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피아노, 감성적인 기타소리. 그리고 배경음으로 깔리는 청명한 핸드벨 소리. 지나가는 그 누가 들어도 캐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아름다운 음악이 박사의 집무실 안을 가득 메운다. 그것만으로, 오늘이 어떤 날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밤이 저물어가고 있다. 지엄하고 존엄하신 신의 아들, 독생자의 탄신일을 축복하듯 창 밖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가볍게 입김을 불어도 하얗게 얼어붙을 만큼 싸늘해진 날씨를 증명하듯 순백의 눈발이 날려 흐릿한 허공을 수놓는다. 폭설이 내릴수록 그 해 겨울은 포근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올해 겨울은 분명 그 어떤 때보다 포근하리리.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풍경이다.


  신부의 베일과 같은 순백이 창 밖을 수놓는다. 이미 해는 진작에 저물어 검은 베일과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이런 날에는 뜨겁게 끓인 커피 한잔과 함께, 희미한 등불에 비치는 폭설을 지켜보며 점점이 깊어지는 밤을 지새는 것만으로도 일 년간 쌓였던 피로가 전부 풀릴 것만 같은 그런 날이다.


  거기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굳이 신의 탄생이니 뭐니를 따지지 않더라도, 오늘은 분명 즐거운 날이다. 오늘은 분명, 로도스에 있는 모든 이들이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으리라. 


  누군가는 제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며, 누군가는 평소에 신세진 이들에게 선물을 건넬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그 한 몸 불살라 산타가 되어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뜨겁고 즐거운 밤을 보내리라. 그들이 크리스마스의 밤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지만, 그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것은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 모두에, 박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It's Chrismas again~ The season of caring and love~~♪"


  박사는 자신의 방 안에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흥얼거리며 손에 들린 서류를 체크했다. 별로 걸리는 움직임 없이 결제칸에 도장을 찍은 그는 곧바로 다음 서류를 확인했다. 그의 책상에는 새하얀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다. 창 밖에서만 세상 모든 것을 파묻을 것만 같은 폭설이 내리는 줄 알았는데, 이미 그의 책상에 한 발 앞서 한가득 쌓였나보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쏟아져 내릴것만 같은 서류의 산을 용케도 야금야금 해치워가며, 박사는 다음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고, 또 그 다음 서류를 확인하고, 다시 도장을 찍고.... 이따금씩 거세진 바람을 타고 눈보라로 변한 함박눈들이 창문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그가 시간 속에 갇혀 같은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Back in my country, there's no baby Jejus~ It's a day for the Couples in love~ "


  그가 흥얼거리는 캐럴이 처량하게 들릴 정도로, 그 밖에 없는 방 안에서 고요하게 울린다. 째깍째깍 거리는 시곗소리, 도장이 찍히는 소리와 눈보라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울리는 캐럴의 반주와 이를 음산하게 흥얼거리는 박사의 콧노래만이 그의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장식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흉측한 장식이 올려져 있는 뭉개진 케이크 정도일까.


"Oh, Fuck it, Christmas begone~♬"


  박사는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친구도, 애인도 없다.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가 오늘 그의 친구였으며, 처량하게 창 밖을 때리는 눈보라가 오늘 그의 애인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저주하는 듯 음침하게 흥얼거리는 캐럴이 오늘 그의 기분을 대변했다.


  물론 박사라고 원해서 이런 고독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오늘은 오랜만의 휴일을 만끽하고 싶었다.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입장인 박사에게 크리스마스는 몇 안되는 귀중한 휴일이었고, 로도스가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마 지금도,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테지만, 로도스의 중앙갑판에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을 것이었다. 


  아마 다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즐기며, 거의 끝물에 접어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에서 온 이들이 각자 준비한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테이블 위를 장식하고 있을 것이며, 모두가 손을 모아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겠지. 분명, 즐겁고 화목한 자리일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고 말고.


