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핏화이어 몰살 작전

한편, 1941년 12월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새롭게 연합국이된 미국이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서 


항모 와스프를 대서양에 투입했고 이 항모는 곧 영국해군을 돕기위해 파견되었다. 


항모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해군으로선 천군만마와도 같은 지원을 받게 된 셈이었다. 영국은 와스프에 45기의 스핏화이어를 탑재시켜 몰타섬의 항공전력을 증원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전에도 스핏화이어 15기를 성공적으로 몰타로 날려보낸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공군은 이번에도 작전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의 계산대로 이 전투기들이 성공적으로 몰타에 도착한다면 몰타섬의 영국방어군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 항모 와스프의 갑판에서 이륙대기중인 스핏화이어 ]


그러나 이번에는 이 정보가 새나갔다. 독일공군은 첩보망을 통해 조만간 미항모에 의한 스핏화이어의 증원작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번에는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집중적인 항공정찰과 레이더 감시를 통해 증원되는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몰타에 도착하자마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어 완전히 싹쓸이 해 버린다는 '스핏화이어 몰살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942년 4월 20일 이런 상황을 모르는 영국공군은 미항모 와스프로부터 45기의 스핏화이어를 날려보냈다. 와스프는 독일공군기들의 위협을 고려하여 몰타에서 무려 600마일이나 떨어진 지점에서 스핏화이어를 이함시켰으므로 이 전투기들은 무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연료를 만재한채 간신히 날아올라 항속거리의 한계점인 몰타로 향했던 것이다. 이들이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무렵, 예정대로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날아오른 얼마안되는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칠리의 독일군 레이더수들은 이런 상황을 모두 탐지해내고 있었다. 긴급출격행에 대비하고 있던 독일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비상출격 싸이렌이 울림과 동시에 자신의 Bf 109F-4 전투기들에 뛰어올라 속속 몰타를 향해 날아갔으며, 이들의 뒤를 이어 Ju 88 폭격기들과 Ju 87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들이 계속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라 속속 몰타 상공으로 향했다.


스핏화이어들이 마중나온 허리케인기들의 인도로 몰타섬의 3개 비행장들로 분산해서 접근하는 순간 상공에서 Bf 109F 전투기들이 급습을 해왔으며 대대적인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은 장거리 비행으로 연료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데다가 무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대부분 폭탄으로 구멍이 뚫린 활주로에 강행 착륙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스핏화이어들이 하늘과 지상에서 Bf 109F 전투기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Bf 109와의 공중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기체들이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이번에는 Ju 88 폭격기들이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고 연이어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들이 날카로운 싸이렌 소리와 함께 스핏화이어들을 덥쳤다. (이날 독일공군은 폭격기들만해도 325회나 되는 출격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폭탄에 맞아 불길에 휩쌓인 스핏화이어의 잔해 ]


몰타의 비행장들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으며 스핏화이어의 절반 이상이 지상에 착륙해 보지도 못하고 격파당했으며 

생존기들도 여기저기 총탄 구멍이 뚫어진 상태였다. 다음 날에도 독일공군은 잔존기들을 격멸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공습을 시작했다. 이날의 공격도 매우 효과적이어서 거의 모든 스핏화이어가 지상에서 완파되거나 대파되어 모든 기체가 손실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독일공군의 스핏화이어 싹쓸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셈이 되었고, 몰타섬의 영국군은 큰 충격을 받아 그야말로 암울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몰타섬의 주민과 병사들에게 지옥과도 같았던 피의 4월기간동안 영국공군의 손실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영국측의 기록에 의하면 이 기간동안 그들은 200여기의 추축국 항공기를 격추시켰다고 했지만 그들의 손실은 스핏화이어 45기, 허리케인 18기가 손실되었으며 그외 87기의 각종 항공기들이 크고 작은 손실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게다가 몰타에 배치되었던 대공화기들도 대부분 손상을 입거나 탄약이 떨어져 거의 작동을 하지 못했다. 사실 전과는 부풀리고 손실은 최소한만 기록하는 관례로 볼 때 영국공군측의 이런 기록은 1942년의 잔인한 4월동안 몰타섬의 영국공군이 거의 괴멸적인 손실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보급상황이 너무 심각하게 악화되다보니 몰타섬의 주민들과 병사들은 독일공군의 공습보다도 굶주림을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몰타는 섬 자체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져 자체적으로 경작할 만한 땅이 거의 없었으므로 25000명의 주민들과 30000명의 병력들을 먹여살릴 만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모든 것을 해상보급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는 수송선단은 대부분 독일공군기들의 공습으로 몰타에 접근해보지도 못하고 격침되거나 대파되었으며, 포화를 뚫고 항구에 들어온 몇 안되는 선박들도 물자를 미쳐 내리기도전에 폭탄에 맞아 항내에 주저앉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 식사를 배급받으며 미소짓는 병사 - 공습이 한창일 때는 이 정도의 식사라도 과분한 편이었다. ]


