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생 수상행식 역부여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변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주지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이 세상의 도리는 아직 꿰뚫어 볼 수도 베어 쓰러뜨릴 수도 없다.

허나, 이 난세에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귀인과 만났다. 

 

“사가, 점심 먹으러 갈 거지?”

 

“오오! 소승은…”

 

“유부 튀김에 낫토 밥 맞지?”

 

“박사는 언제나 소승을 꿰뚫어 보는구려...”

 

뭐…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것도 수행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음식들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음식들이 줄줄이 겸비하여 그 번뇌의 고통이 온몸에 전해졌다. 

이곳에 발을 들이밀 때마다 그 고통은 형상화가 되어 육체에서는 엄청난 소리를 내었다. 

 

“많이 배고픈가 보구나.”

 

“아하하, 늘 이 시간이 괴롭소이다.”

 

두 눈을 감고 단전에 힘을 모아 정신을 집중한다. 

방금 막 지어진 따뜻한 쌀밥의 향기, 새하얀 쌀밥 위를 감싸는 낫토의 냄새, 간장의 냄새가 차례대로 스며들어온다. 

 

“츄릅..”

 

벌써부터 입속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악독한 수행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 악독하고 잔인한 수행을 버텨내며 한층 더 성장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냄새가 한층 더 진해져 왔다. 더 참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마치 음식이 코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사가, 이제 눈 떠도 돼.”

 

“어느새! 매번 신세를 지는구려... 잘 먹겠소이다!”

 

쌀밥 위에 얹혀진 낫토와 계란, 와사비를 정성껏 휘젓는다. 

쭉 늘어진 낫토를 젓가락으로 휘감아 밥과 함께 입에 한가득 넣었다.

 

“으으음~”

 

“하하하, 사가는 진짜 먹을 때마다 너무 행복하게 먹는다니까. 그렇게 맛있어?”

 

“그렇소이다! 정말이지… 로도스 요리사들의 실력은 일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박사는 한참을 웃으며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것도 추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밥을 절반 정도 먹은 뒤에 유부 장국을 마셨다. 

따스한 온기가 전신에 퍼지며 요리사들의 따뜻한 정이 느껴져 왔다.

밥과 국을 그릇째 들고서 사정없이 입에 넣었다. 

그렇게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서 젓가락을 내려 두었다.

 

“잘 먹었소이다.”

 

“사가, 밥풀 묻었어.”

 

그는 내 뺨에 묻은 밥풀을 때어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박사의 손끝이 닿았을 때 어딘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소이다.”

 

“그럼, 이제 일하러 가볼까?”

 

 

 


 

평소 그의 일을 돕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서들을 정리해 넘겨 주거나, 무엇인가 읽고 있을 때 커피라 불리는 차를 우려내 주거나, 

혹은 간단한 심부름 정도가 끝이었기에 아직 세상에 아둔한 나 역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사가,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아, 알겠소. 소승은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다녀오시구려.”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돌아오는 길에 사올게.”

 

“오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부탁드리오. 젤라토 라고 하는 것이 먹고 싶소이다!”

 

“알았어. 다녀올게.”

 

그는 외투를 걸치고 집무실을 서둘러 나갔다.

박사가 없는 집무실은 꽤 넓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닫아 뒀음에도 난방을 켰음에도 어째서인지 조금 추웠다.

 

*노크소리*

 

“들어갈게~ 어라, 사가. 박사는 어디 갔어~?”

 

“박사는 조금 전에 용무가 급히 생겨서 나갔소이다. 크루스 시주께선 어인 일로 오셨소이까?”

 

“박사한테 부탁받은 것들 가져왔거든~”

 

그때, 그녀의 뒤로 다른 이들도 잇따라 도착했다.

 

“크루스, 집무실에 박사 없어?”

 

“뭐야, 그 녀석. 기껏 놀러 와줬더니…”

 

“라바 시주, 니엔공!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구려.”

 

“사가, 잘 지냈어?” 

 

라바 시주와 니엔공은 다른 몇몇 이들과 함께 특수작전팀에 배정되어 근래 로도스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우들의 얼굴이 반가웠다.

