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말 미국의 상황은 어두웠다. 렉싱턴은 코랄해에서, 요크타운은 미드웨이에서, 호넷은 산타크루즈 섬 전투에서 가라앉았고 와스프는 지난 9월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엔터프라이즈는 과달카날 주변의 작전 중에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결국 수리를 위해 본토로 갈 예정이었다. 솔로몬호에서도 피해를 입었던 사라토가는 진주만에서 수리를 받고 있었으며 레인저는 태평양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새로운 에식스급 항모들은 1943년 말에야 함대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 시점에 미국이 남태평양에서 가용할 수 있는 항모는 단 한척 뿐이었다.


미드웨이 전투 직후 미국은 영국에 항모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된 전적이 있었다. 킹 제독은 공공연히 영국을 비난했지만 당시 지중해에서의 전투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영국해군은 지나치게 확장되어 있었다. 영국의 제일 과제는 유럽의 두 침략자들을 봉쇄하고 인도양을 방어해 독일과 일본이 접촉해 고리를 생성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영국은 극지방, 북해, 비스케이만, 지중해 그리고 인도양에 몇 안되는 항모를 투입했다. 그러나 과달카날에서 비싼 값을 치른 후 킹 제독의 압박에 미국은 두번째 요청을 했다.


당시 영국 항모의 상황을 살펴보자. 인도미터블을 8월 페데스탈 작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수리중에 있었다. 포미더블과 퓨리어스는 횃불작전에 참가중이었으며 포미더블의 터빈에도 수리가 필요한 문제가 있었다. 일러스트리어스는 동양함대 유일의 항모로 인도양에 배치되어 일본을 견제하는 중이었다. 빅토리어스는 횃불작전에 참가후 귀환중이었다. 결론적으로 빅토리어스는 가용이 가능했고 무리한다면 일러스트리어스까지 빼낼 수 있었다.


루즈벨트의 요청에 처칠은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a)빅토리어스만 보낸다.

b)일러스트리어스와 빅토리어스를 둘 다 보내고 대신 그동안 레인저를 달라.


결국은 빅토리어스만 보내기로 결정되었다. 기간은 43년 말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에식스급의 작전투입시기와 더불어 독일의 그라프 체펠린의 활동이 43년 말에 시작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빅토리어스를 방문한 니미츠와 메킨토시



미국으로 간 빅토리어스는 노퍽에서 1943년 1월 1일부터 드라이 도킹되었다. 구식 페어리 알바코어 뇌격기가 미국의 새로운 TBM 어벤져스와 교환되었으며 통신장비, 유도장치 등 각종 장비도 미 해군에 알맞는 것으로 교체되었다. 빅토리어스에 미국식의 푸른위장이 덧칠해졌으며 함재기는 미해군의 하얀별을 달았다. 승무원들은 그동안 미국의 이착륙 및 선상 항공기 처리 신호와 관행을 숙지했다. 준비를 마친 빅토리어스는 2월 3일 파나마를 통과해 3월 4일에 진주만에 도착했다. 그들은 '로빈'이라는 콜사인을 받았는데 이 이름이 밝은 깃털을 가진 새종류에서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영국의 전설적인 무법자 로빈후드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누메아 앞바다에서 사라토가와 빅토리어스



6월 초 빅토리어스와 사라토가는 누메아 앞바다에서 상호운용 훈련을 실시했다. 빅토리어스는 이미 미국의 함재기 마틀렛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었지만 새로 받은 어벤져는 이보다 운용하기 힘들었다. 이 함재기는 너무 착륙시키기 어려웠고 두 건의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게다가 어벤져는 만재시 너무 무거워 크레인으로 들어올릴 때 빅토리어스의 엘리베이터 위치에 정확히 맞추는 요령이 필요했다. 또 영국 승무원들은 비행 갑판 위에서 다양한 항공기 처리 방법을 필요로 하는 미국식 덱 파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반면 빅토리어스가 대서양과 지중해에서의 광범위한 전투 경험에 기초하여 세워진 빅토리어스의 우월한 FDO(전투기통제실)는 모두에게 주목받았다. 기존의 CAP(전투공중초계)에서는 적의 위치를 편대장에게 전달하고나면 각자 알아서 행동할 뿐이었다. 게다가 항모 간 전투에 있어서 기습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더불어 일본의 효율적인 RDF(방향탐지시스템)로 인해 미 해군은 무선침묵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영감을 받은 FDO는 CAP를 조정하기 위해 만든 독립적인 부서로 함대와 방공의 채널을 분리시킨 지휘체계와 무선시스템을 갖추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빅토리어스의 함장 메킨토시 대령은 같이 승선한 킹 제독의 사람들에게 선진적인 FDO의 정보와 기술을 전수하란 명령을 받았고 이는 훗날 미국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펼치는데서 진가를 떨치게 되었다.




진주만에 정박중인 빅토리어스



6월 27일 빅토리어스가 속한 태스크 그룹 36.3은 뉴 조지아 침공인 토네일즈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누메아를 떠났다. 태스크 그룹은 수륙양용 상륙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28일 동안 정거장에 남아 수송 및 착륙 부대의 항공지원을 제공했다.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초계기를 공중에서 유지하면서 성과를 거두었다. 빅토리어스는 이 기간동안 614건의 출격 중에 단 8건만의 사고를 초래했다. 놀랍게도 이 기간 동안 적과의 접촉은 일어나지 않았고 7월 25일 누메아로 돌아왔다.


7월 31일 빅토리어스는 귀환을 명령받았다. 에식스급 항모 한 척의 작전투입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사라토가의 와일드캣과 어벤져가 작별인사를 의미하는 'beat up' 기동을 하다 서로의 날개가 충돌했다. 다행히도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지만 떨어져나온 고철들이 기념품으로써 빅토리어스 위에 쏟아졌다. 9월 1일 노퍽에 돌아온 빅토리어스는 미국 장비를 철거하고 9월 27일 영국의 리버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