이때의 식량사정이 너무나 악화되어 영국방어군 사령관은 앞으로 2주 이내에 보급이 어느정도라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제는 항복을 심가하게 고려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상부에 보고했을 정도였다. 


물론 공습결과를 항공정찰하여 분석한 시칠리의 독일공군측도 이제 몰타의 방어력은 완전히 무력화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린후 만족해하고 있었다.

지중해의 작은섬 몰타에는 모든 희망이 사리지는 듯 했다. 이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적뿐이었다.


* 절망속의 반격, 기적이 되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영국사령부에서는 몰타의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졌다는 보고를 접하고 몰타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심각한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계속 항공기들과 보급선단을 몰타로 보내느냐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다. 


물론 결론은 쉽게 내려졌으니, 절대로 몰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처칠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몰타로 대대적인 항공전력의 증원과 물자보급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몰타섬의 주민들에게 대영제국은 몰타를 절대로 포기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창 폭격이 최고조에 달하던 4월 15일에 죠지 국왕이 친히 몰타섬의 전 주민과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몰타섬 전체에 성조지 십자훈장을 수여하고 친필로 작성한 감사장을 전달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땅에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이제 몰타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바닥까지 떨어진 몰타의 항공전력을 어느정도라도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또다시 대대적인 스핏화이어 투입작전을 다시 결행하기로 했다. 


영국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미항모 와스프와 영국항모 HMS 이글호를 동원하여 이번에는 총 64기에 달하는 스핏화이어를 몰타로 보내기로 했다. 이전의 철저한 실패를 교훈삼아 스핏화이어들을 완전무장한채로 이함시키고 이들이 가능한 일제히 몰타에 도착해야 하며, 이들이 도착하는 즉시 연료보급을 다시 받고 이륙하여 내습해오는 독일공군기들에게 맞서 싸워 어떻게든지 전력을 보존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시칠리에서 몰타까지 독일공군기들이 날아오는데는 약 15분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어느정도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따라 몰타의 방어부대원들도 스핏화이어가 착륙하자마자 즉시 다시 날려보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한채 이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 스핏화이어 전투기를 수용할 쉘터를 만들고 있는 몰타의 영국병사들과 주민들 ]


이 대대적인 스핏화이어 투입작전은 5월 9일에 결행되었다. 


항모 와스프와 이글호를 출발한 64기의 스핏화이어들은 몰타에 접근하자 레이더를 피하기위해 저공으로 비행하여 오전 10시 30분에 타칼리와 루카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정비원들이 즉시 연료를 다시 채워넣자 엔진출력을 올려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이날 독일공군은 이런 대규모 투입작전을 간파하지 못하고 뒤늦게 6차례의 공습을 감행했지만 이미 상공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핏화이어들과 교전에 말려들어 이렇다할 전과를 올리지 못한채 퇴각했다. 

