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직접 채굴해온 최고급 오리지늄을 정확하게 1분 45초를 구운 뒤, 방금 갈아서 더더욱 따뜻한 오리지늄 쉐이크와 함께 먹고 있다 보니, 갑자기 앞으로 30일 동안 아이린의 이마를 쓰다듬고 싶어졌다.

덤으로 무릎 위에 올려서 앉혀놓은 채로, 아무튼 그러고 싶어졌다.

이유는 별 것 없다. 그냥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어시스턴트로 임명하게 되면 매일매일 오게 될 테니, 조건은 충분하기도 하고.

켈시에게 그런 이유로 지금부터 실험을 해보겠다고 말하자, 한숨을 내쉬며 그런건가...이성이 부족한건가...아니...방금 먹었나...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오리지늄 다섯 개를 줬다.

아마도 괜찮다는 뜻이겠지.

이름하여 어시스턴트로 임명한 아이린을 30일 동안 무릎 위에 앉히고 이마를 쓰다듬는 실험.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1일차. 


"박사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들어온 아이린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떠올리는 그런 표정으로 다가온 아이린을 바로 껴안아서 무릎 위에 올린 뒤, 뒤에서 이마를 쓰다듬어줬다.


"엣? 에...엣?"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제법 귀엽다.



2일차.


"박사님, 오늘 분 서류가 이만큼...이걸 어떻게 다 처리하고 계신거죠?" 


의문을 표하면서 아이린이 책상 위에 서류를 내려놓는다.

오늘도 서류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면서 살짝 아이린을 곁눈질 하자 시선이 마주쳤다.


"읏...!"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가지고 온 책에 열중하는 아이린. 아마 어제 일을 떠올린 걸까.

어제보다는 살짝 경계심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다 생각이 있다. 마지막 서류를 내려놓고 집무실에 딸린 부엌의 냉장고에서 푸딩 두 개를 꺼내서 바로 옆의 테이블 위에 놓는다.


"그 푸딩은...혹시...맛있어 보이네요."


역시, 귀를 파닥파닥 거리면서 흥미를 보인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각도에 앉은 채, 숟가락을 푸딩에 꽂고 가져가라는 손짓을 하자 바로 다가와서 푸딩을 잡는다.

이 때를 노렸다.


"와앗...! 박사님...!"


최대한 빠르게 손을 뻗어 아이린의 자세를 내 쪽으로 무너뜨리고 너무나도 가벼운 그녀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힌 뒤 뒤에서 이마를 쓰다듬는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나저나 이 푸딩 맛있네요. 역시 한정판다워요. 아...혹시 하나 더 먹어도 되나요?"


들여다보니 잠시 파닥거렸지만, 이내 푸딩의 맛을 느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린이였다.

역시 아직 어리긴 어린 모양이다.



3일차.


"...저, 박사님.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요."


머뭇거리면서 말을 걸어오는 아이린을 일부러 무시하며 서류들을 하나씩 기계적으로 쌓아놓는다.


"...박사님, 많이 바쁜가요...?"

"...저기, 박사님?"

"...흥!"


아무래도 삐진 모양이다. 고개를 살짝 들어서 아이린을 보니 소파에 앉은 채 역시 완전히 삐진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고 책을 읽고 있지만, 동시에 중간중간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다가가서 사과하자, 뭐어...괜찮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의 옆에 앉았다.

덤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로 살며시 들어서 앉힌 뒤 뒤에서 이마를 쓰다듬는다.


"...그래서 박사님, 대체 이 행위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슬슬 설명해줬으면 해요...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나를 올려다보려는지 고개를 뒤로 꺾더니, 입술을 삐죽이면서 아직 삐진게 덜 풀렸다는 것을 어필하는 아이린에게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자, 그렇다면 햄버그 스테이크 정식으로 용서해줄게요. 라고 말하며 빙긋 웃는 모습이 어쨌든 귀여웠다.



4일차.


"매번 궁금한데, 박사님은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대체 어떻게 되시나요? 저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물어오는 아이린에게 나의 하루 일과표를 읽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음음...하다가 엥? 을 지나서 뭐?! 라는 다양한 반응을 보인 아이린은 일과표를 내려놓고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살인적인 일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재판소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라구요."


뭔가 동정하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한 아이린에게 나는 괜찮다고 말하자, 서류를 조금 가져가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한 아이린은 이거는 저도 할 수 있네요. 그렇게 말하며 줄을 긋기 시작했다.

