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군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이 함선은 2차대전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함중 하나로



미 해군의 전설을 만들어버린
레이먼드 스프루언스의 기함이기도 했다.

참고로 기함으로 선정된 이유는
레이먼드 스프루언스이 학창시절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보냈기때문이다.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거주환경이 매우 그지같았기에 참모진이 기함 바꾸자고 말해도 씨알도 안먹혔다고한다.
아무튼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때는 1945년 7월 16일
당시 인디애나폴리스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바로 땅꼬마의 피와 살이 되어줄 농축 우라늄을
폭격기가 준비된 티니안 섬으로 운송하는 임무였다.



해당 임무는 극비중에 극비임무였기에 미해군은 보안을 위하여
인디애나폴리스 '단 1대'만으로 임무를 수행할것을 명했다.



맥베이 대령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인 맥베이 대령은 일본 잠수함이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며 대잠 구축함을 요청하였으나
극비임무라며 미해군은 요청을 가볍게 씹어준다.



티니안섬
인디애나폴리스는 무사히 농축 우라늄을 티니안 섬까지 전달하였고
다음 작전을 위하여 필리핀 레이테만으로 향했다.
이미 우라늄을 전달하여 극비임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해군은 호위할 구축함을 1대도 보내주지않아
인디애나폴리스는 혼자서 필리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무난하게 도착했다면 이 글이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일본 잠수함 I-58이 인디애나폴리스를 포착하고 만것이다.
참고로 인디애나폴리스는 대잠능력이 1도 없는 중순양함으로 I-58를 사전에 탐지할 능력도 잡을 능력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인디애나폴리스는 한가지 더 재수없는 상황에 걸리게된다.



당시 I-58의 함장 일본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

i-58의 함장이 인디애나폴리스를 뉴멕시코급 전함 아이다호로 착각하고 만것이다.



뉴멕시코급 전함 아이다호

하시모토 모치츠라는 전함이 혼자서 항해하는 이때를 절대로 놓칠수 없다고 생각하여
인디애나폴리스가 절대로 피할수없는 지근거리까지 I-58을 접근시킨다.
그리고 전함(일본군 생각으로)을 확실하기 조져버리겠다는 의지로
장전되있던 어뢰 6발을 다 쏴버린것이다.





인디애나폴리스는 갑작스런 어뢰 6발의 공격을 받았고 뒤늦게 회피기동을 하였으나
어뢰 2발에 명중되고만다.
전함도 아닌 중순양함이 어뢰를 2방이나 맞고 버틸 재간은 없기에 12분만에 침몰되고 만다.
이때 맥베이 함장은 어뢰에 맞는 즉시 구조신호를 송출하고 승무원들에게 퇴함명령을 내린다.



맥베이 대령의 빠른 판단과 지휘아래에 어뢰의 폭발로 즉사한 300여명의 승무원을 제외한 900여명의 승무원 대부분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어뢰에 맞아 12분만에 침몰하면서 3/4가 살아남은 기적과 같은 상황이였지만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이들이 미 해군에게 최초로 발견된건 침몰하고 4일뒤
미해군 PBY 카탈리나 비행정이 바다위에 표류하는 구명정을 발견한것이였다.
이후 약 이틀에 걸쳐 미해군 구축함들이 생존자들을 구출했고
6일동안 살아남은 인디애나폴리스 승조원들은 총 316명이였다.
침몰당시 살아남은 900여명 중에서 1/3만 살아남은 것이였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서 만든것이




우리가 매우 잘 알고있는 아가리 시리즈다.
이때 상어뿐만 아니라 갈증, 굶주림으로 승무원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상황이 오기도했고
많은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자살하는 경우도 속출했고
살아남는 군의관들도 사망한 승무원들의 인식표를 모으다가 이를 바다에 던지고 자포자기하는 상황까지 달했다고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전쟁이 부른 매우 끔찍한 참사라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건 미해군이 만든 인재였다.


시간을 조금 돌려서 6일전 침몰 당시로 돌아가보자.




맥베이 함장이 구조신호를 보내고 승무원들의 퇴함을 지휘중일때
인근 미해군 통신기지에서 해당 구조신호를 송신하였다.
하지만 최초의 수신자는 술마시고 퍼질러 자느라 해당 신호를 받지못했고
두번째 수신자는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 아군이 침몰하는게 말이 안된다. 이는 아군 함정을 유인할려는 일본군의 함정이다."
이라는 판단하에 해당 구조신호를 무시했다.
그렇게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들이 발견되기까지 4일이 걸린 것이다.
이후 맥베이 대령이 구조가 6일이나 걸린 이유를 미해군 본부에 따지자 미해군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구조신호 들어온게 없다."
...




