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사랑해.”
“……네?”
어지간한 일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벨파스트의 얼굴에 균열이 생기는 진귀한 순간, 손에 들린 찻잔을 놓친 것은 덤이었다.
지휘관 역시 신기한 모양이었다. 열심히 읽던 책 대신 벨파스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오, 표정 바뀌었다. 신기하네.”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던지신 건지 여쭤봐도 좋겠습니까.”
허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은 벨파스트는 표정을 다잡아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단단한 목소리였다.
“지금 이 책에 나왔어,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더라, 적극 활용하려 했지.”
큭큭, 지휘관이 짧은 웃음을 덧붙이며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덕분에 벨파스트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 것을 보지 못한 건 덤이고.
“그런 헛짓거리 하실 시간이 있으시다면, 밀린 업무나 하시죠.”
“오히려 말투가 더 딱딱해졌네. 역시 책은 믿을 게 못 되나 봐.”
“…….”
벨파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늘 하던 대로 지휘관을 위한 홍차를 내리는 데 집중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조금 불안정했다.
“여기, 홍차입니다.”
“응.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침묵,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장막이 지휘관실을 가득 메웠다. 지휘관은 웃으며 서류를 꺼냈고, 벨파스트는 무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말했잖아. 그냥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된다고.”
“하지만 제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또 내일로 미룰 게 뻔하시지 않습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지휘관의 짧은 투덜거림은 가볍게 무시하고, 벨파스트는 그의 곁으로 이동해 능숙히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거칠었다.
“집중하는 모습, 멋져.”
“…….”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째깍째깍, 오가는 말은 없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장난기 가득하던 지휘관도 어느새 집중하며 열심히 일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벨파스트는 더더욱 열심히 일했다.
“이야, 끝났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마침내 해가 사라지기 직전,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은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었고, 벨파스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고마워. 덕분에 일찍 끝냈네.”
“다 주인님이 집중해서 그런 것이지, 제가 잘한 게 아닙니다.”
“겸손하기까지 하네.”
벨파스트는 또 한 번 침묵으로 대응했다. 어차피 늦었으니,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오기도 했고.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또각또각, 조심스레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인사를 마친 벨파스트가 문고리를 돌렸다. 평소보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아 잠깐만, 벨파스트.”
그녀가 문을 나서기 직전, 지휘관이 벨파스트를 불러세웠다.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려있었고, 손에는 아까 읽던 책이 들려있었다.
“이 책, 그냥 시집이야. 별 내용 없어.”
“그게 무슨 소리인지.”
벨파스트의 얼굴에 의문이 피었다. 물론 여전히 무표정인지라 눈치채기 어려웠지만, 용케도 알아챈 지휘관은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 줬다.
“아까 그 말.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라고.”
“……네?”
그제서야 이해한 그녀, 아까에 이어서 또 한 번 얼굴에 균열이 일어났다.
무어라 따지려 했지만, 정신을 차리니 지휘관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이 넓은 방 안에는 그녀뿐이 존재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