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면 안 되나요? -1


※여독타 순정물입니다.※




쏜즈의 실험실, 난잡하게 어질러진 플라스크와 여러 액체가 담긴 용액들이 뒤섞여있었다.

어딘가 달콤하며 몽롱하지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서 선반을 열어 구급약을 꺼내왔다.

 

“읏…아파…”

 

“아파도 조금 참아라. 흉터가 남는 것보단 낫겠지.”

 

무심하게 약을 바르며, 그 위에 반창고를 덮어주었다.

안경을 벗어 목에 내걸고서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우는 것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

 

“…”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을 이끄는 작자가 고작 남자에게 차여 어린아이처럼 넘어져 울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돼. 진정 될 때까지 여기 있어도 된다.”

 

“…고마워.”

 

그의 무심한 배려가 따뜻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실험에 몰두했고, 나는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묘한 냄새가 자꾸만 코끝을 간지럽혔다.

졸음이 쏟아지고, 어딘가 머리가 멍 해져만 가는 듯했다. 

약재의 냄새에 취해 몸을 비틀거리고 있을 때 실험실 문을 누군가 박차고서 들어왔다.

 

 

“야! 쏜즈, 제발 약재 배합할 때 환풍기 좀 키란 말이야!”

 

“아, 잊어버렸다.”

 

“진짜, 너 때문에 복도에 약재냄새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다고!”

 

‘아… 더 이상은 못 버티ㄱ….’

 

“박사?! 정신 차려. 박사!”

 

약재에 취해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꿈에서 한 남자를 보았다. 거센 눈바람이 몰아치는 설산. 그곳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눈바람에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나는 그의 등을 좇아갔다. 하지만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눈바닥에 나뒹굴었고, 그제야 그가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널브러져 울며 말했다.

‘엔시오데스… 가지마….’

 

 

“엔시오데스…가지마…”

 

“정신이 드나? 몸이 어디 이상하다거나,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 빼면 괜찮아.

 

“혹시 모르니까 조금은 더 안정을 취하도록.”

 

정신을 차린 곳은 실험실 구석의 작은 휴게실이었다. 

작은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밖에서는 위디가 그에게 화를 내며 실험실을 가득 메운 약재의 냄새를 빼고 있었다.

 

“박사, 조금만 더 쉬고 있지… 왜, 왜 울어! 쏜즈, 티슈. 빨리!”

 

“어라…? 나, 왜…”

그녀는 내 눈물을 티슈로 닦아내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째서일까…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나… 차였어.”

 

분명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서일까… 약재 냄새에 취해버린 탓일까 마음속에 묵혀두고 싶었던 말이 무심코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쏜즈는 그 말을 듣자 조금 놀란 듯 보였고, 위디는 오히려 화를 내었다.

 

“뭐?! 누가, 박사를… 그것보다 고백은 누구한테 한 건데?!”

 

“엔시오데스…”

 

“그 머저리 같은 남자가… 쏜즈, 박사를 부탁해.”

 

그녀는 단말기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내며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쏜즈는 많이 당황했는지 그저 티슈만 계속 내게 뽑아줄 뿐이었다.

 

“저기… 티슈 그만 줘도 돼.”

 

“아, 응… 그, 미안하다.”

 

“네가 왜 미안해해… 폐를 끼치고 있는 건 나인걸…”

 

그는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댔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게 다 약제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거 밖에 해주지 못해. 그러니 마음껏 울어도 좋아.”

 

 

 

 

◇로도스 박사의 집무실

 

오퍼레이터 위디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 빈둥거리는 엔시아와 쿠리어.

 

“클리프하트! 네 오빠 어디 갔어?”

 

“응? 우리 오빠는 왜…?”

 

“그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박사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데, 가서 한마디라도 해야 내 속이 풀릴 것 같아!”

 

“그래…뭐?! 오..오빠가 박사를 우…울려?!”

 

“그래! 둘이 잘 만나는 줄 알았는데 펑펑 울고 있더라…”

 

“아으! 진짜 머저리 같은 오빠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엔시아는 보던 만화책을 대충 던져 놓고서 외투를 입었다.

쿠리어는 잔뜩 당황하여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쿠리어! 가서 박사 상태 좀 살피고 와줘!”

 

“아, 네!”

 

엔시아와 위디는 서둘러 엔시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서고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인 듯 무심히 책을 볼 뿐이었다.

 

“실버애쉬, 나랑 이야기 좀 해.”

 

“자네와 할 이야기는 나는 없다만.”

 

“내가 있어!”

 

“하아… 여기서 할 수는 없겠는가.”

 

“당신 때문에 지금 박사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나 해?!”

 

“…”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너, 박사는 그저 네 회사를 키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인 거야?!”

 

“시끄럽군… 언성을 낮춰라.”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마터호른.”

 

“네… 위디씨 나가서 얘기하죠.”

 

“놔! 놓으라구!”

