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대화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인간의 기술이며, 누군가에게는 유흥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지극히 유용한 수단이다.
물론 특이한 경우 이 행위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대화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이런 말을 꺼낸 까닭은 바로.
“……과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본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정보는 ‘설치 완료.’ 넉 자, 다음으로는 랜덤 채팅.
최근 모항에 유행하고 있는 어플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누가 유행시킨 것인지도 모르지만, 현재 모항은 유례없는 랜덤 채팅 붐이 일어났다. 심지어 앞서 말한 대화라는 행위 그 자체를 꺼리는 자들도 익명의 힘을 빌려 사용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때문에 나 역시,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모항의 지휘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함선 소녀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냥 바로 시작하면 되는 건가.”
중얼거리며, 어플을 킨다. 따로 로그인하라는 창도 없이 즉시 넘어갔다. 아무래도 절대 익명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 같았다.
결국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채팅 시작 버튼 단 하나, 망설임 없이 눌렀다.
-…….
약간의 로딩, 고작 이 정도를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인내심이 없는 건 아니니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과연, 내 첫 상대는 누구일까. 현재 대다수의 함선 소녀들이 사용하고 있는 만큼, 그 누가 나온다고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하며 화면을 바라보니, 신호음이 울리는 건 금방이었다.
-낯선 사람이 입장했습니다.
낯선 사람: ㅇㄷ
나: 예?
연결되기 무섭게 순식간에 날아온 채팅, 과장 조금 보태면 동시에 날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황의 감정은 즉시 메시지로 나타났다.
낯선 사람: 처음 해봄? 어디 소속이냐고.
나: 아, 이글 유니온이요.
짧은 고민 끝에 쥐어짜 낸 답은 이글 유니온이었다. 비교적 많은 인원이 존재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인 만큼, 특수한 개성을 가진 함선 소녀가 많아 내 정체를 감추기에는 이보다 안성맞춤이 없었다.
낯선 사람: 찐 뉴비 같네. 나도 이글 유니온.
나: 아, 네. 요즘 유행이라고 해서…….
낯선 사람: 이거 유행 시작은 이주도 더 됐는데, 조금 느린 편이네.
“…….”
약간 움찔했다. 내가 유행에 뒤처진 편이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긴 했어도, 직접 듣는 것과 스스로 자학하는 것은 느낌이 썩 다르니까. 약간 우울해졌다.
낯선 사람: 하여튼, 그거 하러 온 거 맞지? 따로 준비한 거 있어?
나: 네? 뭘요?
낯선 사람: 아니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지휘관 사진 교환 하자고.
“……?”
일순간 정적, 호흡이 멈췄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낯선 사람: 설마 없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지? 폰에 지휘관 사진 한 장도 없다 해?
당황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추가로 날아온 메시지는 내 머리에 혼동을 더해줬다.
허나 큰 충격을 받은 것과는 반대로, 내 머리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회전하며 정보를 차례차례 정렬하고, 답을 내놓고 있었다.
하나, 지금 모항에는 랜덤 채팅이 성행한다.
둘, 현재 내가 대화하는 누군가는 랜덤 채팅에 익숙하며,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셋, 그런 그녀가 내 사진을 공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휴대폰에 내 사진을 소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칠 노릇이네.”
너무 확대 해석을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증거는 충분했다. 최근 들어 나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는 함선 소녀들이 많았으니까.
낯선 사람: 뭐야, 진짜로 사진 없어?
뜨거워진 머리에 콧잔등을 매만지는 사이, 또 하나의 문자가 날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기회라 판단했다.
나: ……하나 있긴 한데.
낯선 사람: 뭔데, 대충 설명해 봐.
나: 지휘관님 셀카요.
낯선 사람: ????? 진짜로?
오늘 가장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 이상한 건 아니었다. 내가 따로 혼자 사진을 찍지 않는 건 모항에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내 가설이 맞다면, 내 사진이 유통되는 이곳에서는 회귀한 사진일수록 그 가치가 높을 것이다. 가령 홀로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의 셀카라든지.
아무래도 멋지게 들어맞은 듯했다.
나: 네. 사진 먼저 보낼 테니까. 그쪽도 보내주세요.
말하며, 잠시 카메라를 켜고 어색한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표정부터가 어정쩡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나: [사진]
낯선 사람: 와 캬 퍄ㅋㅋㅋㅋ 오늘 반찬은 이거다 ㅋㅋㅋㅋㅋㅋ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반찬이라니, 저 정도 은어는 알고 있는 만큼 그들이 나를 반찬 삼아 그것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저렇게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썩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정확히는 어이없었다는 게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피식, 헛웃음도 나왔다.
“…….”
그리고 이것은 전부 미끼, 그들이 갖고 있는 내 사진은 대체로 둘이서 함께 찍은 것, 그런고로 사진을 보낼 때 자신이 함께 나온 사진을 보낼 확률이 높으니, 정체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아니, 누구라 해도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게 확실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 함선 소녀들의 이미지는 이렇지 않았으니까.
생각하는 사이, 상대방의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글 유니온의 누군가를 확인할 시간이다.
-낯선 사람이 채팅을 나갔습니다.
“……?”
먹튀 당했다.
***
“……지난번 뉴저지가 사기당했다고 씩씩대던데 설마 이건가.”
사진을 먹튀 당하고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기만 5분, 처음 뱉은 한마디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일주일 전 뉴저지와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언가 사기를 당했다며 심히 불쾌해하던 그녀의 모습, 아마 이것임이 확실했다.
“……억울한데.”
그녀와 마찬가지로, 억울한 마음이 따라왔다. 아니, 따지고 보면 내 사진을 이런 식으로 유통하는 것부터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모항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연결.”
그리고 이 모항의 지휘관인 나는, 그것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존재했다.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연결 버튼을 누른다. 두 번째 연결은 금방이었다.
음지를 파헤치기로 한 만큼, 각오했다. 지금부터는 그 어떤 광경을 마주해도 놀라지 않으리라, 눈을 부릅떴다.
-낯선 사람이 입장했습니다.
낯선 사람: 지휘관 팬티 ㅍㅍㅍ 한 번 신은 양말도 ㅍㅍㅍㅍ 섡@@@@@@
“……이 미친년들이.”
5초도 되지 않아 박살났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 몇 명 현피 뜨러 만나기도 하고, 고민 상담하다가 우울해진 함순이 보고 지휘관이 자기 방 찾아오라고 위로해주고, 순애 야스 몇 판 했다는 암시도 남기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지휘관이 랜챗 드나든다는 소문 퍼져서 함순이 쪽에서 먼저 자기 몸 짤 보내고 지휘관이 그거 보고 자기 사진 보내서 야스 매칭 어플 되는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