이것은 영국에게는 기대이상의 성공이었다. 64기의 스핏화이어들은 교전을 마친후 대부분 무사히 활주로에 안착했으며, 몰타에는 희망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항공전력의 증원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지면서 숨통이 트이자 이 작전의 성공을 기다리며 몰타 근해의 안전거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송선단에게 즉시 밤을 새워서라도 항해를 하여 발레타항으로 입항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따라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식량과 탄약을 싣고온 영국의 수송선단이 몰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지옥 구덩이속에서 목말라하던 몰타는 다시 생명수를 들이마실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륙준비중인 스핏화이어 - 궁지에 몰린 몰타에 희망을 가져온 존재였다. ]


방심하다가 허를 찔린 독일공군은 다음 날인 5월 10일 오전부터 수송선단을 격멸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오전 10시 30분 20기의 슈투카들이 발레타항의 상공에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10기의 Ju 88 폭격기들이 Bf 109F 전투기들의 호위속에서 내습해왔다. 그러나 이날 독일 조종사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공포스러운 것이었으니, 전에없던 규모의 대규모 영국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날의 첫 전투에서 총 37기의 스핏화이어들과 13기의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습해오는 침략자들을 덮쳤다. 이날만큼은 방어군이 침략군을 수적으로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기체들은 Bf 109F-4와 대등한 성능을 가진 스핏화이어 Mk.V였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서도 독일공군은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지중해의 하늘을 온통 어지럽게 장식하며 양측의 항공기들이 뒤섞여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고 연속으로 발사되는 기관총의 날카로운 사격음이 쉴새없이 울려퍼지는가 하면 여기저기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항공기들이 속출했다.


[ 5월 10일의 격전을 담은 항공아트 - 몰타의 영국공군에게는 최고의 날이었다. ]

 

이날의 첫 교전에서 독일공군은 4기의 슈투카와 4기의 Ju 88, 그리고 3기의 Bf 109F를 잃고 퇴각했다. 이후에도 독일공군기과 이탈리아 공군기들이 계속 몰타섬을 날아왔기 때문에 하루종일 몰타섬의 하늘에는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으며 독일군과 이탈리아 공군의 손실이 상당했다. 더구나 다시 시칠리로 귀환한 전투기와 폭격기 중에서도 전투손상이 심각하여 전열에서 이탈해야하는 기체들이 상당수 있었다. 영국공군은 이날 총 65기의 추축국 항공기를 격추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는 해도 이날의 전황은 독일공군으로서는 큰 충격이었으며 몰타섬의 방어군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벼랑끝까지 몰렸다가 다시 살아나게된 몰타섬에는 이제 완전히 희망의 기운이 솟아 올랐으며 전투에서 


귀환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환호하는 정비병들과 얼싸않고 기쁨을 나누었다. 


새해들어 처음으로 그들은 승리의 단맛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독수리 마침내 물러가다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한 독일공군은 크게 당황했다. 


그동안 독일공군이 무자비하게 폭탄을 퍼부었지만 몰타는 항복하지 않았으며 벼랑끝까지 몰린 시점에서도 오히려 더 거세게 저항해왔다. 더구나 어느덧 지중해의 독일공군에게 주어졌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봄이 지나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부전선에서 발이 묶였던 독일군이 다시 소련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므로 지중해지역으로 돌려졌던 항공전력이 또다시 동부전선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무기를 재장전중인 정비사들 - 그들의 노고도 대단한 것이었다. ]


이런 조종사들과 많은 지상요원들의 헌신적인 노고는 영국측에게는 희망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1942년 5월 한달동안 몰타의 영국공군은 공중전에서 스핏화이어 23기와 허리케인 2기를 상실했지만 무려 122기의 추축군 항공기들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물론 독일측은 이제 몰타를 포기할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지난 공세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총 250여기의 항공기를 상실했으며 파손정도가 심해 전열에서 이탈한 기체도 500여기에 달했다. 이런 손실을 입으면서도 그들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고 점점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독일 공군은 이제 수건을 던져야 할 시점에 이르른 것이다.

  

더구나 5월말부터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롬멜의 반격작전이 다시 시작되고 동부전선에서도 곧 공세가 시작될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시칠리섬의 독일공군은 북아프리카와 동부전선으로 다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투기 부대의 상황을 보면 JG 3의 2연대와 JG 53의 1연대는 동부전선으로 차출되었으며 JG 53의 3연대는 북아프리카로 이동하여 롬멜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투기 부대로는 JG 53의 2연대만이 시칠리에 남게 되었다. 

