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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잘하는 게이들의 오역및 오타지적 앙망합니다

괄호안은 본문에 없는,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한 보충설명






부제

손잡고 함께 나아가자, Товарищ Офицер(지휘관동지)!



키로프는 소련 붉은 해군의 자랑이자, 소련이 만든 최초의 현대적 순양함이었다. 독자적인 주포를 가진 키로프였지만 다른 소련의 전함들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경순양함으로 분류되든 중순양함으로 분류되든간에, 키로프는 오랜 기간을 혁명의 창끝을 내세우며 고군분투하였다.

(실제 키로프급은 경순양함으로 만들었는데, 국제협약상 경순양함 최대 주포 구경 152mm를 넘어서 소련 독자기술로 만든 180mm 주포를 탑재했음, 그래서 사거리만큼은 아이오와급 전함이랑 비빌 정도고 경순인지 중순인지 애매하게 됨)

「경순양함인가 중순양함인가 하는 사소한 일은 우리의 혁명과업 앞에서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암흑이든, 운명이든, 우리의 혁명과업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그녀의 대사처럼, 순양함 키로프호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웠던 군함이다.



제 1차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을 끝마친 소련은 「대해군」을 만들 산업과 경제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소련해군은 뒤를 이을 제 2차 국민경제 5개년 계획에서 전통적인 구축함이 아닌, 순양함의 건조에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조선공학은 대형 함선의 설계 경험이 턱없이 모자랐고, 순양함 설계는 마치 백지와도 같은 상태였다.

(소련은 Пятилетние планы развития народного хозяйства СССР 계획-국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을 도모했었음)


결국 소련은 다시 한번 이념과 상관없이 실용주의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소련은 이탈리아의 선진화된 조선소에 다시한번 도움을 요청하였다. 구축함때와 다르게 이번엔 이탈리아인들이 직접 설계에 참여했다. 이탈리아는 경순양함 라이몬도 몬테쿠콜리의 설계도를 제공하였으며 소련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포탑수명 문제, 터빈시스템의 구입 등을 도와주었다.

(이탈리아 안살도 조선소에서 배의 설계를 맡았고, 주포는 소련이 독자적으로 만듬)


콘도티에리급 경순양함 「몬테쿠콜리」는 키로프급 경순양함의 주요 참고 대상이었다.


이탈리아측의 지원을 받자 신형 순양함의 설계작업은 빠르게 진척되었다. 1933년 상반기, 소련의 설계자들은 첫번째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련의 설계자들은 이탈리아 몬테쿠콜리급 함선의 배수량이었던 6500t이면 180mm 주포를 장착할 수 있고, 2대의 수상정찰기를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획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받아들인 소련군 고위층은 이 신형 순양함 프로젝트에 26번이라는 프로젝트명을 부여하고 총 8척을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키로프급 경순양함 투시도


하지만 설계 진행 중, 소련 설계자들은 배수량이 6500t을 뛰어넘어 7000t 이상이 될 것이라는 오류를 발견하였다. 이렇게 된다면 초창기 기획시 예상했던 37노트의 항속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련은 최신식이던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두카 디오스타 경순양함(콘도티에리 급인데 몬테쿠콜리의 진화형)의 동력시스템을 도입하고, 선박 형태를 수정,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동시에 180mm 주포탑 설계자들은 주포를 연장포가 아닌 3연장포로 업그레이드 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프로젝트 26 순양함 계획도 본격적인 건조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키로프급 순양함은 3연장 180mm 주포 3문을 장착하였고, 공간확보를 위해 포신 3개를 묶었는데 주포가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서 사격의 정밀도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구경을 탑재함으로써 강력한 화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100mm 부포 6문, 45mm 대공포 6문, 12.7mm 대공기관총 6정, 533mm 어뢰 발사관 2기를 장착해 키로프급의 작전능력을 한층 향상시켰다.