 

“아~ 귀찮아. 달라붙지 좀 마!”

 

“딱딱하게 굴지 마 라바~ 들어가서 기다리자구. 어차피 한가하고.”

 

“네가 한가한 거지 나는 바쁘거든?”

 

“아하하, 미안해~ 사가. 실례할께~”

 

그녀들은 집무실에서 조촐한 다과회를 열었다. 

나는 그 이야기에 쉽사리 낄 수가 없었다. 

보통의 여성들처럼 사랑이야기 라던가, 남자 이야기 같은 주제에는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먼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갑작스레 크루스 시주가 말을 걸어 왔다.

 

“사가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가, 갑자기 말이오?! 으음… 소승은 없는 것 같소이다…”

 

“그럼, 예를 들어서~ 일이 끝나고도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라던가~”

 

“으음…”

 

불현듯 박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같이 있으면 즐겁다거나~”

 

“믿을 수 있고 뭐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싫다거나~”

 

“손을 잡아 보고 싶다거나~?”

 

“키스 하고싶….. 아야야야… 아파~”

 

“크루스, 너 너무 흥분했어.”

 

어째서인지 그녀가 말할 때마다 박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어 무심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그녀들은 악귀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으으… 소승은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없소이다… 정말, 정말이오…”

 

“흐응~ 우리는 아무 말 안 했는데?”

 

“짖굳소이다. 다들…”

 

 


“다녀왔어… 으와,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아, 니엔, 라바, 고생했어.”

 

“어서 와~ 어라? 손에 그건 뭐야~?”

 

“응? 아, 사가가 젤라토 먹고 싶다 해서 사왔는데 먹을래?”

 

그는 한 젤라토를 내게 건넸다.

 

“자, 이건 사가꺼. 말 차 맛도 있길래 사왔어.”

 

“가…감사히 받겠소….”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가 건네는 젤라토를 받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외투를 벗어 걸고서 내 옆에 앉았다.

 

“아..으…아…. 소,소승은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소…!”

 

“어? 어… 그래.”

 

나는 황급히 집무실 바깥을 뛰쳐나갔다.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 낀 것이 분명했다. 수행 부족이다.

 

 

 

 

 

◇박사의 집무실

 

“너희 사가한테 무슨 말 했어?”

 

“딱히~”

 

니엔은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누구는 일거리를 산더미처럼 불려서 주고, 누구는 친절하게 일 알려주며 먹을 것도 사다 주고?”

 

“아하하… 요즘은 그래도 조금 한가해서요. 마침 나가는 길에 사가가 먹고 싶다길래 사다 준 거고…”

 

“정말 그게 다야?”

 

“…아마도.”

 

“솔직하게 누님에게 털어놓지 못할까.”

 

“으… 진짜,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요.”

 

박사는 사가에게 품은 마음을 그녀들에게 털어놓았다.

 

 

 


 

◇로도스 훈련장

 

“우오오오오!”

 

“사가씨, 무슨 일 있으신가… 벌써 몇 시간째 뛰고 계시는데…”

 

“그러게, 오늘따라 유독 심하시네…”

 

잡념을 떨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라 생각했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복잡한 이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가, 시끄럽다!”

 

“죄, 죄송하오 아카후유공…”

 

그녀는 훈련용 나기나타를 내게 던졌다.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그녀는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으윽, 너무 갑작스럽지 않소이까!”

 

“네놈이 꺅꺅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집중이 잘 안되잖냐!”

 

“그,그건…”

 

그녀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몰아붙여 왔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크게 휘둘렀다. 

 

“왜 그러지? 사가, 평소답지 않게 망설임이 느껴지는데!”

 

“후우… 죄송하오. 전력을 다해 가겠소이다.”

 

그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집중해야만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흐트러진 자세를 갖추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쥐었다.

 

단, 일격. 

비록 대련이었으나 패배의 쓴맛은 썩 좋지 않았다.

그녀는 칼을 집어넣고서 내게 다가왔다.

 

“너답지 않군. 집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별일 아니오. 그저 소승의 수행이 모자란 탓이오.”

