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정적, 침묵, 지금 이 자리를 나타내기에 가장 어울리는 세 단어였다. 사람은 둘, 개중에 눈을 뜨고 있는 건 하나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중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칼을 품은 여성, 크론슈타트.
그녀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실 내부에 별도로 마련된 휴게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그를.
“이렇게 조용한 당신을 보는 건 또 처음이네.”
말 그대로 지휘관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편이었고, 그에 비례해 말도 조금 많은 편이었다. 이렇게나 고요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그녀인지라, 저러한 말을 내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크론슈타트는 조용히 시각에 온 신경을 모아 그를 관측했다.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 이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가능해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고운 손가락을 뻗어 그의 뺨을 찌른다. 폭, 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왔다. 미리 장갑을 벗어 놓았기에 감각은 한층 더 민감했다.
그러한 외부 접촉에도, 지휘관은 잠에서 깨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지휘관이 한 번 잠에 들면 잘 깨어나지 않는다는 건 모항 내 상식 같은 것이라, 그녀 역시 알고 한 행동이었다.
“……귀엽네.”
본인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입가에 미소도 번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튀어 나온 만큼 웃음이라는 단어의 표본이라고 봐도 좋을 수준이었다. 아름다웠다.
그 부드러운 웃음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손 역시 본인도 모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그것이었다.
따듯하다. 지금 크론슈타트의 마음속 감상이자, 그녀의 심정이었다. 단순히 지휘관의 뺨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가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훗.”
두근, 두근, 하고.
“크론슈타트…….”
“……!!!”
즉시 움찔, 몸이 크게 떨리고, 동공도 그에 맞춰 확장된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의 감정이 크론슈타트의 몸을 지배했다.
허나 지휘관의 목소리가 일시적인 잠꼬대일 뿐이라는 걸 인식하는 것은 짧은 시간, 크론슈타트는 다시금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이 안정을 되찾았다는 건 아니었다. 어찌하여 잠결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까. 의문이 마음을 지배한 까닭이다.
“…….”
쿵, 쿵,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인 크론슈타트가 이어 같은 손으로 지휘관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가 현재 수면 상태인 것을 감안해도 심박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얼굴도 약간 붉어져 있었다. 미소는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이었다.
“……지휘관 동지, 자?”
혹시나 그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그를 불러보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깊게 울리는 메아리 되었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다시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음이 한층 더 따스해졌다.
크론슈타트는 자신이 그에게 품고 있는 마음의 색이 무엇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본인이 어째서 이렇게나 과한 반응을 하고 있는지 역시 알고 있었다.
한 번 더, 그녀는 그의 뺨을 쓰다듬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손을 맞잡고, 평소라면 부끄러워 머뭇거렸을 일을 양껏 즐기고 있었다.
쿵, 쿵, 닿는 면적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차츰 커지고, 그녀의 욕망도 커진다. 스킨십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부드럽기에 아늑하다. 따듯하기에 사랑스럽다.
“……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공간에 합리화를 위한 말을 내뱉으며, 크론슈타트는 조용히 그의 옆에 누웠다. 침대의 부드러움은 느낄 겨를이 없었다. 평소보다 배는 가까운 그의 얼굴, 오로지 그것만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니 평소 느낀 감상 이상으로 그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남자였다.
“…….”
머뭇거리지만 천천히, 꾸준히, 잠든 그에게 다가간다. 어느새 남은 거리는 한 뼘, 손 뻗으면 닿을 거리.
“흣……! 지, 지휘관…….”
그녀를 덮치는 한 쌍의 갈고리.
크론슈타트가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누군가의 품,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무언가.
또 귓가에 자꾸만 스치는 뜨거운 바람, 비강을 채우는 익숙한 향기.
“……!!!”
그녀는 지휘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지, 지, 지, 지휘관…….”
당황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귀로, 눈으로, 코로, 그리고 피부로, 온 몸으로 느껴지는 그의 정보가 뇌를 가득 채웠다. 다른 건 없었다.
그녀의 거대한 가슴은 형태를 잃어 지휘관의 몸에 짓눌리고, 허벅지는 서로 뿌리를 내린 듯 엉키듯 휘감겨 있고, 얼굴은 당장이라도 고개를 들면 키스가 가능할 정도.