 

마터호른은 잔뜩 흥분한 위디를 끌고 나갔다. 

서재의 방문은 닫히고 묵묵히 책을 읽는 엔시오와 그를 바라보는 엔시아.

짧은 침묵이 흐르고 엔시아가 입을 열었다.

 

“나는 오빠가 이렇게까지 바보 같고 등신인 줄 몰랐어.”

 

“…”

 

“적어도, 박사한테 만큼은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실버애쉬 가문은… 쉐라그는… 엔야 언니도… 박사 덕분에 조금은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된 거 아니야? 왜 그렇게까지 밀어내는 거야.”

 

“엔시아,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오빠는 항상 그런 식이야. 엔야 언니 때도 쉐라그때도 지금도.”

 

그녀는 서재의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갔다.

엔시오는 읽던 책을 덮고서 눈을 감았다.

 

 

 

 

◇쏜즈의 실험실

 

 

“조금은 진정이 됐나?”

 

“…응, 덕분에. 고마워.”

 

약재의 몽롱한 기운이 조금씩 가시고 점차 제정신을 찾았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자 내가 저지른 짓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장에라도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박사님! 괜찮… 아, 안녕하세요. 쏜즈씨”

 

“쿠리어, 나는 괜찮아. 어쩐 일이야?”

 

“엔시아 아가씨께서 박사님께 서둘러 가보라고 하셔서…”

 

“다 들었나 보구나. 괜찮아, 이제…”

 

나는 두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가자, 일해야지.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쏜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돼. 언제든 찾아와라.”

 

“…고마워. 하지만 정말 괜찮아.”

 

나는 도망치듯 그의 실험실을 뛰쳐나왔다.

쿠리어는 조용히 내 곁에서 발걸음을 맞추었다.

 

“엔시아가 많이 걱정하겠다… 내가 다 미안하네…”

 

“…”

 

“저기, 쿠리어?”

 

“…네?”

 

“이후에 혹시 바빠?”

 

“아뇨, 딱히 일정은 없어요.”

 

“그럼 나랑 조금 어울려줄래?”

 

“네…?”

 

그와 나는 한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

작은 조각 케이크와 도넛 몇 개를 포장했다.

 

“엔시아랑 엔야에게 조금 미안해서…”

 

“박사님이 왜 미안해하세요.”

 

“그야… 아니다. 맞아, 나 잘못한 거 없어. 기죽지 말자!”

 

“쿠리어도 같이 먹을 거지? 여기 도넛 진짜 맛있거든.”

 

“…네, 기꺼이.”

 

 

 

 

◇박사의 집무실

 

“박사님! 그 등신 같은 오라버니가 결국…”

 

엔야가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서 달려왔다. 

꼬리로 내 몸을 감고서 나를 껴안았다.

 

“엔..야.. 숨막..혀…”

 

“그 머저리 같은 남자 말고 제게 오세요! 제가 몇 배는 잘 해드릴 자신 있답니다!”

 

“엔야 언니, 박사 숨막혀 죽으려 하는데…”

 

“어머, 죄송해요.”

 

가증스런 두 가슴에 파묻혀 생을 마감할 뻔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엔야에게 기댔다.

 

“이제 정말 괜찮아… 다들 고마워.”

 

“그래 박사, 남자가 오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쿠리어는 어때?”

 

쿠리어는 커피를 마시다 사례가 들려 콜록거렸다.

 

“콜록… 엔시아 아가씨, 저는 연애를 할 수가…”

 

“역시, 내가 매력이 없는 거였어… 남자들은 다 나를 싫어하나 봐…”

 

“쿠리어, 너도 오빠랑 똑같아. 어휴.”

 

“아니… 저는 그게…”

 

엔야에게 안겨서 훌쩍이고 있자 그녀는 조금 거친 숨을 내쉬었다.

꼬리가 조금 더 세게 감겨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은 늦은 밤을 가리켰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집무실에 ID 카드를 두고 온 것이 떠올라 다시 집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집무실 앞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네 뜻이 그렇다면 상관없겠지.”

 

“그래, 나는 그 여자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네 마음껏 해도 좋아.”

 

쏜즈와 엔시오가 말하는 내용을 조금 엿듣고 말았다.

역시, 그는 내게 마음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 실례하지.”

 

모퉁이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그들은 돌아간 것 같았기에 집무실 문을 열었다.

 

“…박사? 이 시간에 어쩐 일이지?”

 

“쏘…쏜즈? ID카드를 두고 와서 가지러 왔어.”

 

화들짝 놀란 내 모습에 그는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웃는 모습을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그럼, 내일 봐.”

 

“…박사.”

 

“응?”

 

“내일 오후에 시간 괜찮은가?”

 

“어… 응, 괜찮을 것 같아. 왜?”

 

“그런가…”

 

그는 말을 흘리고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가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와 한몸이 되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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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최고! 최강! 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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