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2일 차  3일 차 


 




…….”

 

침묵의 장막이 펼쳐진 고요한 공간, 그 아래 움직이는 존재는 오직 둘 뿐이었다.

 

지휘관실은 진중함만이 가득했다. 벨파스트도, 지휘관도.

 

갑자기 쏟아진 업무와 상부의 명령, 이 둘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룬 결과였다. 지휘관의 개인적인 일도 겹친 건 덤.

 

사락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 후우, 깊은 한숨 소리, 끼리릭, 의자의 비명 소리.

 

그렇게 집중하고 또 집중하니, 금세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급했던 것이었으니까.

 

-~

 

허나 지휘관이 마지막으로 서류를 검토하기 직전, 그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황급히 발신인을 확인했지만, 수신인 불명,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으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 지휘관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벨파스트, 서류 오탈자 정리 부탁해.”

 

진중한 목소리,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보여주던 장난기는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잘 보면 평소 안 쓰던 안경도 쓰고 있었다.

 

. 부디 맡겨주시길.”

 

벨파스트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지휘관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 여보세요?’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대로 사라졌다.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벨파스트는 다시 고개를 숙여 서류에 집중했다. 언뜻 보기엔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할 때는 하는 사람답게 딱히 문제는 없었다.

 

후우…….”

 

검토에 재검토까지 마친 벨파스트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제 일은 다 끝났으니, 전화를 마치고 온 지휘관에게 홍차를 대접할 차례였다.

 

그렇게 섬세히, 또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열심히 차를 우려내고 있으니, 또 한 번 문이 열리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 오셨습니까 주인…….”

 

늘 그랬듯, 돌아온 지휘관을 맞이하려던 벨파스트였지만, 그녀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던 까닭이다.

 

그뿐이랴, 어떤 상황에도 능글맞은 웃음으로 넘겨버리던 그의 얼굴에는 미세하지만 핏줄도 살짝 돋아있었다.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주인님?”

 

때문에 벨파스트는 당황했다. 이런 일은 정말 흔치 않았으니까.

 

뭐지, 이게 무슨 일이지, 주인님께서 저런 표정을 지은 건 처음 아닌가.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처음 보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벨파스트였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의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다.

 

아니! 별일 없어.”

 

너무나 화창한 웃음도리어 이질감이 따라왔으나벨파스트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구석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 같아 약간 가슴이 시리긴 했다.

 

그래서서류에 별일 없지?”

 

전부 검사 마쳤습니다이상 없습니다.”

 

이야끝났다!”

 

지휘관은 망설임 없이 소파에 몸을 던졌다흐이이하는 기괴한 신음과 함께.

 

……귀찮아지휘관 그만할까.”


여기 홍차입니다.”

 

고마워.”

 

가볍게 한 모금지휘관의 입가에 호선이 깃들었다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벨파스트혹시 내일 시간 있어?”

 

마침 그날은 비번이긴 합니다.”

 

사실 알고 물어본 거야.”

 

큭큭지휘관이 짧은 웃음을 덧붙이며 가볍게 찻잔을 흔들었다그 안에서 순간 격렬한 파문이 일어났지만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이어지나 했으나다시 한 번 홍차를 넘긴 지휘관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웃고 있었다.

 

같이 나갈까?”

 

움찔벨파스트의 몸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당황해 머뭇거리는 사이지휘관은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파란색의 신비한 눈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때싫어?”


…….”

 

황급히 고개를 돌린 벨파스트 역시 그를 바라본다. 속내는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하나잠시 마음속 여유를 되찾기 위해 짧게 명상했지만, 무색하게도대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아뇨준비하겠습니다.”

 

사랑해벨파스트.”

 

지휘관이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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