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사람에게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쉽게 씌워지기도 하고, 어렵게 씌워지기도 하는 그것은, 한 번 각인되면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다.
덧그려진 것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간에, 딱히 차별 없이 해당하는 사항이다. 모두가 그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모두에는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은발의 여인, 비토리오 베네토 역시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다행히 긍정적인 쪽의 이미지였다.
허당, 바보,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두 단어, 그것이 그녀의 이미지요, 내게 그려진 ‘비토리오 베네토’에 대한 정보였다. 절대 벗겨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래. 그래야 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가면을 쓰는 건.”
검은 것이 스산히 날아온다. 목소리라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었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녀로부터 비롯되어 내게 닿은 목소리는 매정할 정도로 검었다고.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그녀, 비토리오 베네토는 본디 저러한 색을 품지 않은 존재였으니까.
“아, 답답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 멍청한 가면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어찌나 구역질 나는지, 아무래도 두 번은 못 할 짓 같아요.”
후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가볍게 웃는다. 품위가 넘쳐흐르는 행위는 전형적인 귀족을 연상시켰으나, 고귀하다는 생각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두려울 뿐.
“그래도 결국 노력은 거름 되어 과실을 맺었고, 저는 이제 그것을 수확할 시간이에요. 아아, 어찌나 고대한 시간인지, 웃음이 멈추지 않아요.”
하, 하, 하, 비토리오 베네토가 정확히 세 번을 꺾어 웃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작금의 사태에 당장이라도 한 걸음 물러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재밌나 봐.”
“재미있다기보단, 행복한 거죠. 정정해 주시길 바라요.”
“행복하다고? 정말로?”
“네. 단언할 수 있어요. 아마 지금만큼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 거라고.”
망설임은 한 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하등 의미 없었다.
때문에, 나는 경악했고, 기겁했으며, 이를 악물었다. 표정도 일그러졌다. 원인은 그녀였다.
“사람을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나는 지금, 외딴곳에 납치되어 묶여있는 신세였으니까.
전조는 없었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니 나는 이런 곳에 있었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다른 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표정이 어두워요. 지휘관님, 혹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요.”
베네토가 슬픈 표정, 정확히는 슬픔을 연기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명백한 기만이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내가 알던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믿을 수 없었다. 여태껏 보여준 그 모습이, 전부, 가면일 리가.
“여태껏 보여준 모습이 정말로 가면에 불과했을까. 하고 생각하는 표정이네요.”
“……허.”
정곡을 찔리다 못해 꿰뚫린다.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 그녀의 통찰력에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허탈함에 헛바람마저 새어 나왔다. 반대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그 어벙하고 야무지지 못한 베네토가 이런 행동을 하신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나요? 인정할 수 없나요? 납득 가지 않나요?”
“…….”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현실인걸.”
침묵을 긍정으로 판단한 그녀가 슬쩍 얼굴을 들이밀며 웃는다. 내가 잘 아는 웃음이었지만, 암시하는 것은 궤를 달리했다.
“……들어나 보자, 지금 이 짓거리를 하는 이유가 뭔데.”
“……네?”
“나를 이런 곳에 납치해 가둔 이유가 뭔지 물은 거다.”
처음으로 보는 당황한 모습, 내가 아는 그녀였다. 참으로 이질적인 상황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아.”
답변은 침음, 되려 내가 더 당황했다. 이전의 그녀를 보는 거 같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역겹지만 반갑기마저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것을 기회라 판단했다. 오늘 처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를 잘 파고든다면…….
“지휘관님이 이렇게나 멍청한 질문을 하실 거라곤……전혀 상정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착각에 불과했다.
회색, 생명력 없는 색, 마치 금속과 같아 아무런 감정도 비쳐 치지 않는 색, 그녀가 품은 색.
“제가 왜 이런 짓거리를 하냐뇨, 그거야 당연히.”
비토리오 베네토의 눈동자.
“다른 것들은 모조리 배제한 채,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서죠.”
.
.
.
도저히 입술을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는 망치에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고, 시선은 오로지 그녀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내 반응마저도 예상한 듯, 베네토는 손을 뻗어 부드럽게 내 몸을 끌어안았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하나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무방하게.
그녀의 신체가 형태를 잃을 정도로 강하게, 진하게, 무겁게, 껴안는다, 호흡마저 제한될 정도였다.
“이걸로, 이걸로 된 거예요. 저희는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베네토가 고개를 든다. 서로의 숨결마저 닿는, 지독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녀는 조용히 눈웃음 짓고, 그대로 입술을 가까이한다.
그렇게 마침내, 그녀의 비원대로 두 남녀가 섞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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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꿈을 꿨어.”
“……예?”
지휘관이 말했다. 긴장감 따위는 하나도 없는 표정, 반대편에 앉아 듣는 이는 다름 아닌 베네토였다.
“그, 그, 그, 그러니까. 제가 지휘관님을 납치해서, 강제로 더, 덮치는, 그런 꿈을 꾸셨다는…….”
“응, 그런 셈이지.”
꿈의 내용과 정반대로, 당황하는 이는 베네토요,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덤덤히 말하는 사람은 지휘관이었다. 베네토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나 파렴치한 짓을, 아무렇게나…….”
빼액, 소리치듯 말한 베네토였지만, 이내 점점 작아져 그대로 사그라졌다. 상상해 버린 까닭이다.
반면, 지휘관은 별생각 없어 보였다.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꿈에서는 좀 적잖게 당황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정확히는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네?”
“왜, 있잖아. 평소 보여주던 모습과 색다른 것을 보여주면, 나쁘고 좋고 이전에 일단 재밌잖아, 도를 넘지 않는 이상.”
이어 홍차를 한 모금, 지휘관의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휘관은 그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끝낼 심산이었다.
허나 베네토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지휘관의 한마디로 인해, 조금 불순하면서도 위험한 생각을 해버린 탓이다.
“그, 그, 그러니까. 지휘관님은 오늘 꿈에서 본 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어……약간은? 나쁘지 않았어.”
어중간한 대답, 그렇기에 베네토는 더더욱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질끈,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네. 그렇군요.”
그때, 한 걸음, 베네토가 그에게 다가갔다. 전등을 가려 그늘진 모습에 지휘관은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 그러니까. 지휘관님은 이, 이, 이런 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인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
쪽, 하고, 자신의 이마에 키스한 그녀의 모습을.
찰나였다. 그녀의 입술이 지휘관의 이마에 닿은 것은, 하지만 그것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고, 꿈도 아니었다. 피부에 남은 온기가 이를 증명했다.
지휘관이 고개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그늘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그녀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또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마저도.
“…….”
지휘관은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반대로 이번엔 그가 내려다보는 신세, 그늘지지 않아 마침내 보이는 베네토의 얼굴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베네토는 일절의 반항도 없었다. 이는 곧,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였다.
제아무리 어벙한 베네토라 한들, 이어지는 행동이 무엇일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
쪽, 하고.
꿈이 아닌 현실에서, 둘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