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학 강의 평균 B+받은 본인이 이해하기엔


처음부터 나를 속박하는 모든것이 싫었다, 

그것이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 또한 패밀리에게 속박되고 있었고

패밀리또한 시라쿠사에게 속박되어 있었다. 모든것이, 세상에게 속박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발버둥치려던 내 작은 반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을때,

텍사스는 내 앞에 나타나, 너무나도 간단하게 내가 이루지 못한것을 해내었다.


그런 내 안에 들었던 생각은

나보다도 강하고, 내가 이루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텍사스와 다시 한번 싸워 이기고

그 텍사스를 내안에서 지워냄으로써, 텍사스가 가족을 포함해 모든걸 버렸던 것 처럼

나 또한 모든 집착을 버린다면.

그 텍사스가 해낸것을 나 또한 해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용문으로 떠난 텍사스는 이미 내가 알던 그 때의 텍사스가 아니었다.

그저 보잘것 없는 업무와 농담따위나 주고받는 흐리멍텅한 바보만이 그곳에 있었다.

이런 텍사스는 나를 구원해줄 수 없다, 나를 죽일수도, 내가 죽일수도 없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그때의 텍사스가 되도록 만들어보자.

시간은 많고, 과거는 금방 지금을 따라잡는다.


이게 시라쿠사노 시작까지의 느낌 같고

시라쿠사노를 진행하면서 아버지와 마주하고, 과거를 마주하게 만든 텍사스와 함께

마침내 모든 속박과 집착을 지울 결판을 짓고자 할 때에

텍사스가 내가 생각하던 모든것을  버린 존재가 아니라

고작 죽음이 두렵고, 그저 친구들을 사랑하고, 이 빌어먹을 시라쿠사가 혐오스럽고,나약한 선인의 죽음에 분노하는

'그냥 텍사스' 였다는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더이상 나를 구원해줄 죽음도, 나를 해방시켜줄 나의 악몽조차 아닌 텍사스는 무엇인가?

그저 그래야 했었던, 자신이 왜곡한 모습이 아닌 원래의 모습 (그냥 텍사스, 그냥 라플란드, 친구이자 적)

을 깨달은 라플란드는

마침내 자신이 갈망하던 자유를 얻어내고,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황야에서 답을 얻는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자유를 얻은 라플란드가 어째서 시라쿠사를 다시 부수고 싶어하는가임

뭔가 묘사나 심리과정을 보면 마치 불교의 해탈과 유사한 개념을 추구하는것 같은데,

그렇다면 시라쿠사에 대한 증오심 또한 아무 의미가 없어져야 맞거든


어쩌면 라플란드가 갖고 있던 증오심은 자신을 속박하는것을 향한것이 아니라.

모든 자유를 속박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듬.

모든 규칙, 모든 문명, 모든 논리가 라플란드의 적이고 그것이 라플란드의 본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