 

“…그래.”

 

그녀는 말없이 훈련장을 떠났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훈련장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은인이자, 스승이자, 상사인 박사의 얼굴이 자꾸 생각나 미칠 것 같다고…

벽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후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 소승 때문에 죄송하오..”

 

나는 서둘러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박사의 집무실에 가야 했으나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내 표정이, 목소리가,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어? 사가. 여기 있었구나.”

 

“바,바,박사?! 어쩐 일이오…?”

 

“연락이 안 되길래 걱정돼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하하… 괘,괜찮소이다! 소승은…”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까 사온 젤라토 집무실 냉장고에 넣어놨으니까 나중에 먹어.”

 

“아, 고맙소이다!”

 

“그래, 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내일 보자.”

 

그는 서둘러 복도 저 끝편으로 사라졌다.

극동에는 꽃보다 경단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우선 먹고서 생각하는 것이 최고일 것 같았다.



집무실 냉장고에 그가 사온 젤라토를 꺼내어 소파에 앉았다.

조금 독특한 느낌이었다. 차로만 마시던 말차가 이런 아이스크림의 형태로 있었을 줄이야…

숟가락으로 조금 떠 입에 넣었다. 마침 땀을 흘렸던 터라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리고 입안에 은은히 퍼지는 말차향, 틀림없이 늘 마시던 그 말차가 맞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바닥까지 다 긁어먹고 말았다.

조금 양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 입맛을 다시며 방으로 돌아갔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조금 이른 시간 9시 정각. 복잡한 심경을 뒤로 한 채 잠이 들었다.

오늘따라 쉽게 잠이 들진 못했다. 조금 뒤척인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사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으아아아!”

 

잠에서 깨고야 말았다. 시계를 보니 6시 정각.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이상하고 복잡한 꿈을 꿔버리고 말았다. 이게 다 어제 크루스 시주가 괜히 한 소리 때문이다.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를 정리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하루의 일과는 심신 단련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간단한 근력 운동을 끝마치고서 운동장을 가볍게 뛴다. 

나기나타를 들고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베어야만 하는 존재를, 번뇌를, 적을.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 구나. 사가.”

 

“니어공, 좋은 아침이오.”

 

그녀와 매일 아침 간단하게 대련을 한다. 

빛의 기사라 불리는 그녀의 솜씨는 가히 로도스에 으뜸이라 칭할 정도로 엄청난 강자이다.

 

“후우… 오늘도 또 한 수 배워가는구려.”

 

그녀에게 인사를 한 뒤에 방으로 돌아와 눈을 감는다.

단전에 힘을 모으고서 명상에 집중한다.

 

‘사가, 먹고 싶은 거 있어?’

 

‘사가는 진짜 맛있게 먹는다니까.’

 

‘사가, 사가, 사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그의 생각에 정말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주지 스님… 소승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닦았다. 

양 볼을 치며 최대한 잡념을 떨치려 노력했다.

 

 

“사가,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오. 박사…”

 

“말차면 되지?”

 

“고맙소이다..”

 

집무실에서 그와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아침에 했던 우려와 달리 그를 바라보아도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와 웃으며 떠드는 이 순간이, 이 일상이 행복했다.

 

오늘 하루도 평소와 같이 시작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를 분류하고, 그에게 전해주고, 커피를 우려주고…

 

“박사, 이런 서류는 어떻게 분류하는 것이 좋겠소?”

 

“어디 보자…”

 

“흐갹!”

 

“왜,왜그래?”

 

“벼,별거 아니오! 혀, 혀를 잘못 씹었소이다…”

 

“괜찮아?”

 

“괜찮으니! 정말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소이다!”

 

아… 이 미련한 중생은 대체 어찌하면 좋겠는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얼굴이 새빨개질 줄이야…

박사는 내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으나,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사가. 정말 괜찮아? 얼굴 빨간데?”

 

“아…으… 죄송하오.”

 

“오늘 컨디션 안 좋으면 어서 들어가서 쉬어. 남은 것들은 내가 해둘게.”

