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용 의자를 점검하던 로고스에게 새카만 그림자가 다가온다. 힐긋 쳐다보자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미형의 살카즈다. 익숙한 얼굴이기에 그저 무언가 찾으러 왔겠거니, 하고 계속 의자를 살피는데, 그림자는 슬금슬금 그에게로 다가와 로고스의 곁에 딱 붙어선다.



 "밴시의 주술 중에는 상대를 매혹시키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더니 묻는 게 저것이다. 당황한 로고스는 무의식적으로 답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있기야 있다만..."



 그건 갑자기 왜 묻지? 빙글 뒤를 도는 로고스에게, 머드락은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묻는다.



 "궁금하다."


 "뭐?"


 "내게 한 번 걸어봐줄 수 있나?"

 


 로고스는 눈썹을 약간 찌푸린다. 그것을 더 설명해 보라는 뜻으로 이해한 머드락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최근 저거너트 오퍼레이터들은 모두 정신계 아츠에 관한 내성을 기르고 있다. 닥터 켈시가 너를 추천해서 왔다. 밴시의 아츠를 내가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밴시의 주술은 그렇게 쉽게 걸어달라 부탁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내성이 낮다면 걸린 사람에게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혹여 내가 다시 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괜찮다. 나의 망치는 너의 주술보다 강할 것이다."


 "......"


 "그리고 너를 믿는다. 나에게 질 나쁜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다."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 그리고 켈시의 추천이 있었다는 말에 로고스는 마지못해 골필을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내성을 쌓는 훈련이라면 '그런' 종류의 주술이 제격이기는 하다. 최고권자의 허가가 있었으니 괜찮겠지. 안일한 생각과 함께 로고스는 손가락 끝에 아츠의 흐름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수준에서만 시도할 거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정도로만."


 "알겠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 시작하지."



 굳이 복잡한 술식을 적을 필요도 없는 기초적인 주술이라, 로고스는 머드락의 눈앞에 대고 간단한 선을 하나 그어내렸다. 휙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골필을 머드락이 무심코 눈으로 좇는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운 듯 고개를 흔들다가, 한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곧 무감한 눈으로 다시 로고스를 마주보았다.



 살카즈의 붉은 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고요하다. 뺨과 귀가 약간 달아오르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주술이 일으키는 신체 작용의 일부로 보아도 될 것이다. 살짝 눈을 찡그리는 머드락에게 밴시의 주인이 물었다.



 "괜찮나?"


 "...아직 완전히 막기는 어렵군. 그래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제대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성과다. 지금 상태는 어떻지?"


 "심장이 꽤 빠르게 뛰지만, 너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


 "...지, 진짜 휘두르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동료에게 망치를 휘두르지 않는다."



 캐스터가 저거너트와 근거리에서 싸워 봤자 좋을 게 없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로고스에게 머드락이 당황하여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다가오는 그녀가 야무지게 망치를 고쳐 잡는 탓에, 로고스는 재빨리 손을 들어 골필을 오른쪽으로 그었다. 머드락의 장밋빛 눈동자는 또다시 그 자취를 홀린 듯이 따라가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뻣뻣하게 굳었다.


 손에 든 망치를 뒤로 물리며, 머드락이 멋쩍게 헛기침을 한다.



 "...흠흠, 실례했다, 로고스."


 "...지금은 어떻지?"


 "네 아츠가 완전히 물러간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동료에게,"


 "알고 있으니 거기까지."



 골필을 안주머니에 돌려 놓고, 밴시는 옅게 한숨을 쉬며 몸을 바로 했다. 테스트가 끝난 것 같아 다시 의자로 돌아가려던 로고스와 달리, 머드락은 약간은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방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 있다. 그리고 로고스는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는 친우를 무시할 만큼 차갑지는 못했다.



 "왜 그러지? 혹시 뭔가 부작용이라도..."


 "아,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리고 밴시의 왕자는, 상아빛 머리카락에 가려진 귀가 아직도 붉어진 채인 것을, 그제서야 눈치를 채었다.



 "...조금, 신기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군..."


 "......"



 그리고 이어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로고스가 굳어 있는 사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의 일에 감사한다."



 특유의 기계 같은 인사를 내뱉고, 그녀는 순식간에 방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ㅡㅡㅡ




 "머드락 씨, 곧 훈련 시간입니다."


 "라비니아, 오늘은 당신뿐인가?"


 "벌컨 씨는 기반시설에서 호출이 와서, 다음에 따로 진행한다는군요."



 갈색 머리의 루포는 오늘도 법전을 읽으며 대기실에 앉아 있다. 머드락은 자연스럽게 그 맞은편으로 가 앉는다.



 "오늘의 교관은... 이네스인가."


 "그녀의 아츠 능력은 로도스 최상위이니까요."


 "...로고스보다 강할까?"


 "그 오퍼레이터는... 그의 주술은 훈련에 사용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머드락 씨."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페넌스는 질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머드락은 그녀의 쫑긋거리는 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오늘의 저녁 메뉴를 말하듯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의 주술이라면 오늘 걸려보고 왔다.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다른 저거너트는 당연히, 그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뭐라고요?"


 "그의 주술이라면 오늘 걸려보고 왔..."


 "아뇨, 그게 아니라!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후유증이라든가 그런 건...!"


 "괜찮다. 그는 뛰어난 캐스터이니 그 정도는 조절했을 것이다."



 멱살이 잡힌 채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말간 얼굴을 보며, 페넌스는 차마 더 다그치지 못한 채 손을 놓았다. 살카즈는 여전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고개만 갸웃거린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법전을 주워들며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 떨어트렸다, 라비니아. 그에 시라쿠사의 루포도 이마를 짚으며 답한다. 감사합니다, 머드락 씨. 페넌스는 무어라 더 받아칠 의욕이 사라져 얌전히 다시 의자에 앉았다. 지난 몇 개월 간 함께 지내본 결과 그녀의 동료는 평범한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조금은, 그녀의 표정이 상기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살카즈의 주술은 동족에게는 그 효과가 덜한 편이다."


 "그렇습니까... 그래요, 직접 걸려보시니 어떠셨나요?"


 "......."



 그 말에 머드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로고스의 주술이 불러 오던 기묘한 감각을 되새겨 보았다.


 한 사람만으로 온 시야가, 온 세상이 다 차버리는 듯한 기분. 그림자를 드리운 기다란 속눈썹에 홀린 듯이 시선이 가 버리고,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입을 열면 톡 튀어나올 것만 같던 그 감각. 공연히 붉어지는 얼굴과 가슴 안쪽을 채우는 간질간질한 느낌까지. 그 모든 것이 정말이지,



 "평소와, 같았다."



 로고스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그것들과, 하나도 다르지가 않아서,



 "...그러셨나요."


 "응. 평소와 같았다. 그뿐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맞았구나.


 ㅡㅡ라고, 문득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큐버스가 필요한 플롯이었는데 아는 서큐버스가 얘밖에 없더라고

얘 살카즈 순애가 맛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