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지휘관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서글서글한 눈웃음, 그리고 안정감을 주는 부드러운 말투까지,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기 쉬운 방법을 모조리 갖춘 대화 방식이었다.

 

거기에 그녀가 대단한 수준의 미인이라면 더더욱.

 

그녀는 빼어난 외모와 더불어 육감적인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장담컨대, 그 어떤 남자라도 길가에서 그녀를 마주한다면 넋을 잃으리라.

 

칭찬은 이렇게 열심히 했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탁자 아래서 떨리는 손은 곧 긴장의 표시였고, 등을 축축이 적신 땀은 공포의 무게였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

 

그녀는 이 모항에서 손꼽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였으니까.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그녀를 마주한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그녀답게 오늘도 웃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해보려 해도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 이제 와 무의미한 과거에 대한 책망보다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묘안을 찾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최근 저를 피해 다니시는 이유가 뭘까요? 조심스레 여쭈어보고 싶은데…….”

 

정확히는 굴리려 했다.

 

그녀가 입을 떼고, 사고가 멈춘다. 날아온 건 단지 목소리뿐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화살처럼 느껴져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무어라 답해야 할까. 하지만 답을 낸다고 한들 바뀌는 게…… 아니, 애초에 답이 있는 문제일까?

 

이 자리는 덫이 아닌 심판대다. 나는 지금 덫에서 빠져나갈 계략을 꾸미는 게 아니라 서슬 퍼런 칼날이 목을 겨누는 심판대에서 최후의 변론을 해야 하는 처치라는 거다.

 

…….”

 

한참이 지났지만, 대답은 결국 침묵이었다. 웅변은 은, 침묵은 금이라는 옛말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의 침묵은 길가의 돌멩이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질 뿐이라, 나는 조용히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래요. 대답하기 싫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드르륵, 그녀가 의자를 밀고, 몸을 일으킨다.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깃들어 있었지만, 그 미소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러고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녀가 마침내 내 지척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손길이 나를 훑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뺨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또 부드럽게, 내 뺨을 스쳐 지나가는 손길은 연인 사이의 그것을 연상시켰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그다음은 가슴정확히 심장 바로 위로 올라간 그녀의 손길에 눈치 없는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그녀의 미소가 한층 더 깊어진다.

 

그렇게 이리저리 마구 떠돌아다니던 손의 종착지는다름 아닌 목이었다.

 

장갑을 벗은 그녀의 손길은 참으로 가녀리기 짝이 없었다. 그 아래 깃든 힘이 내 목을 가볍게 꺾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지.

 

……너무 가깝지 않아?”

 

고뇌 끝에 토해낸 첫마디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도리어 마음에 든 모양일까그녀는 손을 떼고 조심스레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작았다때문에 평소에는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였지만지금은 아니었다.

 

제가싫으신 걸까요?”

 

……그럴 리가.”

 

살기 위해 반사적으로 내놓은 대답그녀는 자기 뺨에 손을 올리고나는 허벅지 위에 올린 손을 부르르 떤다.

 

그렇다면 지휘관님은 제가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요?”

 

…….”

 

어머나대답이 없으시네요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요?”

 

그러고는 뭉클그녀가 나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가슴팍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느낌이 나를 간지럽혔지만전혀 기분 좋지 않았다.

 

아니면…… 설마 제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전혀 부드럽지 않았으니까.

 

……좋다싫다이분법으로 나타내기에는 참 애매한 관계라고 생각하는데적어도 나는.”

 

가끔은 단순한 것도 필요한 법이니까요확답을 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선택지를 주는 듯했지만바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이해했을 거다물론그 답을 내놓은 뒤의 후폭풍도.

 

……좋아.”

 

좀 더무엇이 좋은지 명확히 말씀해주시지 않으실래요?”

 

……나는 네가 좋아.”

 

누가요?”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했다허나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에게 있어 어린아이보다 다루기 쉬운 존재가 맞았기에,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 답을 내뱉었다.

 

…………나는 론이 좋아.”

 

……아하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호흡조차 잊어버릴 수준의 그 싸늘함에나는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지만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아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갈색 동공은 그 어떤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너무나 눈부셔 나로서는 눈을 돌리고 싶었으나당연히 허락될 리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강 예상한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흔들리는 마음은 나의 공포요불안이었지만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아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나는 그제야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시잖아요제 취미는 방생이라는 사실을.”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밖으로 사라졌다나는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친 듯이 땀을 흘렸고한참이나 이어졌다.

 

……하아……하아.”

 

벌벌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벽을 붙잡고 꼴사납게 문밖으로 나간다너무나 긴장한 탓에 주변 소음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아이러니하게도 저 멀리서 작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했다.

 

다음에 또 봬요저의 지휘관님.”

 




아까 얀데레 떡밥 있길래 끄적임 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