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거슬러 올라 1920~30년대 항모 투탑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서 항모전을 상정한 여러 모의전과 실험이 행해졌는데


그런데 당시에 항모전이 일어나면 먼저 맞는쪽이 결국 처맞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그 이유는 육안으로 적 전투기를 발견한 후에 뒤늦게 아군전투기를 띄우면 이론적으로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게 된것은 이후의 레이더 기술의 발달로 당시로는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는 아이러니 하게도 양국해군이 함재전투기에 신경을 덜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똥풀머는 몰라도 미해군이? 라고 하겠지만 미해군 역시 버팔로란 똥기체를 만들었고 일선에서 F3F 복엽기를 41년까지도 운용했었다는 흑역사가 있으며


공군기와 비등한 레벨의 함재전투기를 가졌냐라고 물으면 일본은 제로센으로 41년에 달성했지만(일본공군기 레벨이 낮아서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연합군은 이에 비해 43년 핼켓, 커세어, 시파이어로 뒤늦게 달성되었다



버팔로



아무튼 먼저 쏘면 무조건 이김ㅋ 딜레마에 대한 접근법에 미국과 영국의 차이가 있었는데


먼저 미국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위해 항모들로 이루어진 전단을 구성하려 했다


첫공격에 맞아도 몇은 살아남을거란 의도였고 이것은 항모들이 같이 작전하지만 위치는 분산시켜


모두가 발견될 확률을 줄이는 항모분산교리로 결실을 맺는다




반면 영국의 방식은 항모에 장갑을 설치하고


항공가솔린격납시스템, 격납고분무시설, 방화막, 깊은 탄약고 등 수동방어장치를 늘려 항모 자체의 생존력을 강화한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우리가 아는 장갑항모개념의 모태가 되었고 첫 빠따로 일러스트리어스 급 항모가 탄생하게 된다.




일러스트리어스급의 갑판은 500파운드까지의 방호력을 상정해 만들었는데


태평양에선 일본함재기들이 주로 500파운드 이하 폭탄을 떨구었으므로 아주 상한가를 치게 되는데



위와 같은 짤이 유명하다 같은 500 파운드를 달고온 카미카제로 러스티는 계란후라이를 볶을때, 더 최신이었던 에섹스급은 보전깨를 당해버림





그런데 러스티가 진짜 유명한 이유는 알량한 장갑보다도 전술했던 데미지컨트롤이 우수했다는 것이다


태평양과 달리 유럽 전선에서 1000파운드 이상급의 흉악한 흉기를 고고도에서 정확하게 내려꽂는 당시 세계 원탑 독일공군기들과 싸워야 했는데


전쟁동안 러스티가 1000파운드 4발, 2000파운드 한 발을 맞았고 포미더블은 2000파운드 두 발을 맞았는데도 살아나는 근성을 발휘한 것


이건 설계된 갑판장갑은 니미취급되는 핵펀치였으며 작은 것 몇 발만에 용궁을 접견한 태평양 항모들에비해 인상깊은 데미지 컨트롤 능력을 선보인 것이다





어쨌든 이 항모의 몸빵강화만으론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에 나아간 보완적 개념으로 만든 것이 바로 방공순양함이다


보는 이가 이래도 되나 싶을정도로 양용포를 둘둘한 방공순양함은 영국이 생각하던 함대방공의 주축이었다


양국의 다이도급과 애틀란타급의 기공일을 비교하자면 37년 10월과 40년 4월로 약 2년 반의 차이로 선배 격이며


말이 2년 반이지 이때가 눈돌아가게 연구개발, 장비를 찍어내던 전쟁기간임을 감안하면 개념을 받아들이는데 생각보다 격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공분야에 있어 영국은 말레이 해전의 굴욕과 쓸모없는 장난감 폼폼포의 이미지로 우주방어급의 미국에 비해 뒤쳐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방공순양함 뿐 아니라 함상방공 레이더를 가장먼저 운용한 것도 영국이었으며(39년)


중구경 대공포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스웨덴제 보포스를 최초로 해상버전으로 운용한 것은 영국이었다(40년)



보포스



그리고 미국의 VT신관 개발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영국이 소세지와 파스타랑 홀로 싸우고 있을때

(폴란드 침공이 39년 9월인데 소련은 독일침공인 41년 6월까지 미국은 태평양이 터지는 거의 42년까지 내내 중립이었다)


미국이 계속 강건너 구경처럼 미지근하게 구니깐 영국은 미국에게 후장을 전격적으로 대주기 시작한다


여기서 패권국으로 쌓아놨던 전세계 금괴들을 싹 가져다 바친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거부할수 없던 것이 당시로 전기공학 등 여러분야에서 원탑을 달리던 영국의 고-오급 기술들이었다


티저드 미션으로 불리는 것인데 그 목록이 방대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거 3가지만 들자면



1. 레이더기술(미국의 레이더 기술자체는 존재했지만 마그네트론이 시연 되었을때 미국인들이 봐온 어떤 레이더보다 100배 이상 파워가 강했다)


2. 제트엔진(연합국 중에서 첫빠로 제트기를 실전에 데뷔시킨건 영국이었지만 이후로 미국에 빠르게 역전되는 발단이 된다)


3. 원폭기술(영국의 트윈 튜브 앨로이 프로젝트가 넘어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가 되었다. 하이드 파크 협정을 맺어놔 이후 기술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전쟁이 끝나 졸렬해진 미국은 입을 싹 닦아버림 영국은 뒤늦게 대노하고 영원한 따까리 1번 호주랑 같이 52년에 가서야 원폭을 만들었다)



위 세가지가 된다. 물론 이후 천조국의 어마어마한 랜드리스로 영국이 전승국이 되긴 했지만


이때 영국에서 내준게 많고 전쟁에서도 잃은게 많아서 차라리 독일한테 항복하는게 더 강대국으로 남을수 있는 기회였을 거란 이야기도 있다.





VT 신관역시 이때 넘어간 기술들 중의 하나였으며 간단히 말하면 직접 명중시킬 필요없이 가까이서만 가면 터지는 신관으로


이 또한 레이더 기술을 응용한 것인데 설계를 받은 미국이 완성시켜 대전후반 대공용으로 맛깔나게 써먹었다


다만 연합국은 처음에는 기술강국인 독일에게 샘플이 넘어가면 어쩌나 전전긍긍하여 소극적이었고


영국도 노획될 가능성이 적었던 V1을 격추시키는데에 써먹었으며 44년 1월에는 해상에서도 디도가 직접 쏴보는 등 노력을 들였다





다만 통 커보이던 미국도 VT신관을 영국에게 제공하는 문제로 유별나게 마찰을 내곤 했는데 처칠안티로 통하던 어니스트 킹의 역할이 지대했다


어니스트 킹은 이뿐만 아니라 유럽정리 이후에 영국의 태평양진출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다고 여겨 결사반대했으며


이게 처칠의 땡깡에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저 필리핀의 맥아더와 육군에게 선심쓰듯 붙여주려고 했다


해군 눈치를 보는게 내내 꼬왔던 맥아더는 항모만 스무척이 내 전용함대라니 시발 이게 트루냐 잠깐 신이 났지만


반면 니미츠와 스프루언스는 정치적 문제보다 카미카제와 계속된 징병으로 사기가 개판난 일선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함대의 참가를 비교적 달게 받아들이고 VT신관도 줘서 카미카제 몸빵으로 잘 써먹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