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자.



ㄴ이소카제의 진수식 


이소카제는 카게로급 구축함 12번 함으로 1939년 6월 19일에 진수되었다.


첫 실전은 진주만 공습으로, 즈이카쿠를 호위하였고.


이후 라바울 공략, 자바 공략, 실론 해전, 미드웨이 해전 등 여러 전투에서 활동했으며.


미드웨이 해전에선 지근탄 한 발을 맞는 피해를 입지만 자력 항해는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요크타운에게 격침된 소류의 승조원들을 구조했다.


그리고 벌어진 과달카날 전역에서 수송 임무, 비행장 포격, 도쿄 익스프레스에 참여하지만 별 큰 활약은 없었다.



과달카날에서 후퇴할 때, 1차, 2차에 걸쳐 철수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2,000여 명의 일본군을 철수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3차 수송 작전 중 미군기에게 발각되어 공습을 받게 되었고, 이때 공습으로 폭탄 1발에 피격된다.


ㄴ당시 피해 상황


3개월간에 수리를 받은 뒤, 또다시 도쿄 익스프레스에 투입된 이소카제는 수상기모함 닛신과 수송 임무를 하던 중 미군기에 공습을 받게 되고.


수상기모함 닛신은 폭탄 6발에 피격되면서 격침, 이소카제는 거센 공습으로 인해 닛신의 생존자들을 구출하지 못한체 후퇴하고 만다.


ㄴ닛신


이후 콜롬방가라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수송하는 임무에도 참여하고, 2차 벨라 라 벨라 해전에서 미구축함 1척 격침, 2척 대파라는 공동 전과를 기록하였다.




44년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에 소속되어 참전하였고.


시부얀 해전에서 미군에 거센 공습으로 인해 배를 돌리고 후퇴하는 도중, 미끼 역할로 써버린 뒤 그대로 버리고 갔던 무사시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


위에 사진이 이소카제에서 찍은 무사시의 마지막 사진이다.


사마르 해전에선 테피3를 향해 산소어뢰를 발사하지만, 항공모함의 기관포와 함재기에 기총소사로 어뢰들이 유폭되면서 명중한 어뢰는 없었다.



잘못된 오보로 구리다 함대가 레이테 만에서 후퇴하면서 기름이 부족한 구축함들이 차례차례 낙오되기 시작.


구리다 함대에 구축함은 이소카제와 유키카제 단 두척만이 남게 된다.



살아서 돌아온 이소카제는 마무리 공사를 위해 구레로 향하는 시나노를 호위하는 임무에 투입되었지만.


시나노는 첫 항해 하루 만에 미국 잠수함 아처피쉬에서 발사된 어뢰에 맞고 침몰한다.


이소카제는 아처피쉬에게 폭뢰 공격을 가하지만 격침 시키지 못한다.


45년 야마토와 함께 특공에 투입되었으며.


미군에 1차 공습에서 큰 피해를 입고 함대에서 낙오된 경순양함 야하기를 도와주기 위해 야하기에게 접근하지만.


야하기와 함께 미군에 공습을 덩달아 받게 되었고, 결국 야하기와 함께 항해 불능 상태가 되어, 떠다니는 표적 신세가 되고 말았다.


ㄴ왼쪽 아래가 야하기, 오른쪽 위가 이소카제


야마토가 침몰하므로서 천호 작전이 종료되자, 이소카제의 승무원들은 하츠시모에게 구조되고, 유키카제는 이소카제의 견인을 시도하지만.


이소카제를 견인하기엔 잠수함의 습격과 재차 공습을 우려하여, 이소카제를 자침시키기로 결정.


유키카제가 이소카제에게 어뢰를 발사하지만, 어뢰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결국 이소카제를 향해 함포 사격을 하였고, 이소카제에 산소어뢰가 유폭나면서 이소카제는 침몰하고 만다.




병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