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연재글 : https://arca.live/b/azurlane/31141690?mode=best&p=1


토리첼리의 찐따짓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한 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수성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알아보자



콘스탄티노플은 진짜 유래없는 최고의 방어 도시인데 그 이유를 알아보자, 단 한번도 정공법으로 함락된 적이 없는 도시다.

물론 서유럽애들이 통수로 한번, 오스만에서 한번씩 먹음

참고로 오스만이 먹은게 이 도시의 20번째 공방전이다.

암튼, 콘스탄티노플의 단단함은 20분 넘기고 센터 먹은 김정민의 테란보다 뚫기 어려웠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1. 성벽 구조


저런 성벽을 만들기 위해 갈려나갔을 공돌이들을 위해 joy를 먼저 표하도록 하자

이 미친 방어도시의 성벽은 보는바와 같이 3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심지어 해자까지 파놨다.

일반적인 공성전은 우선 공성병기를 앞세워 성을 오르던가, 혹은 성벽을 무너뜨려서 조져버리던가 둘 중 하나다. 근데 이 미친 성벽의 구조는 그 모든 것들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공성타워를 앞세우자니 해자가 있고 해자를 매꾸고 가자니 3중 성벽의 세례로 존나 힘들다. 훈족의 아틸라도 이 성벽을 보자마자 깨갱하고 도망갔다.


2. 반도 특성



이 미친 도시의 방어력은 성벽이 끝이 아니다. 심지어 반도임 ㅋㅋ

심지어 그림 오른쪽의 좁은 해안지대에는 쇠사슬 설치해놔서 배도 못들어가게 막음 ㅋㅋㅋㅋㅋ

심지어 보이나 해안가도 성벽을 쌓는 미친 짓을 해버림ㅋㅋㅋㅋㅋ



이쯤되면 도망간 아틸라도 인정해야함

근데, 그렇다고 오스만이 아예 생각없이 쪽수로 밀어붙인건 아니다.




당시 오스만의 지도자 메흐메트 2세, 그는 공성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새끼가 당시 준비한 오스만의 전력은 끌고온 병력만 15만이었으며, 당시 오스만이 가져온 무기는



거함 거포가 짱이지?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성벽이 사라져간 이유는 사실 이 대포의 존재가 가장 컸음

대포앞에서 성벽이 뭔 소용이겠어. 심지어 그 당시 비잔틴의 전력은 도시에 있는 사람 다 끌어모아서 7천명이었음.

심지어 해안도 동시에 공략하려고 200척이나 끌고옴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저 금각만은 사슬로 막혀 있었고

해안도 성벽으로 둘러쌓여서 해안 공략은 쉽지 않았음.

근데 오스만이 상당히 미친짓을 감행해버린 것임



배를 해안가로 끌고온게 아니라 산으로 끌고와서 쇠사슬을 넘음 ㅋㅋㅋㅋㅋㅋ 미친새끼

허긴 뭐 사단장도 아니고 원수가 까는데 까야지 뭐 ㅋㅋㅋㅋㅋ

이 때문에 비잔틴은 굳이 해안쪽에 분산하지 않을 병력을 해안쪽에 배치해야만 했음. 그러니 자연스럽게 육상 쪽으 느슨해지겠지?



응 안됨, 당시 오스만의 정예병인 예니체리를 다 끌고와도 안되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오스만에서 땅굴을 파니까 비잔틴에서도 역으로 땅굴을 파서 땅굴 파던 놈들을 다 몰살시켜버림

심지어 대포로 쏴재끼는데도 이새끼들 밤을 세가면서 성벽을 계속해서 보수함.



얼마나 치열했는지 감이오나?

근데 이 치열한 전투의 결말은 조금 허무했음, 오스만이 작정하고 들어온 최후 공세에서 결국 피곤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비잔틴군의 누군가가 시민들이 몰래 이용하던 문을 잠그지 않는 사고를 치고 말았고 이를 눈치챈 오스만이 집중공격을 해버려서 그곳을 통해 도시 내부로 진입하게 되고 결국 함락당함



이후에 메흐메트 2세가 로마황제를 칭하지만 서유럽은 좆까 시발아를 외치며 훈훈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