그리고 미해군의 인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디애나폴리스를 잡아먹었던 I-58이 6일전에
같은 해역에서 구축함 하나를 격침시킨적이 있는데
그리고 해당 사실을 인디애나폴리스 함장인 맥베이 대령에게 통보하지도 않고 대잠호위도 붙이지않은체
해당 해역을 통과하여 필리핀 레이테만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린것이다.
맥베이 대령은 해당 해역에 잠수함이 있을지도모른다는 사실도 모른체 항해하다가 어뢰에 맞은 것이다.




그리고(2) 미해군의 병신짓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해당 사건은 미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면서 다루었고 미해군을 공격하는 최강의 떡밥으로 작용했다.




당시 미 해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쁜순간에 인디애나폴리스 격침으로 분위기가 망가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맥베이 대령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무려 전쟁에서 침몰한 함장 700여명 중 유일하게
'자신의 함선을 관리하지못하고 적국에게 침몰한 죄'
로 군사재판에 회부된것이다.
해당 죄의 근거는
'어뢰회피를 위한 지그재그 기동을 하지않았다.'
라는 이유였다.



지그재그 기동은 이렇게 움직이며 어뢰를 피하는 기동을 말한다.

참고로 인디애나폴리스가 당시 지그재그기동을 하지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잠수함을 탐지할 수단을 가지고있지 않았고
미해군은 해당 해역에 잠수함이 있다는 정보를 인디애나폴리스에 통보하지도 않고 호위함도 보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리핀 레이테만에 7월 30일까지 도착하라고 명령했는데 지그재그 기동을 하면 그 날짜까지 도착하는건 불가능했다.
잠수함이 존재하지도 않고 일정이 빡빡한데 지그재그기동을 하면서 함선의 속도를 늦출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재판 재판관들은 함선에 대해 무지한 이들이였기에
미해군의 주장대로 어뢰 공격에 대한 회피기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맥베이 대령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인디애나폴리스를 침몰시킨 I-58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가
'인디애나폴리스가 그 어떠한 행동을 취했더라도 나는 반드시 격침시킬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즉 회피기동하든말든 어차피 인디애나폴리스는 격침됬을거라고
미해군의 근거를 정면 반박하는 증언까지했으나 당장 언론의 포화를 피하기 급급한 미해군은 해당 증언을 그냥 무시해버렸다.
유죄판결이후 맥베이 대령은 강제로 해군에서 예편되었다가
니미츠 제독이 1949년 사면하여 복직하였으나 동기들이 중장, 대장의 계급으로 전역한데반해
소장의 계급으로 불명예전역을 당하였고 이후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유족들에게 비난을 들으며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만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미 해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일본해군도 전투로 배가 침몰한 함장에게 니가 배 관리 못해서 침몰했다고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병신짓은 안했다.


그리고 해당 사건은 맥베이 소장의 자살로 세상에서 묻히나 했지만......




아가리 영화를 감명깊게본 한 초등학생에 의해 다시 세상에 공개되었다.
1997년 헌터스콧이라는 학생이 National History Day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Triumph & Tragedy'(승리와 비극)이라는 그 해의 테마에 어울리는 미국 역사 기념물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도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바로 자신이 감명깊게 본 이 영화가 바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
그리고 이를 해당 행사에 발표하기 위해서 실제 사건에 관한 문헌을 모으려했으나 2차대전 자료가 1997년에 남아있을 턱이 있는가?
아무런 소득이 없자 헌터 스콧은 이에 포기하지않고
인디애나폴리스 생존자 150여명을 전부 방문하여 직접 인터뷰를 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해당 자료를 수집하면서 맥베이 대령이 억울한 누명을 쓴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되자
맥베이 대령의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맥베이 대령에 누명이 세상에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2년뒤인 1999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워너를 통해 미의회 공식 결의안으로 올라가는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이를 통과하기 위해선 미 하원 상원 둘다 통과해야했고
미해군은 맥베이 대령은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사실을 인정하지않았기에 미래는 상당히 불투명했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한 남자의 편지가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워너에게 도착했다.

그 편지를 쓴사람은 바로



I-58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합중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 귀하
 
저는 당시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일본제국 해군 잠수함 I-58의 함장이었던 전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입니다.
저는 귀하의 결의안이 1945년 7월 30일 격침된 미해군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 故 찰스 버틀러 맥베이 3세 대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전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상태라도 격침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들은 끔찍했던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 귀하와 귀하의 나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맥베이 대령에게 씌우진 부당한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전 I-58 함장,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橋本以行)



이 편지가 공개되자 미 의회는 곧바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2000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에 서명함으로서
맥베이 대령의 모든 죄는 사면되고 제독으로 복권되었으며 생존자 316명 전원에게 은성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미 해군의 반발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명령에 결국 미해군은 맥베이대령의 복권을 받아드릴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당 편지를 보냈던 하시모토 모치츠라는 맥베이 대령의 복권 소식을 들으며 2000년 10월 25일 91세로 사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