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건너는 새벽에만 벌써 일백 번가량 떠올린 생각이다. 5분 전에도 그러했고, 당장 지금도 그러했다. 몸은 어느 것 하나 부자유스럽지 않았지만,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이는 곧 불면의 원인이 육체보다는 정신에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살면서 이따금 누구나가 품는 고민이었다. 사람은 감정에 휩쓸리는 생물이니까. 단지 그것이 오늘 내 차례였을 뿐이다. 단지, 정도가 약간 지나친 게 문제였지.
“…….”
몸을 일으킨다. 바로 옆에서 잠든 그녀의 얼굴이 눈에 담겼고, 다음으로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은색 곡선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가지 정황은 그녀와 관계를 나타냈다. 크론슈타트, 같은 미래를 그려나가자 약속한 내 서약함.
평소에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사이였지만, 안타깝게도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현재로서는 그렇지 못했다. 조용히 깨지 않게 침대를 빠져나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침대를 벗어났지만, 따로 갈 곳은 없었다. 지금은 모두가 잠든 심야다. 딱히 나간다고 해도 반겨줄 곳은 없었다.
“……프흐흐.”
방황하는 모습이 딱 내 마음과도 같아,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결국 정해진 답은 하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종착지는 발코니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닫는다. 소음은 조금도 흘리지 않았다.
그런 날 맞이하는 것은 서늘함, 새벽 공기를 머금은 바람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지금은 육신보다는 정신이 더 아픈 상태이므로, 버틸만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었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자기 세뇌에 불과했다. 스스로도 인지하고 미련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날 받아줄 공간은 없었으니,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믿었다.
“……검다.”
태양이 도망치고 마침내 도래한 칠흑의 시간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만약 저 달마저 제 모습을 감춘다면 눈을 감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나는 장님이었다.
아픈 생각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딱 지금의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는 병에 걸렸다. 불안이라는 병에.
원인을 규명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면 더욱 깊은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늪과 같았다. 바닥은 없었다.
불투명한 미래, 막연한 불안감, 절망, 실패, 비틀어진 길.
아스라하여,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까마득하게 보인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불안을 머금은 한 마디가 뇌를 관통하고, 나는 피 흘린다. 저항하려 애써도, 방도는 없었다. 나는 나룻배를 탄 어부요. 부정적인 마음은 거센 파도와도 같았다. 내 힘으로 이것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가만히, 기도할 뿐.
“……하, 하.”
의식은 불안에 잠식되어 침식된다.
그리고 종식에 이르면.
나는.
“……지휘관 동지?”
늪에 머리마저 삼켜지기 직전, 누군가 손을 뻗어 나를 끌어올렸다. 정체를 알고 있던 만큼 구태여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크론슈타트.”
내가 아는 그녀가 있었다.
“안 자고 뭐 해.”
“내가 할 말이야. 갑자기 안 보여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추우니까 일단 들어와.”
고운 손가락이 내 팔을 잡는다. 새벽바람에 노출된 내 몸은 차가웠고, 그녀는 따듯했다. 서로의 마음과도 같았다.
“……괜찮아. 잠깐 찬바람 좀 맞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차가워, 지휘관 동지, 몸이 식고 있어. 내일 감기 걸릴 거야. 어서 들어와.”
다정한 목소리에는 그 목소리에 걸맞은 행동이 따라왔다. 저것은 분명 배려와 걱정에서 비롯된 행동, 눈빛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거절은 거절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방 안에 들어와 마주 앉았다. 따듯한 공기가 내 육체를 데워주었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뭔가, 힘든 일이라도 있어?
때문에, 그녀는 내 정신을 데워주려 한 모양인가 보다.
“……아니, 괜찮아.”
“뜸 들이는 거 보니까 맞나 보네. 잠깐만 기다려.”
말하는 즉시, 그녀가 몸을 일으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꺼낸 것은 우유, 살짝 컵에 담아 데우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선반을 열어 물건을 찾는다. 잠깐의 실랑이 이후로 나온 것은 코코아 가루, 완성품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다 됐다. 일단 마셔, 많이 추워보이니까.”
슥, 책상 위로 밀어 넣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것이 척 봐도 따듯해 보였다. 그녀의 손을 타고 내게 온 코코아는 그러한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손을 올렸다.
손이 따듯해졌다.
“그래서, 요즘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딱히.”
“거짓말하지 말고, 지금 표정에 다 그려져 있으니까.”