  하지만 거기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파티보다 일을 택했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로도스의 모든 일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발전소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제조소는 꾸준히 자재를 만들어 낼 것이며, 무역소에 이미 체결된 계약들은 진행되고 있다. 박사의 업무 역시 그랬다. 분명 하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1년 중 하루 밖에 없는 특별한 휴일일터지만, 12월 25일은 로도스의 운행에 있어서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휴식보다는 일을 택했다. 그가 오늘 쉬지 않아도 언젠가 다른 쉴 날이 있겠지만, 지금 그의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들은 오늘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저 12월 25일일 뿐이야. 난 일이 더 중요하거든. 아무튼 중요함. 내가 오늘 일하는 건 모두 로도스를 위해서야. 그러니, 나는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못 보내는 게 아니라 12월 25일에 충실하게 일하고 있을 뿐이지. 


  과연 누구를 위한 항변일까, 박사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서류더미를 파해쳤다.


  잠시 시선을 옮겨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자정을 넘긴 이후였다. 12월 25일은 이걸로 끝났다. 이제 크리스마스 따위는 지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렇게나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을 보내고 있노라고 중얼거리던 그의 책상 한 켠에는 '답지않게' 켈시가 챙겨준 파티 음식들이 가득했다. 저 음식들로 저녁을 때우며 업무를 시작했고, 아미야가 챙겨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야식 대용으로 우적거리며 끝없는 서류를 보고 있었으니, 그의 말과는 다르게 파티를 즐기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뭐하나,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나는 여기 박혀서 일이나 하고 있는 신세인걸.


  아니 무슨, 나는 로도스를 위해 그저 12월 25일에도 일했을 뿐인걸. 이걸로 됐어.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우드득, 굳어 있던 척추가 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문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개운함이 허리에서부터 퍼져 나간다. 


"으...."


  다시 시선을 옮겨 산처럼 쌓인 서류더미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천장에 닿을 듯 세상 높이 쌓여 있던 서류들도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그 높이가 줄어 들어있다. 시작이 태산이었다면, 지금은 적당한 고산 정도 될까.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도대체 저것들이 언제쯤 끝날까 막막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매달리고 있자니 눈에 띌 정도로 훌륭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박사는 허리를 쭉 피며 눈에 띄게 줄어든 쌓인 업무들을 눈에 담았다. 역시, 크리스마스를 희생해서 열심히 일을 하니, 엄청난 보람이 느껴진다. 이걸로 조금 더 노력해서 자기 전 까지 일을 전부 끝내고 평범한 12월 26일을 보낸다면, 그는 행복한 연말을 맞이.....


"되겠냐고!!!!"


  할 수 있을리가.


  결국 폭발한 박사가 손에 들고 있던 싸구려 볼펜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아무 죄 없는 불쌍한 볼펜 한 자루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잠시 울분을 삭히기라도 하는 듯 씩씩거리던 박사는,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기가 집어던진 볼펜을 주워들었다. 그래,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하....."


  박사는 한숨을 픽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느세 곡이 넘어가 오르골 소리가 울렸다. 청명하게 튕기는 오르골 소리의 캐럴이,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처량하게만 들렸다. 처량하게 울리는 오르골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순간 치밀어올랐던 짜증의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린 것인지. 박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박사라고해서, 크리스마스에 일이나 하고 싶었을 리가 없다. 그도 마음 같아서는 파티에 참가하고 싶었다. 파티에 참가해서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싶었고, 평소 친분을 쌓은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떠들썩한 분위기에 휘말리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오늘 그의 발걸음은 파티장이 아니라 제 집무실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생각했던 크리스마스는, 전부 산산히 망가졌으니까. 그가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사람은 오늘 로도스에 없었다.


  박사에게는 마음이 끌리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로도스의 오퍼레이터였으며, 첫만남은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들이 으레 그렇듯 현장지휘관과 오퍼레이터로서의,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사무적인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분명, 박사와의 첫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는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끌렸다. 그 때의 기억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름 지을수는 없었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시작은 사무적인 친교였고, 그 다음은 우정이었다. 박사는 서두르지도, 과감하지도 않게 서서히 그녀와의 관계를 좁혀갔다. 1년에 가까운 그 시간은 즐거웠다. 로도스를 떠나지 않은 그녀와의 시간은 많았고, 그녀와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져 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 속에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따뜻함에 미소가 나왔다.