한동안 방에는 펜이 오가는 소리만 들리고, 잠시 몸을 돌리고 기지개를 펴는 순간 아이린이 서류를 다시 가져왔다.


"박사님, 이거는 제가 보기엔 숫자가 틀린 것 같으니 다시 계산해보라고 반려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거는..."


너무 무방비하게 가까이 다가온 작은 새를, 나는 손을 뻗어 껴안고 무릎 위에 올린 채 뒤에서 이마를 쓰다듬었다.

얼굴을 붉힌 채 한창 쓰다듬어지면서도 자신이 검토한 서류들을 열심히 설명하던 아이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고생이 많으시네요...그런데 매번 궁금했지만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줬으면 해요."


서류 검토가 아주 잘 되어서 기쁘다고 말하며 더더욱 상냥하게 쓰다듬자, 어깨를 으쓱한 아이린은 다른 서류를 집었다.


"이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어요. 선생님께 많은 걸...배웠으니까요."


들여다보자 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 아이린이 오늘도 귀여웠다.



5일차.


"저기, 박사님. 혹시 운동은 따로 하시는 건 없으신가요?"


그렇게 물어오는 아이린에게 고개를 저으니, 무언가를 내미는 아이린이였다.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하체 근력 강화랑...상체랑...허리도 있어요."


내민 책자에는 그림과 함께 운동 방법들이 적혀 있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아이린은 아주 작게 귀를 파닥거렸다.


"박사님은 앉아있는 시간이 기시니까요. 건강을 챙기셔야죠. 이 운동은 재판소에서도...아뇨, 이 이야기는 그만두죠."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쌓인 서류 더미에서 몇 장 가져가서 읽기 시작한 아이린은 때로는 흐음...음...하면서도 착실하게 서류를 읽고 있었다.

덕분에 오늘은 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지금 일단 한 번 적힌대로 운동을 해볼까.

첫 번째 자세는 의자에서 허벅지를...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네, 박사님...자세를 잘 모르시겠다고요? 어떤 자세가요?"


그렇게 아주 가까이 다가온 아이린에게 재빠르게 양손을 뻗어 품 안으로 데려와서 무릎 위에 앉힌 뒤 이마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사실 박사님께 근육이 별로 없어서 엉덩이가 좀 아파요. 빨리 근육을 키우세요."


아, 그리고 이유도 설명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에게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자, 

흥 하고 삐진 티를 내면서도 서류를 읽는 아이린이 귀여웠다.



6일차.


"오늘은 로도스 함내를 한 번 돌아다녀보고 싶어요. 안내해주시겠어요?"


어떤 바람이 분 걸까,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아이린에게 눈 앞에 쌓인 서류 더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서류의 5분의 1정도를 가져가서 열심히 체크하는 아이린.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그런지 오늘은 서류가 무척 빨리 처리되었다.


"자, 이제 나갈 시간이 되죠? 그럼 어서 에스코트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내민 아이린의 왼손을 나는 오른손으로 살며시 잡고 걷기 시작했다.

여기는 훈련실, 여기는 발전소, 여기는 제조소, 여기는 무역소, 여기는 응접실, 여기는 제조소, 여기는 인사부...여기는 니엔의 쓸데없는 것을 처박아두는 곳, 여기는 히키코모리의 은신처, 여기는...술집, 그 옆은 와인 바.

다양한 곳을 안내해주다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갑판에 올라갔다.


"...로도스는 정말 넓군요. 하지만 옛날 이베리아의 기함에 비할 바는 아니네요."


살짝 자랑하듯 말하며 근처의 벤치에 주저 앉은 아이린에게 방금 사 온 딸기 주스를 내민다.


"...이베리아의 기함에는 말이죠...이베리아는 무사할 수 있을까요."


나란히 딸기 주스를 마시면서 두 개의 달을 같이 올려다보다가 옆을 보니, 아이린의 눈빛은 어딘가 멍하게 보였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려고 하네요...앗!"


뭔가 우울해보이는 아이린을 순식간에 들어올려 내 무릎 위에 앉히고 뒤에서 이마를 쓰다듬는다.

잠시 다리를 버둥거리던 아이린은 이내 포기한 듯, 내 가슴에 등을 기댔다.


"...박사님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고마워요, 라고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아이린이 귀여웠다.



7일차.


오늘은 아이린이 조금 늦는다.