키로프급 순양함의 3연장 180mm 주포탑 확대사진

타국 순양함의 152mm 주포보다 화력이 우수했다


화력은 강력했지만, 타국의 경순양함에 비해 내구도 면에선 취약했다. 설계시 핵심 포인트의 보호에 중점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측장갑, 갑판장갑이 50mm에 불과했고 포좌와 포탑 정면 장갑 70mm, 오직 함교만이 150mm의 중갑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키로프급 경순양함은 구축함의 공격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다.


1941년 경순양함 키로프호


그렇지만 경갑중화력 지향 순양함 키로프는 이탈리아에서 제공받은 최신식 기관부 설계덕에 출력이 110000마력에 이를 정도로 기동성이 뛰어났다. 해상 실전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키로프급 1번함 키로프는 일시적으로 최대 113500마력의 출력으로 35.94노트의 속력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많은 양의 사격통제장치(FCS)를 갖춰서 군함들이 전투시 최상의 작전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서포트가 가능했고, 2대의 수상기를 탑재해 정찰업무 보조도 가능했다. 麻雀虽小,五脏俱全(참새는 작지만 오장육부는 다 가지고 있다-작아도 있을건 다 있다는 중국 고사성어)라는 말 처럼, 키로프급 순양함은 작지만 상당한 작전수행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키로프급 순양함은 KOR-1 수상기 2대를 탑재할 수 있었다


「키로프」는 키로프급 순양함의 1번함으로, 착공은 1935년 10월 22일로 자매함 보로실로프보다 7일 늦었지만, 키로프급 중 가장 먼저 진수되고 가장 먼저 취역하였다. 1938년 9월, 소련 발트함대에서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한 키로프는 무엇보다도 1918년 창설된 소련해군 역사상 최초로 자체설계로 건조된 순양함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키로프의 첫 데뷔전은 그녜브니급 동지들과 함께 싸웠던 겨울전쟁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핀란드군의 해안포에 많은 피해를 입던 키로프는 어처구니 없게도 명중 실패한 포탄의 2차피해에 의해 첫 데뷔전을 실속없이 끝내게 된다.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키로프는 수리를 마치고 다시 한번 활약할 기회를 가진다. 방어 기뢰 설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키로프는 탈린에서 일어난 방어전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고, 탈린 철수 사건에서 기함을 맡아 겹겹히 쌓인 포위를 뚫고 레닌그라드에 도착,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성시킨다.

(탈린철수는 탈린이 독일군에게 포위당해서 다 죽을 위기일때 발트함대가 군인/민간인들을 태워서 레닌그라드까지 성공적으로 철수시킨 사건, 소련은 12000명이 죽었고 군함 13척 손실함, 이때 기함이 키로프)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내내 레닌그라드에 갖혀있던 키로프는 레닌그라드 포위전 기간동안 자신의 화력을 십분 활용하며 수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독일군의 포화와 전투기에 의해 계속해서 피해를 입었지만, 계속 수리를 받으면서 전선에서 싸운 키로프는 1943년 2월 27일, 그 활약을 인정받아 발트함대 최초로 적기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약 900일동안 레닌그라드에서 소련이 우주방어한 사건, 소련 군인/민간인 합계 약 400만명이 죽었지만 결국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못뚫어서 전쟁에서 짐)


키로프의 화력 지원 모습을 그린 그림


1944년,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끝나면서 소련의 상황이 유리해졌다. 키로프에게도 마침 개조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에 키로프는 당시 쓸모가 없던 수상기 캐터펄트를 제거하고 방공포를 대거 장착, 독일군 전투기 파괴에 힘을 실었다. 마침 영국에서 레이더시스템을 제공받은 소련 해군은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개조를 받은 키로프는 소련 해군에서 가장 강력한 함선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화개수를 끝마친 키로프는 1930년대 설계된 당시와는 전혀 다른 함선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키로프는 추후 20년은 더 복무할 수 있을 정도로 대대적인 개장을 받았다. 그러나 소련의 신형 함선들이 등장하면서 키로프는 끝내 일선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1974년, 키로프는 스크랩 처리됐고 키로프의 주포 2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념광장에 전시되어 찾아오는 이에게 소련 해군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는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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