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유니온을 대표하는 지휘관이자 저명한 큐브 과학자인 알렉스 캐시디(Alex Cassidy).


그는 본디 모닝 글로리(한국)계 중앵인이었던 니우라 히데토(新浦  秀人)였다.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게 외면을 받고 끝내 이글 유니온으로 떠나서 새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능력만 있으면 인종은 개의치 않은 그곳에서 새 이름을 얻은 그는 날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함선소녀들이 알렉스에 대해 집착하고, 알렉스가 이를 어느 정도 조장하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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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도 어김없이 집무실 책상에서 서류들과 한창 씨름 중이던 알렉스는 자기 앞에서 시리우스가 여러 장의 카드가 가지런히 놓인 하나의 얇은 상자를 들고 노심초사하는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주인님. 오늘은 제발 함선소녀와 동침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 진영의 수장들에게 제가 한 소리를 듣거든요."


"주인님께서는 할 일이 많답니다, 시리우스. 오늘만 해도 "


알렉스는 시리우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알렉스의 옆에 서있는 비서함 겸 로열 메이드의 수장 벨파스트가 대신 대답할 뿐이었다.


"로얄 네이비의 적법한 여왕이신 퀸 엘리자베스 납시오!"


"흠? 여왕이 직접 오다니?"


지휘관실 밖에서 들리는 외침에 시리우스의 애처로운 부탁에도 좀처럼 미동도 없었던 알렉스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당연하지만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뜻하지 않은 방문으로 자신의 업무를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부마."


지휘관실의 문이 열리고 로열 네이비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로열 메이드대를 대동한 퀸 엘리자베스는 소녀 체형과는 걸맞지 않게 위풍당당했다. 그리고 알렉스에게 왕의 사위를 표현하는 단어인 부마로 그를 호명했다. 로열 네이비 만백성의 어버이인 퀸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신민인 벨파스트와 혼인한 알렉스가 당연히 자기 사위라는 기적의 논리를 내세워서 하는 소리였다.


"엘리자베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던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앉은 자세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물론 진수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퀸 엘리자베스가 아닌, 알렉스다.


"시리우스의 모습을 보니 오늘도 일 때문에 다른 함선소녀들과 동침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구나. 벌써 2주일 째야, 2주!"


"바쁜 걸 알면서도 왜 자꾸 헛수고를 하는 건지..."


"짐도 그렇고, 하인들도 니가 공사다망한 사람인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독수공방을 하게 만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의 업무는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 찍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잖아?"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우선 순위가 따로 있는 법이야. 그러니 이것에 대해서는 더는 언급하지 말자고."


로얄 네이비에서 가장 웃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퀸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여왕으로서 체통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누구라도 좋으니까 같이 하룻밤을 보내주도록 해. 꼭 우리 로얄 네이비 쪽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다들 그 정도로 달아오른 거야?"


알렉스가 냉소적인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그에 걸맞게 냉각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은 간만에 벨파스트와 함께 보내볼까? 준비는 됐겠지, 벨?"


"네... 주인님......"


갑작스럽게 자신과 동침을 할 거라는 알렉스의 말에 벨파스트의 두 뺨이 발그레졌다. 그래도 싫지 않은 눈치였는지 온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어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침실에 와인과 안주들을 미리 준비해놓겠습니다."


"좋아. 오랜만에 칼퇴라는 걸 해야 겠어. 그럼 이만."


자정에 퇴근하는 일이 잦은 알렉스치고는 왠일로 저녁 6시에 퇴근을 한다라? 물론 알렉스의 입장에서는 간만에 변덕을 좀 부렸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것이 어떻게 눈덩이가 되어 굴러가게 될 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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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언제 하게 될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