운 여자를 차면 오빠는 보는 눈이 진짜 없는 거지. 아니면 진짜 남자를 좋아하던가.”

 

“거봐…”

 

“아하하… 장난이야! 장난! 뚝!”

 

그녀의 방에서 너무 소란스럽게 떠든 탓일까, 곧이어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엔시아… 이제 그만… 어머, 박사님도 계셨나요?”

 

“엔야 언니, 그게…”

 

“뭐?! 박사님… 어쩌다가 그런 남자를…”

 

그녀는 굉장히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다가와 나를 안았다.

 

“박사님 그런 남자에게 차이면 저에게 오세요… 그 망할 오라버니보다는 몇 배는 잘 해드릴게요!”

 

“아하하, 농담이라도 고마워…”

 

“어머, 농담 아니랍니다?”

 

“네?”

 

“그야 박사님은 백날 일에 허덕여 얼굴에 분칠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렇게 곱상하신 얼굴에 머리는 또 박식하시고 무엇보다 이렇게 사랑스러우신걸요?”

 

“으아… 그만해… 내가 다 부끄러워.”

 

그녀의 칭찬에 너무 부끄러워 두 얼굴을 황급히 가렸다.

요 근래 들어 엔야가 부쩍 내 칭찬을 자주 하는 것 같다…

 

“근데 언니, 엔시오 오빠 설마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

 

엔시오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터호른, 쿠리어, 노시스….

 

“거봐! 엔시오는 남자를 좋아하니까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잖아!”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답니다.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엔시오의 방문 앞으로 갔다.

방문 앞에서 멈칫하더니 내면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는 듯했다. 

이내 겨우 문을 두드리고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엔시아는 좁은 문틈으로 그저 엔시오의 방문 앞을 바라만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방에서 엄청나게난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의 방문을 거칠게 걷어차고서 엔야가 나왔다.

 

 

“몰라요! 빌어먹을 오라버니 그냥 평생 그렇게 살다 죽으세요!”

 

“저기… 엔야 언니..?”

 

“엔야…?”

 

“박사님… 그냥 제게 시집오세요. 저 남자는 글러 먹었어요.”

 

“…괜찮아. 이제 가봐야겠다…”

 

“아으! 답답해. 박사, 기다려봐.”

 

엔시아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오빠, 나와봐! 박사 돌아간대. 데려다 주고 와!”

 

“엔시아, 그런 일은 네가…”

 

“가. 당장.”

 

그녀 덕분에 엔시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고맙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머리는 부산스러웠고 얼굴은 퀭하니 썩 좋은 꼴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걸었다. 조금 늦은 밤이었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잠이 들었고, 사실상 이 복도에는 나와 엔시오 밖에 없었다.

 

“…맹우여.”

 

“…저기.”

 

“아, 먼저 말해…”

 

“…미안하군. 못난 동생들 때문에 늘 폐를 끼치는군.”

 

“아니야… 나도 그녀들 덕분에 즐거운걸.”

 

“저기…”

 

나는 말할 용기가 없었다. 목에서 막혀 올라오지 않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긴장되었다. 얼굴은 또 왜 저렇게 잘생겼는지, 저렇게 진지하게 쳐다보면 어떻게 말을 하란 말인가.

 

“크레이프..!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다만.”

 

‘이 바보 등신아… 크레이프가 왜 나오냐구.’

 

“그..그럼 내일 같이 먹으러 안 갈래? 저기 앞에 라테라노에서 온…”

 

“미안하네. 내일은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렇지. 미안해.”

 

어느새 내 방 앞까지 도착했다.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그럼, 실례하지.”

 

“응… 고마웠어.”

 

그는 가볍게 인사한 뒤에 사라졌다.

 

“하아… 등신아, 왜 말을 못하니… 왜…”

 

곧장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삐비빅 삐비빅*

 

요란한 알람이 짜증이 찰 정도로 울리며 아침을 열었다.

잠에 취해 거실로 나갔다.

널브러진 옷들을 발로 툭툭 걷어차고서 세면대로 향했다. 

잠을 깨기 위해 찬물로 얼굴을 담근 뒤에 겉옷을 걸쳐 입고 집무실로 향했다.

 

“아, 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마터호른 씨, 집무실에는 어쩐 일로…”

 

“엔시오 님께서 아마 오늘 아침 끼니도 거르셨을 거라고 하셨기에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아, 감사해요.”

 

그는 내게 샌드위치가 담긴 용기를 전해주고서 사라졌다.

용기에는 샌드위치와 쪽지 한 장 그리고… 크레이프가 담겨 있었다.

 

‘맹우여, 선약이 있어 그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에 미안하네. 사죄의 의미로 그대가 먹고 싶어하는 것들을 담아보았으니 부디 용서해주게.’

 

“뭐냐구… 사람 헷갈리게…”

 

그가 신경 써준 덕분에 오늘 아침은 조금은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하루도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 

임무에서 복귀한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서 검토, 결재 서류 검토, 클로저의 호출, 켈시의 호출, 체력단련실에서의 호출… 이건 필요 없는 일. 자잘한 업무들이 끝나면 조금은 숨통을 틀 시간이 생긴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갑판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이 된다.