 

“괜찮…”

 

“들어가. 무리하지 말고.”

 

“죄송하오…”

 

그는 웃으며 나를 돌려보냈다. 정말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한평생을 마음을 닦으며 수련했건만 고작 이런 사소한 문제로 그에게 폐를 끼치다니…

아무래도 그의 말처럼 어딘가 아픈 것이 아닐까 의심되었다. 

그래서 곧장 의료 부로 향하였다.

 

*노크소리*

 

“네, 들어오세요. 어라? 사가씨, 어쩐 일이세요?”

 

“안셀공… 아무래도 소승, 몹쓸 병에 걸린 것 같소.”

 

“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데요?”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거나, 새빨개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돼버려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있소…”

 

“갑작이라는 게… 언제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그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바,박사와 함께 있을 때 그렇소이다…”

 

“…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안셀공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한 약병을 내게 건네었다. 

 

“음… 일단 청심환이니까 이거랑 같이 마셔보세요.”

 

“고맙소…”

 

“아마, 그거 사…랑이 아닐까요?”

 

“콜록, 콜록, 사…사…..사…”

 

“으아! 사가씨가 고장 나버렸어!”

 

사랑? 내가 박사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그저 그를 스승이자 은인으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헌데 어째서 자꾸만 그의 생각이 나는 것일까, 정말로 내가 그를 사모하는 것일까.

생각은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나는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 존경의 의미라고, 크루스 시주가 한 말 때문에 괜히 이상한 망상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사를 다시 한번 마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셀공, 감사했소!”

 

“아, 네. 안녕히… 뭐였을까….”

 

그가 건넨 약이 효과가 있는 듯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결 가벼워졌다.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갔다. 

 

“라바공? 박사는 어디 갔소이까?”

 

“응? 아아, 잠깐 시라쿠사에 일이 생겨서 방금 나갔어. 내일쯤 돌아온대.”

 

“그…렇소이까…”

 

나는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왜 쓸쓸한 기분이 들었을까…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에 훈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도 수많은 로도스의 사람들이 육체를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왜 그렇게 풀이 죽었냐.”

 

“아카후유공…”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한 수 부탁하지.”

 

“후우! 알겠소이다.”

 

오늘은 굉장히 집중이 잘 되었다. 약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검격을 맞받아치며 몇 합을 더 이어나갔다.

 

“하앗!”

 

그녀를 향해 내려친 나기나타의 목이 부러졌다. 

아무래도 목재로 만들어진 수련용이기에 험하게 다뤄 그 명을 다한 것 같았다.

 

“쯧, 흥이 깨졌다.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지.”

 

“소승, 술은 사양하겠소이다…”

 

“그럼 상대라도 해줘.”

 

그녀를 따라 한 주점에 들어갔다. 

극동에서 온 요리사가 차린 음식점인듯했다. 고향의 것들이 보여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요 근래 그렇게 사랑에 빠진 얼굴을 했던 이유가 뭐야? 누구에게 그렇게 홀딱 반한 건데.”

 

“무,무,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뭐야, 아니야?”

 

“사랑이라니 당최 소승에 분수에 맞지 않소이다…”

 

“왜? 네가 어디가 모자라는데. 정식 승려도 아니라면서, 사랑 같은 건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그럼 아카후유공은 어째서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오?”

 

“당연하잖나, 남자가 없다. 남자가.”

 

“…그렇소이까?” 

 

“훈련장에 백날 죽치고 있는 것들은 죄다 쭉정이 같은 남자들뿐이다.”

 

“다른 여자들 그저 꺅꺅대며 그 녀석들이 잘생겼다며 난리를 치지만, 내게는 그저 실속이 없는 남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아! 근성이 없단 말이다. 근성이!”

 

그녀는 조금 취한 듯 열심히 열변하기 시작했다.

 

“알겠느냐? 사가, 잘 듣도록 해. 남자는 그 겉껍데기가 다가 아니다. 그 내면을 바라봐야 해. 세상을 꿰뚫는 지식과 능력, 그리고 그 마음!”

