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루, 감정노동자, 꼴초, 지포라이터.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비하할 목적으로 쓰이는 단어라는 사실을 체셔도 알고 있었다.

수백명의 함선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그 속에서 체셔는 조리돌림 당하고 있었다.


- 메이드 카페 옥상 근황. 오우 꽁초밭이네

- 아닌 굴뚝에 담배 연기 나랴?

- 고임금, 숙식 제공. 대식이 급구(00/00)

- 점심 시간마다 창고 뒤에서 담배피는년


체셔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마지막 글을 눌렀다.

순간 그녀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릴뻔했다. 글에 첨부된 이미지에는 체셔가 태연히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이게 뭐다냥."

체셔는 끓어 오르는 가래침을 헛기침으로 억누르며 눈을 크게 떴다.

작성자. AnchorG. 최근 커뮤니티에서 사실상 개념글을 독식하기 시작한 녀석이다.

체셔는 누군지 모를 이년이 거슬리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이건 아니지. 선을 넘어도 이렇게 넘네?

체셔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살폈지만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 그녀는 탈취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떡칠했다. 손 세정제로 손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문댄 뒤에야 지휘관실로 출근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금, 체셔는 지휘관실로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

잘생긴 지휘관과의 비밀 연애는 그녀에게 나름 두근거리는 일상을 선물했다.

"냥! 서방님~ 체셔가 왔어냥! 식사는 잘 했어냥?"

"체셔. 들어와서 앉아볼래?"

평소 같지 않던 지휘관의 무거운 목소리. 고막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은 그녀의 신경을 긁었다.

"무슨일이냥? 체셔는 모르겠어냐앙......."

"약속했던거 기억해?"

연이은 대작전으로 최근 흡연자가 급증했다.

대작전 때문에 휴일을 받지 못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녀.

에식스보다 우월한 신장의 그녀.

그리고 메이드도 고양이도 아닌 그녀까지.

그녀들 외에도 메이드대와 기사단에는 유명한 꼴초들이 한가득했다.

아마도 그년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겠지.

지휘부 높으신 분들께서 기지 뒷편 한적한 공간에서 발견한 꽁초의 탑.

꽃과 풀이 비명을 지르듯 뒤틀려 죽은 지옥의 화단은 그 모습은 심히 경악스러웠다.

큰 충격을 받은 지휘부에서는 전면 금연령을 내렸다.

명목상 과도한 흡연이 지휘부 함선들의 체력 과 작전능력의 저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높으신 분들의 미관을 해쳐 괘씸하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대표적으로 담배를 태우던 삼인방은 지휘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고, 특히 체셔는 비서함으로써 집중 마크를 당하게 되었다.

"모항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사진. 체셔가 맞지? 그것도 어제자."

"냐앙...? 서방님. 체셔는 한달 전에 담배랑 라이터를 다 압수당했어냥."

"그래? 잠깐 나와볼래?"

후아아아아암 하는 귀여운 목소리가 갑자기 지휘관실에 울려퍼졌다.

"선생님. 선생님. 앵커리지 만질만질할래요오."

"잠깐만. 앵커리지. 아까 보던 그것 좀 보여줄래?"

"어떤거?"

고개를 왼쪽으로 푹 꺾으며 앵커리지는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녹아흐르려는 지휘관의 얼굴을 바라보며, 체셔의 마음은 돗대처럼 빠르게 타들어갔다.

순순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지휘관에게 건네준 앵커리지는 뒹굴뒹굴 굴러서 체셔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제가 전속 비서함이네요. 선.배.님?"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체셔를 응시했다.

소리 없이 째려보던 체셔는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멱살을 붙잡았다.

"체셔! 뭐하는거야?"

지휘관이 성큼 다가와 체셔를 후려쳤다.

"두 달간 금연에 성공하면 체셔에게 정식으로 고백하겠다고 한 약속. 그건 거짓이었어?"

"아니다냥. 서방니이임....... 체셔는 그런게 아니라..."

"변명하지마. 난 널 믿었다고. 겨우 담배 난 신경도 안 써. 그치만 윗분들 중에 유난떠는 분들이 계신단말야. 이젠 너랑 같이 있지도 못해."

"서방님......."

지휘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체셔. 이 사진이 이미 상층부로 보고되었어. 내가 손을 쓸 수가 없어. 긴말 할 것 없이. 3일 이내로 타부대로 전출 될 거야."

상황파악이 안 된다는 냥 방긋방긋 웃는 앵커리지, 재떨이 속 담뱃재처럼 하얗게 질린 체셔, 그리고 눈을 감고 한숨만 쉬는 지휘관.

체셔는 견딜 수 없는 현실속에서 도망쳤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천천히 닫히는 지휘관실 문 틈으로, 아이의 것이 아닌 때묻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앵커리지의 얼굴이었다.

결국 체셔는 사랑하던 지휘관에게서 떨어졌다.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앵커리지의 글은 한달간 개념글 1페이지에 고정시켜 두었다.

온라인 상에서 박제가 된 체셔는 오늘도 담배연기를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