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정적, 벨파스트의 몸이 멈췄다.
그에게 홍차를 대접하려던 손도, 옆에 있기만 하면 슬며시 올라가던 입꼬리도, 맑고 청아한 푸른 눈도, 전부 멈춰버렸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
허나 사내는, 사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멈춰버린 그녀에게 한 여인이 담겨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여전히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벨파스트 너라면 말해도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
“좀 부끄러웠거든, 알잖아. 내가 좀 낯가림이 심한 거.”
“……언제.”
“그래서 꼭꼭 숨겨둔 비밀이 좀 있었거든, ”
“언제부터……말씀이십니까?”
“아, 언제부터냐고?”
금붕어 마냥 입술만 뻐끔뻐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녀가 일말의 정신을 붙잡아 겨우겨우 토해낸 목소리, 겨우 닿았다.
어쩌면 조금의 희망을, 그녀의 소망을 담은 한 마디였다. 벨파스트가 바란 대답은 ‘농담이야.’ 혹은 ‘장난이야.’ 이 둘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아주 짧은 시간, 아니, 시간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찰나, 그녀의 온 신경이 집중된다. 벨파스트의 동공이 크게 뜨이고,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쿵, 쿵, 쿵.
“아주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라고 생각하면 좋아.”
그녀의 심장을 또 한번 꿰뚫어버렸다.
용기를 내 꺼낸 말에는 그 이상에 대가가 따라왔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희망을 담아 뱉어낸 목소리는 화살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마침내 푸른 동공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벨파스트, 벨파스트?”
“……아, 네. 듣고 있습니다.”
“표정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싱긋, 마침내 웃음을 되찾은 그녀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고, 그 거짓된 가면에 지휘관은 안심한다. 마찬가지로 웃음을 그린다.
“나 내일 휴가잖아. 그래서 만나기로 했거든, 특별히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굳이 저에게만 알려주시는 이유는?”
“당연히, 네가 제일 믿음직하니까.”
쐐기박기.
“……감사합니다.”
그리고 탁, 그가 몸을 일으킨다. 굳은 허리를 피며 천장을 바라보고, 벨파스트는 그를 바라본다.
이는 곧, 현재 벨파스트가 어떤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지, 지휘관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자러 가야지, ”
그리 말하며, 지휘관은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업무용 지휘관실이 아닌 그의 개인 방으로 돌아가기 위함, 벨파스트가 슬쩍 그를 불러 세웠다.
“주인님. 그럼 오랜 연인을 보러 가시는데, 치장은 하셔야 되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긴 한데, 알잖아. 내가 그런 쪽에는 영 감각이 없는 거.”
지휘관은 멋쩍게 말했다. 걱정과 해탈, 두 가지 감정이 정확히 이분할 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벨파스트는 오롯이 한 가지 감정으로 통일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죠 주인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정말? 나야 고맙지, 그럼 내일 아침에 도와줄 수 있어?”
“당연하죠 주인님. 내일 아침 제가 직접, 주인님의 방으로 찾아갈테니 기다려만 주시죠.”
“역시 벨파스트야. 고마워.”
대화는 이걸로 끝, 그는 문 밖으로 나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 있을 연인과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지휘관이 웃었다.
“아뇨 주인님. 제가 더 고맙죠.”
벨파스트도 웃었다.
“앞으로도, 쭉.”
밑에 있는 글보고 호다닥 써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