착잡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 지금의 크론슈타트는 조금도 덤벙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와 궤를 같이했다.
이어 꼬옥,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따듯한 온기, 타고 올라왔으나, 마음에 닿지는 못했다.
“……말해줘, 지금 지휘관을 불안하게 만든 건 무엇이야?”
때문에, 그녀는 내 마음에 목소리라는 이름의 노크를 했다.
침묵, 하나, 둘, 셋,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 서로의 숨소리, 약간 거친 것은 내 것이요.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불쾌감마저 따라올 정도로 이질적이었지만, 그녀는 감내했다. 그 침묵의 장막을 찢는 기회를 내게 넘겼다. 손은 점점 따듯해졌다.
“……듣는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아니, 무슨 말을 해도 인정할 거야, 또 이해할 거고.”
그녀가 말했다.
“……아니, 너는 이해할 수 없어, 인정과 이해는 다르니까.”
내가 말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애초에 다르게 설계된 생물이니까. 100% 동일한 마음, 감정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이것 역시 내가 말했다.
“때문에 크론슈타트, 지금의 너는 날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 막연한 불안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품는 건 멍청한 행위고, 이해해서도 안 될 짓이니까.”
뚫려버린 댐처럼, 한 번 열린 입은 망설임 없이 부정을 쏟아냈다. 전조 없이 찾아온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언어의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났다.
문득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의 삶은 분명 행복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미래는 변한다. 때문에 이 행복한 현실은 언제든지 어그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다음 달, 다음 주, 하다못해 내일도.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한심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두려웠다. 이 불안감의 근본적인 원인마저도.
“그러니까. 크론슈타트, 너는 지금 내 불안과 공포를 이해할 수 없어.”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결국,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없는 타인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후회했다.
“아.”
필요 이상으로 날 선 말,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영원 가약을 맺은 상대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말하고, 내가 당황했다.
이는 그녀 역시 매한가지로 보였다. 크게 뜨인 동공이 이를 증명했다. 나는 내 불안감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입혔다.
“…….”
내가 미웠다.
고개를 숙인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앞을 볼 자신이 없었다. 절망과 비탄마저 따라왔다.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나오려 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 미워 죽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크론슈타트?”
그녀는 그런 나조차도 안아주었다.
“맞는 말이야. 우리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한들, 나는 당신이 아니야, 당신과 동일한 생각, 마음을 가질 수 없는 타인에 불과해.”
따듯한 온기, 타고 들어온다. 그녀의 육체를 타고,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조금 전과 달리, 확실히 마음에 닿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 한들, 100%는 아니야. 그것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도달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지.’ 그녀가 한 마디 덧붙였다. 토닥토닥, 등에 닿은 손은 나를 쓸어내리며 위로했다.
“결국, 당신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아파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힘내라. 그 부담을 함께 짊어져 주겠다.’ 따위의 말을 건네는 것뿐이야.”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몸은 떨리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기에, 뚜렷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당신과 같은 길에 설 수 없어.”
나는, 지금의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래도,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순 있겠지.”
이어, 내 얼굴을 마주한 크론슈타트가 웃었다. 밝았다. 오늘 아침에 본 태양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같은 말을 할 거야. 당신의 입장에서, 당신의 마음으로, 내가 아는 당신을 위해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야.”
그리고 또다시, 그녀가 나를 껴안았다. 따듯했다. 눈물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수단이니까.”
고마웠다.
“……크론슈타트.”
물기 어린 목소리, 내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주었다. 얼어붙었던 마음은 전부 녹아내렸다. 그것이 내 눈물이었다.
“응, 말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
길을 잃었다. 나아갈 곳을 잃어 두렵고 무서워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의지 역시 꺾여버려 가만히 주저앉았다.
홀로 걷는 길, 의지할 사람 없어 고독하고, 기댈 사람 없어 외로운 길.
허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몸은 가벼웠고, 정신은 그 이상으로 가벼웠다.
“아, 지휘관 동지, 일어났어?”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한층 더 가벼워진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당장 안전하리라 믿었던 길이 알고 보니 지뢰밭일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고, 미래다. 우리는 언제나 불안정 속에 살아간다.
“응, 좋은 아침, 오늘도 힘내보자, 크론슈타트.”
하지만 그것이, 걸음을 멈출 까닭은 되지 못한다.
오늘 새벽에 악몽 꾸고 토대로 적은 거, 벽붕이들도 최애 함순이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