 

“너무 취한 것 같소… 그만 마시는 게…”

 

“안 취했어!”

 

그녀는 술잔에 술을 더 따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직 듣지 못했잖느냐. 사가, 어떤 남자냐?”

 

“사랑…은 아니오. 그저 존경이라 생각하고 있소. 그는 언제나 소승이 모르는 것들을 알려주며 해답을 가르쳐 주는 선생과도 같은 그런 사람이오.”

 

“호오…” 

 

술 냄새에 취해버린 것일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실은… 소승은 잘 모르겠소.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 잠을 잘 때에도, 명상할 때에도, 훈련을 할 때에도 자꾸 떠오르는 것이 정말이 미칠 것만 같소이다…”

 

“하! 존경은 무슨, 사랑이다. 그건 무조건!”

 

그때, 그녀의 팔꿈치가 술잔을 탁자 밑으로 밀어 깨지고 말았다. 

점원이 깜짝 놀라 달려왔고 그녀는 사죄하며 뒷수습을 했다. 

무엇인가 두 번이나 깨지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후우… 술맛이 다 가버리는군.”

 

“아하하, 괜찮소?”

 

“아무래도 네 말대로 너무 마셔버린 것이겠지. 미안하다.”

 

“소승에게 사과할 것은 없소이다.”

 

그녀와 나는 간단하게 인사한 뒤에 헤어졌다. 

오늘은 조금 잠이 달아난 밤이었다. 방에 들어와 물을 틀고서 샤워기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아카후유공의 말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휘저어놓았다.

 

‘같이 있으면 즐겁다거나~ 남에게 빼앗기기 싫다거나~ 손을 잡고 싶다거나~’

 

크루스 시주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확실히 나는 박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가 나와 조금 더 시간을 보냈음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가 다른 여성과 손을 잡는 것을 떠올렸다. 어딘가 싫은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사랑이구나.”

 

나는 손으로 두 뺨을 감쌌다. 거울을 바라보니 얼굴은 마치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서야 나는 내 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내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와 만나는 날이 이렇게도 기다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 아침은 썩 좋지 않은 날씨였다. 

먹구름이 잔뜩 껴 금세 눈이 펑펑 내릴 것만 같았다. 

훈련장으로 향했으나 오늘 내부 수리 때문에 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방에 돌아가 근력 단련만 했다. 

명상은… 박사의 생각에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간단히 몸을 닦고서 집무실로 향했다. 박사는 오후에 돌아온다는 것 같았다.

홀로 집무실을 청소하고, 차를 우려 창밖을 바라보며 마셨다. 칙칙한 눈이 조금씩 흩뿌려지고 있었다.

 



*노크소리*

 

“사가~ 밥 먹으러 안 갈래~?”

 

“아,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소!” 

 

평소와 같이 낫토 밥과 유부 튀김을 시키려 했으나 재료 소진이라 적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샌드위치라는 것을 시켰다.

 

각종 야채와 익히지 않은 햄, 계란이 빵 사이에 껴 있었다.

그 사이에 이상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밥 대용으로 먹기에는 너무나 양이 적었다.

 

집무실로 돌아와 하염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박사가 돌아올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 때쯤…

 



*천둥소리*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눈이 흩뿌려졌다. 

이윽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라바 시주가 집무실에 뛰어들어왔다. 

 

“사가!! 큰일 났어… 박사가… 박사가…!”

 

나는 곧장 의료 부로 뛰었다. 

이래서는 안 됐다. 내가, 모든 것이 다 내 책임이다. 그의 호위였던 내가… 없었기에…

눈물이 흘렀다. 자책은 점점 심해졌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면, 내가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았더라면, 내가 로도스에 입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라바 시주와 크루스 시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절에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소승이…왔소이다… 박사. 일어나 보시게…”

 

그는 손에 목걸이를 쥐고 있었다.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연꽃 모양의 작은 목걸이였다. 

박사는 말없이 누워있었다. 싸늘하게 그저 누워서…

 

“일어나보시게! 박사, 이제야… 이제야 알았단 말이오…”

 

“사가….”