지저귀는 새들을 바라보는 것을,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엔시오 보고 싶다.”

 

지금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나 같은 건 머릿속에 조금도 지분이 없을 것이다.

그때 갑판에 누군가 올라왔다.

오퍼레이터 쿠리어가 단말기를 들고 걸어왔다.

 

“박사님, 새로운 메시지가 왔어요!” 

 

“무슨 메시지인데…”

 

“엔시오 님께서 곧 돌아오신다네요.”

 

“뭐?! 진짜?”

 

“으앗,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세요…”

 

“고마워, 쿠리어! 다음에 소원하나 들어줄게!”

 

“소..소원이요?”

 

나는 서둘러 집무실로 돌아갔다.

거울을 보고 상태를 확인했다. 허나, 끔찍했다…

아마 원석충이 나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어라, 박사 언제 돌아왔어?”

 

“엔시아… 어떡해…”

 

“아이참! 또 왜 울어. 뚝!”

 

“엔시오가 곧 온대… 근데 이런 몰골로 어떻게 만나러 가…”

 

“그런거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엔시아는 단말기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냈다.

곧이어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 집무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헬로! 박사, 드디어 당신의 얼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로..로베르타? 엔시아, 네가 부른 거야?”

 

“그야, 화장은 로베르타 말고는 당해낼 사람이 없는걸.”

 

“후. 후. 후. 박사, 너를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정말 완벽한 스타일을 구상해냈단 말씀!”

 

“…너 그거 방금 생각한 거지.”

 

“…자, 자, 박사. 이쪽에 앉아 주시고~ 턱은 조금 당겨주고, 그렇지.”

 

로베르타는 요란하게 또 현란하게 붓을 움직였다. 분가루가 휘날리고 내 얼굴에 무엇인가 덧칠해지는 감각은 굉장히 낯설었다.

 

“…자! 새롭게 태어난 박사 mk.2!”

 

거울속에는 정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늘 헝클어져 대충 묶었던 머리는 온데간데없었고, 관작에서 방금 일어난 시체 같았던 얼굴은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박사, 엔시오 오빠 거의 다 도착했대! 서둘러!”

 

“응, 고마워! 로베르타, 엔시아!”

 

나는 서둘러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리며 화장이 망가진 것일까…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영향인지 얼마 뛰지도 않았건만 숨이 턱 막혀왔다.

 

그가 들어오기로 한 갑 판 앞에서 차분히 숨을 골랐다.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서 와, 엔시… 실버애쉬.”

 

“…! 그래, 별일은 없었나? 맹우여.”

 

“응, 덕분에… 저기 있잖아…”

 

“시간 괜찮아…?”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군.”

 

나는 그와 상점가를 걸었다. 요새 부쩍 라테라노에서 온 디저트 카페들이 많아졌다. 

그와 오붓하게 가고 싶었으나, 내게 그를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

커피를 손에 들고서 공원 벤치로 향했다.

 

‘말하자. 더는 이렇게 괴로워지고 싶지 않아..’

 

“엔시오, 일은 잘 해결 되었어?”

 

“다 네 덕분이다. 네가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았겠지.”

 

“나는 그저, 너… 너희와 좋은 관계로 나아가고 싶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닮았지만, 언젠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지 모르겠군. 허나, 지금의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괜찮지 않은가.”

 

“나는 당신과 좋은 관계…  아니, 당신하고 이어지고 싶어.”

 

“…그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겠지. 네가 그렇게 무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말아주게.”

 

“왜, 왜 안 되는 건데… 내가 매력이 없어서야? 얼굴이 못나서? “

 

“내가 봐왔던 여인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워. 그 박식한 머리 또한 계집이라곤 상상도 못할 정도이니.”

 

“그런데 어째서야…”

 

“우리는 그런 관계로 나아가서는…”

 

나는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기껏 로베르타가 해준 화장이 눈물에 번졌다. 엄청 추한 꼴로 울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거절당한 것도 모자라 못나게 울기까지…

최악이다.

 

엔시오는 자신의 스카프를 내 목에 둘렀다. 

그리고서 흐르는 내 눈물을 그의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사람 헷갈리게 행동하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네, 맹우여.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되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몰라, 모른다구! 왜 안 되는 건데… 그냥 내가 못나서, 내가 싫어서라고 말하면 되잖아… 왜 자꾸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왜…”

 

나는 자리를 일어났다.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웠어. 그리고 이제 안녕, 엔시오데스.”

 

나는 그의 스카프를 벤치에 올려두고서 달렸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그저 달렸다.

구두의 굽이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렷다. 

팔꿈치가 까지고 무릎에서는 피가 흘렀다. 까진 곳이 아픈 것보다 그저 마음이 아팠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버린 것만 같았다.

주저앉은 채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짜증을 잔뜩 내며 나왔다.

 

“남의 실험실 앞에서… 박사, 왜 울고 있지? 팔다리는 어쩌다가… 하는 수 없지.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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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같은 전개를 해보고십어서 여독타로 다시 돌아왓슴니다 

재밋게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