이 무렵 몰타에는 영국공군의 증강계획에 따라 계속 스핏화이어들이 파견되고 있었기 때문에 몰타섬을 둘러싼 양측의 항공전력은 어느샌가 역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 몰타섬을 둘러싼 치열한 항공전에서 총 26 1/3기의 추축군기를 격추시켜 탑에이스가 된 죠지 뷰링 - 그의 애기에 격추마크를 기입하고 있다. ]


1942년 7월에는 영국항공전에서 효과적인 요격작전을 수행하여 큰 전공을 세웠던 키스 파크 장군이 몰타의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요격작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로 했으며 가능한 적기들이 몰타의 상공에 이르기 전에 마중나가서 격퇴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독일공군이 몰타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몰타의 하늘에서는 공중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전히 몰타를 향한 지중해 항로는 독일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의 위협하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송선단이 추축국 항공기들의 공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고 있었다. 따라서 1942년 여름에도 몰타의 주민들은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계속 고통을 받았다.


독일공군은 비록 몰타섬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지만 영국의 수송라인을 어떻게 든지 봉쇄하려고 했다. 따라서 어뢰무장이 가능한 He 111 폭격기들과 Ju 88 폭격기들이 새롭게 시칠리섬에 도착한후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이탈리아 공군기들도 어뢰로 무장하고 몰타로 향하는 영국 선단을 공격했다. 물론 영국공군은 이들을 어떻게든지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양측의 공군기들이 연일 치열한 공중전을 전개했다.


[ 몰타섬으로 향하는 수송선단을 엄호중인 스핏화이어 - 중앙의 유조선이 오하이오이다. ]

 

이중에서도 1942년 8월 10일부터 15일까지 이른바 페데스탈 (pedestal) 수송선단을 둘러싼 양측의 격전이 매우 치열했다. 몰타로 향하는 대규모 수송선단들을 공격하려는 독일공군기들과 이들을 엄호하려는 영국 공군기들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 싸웠고 전투의 양상이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으므로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영국측의 판정승이었다. 이날 많은 수송선들이 공습을 받아 침몰하거나 대열에서 이탈했지만, 대형 유조선 오하이호와 몇 척의 수송선들이 치열한 포화속에서 발레타항에 입항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특히 오하이오가 싣고온 항공연료가 몰타 방어군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오하이오는 12월까지 사용이 가능한 막대한 양의 연료를 공급했던 것이다. 

이것이 매우 결정적으로 몰타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지중해 지역에서 독일공군의 위세가 점점 떨어지게 되면서 이제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난 몰타섬의 역할은 방어에서 점점 공격적인 것이 되었다.

[ 발레타항에 입항한 오하이오 - 거의 침몰직전의 상태로 도착했다. ]


시칠리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추축국의 모든 항로가 몰타를 근거지로 하는 항공기들과 잠수함등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면서 독일 수송선들의 피해가 점점 격심해 지게 되었고, 1942년 말에는 추축국의 수송선들이 감히 지중해를 오가는 것을 엄두조차 낼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몰타의 항공기들이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배후까지 날아들어가 공습을 가하고 돌아오는 일도 생겼다. 이러다보니 북아프리카의 롬멜은 점점 더 심각한 보급난에 처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물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몽고메리의 영국군에게 대패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로선 몰타를 제대로 점령하지 못한 독일공군을 원망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지중해-북아프리카 지역의 전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 몰타는 몰타섬의 전 주민들과 영국공군, 해군 병사들의 헌신적인 노고로 지켜질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강력한 독일공군에게 맞서 몰타의 하늘에서 산화한 174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이야말로 몰타를 지켜낸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역사속에 이 작은 섬은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선 자랑스런 승리자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출처> https://airwarfare.cafe24.com/frame2.htm 북아프리카 항공전 3부


작성 하다 보니 장문으로 조지게 됬는데 이왕 알아보는거 자세히 알아보는게 좋겠다 싶어서 원인 부터 결과 까지 싹 정리해보았다.


아무 관심도 없는 R 등급 항모지만 이런 세세한 역사적 디테일이 모여서 갓겜이 되는거 아닐까?


다른 역사적 고증 스킬도 많이 있으니 또 정리해서 찾아 뵙고싶다.


다들 좋은 주말 보내고 긴 글 끝까지 정독해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