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펭귄 로지스틱스의 일 때문이었지만, 어쨌건 박사를 만난 텍사스.

처음에는 호리호리하고, 별 볼 일 없는 남자라 생각해 지극히 사무적인 대응만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늘어나는 로도스와의 협엽 만큼이나 두 사람의 교류가 잦아질 수록 텍사스는 점점 그에게 어떤 끌림을 느끼는 거지.


뭐든 좋아. 무뚝뚝한 자신과 대비되는 정 많고 순진한 성격일 수도 있고, 자신을 향한 숨김 없는 호의 때문일 수도 있지.

어찌 됐건, 처음에는 파견이라서. 외근이라서. 그냥 스쳐가는 정도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와의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와의 친분과 관계가 깊어져 갈 수록 텍사스는 점점 로도스로 가는 날만 기다리게 되는 거야.


평소에는 일거리를 찾아서 하지 않던 텍사스가 굳이 엠페러나 엑시아에게 가서는 '로도스에 보내야 할 물건은 없나?'하고 물어본다거나.

평소에는 독한 담배만 골라서 피던 텍사스가 박사를 만나고 난 뒤부터는 점점 순한 담배를 핀다거나

소라가 그렇게 사정사정을 해도 안 받던 메이크업을 받아 본다거나 말이야.


그렇게 펭귄 로지스틱스의 모두가(텍사스 제외) 텍사스가 박사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 보다못한 엠페러가 텍사스를 아예 로도스로 보내버리는 거야. 너 그냥 거기서 살림을 차리건, 마음대로 하고 거기서 일하라고.


텍사스야 당연히 겉으로는 티를 안 내도 기뻐하면서 로도스로 가겠지. 계속 눈꺼풀 안쪽에서 맴돌던 박사의 얼굴도 계속 볼 수 있겠다, 그의 곁에 오래 남을 수 있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서 텍사스는 상기된 얼굴로 로도스의 문을 두드렸어. 박사는 그 사이 나름 친해진 텍사스를 환영하겠지.


모든 게 순조로웠어. 텍사스는 이대로 박사의 곁에 있을 수 있었고, 이미 가까워져 있던 두 사람 사이는 시간이 흐를 수록 깊어져갔겠지.


라플란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용케 소문을 들었는지 라플란드가 로도스에 나타난 거야. 텍사스가 여기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당연히 이 망할 악연을 딱히 달가워하지 않았던 텍사스는 라플란드를 피해다니겠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라플란드 역시 로도스에 입사해버렸어.


미치광이 살인마라 해도, 라플란드는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사이코는 아니었고 텍사스만 관련되지 않는다면 무정할지 언정 무례하지는 않았으니까. 실력도 확실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라플란드가 귀찮았어. 가뜩이나 늘어난 일 때문에 박사와 붙어 있을 시간이 줄어든 것도 불만인데,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방해하는 라플란드가 짜증 났겠지.


그래서 처음에는 대놓고 싫은 티를 냈고, 나중에는 아예 무시했어. 지금 텍사스는 박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만 모든 신경이 쏠렸으니까.


하지만 텍사스는 알지 못했어. 라플란드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악한 여자라는 걸.

그리고 박사는, 대놓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라플란드를 가만히 지나칠 성정이 못 된다는 걸.


그렇게 몇 달이 흘렀어. 텍사스는 박사와 잘 해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정식으로 로도스 소속이 된 순간부터, 바쁜 로도스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거든. 뭐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박사와 붙어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그와의 사이가 가까워진 게 느껴졌으니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라플란드도 그 두 사람 사이에 같이 끼워져버린 것 정도.


두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사이가 가까워졌어. 이건 텍사스의 실책이었지. 라플란드는 텍사스가 박사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채고는 박사에게 접근했고, 박사도 다른 로도스 사람들과 녹아들지 못하는 라플란드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텍사스가 그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자격은 없었다. 오히려 텍사스가 라플란드를 경계하면 할 수록 박사는 라플란드를 동정할 테니까. 그리고, 텍사스는 박사의 인간관계에 간섭하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몰랐고.

차라리 울면서 박사의 품에 안겨 자기만 봐달라고 울었어야 했을텐데. 


그래서 짜증은 났지만 텍사스는 라플란드가 박사의 곁을 맴도는 걸 놔뒀어.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라플란드가 시비를 걸 때마다 받아줬어.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벌써 몇 번이나 칼을 부딪히기도 했지. 라플란드에게 놀아나는 기분이 들어 짜증이 났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라플란드의 시비는 점점 줄어만 갔어. 드디어 제 목표를 이뤘나?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라플란드는 여전히 로도스에 남아 있었어. 아니, 오히려 텍사스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곁에 있어도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덤벼들지 않기 시작했어.


당연히 처음에는 좋아했지. 이제야 박사와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싶었을 거야. 하지만, 라플란드는 텍사스에게 신경을 껐음에도,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었어. ....아니, 


박사 곁에 남아 있었어.


문득 텍사스는 깨달았어. 


라플란드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걸.

라플란드가 어느 순간부터 박사에게 그 어떤 경계심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걸

라플란드가 어느 순간부터 박사의 실 없는 말에도 웃어준다는 걸

라플란드가 어느 순간부터 박사의 곁에서라면 무기도 없이 다닌다는 걸


.....라플란드가 어느 순간부터 박사를 향해, 자신과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는 걸.


그 순간 텍사스는 눈이 돌아갔어. 망할 하얀 늑대가 박사를 사랑하고 있다.


....감히 내 것을 노리고 있다.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텍사스는 이미 라플란드의 방으로 찾아간 뒤였어. 노크를 하자, 의외로 라플란드는 순순히 문을 열었지. 편하게 쉬는 중이었는지, 라플란드는 가벼운 복장이었어. 남자가 입을만한 후드티 하나만 걸친 채 갑작스래 방문한 텍사스를 보며 놀란 눈치였지.


물론 라플란드가 놀라건 말건 텍사스는 신경쓰지 않았어. 텍사스의 눈은 온통 라플란드의 옷에 쏠려 있었으니까.


라플란드는 후드티 하나만 걸치고 있었어. 

'남자가 입을만한' 후드티 하나만.


이미 이성을 잃은 텍사스는 라플란드를 강제로 잡아다 끌고 방으로 들어갔어.


더 이상 이 망할 늑대가 박사에게 꼬리치지 않도록, 그녀가 원하던 걸 넘겨주기로 했어.

그게 뭐든지.









라는 내용의 만화 어디 없냐.




그냥 공부하고, 다른 글 쓰다가 막혀서 주절주절 개소리 해봄.

공부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