별 일은 없을테니 서류나 마저 처리하자.

한참 엘리시움이 쓴 이 괴상한 소리들을 읽다보니, 문이 쾅 하고 열린다.


"하아...하아...늦어서 미안해요, 박사님."


머리도 채 정돈하지 못한 채, 온통 산발이 된 아이린이 허둥지둥 들어와서 문을 닫고 소파에 주저앉더니 숨을 헐떡인다.

일단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내밀자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린은 순식간에 물을 마시고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캘록, 캘록하고 제법 귀여운 기침을 한다. 사레가 들린 모양이다.

옆에 앉아서 등을 두드려 주자, 숨을 마침내 고른 아이린이 후우, 하고 큰 한숨을 내쉰다.


"어젯밤에...잠을 좀 못 자서...늦잠을 잤네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해요."


아직도 피곤하면 조금 더 쉬라고 말한 뒤 서류를 처리하러 다시 자리에 가려던 찰나, 왼손이 붙잡혔다.


"아뇨, 피곤한 건 피곤한거고 일은 일이니까요. 제가 하게 해주세요."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젓는 아이린을 하는 수 없이 일으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주저 앉으며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비스듬하게 앉힌 뒤 이마를 쓰다듬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어쨌든 제가...제 일을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평소보다 힘이 빠졌는지 반응이 약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때로는 어른다운 대응을 하게 해달라고 하자, 놀랐는지 눈이 커진 아이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며 내 품 안에서 잠든 아이린을 소파에 눕혀놓고 다시 서류를 처리했다.

어쨌든 오늘도 귀여웠으니 용서해주자.



8일차.


"그...어제도 그렇고, 이틀 전에도 정말 고마웠어요. 박사님."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따라 더욱 얌전한 아이린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나도 덩달아 일어나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나를 보고 쿡쿡 웃던 아이린은 자연스럽게 서류를 위에서 4분의 1 정도로 크게 덜어가더니 소파에 앉았다.


"박사님도 참...때로는 믿음직스러우면서도...음..."


한동안 아무 대화 없이 서류 처리에만 집중하던 도중,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쳐다보자 소리없이 다가온 아이린이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 채 서 있었다.


"저만 놀라는 건 조금 그러니까, 오늘은 한 번 놀래켜 드릴게요. 아, 이 서류들은 오류가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내려놓는 아이린을 향해 재빠르게 양 팔을 뻗자 순식간에 뒤로 빠지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아이린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부터는 아마 쉽지 않을 거에요. 전 이미 준비를...앗!"


뒤로 돈 아이린을 다시 한 번 재빠르게 낚아채서 무릎에 앉힌 뒤 이마를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으으...방심해버렸네요."


다음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이 제법 재밌었다.



9일차.


"바다와 이베리아와 관련한 업무 외에는 제가 책임질 일은 아니겠지만...박사님의 어시스턴트인 이상, 건강과 멘탈 관리는 제가 책임질 일이겠죠."


그렇게 말하며 다짜고짜 나를 끌고 나온 아이린에게 오늘은 어울려주기로 마음 먹고, 어디로 갈거냐고 묻자 훈련실 옆의 사격장을 웃으면서 가리키는 아이린.


"사격을 하다보면 머리를 아프게 하던 것들도 잊을 수 있어요. 나름 재밌거든요."


나란히 들어간 사격장의 1번 레인에 서서, 아이린은 나에게 총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가지 해주었다.


하나. 총은 쏘기전에는 사람에게 겨누지 말 것.

하나. 총의 방아쇠에는 손가락을 올려두지 말 것.

하나. 총을 들고있을땐 안전장치를 꼭 확인할 것.

하나. 총을 수납할때는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확인할 것.


"그렇게 말하더라도...사실 이건 크로스보우죠. 어쨌든, 한 번 쏴보실래요? 아, 저는 괜찮아요. 제 핸드 캐논은 조준의 정확성보다는 굳건한 의지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총 모양의 크로스보우를 건네는 아이린.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쏜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녁에 잘 맞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웃은 아이린은 크로스보우를 건네 받아서 과녁에 몇 발 쏜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저는 사격 실력이 제법 괜찮답니다. 음...그런데 조금 안 맞네요."


그러나 정작 본인도 몇 발 맞추지 못해서 이상하다는 듯 크로스보우를 몇 번 돌려보더니 다시 몇 발 쏘지만, 역시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어라...? 음...? 잘 안 맞네요. 이상하네..."