  그렇게 몇달,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박사는 그녀와 충분히 거리를 좁혔다. 서로를 이름과 애칭으로 불렀고,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횟수가 잦아졌으며, 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이 정도면 조금 더 앞으로 내딛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박사는 처음으로 과감하게 그녀에게 대시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갖는 의미를 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밤에, 둘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래?


"....내가 왜 그랬지 *단국욕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멋없는 문장 선택이었다. 그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문장 중에서도 저런 얼빠진 문장을 선택했는지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에 열이 찼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냥 멍청한 걸까. 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권유를 위해 꺼냈던 문장의 상태가 어쨌건, 며칠 전에 건넸던 권유의 결과는 지금 보시다시피다. 그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고, 집무실에 박혀 하루종일 일만 했다. 그녀는, 그의 권유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거절 당했다면, 박사도 그냥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고작 거절이었으면, 정말로 상관 없었다. 아직 그는 그녀에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 받지 않았으니, 그녀가 다른 이들과 선약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로도스에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로도스를 떠난 것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말했던 약속장소에 나가봤지만 허탕이었고, 혹시나 싶어 보낸 연락은 답장은 커녕 읽지도 않았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며칠 전부터 보지 못했다는 말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박사가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약속을 권유했던 날과 같은 날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즉, 그가 권유를 했던 그 순간 이후로 그녀는 로도스를 떠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박사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여기였다. 설마, 그 정도로 내 권유가 싫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내 권유가 싫었으면 거절도 없이 로도스를 떠난 걸까? 그녀가 돌아오기는 할까? 나름 우리가 친해졌고, 그 이상으로 사이가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전부 내 착각이었던 걸까? 라는 단계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는 갑자기 크리스마스가 미치도록 싫어졌다.


  파티장에 서 있는 것 만으로, 권유에 대한 대답도 없이 사라진 그녀에 대한 원망이 계속해서 마음 속을 맴돌았다. 싫으면 싫다고 거절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가 뭘까? 그 정도로 내가 싫어진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아 실망한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 속을 켭켭히 둘러싸 허망하게 맴돌았다. 귓가를 울리는 캐럴 소리를 들을수록, 즐겁게 웃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을 수록 오히려 마음속이 배배 꼬이는 것 같아, 박사는 결국 파티장을 뛰쳐나와 제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냥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억지로라도 오늘 일을 잊고자 바보처럼 일만 하며 산더미 같은 일을 전부 처리해도, 시간은 그다지 많이 흐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의 밤을 도피하고자 잡았던 일을 처리해도, 아직 크리스마스의 밤은 깊었다. 천 년은 지난 것 같았는데. 


  문득, 박사의 시선이 책상 위로 옮겨갔다. 온갖 서류와 필기류로 난잡해진 책상 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시야에 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손에 들었다. 그것은 박사의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상자였다. 이를 열자, 서로 크기가 다른 한 쌍의 반지가 들어 있었다. 


"....이걸 본 건 아닐 텐데."


  한숨 섞인 한탄과 함께 박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 반지는, 박사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물론 이것을 크리스마스에 주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반지는 어쨌던 그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이 반지를 준비한 것은, 그저 충동이었다. 우연히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를 위해 용문의 상점가를 들렀고, 거기서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반지를 발견했으며, 또 우연히 그 반지가 한 쌍의 커플링이었을 뿐이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뭐하나, 선물은 제 주인도 못 찾아가고 여기서 썩어가는데.


  박사는 반지함을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진짜 내 권유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버린 걸까. 깊게 내뱉은 한숨에 뒤섞여 나오는 후회의 맛이 더럽게 씁쓸했다. 분명, 근거도 없는 무대포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무 성급했나?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가며 소용돌이쳤다. 이대로 계속 혼자 삽질하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박사는 다시 펜을 손에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억지로 정신을 돌리고자 일에 몰두했지만, 그것도 한계였던 모양이다. 조금, 피곤했다. 박사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눈이라도 붙일까 싶었다.


  눈을 감자,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강철을 펴바른 듯한 강인한 빛을 띄는 회색 눈동자, 산발로 뻗은 재와 은의 색을 띈 머리카락.  검은 광석이 돋아나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대비되어 보이는 새하얀 피부.