 

“이 미련한 소승이… 이제야 깨달았건만, 어찌하여 당신은 그저 누워만 있는 것이오…!”

 

나는 울며 그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았다.

그저 목놓아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기에…

곧이어 켈시 선생이 들어와 그를 어디론가 가져갔다. 

 

나는 공허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죽음으로 사죄하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가! 뭐 하는 거야!”

 

“놓으시오! 이것밖에… 이제는 이것밖에 소승에게 남은 것이 없소이다…”

 

“이 멍청아! 네가 죽는다고 박사가 좋아할 것 같아?!”

 

“그럼 말해주시오! 소승은… 모르겠소이다…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부디 말해주시오…. 라바 시주.”

 

“이거, 박사가 네 생일 선물이라고 산 거야… 받아.”

 

그녀는 박사가 쥐고 있었던 목걸이와 한 쪽지를 건네었다.

 

『생일 축하해! 사가. 실은 너랑 같이 시라쿠사에 오고 싶었는데, 네가 몸이 안 좋아서 혼자 와버렸네. 돌아가는 날 네 생일이라서 선물이라도 사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고민해서 골라봤는데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다. 맛있는 거 혼자 먹고 와서 미안하고… 이거 받고 용서해주라! -늘 신세를 지는 박사가.』

 

“살아, 박사가 무엇을 위해 로도스에서 일을 해왔는데,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서, 차별 없이 웃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일한 거잖아… 그러니까 사가… 부탁이야. 살아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 두 손을 붙잡았다. 

우리는 목놓아 울었다. 목소리가 박사에게 닿길 바라며… 슬피 울었다.

 

 

 

 

며칠 내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로도스의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추모했다. 

슬피 우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으나 우리는 마냥 울 수 없었다. 

그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의 죽음으로 멈춘다면 여태 노력한 그의 행적이 모두 부인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눈을 감고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나는 그를 그렇게 만든 이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지 스님의 뜻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죄악감은커녕 웃으며 욕망을 표출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토악질이 쏠렸다. 

 

아무도 그들에게 단죄를 내리지 않는다면… 기꺼이 내가 삼라만상을 베어내고 수라가 될 각오를 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의 인사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말없이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났다. 

 

 

 



 

◇사가의 방

 

“크루스! 사가, 못 찾았어?!”

 

“응, 미안해…”

 

그녀는 쪽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쪽지에는 그저 ‘소승의 과업을 바로잡기 위해 잠시 여행길에 떠나겠소이다. 그동안 감사했소.’ 라고 적혀있었을 뿐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가 잘못된 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설마, 박사의 복수라도 생각한 건…”

 

“…미치겠네. 크루스, 보고서 좀 대신 부탁할게!”

 

“라바~!”

 

 

 





 

 

◇시라쿠사 골목

 

“크악! 사..살려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모른다고!”

 

“그이도 비명을 질렀을 터, 그런 당신이 참으로 뻔뻔하게 그런 소리를…”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제발… 집에 가족이 기다리고있…”

 

사내는 목이 베어져 바닥에 나뒹굴렷다. 

피 칠갑이 된 승려는 나막신 소리만이 흐르는 골목을 배회했다. 

골목에는 비명과 격하게 싸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시라쿠사 번화가

 

“저기, 혹시 승려 복장을 한 페로족 못 봤어?”

 

“못 봤는데?”

 

“하아… 고마워.”

 

벌써 2주가 지났다. 별 소득 없이 시라쿠사 시내를 배회하며 사가를 찾고 있었다.

단신으로 들어간 그녀가 걱정되었고 한편으로는 차마 건너지 말아야 할 길을 건너버린 것만 같아 너무 불안했다. 내가 알던 명량 하며 쾌활한 사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봐…

오늘은 골목 쪽으로 향했다. 박사에게 해를 가한 그 녀석들이 있는 곳…

처음부터 이곳에서 물어봤어야 했으나, 정말 가고 싶지 않았고 혹여나 사가가 바깥에서 배회하고 있을 것 같았다.

 

골목 한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혹시… 승려 복장을 한 페로족 못 봤어?”