점점 화가 나는지 얼굴을 찡그린 아이린에게 괜찮냐고 물으려던 찰나, 커다란 소음이 들리더니...과녁이 완전히 박살났다.

물론 뒤의 벽도 무사하진 못했다. 그렇게 여전히 연기를 뿜는 자신의 무기...핸드 캐논이라고 했던가. 그것을 자랑스럽게 돌리며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자, 어쨌든 이러면 해결 될 일이죠."


그렇게 말하던 아이린은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저 구멍은 혹시 메꾸는데 얼마나 들까요?"


박사라는 직위를 처음으로 이용한 결과, 다행히 수리비를 따로 물어낼 필요는 없어졌다.



나란히 걸어서 돌아온 집무실에서도, 소파에 앉아서 나를 자꾸 힐끗거리며 보던 아이린은 눈을 질끈 감더니 말했다.


"그...박사님, 잠시 여기와서 앉으세요."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라 소파에 앉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민하던 아이린은 이내, 에잇! 하고 작게 외치더니 내 무릎 위에 스스로 앉았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던 찰나, 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자신의 머리에 올린 아이린은 귀까지 빨개진 채 말했다.


"이건...그, 사죄의 의미에요. 두 번은 없으니까요."


어쨌든 귀여우니 상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린을 쓰다듬으며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다.



10일차.


"박사님은 혹시 경전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그렇게까지 흥미는 없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기쁘다는 듯 웃은 아이린은 늘 갖고 다니던 두꺼운 책을 나에게 건넸다.


"한 번 읽어보시는 건 어때요? 혹시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제게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서류 더미와 싸움을 시작한 아이린을 앞에 두고 경전을 펼쳐서 읽었다.

의외로 내용이 심오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솔직히 종교적인 내용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 보다는 판결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다 읽고 책을 덮어서 옆에 두자, 그걸 눈치챘는지 아이린이 순식간에 다가와서 경전을 다시 가져가더니 어때요? 그렇게 묻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생각보다 종교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 그렇게 대답하자 빙긋 웃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사실 종교적인 내용보다는...각자 형태가 다르더라도 신앙은 하나일지니, 마음 속 신앙의 빛이 흔들리지 않도록...그런 내용이 좀 더 많죠."


율법보다는 자신의 양심을, 그러니 신념을 따르라.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한 아이린은 잠시 경전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먼지를 털어냈다.


"이 경전은, 과거의 저를 구해줬어요...여러모로. 지금도 저를 구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무어라 더 말하려던 그녀의 입이 닫히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물론 그 침묵이 있던 시간은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 아아...제가 괜한 말을 한 걸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아이린의 미소가 어쩐지 서글퍼보여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또 그거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다가오는 아이린을 무릎 위에 옆으로 앉힌 뒤, 이마를 쓰다듬었다.


"혹시 박사님은 신념이 있으신가요?"


한동안 쓰다듬을 받다가 중얼거리듯 묻는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대답을 해주었다.


"...자기 자신의 정의를 끝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행동을 늘 생각하며, 목숨의 값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렇게 늘 고찰한다...그렇게 살면 저는 불안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박사님도 꽤 어른이시군요. 그렇게 말하며 생각에 잠긴 아이린의 옆모습이 오늘도 귀여웠다.



11일차.


작전을 앞두고 최소 3일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방침이며,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물론 오늘 하루는 쉬더라도 내일부터는 작전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야한다.

그러므로 늦잠을 잘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박사님, 휴일이라고 늦잠을 주무시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 자, 저와 함께 운동을 나가도록 해요."


내 방 앞에서 엄청난 노크 소리와 함께 억지로 나를 기상시키고 그대로 갑판으로 끌고 나가서 조깅을 시키기 시작한 아이린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다.

하지만 이런 것도 때로는 괜찮겠지. 뛰면서도 작전을 하나씩 생각하던 찰나, 눈 앞에서 짝! 하고 손바닥이 마주쳤다.


"박사님! 뛰시면서 다른 생각을 하시면 넘어질 수 있어요! 집중해서 호흡을 의식하며 뛰세요!"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기 시작한 아이린을 따라 몇 바퀴 돌다보니 순식간에 점심 시간이 다가왔다.


"후우...이만하면 되었겠죠. 그럼 씻고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요."


물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각종 다른 운동들을 하느라 나의 몸은 그야말로 극한으로 혹사당했다.