  그녀, 라플란드의 모습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결국 박사는 눈을 뜨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대로는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어디보자, 분명 찬장에 술을 한 병 숨겨 놨을 건데.... 박사는 집무실 한 켠에 있는 찬장을 열었다. 응접을 위한 가벼운 다과를 보관해놓는 곳이지만, 아미야와 켈시 몰래 여기에 술을 몇 병 숨겨 놨다. 그의 취향보다는 그녀의 취향에 맞춘 독한 술이라, 수면제 대용으로는 제격일 것이다. 그래, 기왕 이렇게 처량해진 김에 끝까지 가보자. 어차피 이 방에는 나 혼자 뿐인걸. 그냥 이대로 뻗어서 잠들고 내년에 일어나자. 그럼 되겠지.


  독한 위스키를 꺼내, 얼음도 없이 잔에 채웠다. 잔을 가볍게 흔들자, 잔 속의 액체가 빛나는 보석처럼 희미한 전등빛 아래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잔을 손에 들자, 순간 라플란드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내가 미쳤지. 그냥 마시고 뻗자. 박사는 잔에 담긴 위스키를 한번에 털어넣었다. 특유의 텁텁한 오크향이 피어오르고, 뜨거운 알콜이 독하게 목을 달궜다. 그리고 그 순간.


"여, 박사! 들어간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라플란드가 들어왔다. 박사는 마시던 위스키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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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 반갑소.

2023년 첫 소설은 내가 받아간다.


다들 해피 뉴 이어. 다들 올해는 가챠 무조건 비틱하는 한 해가 되길.


진짜 오랜만입니다. 거의 1달 반 만인가.

마지막으로 썼던 소설이 Shall we Dance 마지막편이고, 이게 11월 11일에 올라왔으니까... 진짜 딱 1달 반만이네.


이번에 가져온 소설은 분명 시작은 크리스마스였는데, 2023년에 올라와버린 '이 망할 크리스마스'

뭐 혼자 처량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줄 알았던) 독타 이야기.

히로인이 라플란드인 이유는, 그냥 내 아내라서.


원래는 단편으로 끝내려 했는데, 이것만으로 8천자라 전부 다 쓰면 2만자 넘길 거 같아서 그냥 절반으로 끊을래.

별 내용은 없고, 그냥 평범한 순애물로 할 생각이야.

세삼스럽지만 여기서 처음 쓴 글도 크리스마스 주제였는데, 감회가 새롭네.


조금 쓸 때 없는 TMI를 주절거리자면, 

 

한달반 가까이 글을 못 쓴 이유는 간단함. Shall We Dance가 너무 잘 돼서.


이 미친 새끼가 뭔 소리냐, 하는 생각이 들어도 할 말은 없지만. 저번에 쓴 이 글래디아 소설이, 비록 플롯을 제공 받은 거라곤 하지만 내가 쓴 글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반응이 좋았음. 베스트 라이브에도 올라갔고, 추천수도 거의 70~90 정도 받으니까 엄청 기분 좋았음. 


그게 싫었다는 것은 죽어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되니까. 아 이게 내 글실력의 최고점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림. 물론 글의 완성도와 추천수가 무조건 비례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을 버릴 수는 없더라고. 


그렇다보니, 무슨 글을 써도 성에 안차더라고. 

아 이거보다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그 더 잘써지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근대 이미 써진 글은 마음에 안 들고, 수정하면 더 별로가 되고. 이걸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니 한달 반 가까이 이렇다하게 글을 완성시킬 수 없게 됨. 


그래서 이번 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겨도 억지로 참고 참고 꾹 참아서 완성시킨 다음에 이렇게 후기를 적고 조금씩 고쳐서 완성함. 그리고 솔직히, 알바하고 공부하다보니 플롯을 짜는 실력이 떡락한건 확실한 거 같고.


그 외에 이런저런 현생에서 멘탈터지는 일도 많아졌고.

뭐 아무튼 그렇다는 소리고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더 나은 글을 위해 언제나 피드백 받음.

그리고 댓글 보는 맛으로 글을 쓰는 파라, 댓글 많이 달아주면 하나하나 다 읽고 쥰내 열심히 글 적음.


댓글 달아줘 어서 

잔뜩 달아줘 당장





그 외에도 일단 단편 신청 받음.

이 글쟁이는 확정은 아니지만 일단 무료로 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