연인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상황, 인지한 즉시, 크론슈타트의 부끄러움이 하늘을 뚫었다.
“지휘관 동지이……이거……놔…….”
어지간한 술에는 취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크론슈타트는 지금 취할 것만 같았다. 단순히 느껴지는 사람의 체취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힘을 주려 해도, 그러지 못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력을 가진 그녀였지만, 지금의 지휘관은 어째서인지 거목처럼 느껴지는지라, 전혀 밀어낼 수 없었다.
쿵, 쿵, 쿵, 와중, 심박은 가속을 넘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구태여 가슴에 손을 올리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크론슈타트으…….”
그리고 그때, 쐐기를 박는 목소리.
“……좋아해.”
“……!!!!!!”
“좋아해…….”
꿈은 무의식, 자신이 평소 상상하던 풍경의 반영, 그리고 현재 잠든 상태에서 자신의 본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잠꼬대, 좋아한다는 말.
“아, 흣……으읏…….”
그것을 듣는 여인.
크론슈타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붉어지다 못해 터질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은 정녕 토마토와 같았다.
“크론슈타트……좋아해…….”
고백과 다름없는 말에 그녀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의 품에 안겨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귓가에 직접 때려 박히는 애정어린 목소리.
“지, 지휘관……동지이……제, 제발…….”
도저히,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휘관 동지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 지휘관 동지가? 아니아니, 근데 왜 하필 이런 형태로, 시, 싫은 건 절대로 아닌데…….
어떡해야 하지? 아니, 지금 지휘관 동지는 자고 있잖아, 자고 일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잖아.
하지만 좋아한다는 건 진짜……일 텐데, 나, 나, 나, 나는……어떻게…….
뒤죽박죽, 수라장이 된 머릿속과 달리 지휘관의 얼굴은 편안하기 짝이 없었다. 품에 그녀를 꼭 껴안아 마치 한 몸처럼 이어져 있는 그는 세상 편안한 표정이었다.
“좋아……해…….”
“지, 지휘관 동지……제발…….”
치사량을 돌파한 선홍빛 감정에 죽어버릴 것만 같은 크론슈타트였지만, 달콤한 잠꼬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밤새도록.
***
“……아.”
이른 아침,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든 지휘관은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낯선 감각이었다.
허나 낯선 감각은 하나가 아니었다. 품 안에 뜨거운, 부드러운, 그리고 달큰한 향기.
마치 그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같은…….
“……크론슈타트?”
잠결이 한 번에 달아나는 순간,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여인을 인식하는 순간, 지휘관의 정신이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크론슈타트의 몸은 뜨거웠고, 그녀를 안고 있던 지휘관의 몸 또한 그것에 비견될 수준은 아니었지만 뜨거웠다. 감정도 그러했다.
바라보는 그녀의 눈, 얼음과 같은 별빛을 품은 푸른 색 눈동자, 분명 아름다웠지만, 어째서인지 피로해 보였다. 마치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것만 같이.
“……그, 왜 여기에?”
평소 대담하며 뻔뻔한 그였지만, 작금의 사태에는 당황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눈앞의 여성이 약간이지만 날카로운 무언가를 품고 있는 지금은 더.
“……지휘관 동지, 혹시 지금 나한테 할 말 없어?”
“어…….”
갑작스러운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지자, 제아무리 지휘관이라 한들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까닭이다.
결국 어리바리한 목소리가 이어지는 건 당연했다. 때문에, 크론슈타트는 친히 그것을 끊어주었다.
“……읍!”
끈적한 키스로 말이다.
양 뺨을 붙잡힌 채, 날것 그대로의 입맞춤, 지휘관은 당황했고,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낸 크론슈타트 역시 덤덤하진 않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이를 증명했다.
떨릴 만큼 부끄럽지만, 애정이 가득하기에.
“…….”
키스가 끝나면, 서로를 이어주는 은색 실을 바라보며 둘은 침묵에 잠긴다. 핑크빛 기류만이 전부였다.
“지휘관 동지.”
“어……응?”
“……지휘관 동지.”
“……왜?”
“정말로……할 말 없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용기를 짜내면.
“…….”
지휘관은 자신의 입술에 손을 대어 그 온기를 느꼈다.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즉시 눈을 뜬 후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이렇게 말한다.
“좋아해. 크론슈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