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주인공 솔트레이크 시티(CA-25)





솔트레이크 시티는 펜사콜라급 중순양함의 2번 함으로 1902년에 건조된 세인트루이스급 방호 순양함을 대처하기 위해 건조됨.


1929년에 취역하였으며 펜사콜라급 중순양함은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이후로 만들어진 미 해군의 첫 중순양함이었고. 


처음 만들어진 중순양함인 만큼 시험적인 의미가 강한 배였음.




세인트루이스급 방호순양함(좌) 와 펜사콜라급 중순양함(우) 


조약에 맞춰 건조되어 문제가 많았지만, 세인트루이스급 방호 순양함보다 많이 진보된 모습과 32노트의 빠른 속도, 더 강력한 주포로 무장하여 미 해군의 중순양함의 틀을 잡게 되고. 


펜사콜라 급으로 시작하여 노스햄프턴급, 포틀랜드급, 뉴올리언스급을 건조하게 됨.


사실상 미 해군의 중순양함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취역 후 펜사콜라와 솔트레이크 시티는 여러 바다에서 현역으로 오래동안 활동하게 되는데.



그리고 세월이 흘려서





솔트레이크 시티는 펜사콜라와 함께 너무나도 낡은 군함이 되고 말았음. 중순양함으로서 처음 만들어진 배인 데다, 조약에 묶여 제약까지 두고 있었고 거기다 낡아버리기 까지 해버리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음.


이런 솔트레이크 시티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1. 장교들과 수병들이 솔트레이크 시티가 낡았다고 타기를 싫어했다.


2. 2차 대전 종전까지 솔트레이크 시티는 구형 마스트를 가진 유일한 미국의 군함이었다.


3. 물이 자주 샜다고 한다. 그래서 매번 수리를 해도 또 물이 샜다고한다. 


4. 장비들이 고장나는일이 빈번했다.


5. 포격 훈련도중 조타륜이 빠지기 까지 했다.


6. 본토에서 막 교육을 마치고 솔트레이크 시티에 배치된 기술사관이 솔트레이크 시티를 몰고나서 멘붕하여 기절해버렸다.


7. 어느이가 솔트레이크 시티를 보고서 '맷돼지 만큼이나 아름답고 쓰레치가 만큼 우아하다' 라고 평하였다.



8. 솔트레이크 시티가 속한 소함대에는 노샘프턴급 중순양함 체스터 와 자매함인 펜사콜라가 있었는데, 이 함대의 별명이 '고물상 소함대' 였다고 한다. 이 셋을 묶어서 함대를 이룬 이유는 아군이 낡은 배를 보고 사기저하를 우려해서 카더라 라는 말이 있다.



 


9. 승무원들 또한 자신들의 배가 낡은걸 인정하고 있었으나 다른이가 자신들의 배를 놀리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이렇게 고물 취급 받으며 미해군에서도 까이던 불쌍한 솔트레이크 시티였지만, 오랫동안 현역으로 수행하던 짬이 있던 만큼 솔트레이크 시티는 미해군의 영웅인 엔터프라이즈와 같은 함대에 속해있었는데


12월 6일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며 웨이크 섬에 비행기들을 배달하고 돌아오던 중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됨.







진주만으로 돌아온 솔트레이크 시티는 엔터프라이즈가 미해군 최초로 일본군 군함인 I-70을 격침시킬때도 같이 있었으며, 둘리틀 특공대를 싣고가던 호넷도 호위하였고,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전하였으며.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일본군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구축함 후부키를 격침시키고, 피해를 입은 브루클린급 중순양함 보이시를 엄호하여 '일척함대' 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코만도르스키 해전 당시 전력으로 2배나 차이나던 일본군을 상대로 일본군 중순양함 마야와 나치를 상대로 2 : 1로 맞서 싸워 무승부로 나게하는등 여러 해전에서 크게 전과를 세우고, 미해군 군함 최초로 일본군 점령지를 포격한 함선이기도 하며, 이때 항공지원없이 가장 가까이 일본 본토에 가까이 접근한 군함이기도 했음.




이오지마에서 25일, 오키나와에서 66일 약 91일 동안 쉬지않고 포격을 했으며 이는 세계기록이라고 하며. 이때 솔트레이크 시티가 소모한 포탄이 무려 29,770발


해전에서 싸움도 잘하고 포격임무도 잘 수행하던 솔트레이크 시티는 심지어 행운을 타고났는데 특히 일본의 유키카제만큼 운이 좋았다고함.




1. 위에 포격임무를 하고 귀환하던중 타이완 근처에서 일본군 공격기에 발각되나 아무런 일도 없이 귀환함


2. 마르커스 섬을 포격할 당시 해안포에 7번이나 지근탄이 떨어졌지만 피해를 입진 않았음


3. 이오지마 섬 전투 당시 좌초되었는데, 일본군은 솔트레이크 시티를 향해 해안포를 쏘지 않았고. 대신 아군 전함의 주포탄이 근처에 떨어져 위험할 뻔 했다고


4. 게라마 열도 근처에서 일본군기한테 공습을 받는 상황에 기뢰밭을 빠져나감


5. 중국 근해에서 기뢰에 닿았으나 기뢰가 불발이었다고


6. 오키나와에서 자신의 앞에 있는 군함이 카미카제로 피격되는 상황이 2번이나 일어났고. 해안포가 바로 옆에 있는 군함을 명중시켰으나 솔트레이크 시티는 피해없이 빠져나옴


7. 전쟁이 끝나고 본국으로 귀환하던중 태풍을 만나서 배가 47도까지 기울어졌지만 운이 좋아서 살아남음




싸움도 잘하고 운까지 좋았던 솔트레이크 시티의 승무원들 또한 조금 특이했는데, 워낙 사건사고를 다 겪은 승무원들이다 보니 위험에 대해 많이 둔감했다고 한다.


1. 사이판에서 전투가 한창일때 대놓고 급유함(군함이 가장 취약할때가 급유할때임)



2. 오키나와 근해에서 견시가 일본군기 일식육공을 발견후 함장에게 보고하자, 함장은 "가던길 계속 가라고 신호해" 라고 답함


3. 포격 임무 중 장교 한명이 캐비어 통조림을 발견하게 되고 장교들이 사관실에서 모여서 캐비어를 먹었다고 함


4. 

 





한때 미해군에서 악평이 자자하며 낡은 고물 군함 취급받던 솔트레이크 시티 였지만 전쟁을 치루면서 수많은 전투를 치뤘고 거기서 여러 전과를 세우며 종전까지 살아남고.


전쟁 기간동안 11개의 종군 성장과 해군 부대 표창 그리고 12개의 일본군 기지를 포격하였으며.


해군 십자상 4개, 개인 표창 11개, 은성 훈장 8개, 무공비행십자장 1개, 퍼플 하트 33개, 공군 훈장 1개 를 수상받으며


미해군 최고의 중순양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1946년 솔트레이크 시티는 나가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핵실험에 사용되었고





2건의 핵실험에서 살아남고, 1948년 표적함으로 처분되어 50mm 기관포, 100파운트 폭탄, 500파운트 폭탄, 1000파운트 폭탄에 투하하나 침몰하지 않았고


2시간동안 구축함의 포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몰하지 않자 결국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함으로써 그제서야 침몰


미해군 최고의 중순양함은 그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