"...박사님은 정말 운동을 많이 하셔야 할 것 같네요. 이정도는 재판소에 갓 입소한 신참들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누워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머리 맡에서 들여다보는 아이린이 조금 얄미워서 있는 힘을 쥐어짜내 팔을 들어서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아야! 박사님도 참...!"


이럴 때는 저보다 훨씬 연하 같다니까요...그렇게 한숨을 쉬던 아이린은 그대로 쪼그려 앉은채 말했다.


"혹시, 걷기 힘들면 업어드릴까요?"


아무리 그래도 연하에게 업히는 건 싫으니 전력을 다하도록 할까.

그렇게 아이린에게 부축을 받으며, 그리고 덤으로 다양한 오퍼레이터들에게 의문 섞인 시선들과 선망의...시선? 그리고 부럽다는 시선? 을 받으며 방에 돌아와서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그렇지만, 이 작은 새는 아직 할 일이 남은 모양이다.


"박사님, 운동을 하고 난 뒤에는 근육을 풀어줘야해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린은 영차, 하고 엎드린 나의 허리 위에 올라타서 이곳 저곳을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픔과 함께 시원함이 밀려와서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자 아이린은 쿡쿡 거리며 작게 웃었다.


"이 마사지는 선생님께 배웠어요. 제가 재판소에서 많은 단련을 하고 힘들어서 눕기도 어렵던 날엔 이렇게 근육을 풀어주셨거든요."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머나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 흐려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네요. 저도 선생님께 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말이죠."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고 움직이던 손이 멈추더니, 이내 자그마한 손이 내 등을 쓸어내렸다.


"...박사님의 등, 묘하게 크네요. 이것이 선생님과 같은 어른의 등인가..."


무언가를 참는 듯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자니, 어째선지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힘을 쥐어짜내 몸을 어떻게든 돌린 다음 상체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대로 아이린을 그대로 껴안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이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궁금했는데...이제는 어째선지 대충은 알 것 같네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은 아이린의 모습이 귀여웠다.



12일차.


당연히 하루 뿐인 휴식은 조금 엉망으로 끝났다. 그래도 몸이 개운하니까 나쁘지 않은 걸로 생각할까.

그렇게 집무실에서 이번 작전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다시 계산하던 찰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박사님, 작전 전에는 휴가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말하며 들어오는 아이린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한 다음, 작전 지도를 마저 들여다보며 대답하자, 당황한 듯한 음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전의 최종 검토라고요? 휴가까지 자진 반납하면서? 어째서 그렇게까지...아."


고개를 들자 무언가 결론을 내렸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조금 부담스럽게 보는 아이린을 볼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방해할 순 없겠죠. 그치만 여기에 있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무언가를 오해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작전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한 팀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예비대로 편성된 오퍼레이터들의 목록을 확인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이름을 채워 넣던 도중 하나의 이름을 보고...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팀장에 그 이름을 채워 넣었다.

됐다, 이만하면 충분히 검토한 것 같다. 내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마무리를 지어야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를 한참 넘어 슬슬 달이 떠오를 정도의 시간이였다.

아이린도 돌아갔겠지. 그럼 오늘 실험은 실패인가.

그렇게 소파쪽을 바라보니, 졸린 듯 눈을 비비면서도 한참 책을 읽던 아이린이 이제서야 눈치를 챘는지 앗, 하고 작게 탄성을 지르고는 책을 덮더니 나에게 달려왔다.


"박사님, 수고하셨어요. 이제 돌아가시죠."


하암, 하면서 작게 하품을 하던 아이린이 몸을 돌리던 찰나,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는지 비틀거리면서 넘어지려고 했다.

재빨리 일어나서 받아주려고 했지만, 어제의 운동의 탓에 나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결국 함께 바닥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밑에서 받아줬으니 아프진 않겠지.


"아...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졸았나봐요."


그렇게 앉은 내 무릎 위에 올라타게 된 아이린의 이마를 왼손으로 쓰다듬자, 읏...하고 작게 신음한 그녀는 나에게 이전보다 조금 더 몸을 맡겨왔다.

날 신뢰하게 된 걸까. 그렇다면 오늘은 보람찬 하루인 걸로 생각하자.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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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힘으로 썼는데 막상 지금 보니까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정말 내가 쓴 게 맞는가 모르겠다

그래도 삐약이 바이럴을 위해서 올림



피드백 환영

다음 화는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