 

“으아아아악! 난 몰라! 모른다고… 가, 제발 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만 알려줘.”

 

“저 골목에서 또 칼질이나 하고 있겠지… 부탁이야, 제발 그 광견을 좀 멈춰줘!”

 

그가 가리킨 곳으로 향하자 피 칠갑이 되어있는 한 승려가 서 있었다. 

바닥에는 시체들이 나뒹굴었으며, 그곳에서 바닥에 울며 비는 남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더러운 입으로 뻔뻔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려.”

 

“사가! 그만둬….”

 

그녀는 무심하게 남자의 머리를 베어 바닥에 내던지고서 뒤를 돌아봤다.

 

“오오… 라바 시주, 오랜만에 뵙는구려.”

 

“사가… 어떻게 된 거야… 다 네가 한 짓이야…?”

 

“그렇소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봐야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소. 그렇다면 소승이 직접 나서서 베어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나는 그녀의 뺨을 쳤다. 

 

“라…바 시주…?”

 

“이 등신아! 누가… 누가 너보고 복수해달라 했어?! 박사가, 이 쓰레기들을 다 죽이라고 시키기라도 했냐고!”

 

“왜 그런 거야… 왜!”

 

그녀는 이를 세게 물고서 화를 내었다.

 

“그렇다면 말씀해보시오! 그간 베풀었던 이들이 왜! 박사를 죽였는지,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어떡해! 용서하란 말이오. 자비를 베풀란 말이오?!”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소승이 직접 해야 한다 생각했소! 그렇게라도 박사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소! 그것만이 유일한 사모하는 남자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소… 라바 시주, 부탁이오… 소승을 막지 말아 주시오.”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내 마음도 머리도 이들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이 옳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때문에 망가져 가는 사가를 두고 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부탁이야… 사가, 이런 녀석들 때문에 네가 망가지지 마.”

 

“…놓으시오.”

 

“돌아가자? 로도스로…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소이다… 놓으시오.”

 

“제발…”

 

나는 흐느끼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나기나타를 내게 휘둘렀다.

 

“죄송하오. 라바 시주…”

 

칼날이 내 목에 닿기 전에 크루스의 음성이 도착했다.

 

“라바~! 박사가, 박사가 깨어났어! 빨리 돌아와~!”

 

“…박사가, 깨어나…?!”

 

“사가, 돌아가자…?”

 

“어떻게..? 박사는 분명… 거짓말이오. 그런 얄팍한 거짓말로 소승을 속이려 하지 마시오!”

 

“내가 이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어…”

 

“정말…로 박사가…”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또한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이 엄청 모여있었다. 아무래도 죽은 줄만 알았던 박사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모인 것이었다.

나와 라바 시주는 이제 막 도착하여 그 행렬 뒤에서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미야공이 나와 조금 시간이 걸리니 다들 각자 할 일에 돌아가라며 모두를 돌려보냈다. 

모두가 돌아갔지만 나는 그저 두 손을 모아 기다릴 뿐이었다.

 

 

 

 

손꼽아 기다렸던 문이 열리고 비틀거리는 한 남자… 박사와, 켈시 선생이 같이 나왔다.

 

“…박사! 소승이, 왔소이다….”

 

“누구…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미안하다. 사가, 그는 치료의 후유증으로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비틀거리며 무릎 꿇고 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제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가씨.”

 

나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서 흐느끼며 말했다.

 

“소승은.. 사가라고 하오… 객승으로 있으니, 소승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부디… 부디 명령을 내려주시오… 박사.”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의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가 없어서일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이유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그가 돌아온 것으로 다행이었다.



그와의 쌓아 올려진 추억은 다시 쌓아가면 된다. 내가 박사를 사모하는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니, 언젠가… 언젠가 이 마음이 닿길 바라며 나는 오늘 하루도 그의 호위를 맡는다.

 

“박사, 좋은 아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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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려 했던 감정이 잘 담겼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할일 하면서 쓸려니까 시간이 잘 안나기도하고 한번에 팍 써야대는데 짬짬히 쓰다보니

여튼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겟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