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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지휘관 동지.”
“응? 왜?”
이른 아침, 크론슈타트가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살짝 흔들리는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 비슷한 감정이 가미되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지휘관의 목소리는 덤덤하다 못해 명랑하단 느낌이 들 정도였다.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던 탓에, 크론슈타트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내가 중요한 물건은 함부로 두지 말라고 했잖아.”
그녀가 지칭한 건 다름 아닌 그의 여러 귀중품, 조금 수식어를 붙이자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정도가 어울렸다.
이는 지휘관의 나쁜 버릇이었다. 중요한 물건을 아무 데나 내놓는다는 것, 당장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놓아진 지갑이 그러했다.
이따금 몇몇이 주의를 주긴 했지만, 천성이 그런 건지, 혹은 그냥 귀찮아서인지, 지휘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어차피 누가 가져가지도 않는데 괜찮잖아?”
“그러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정말…….”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한 번만 봐줘.”
멋쩍은 미소, 상황을 어영부영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 봐도 좋았다. 이미 손으로는 은근슬쩍 물건을 책상 구석에 밀어 넣고 있었으니까.
정말, 업무나 지휘는 더없이 깔끔한데, 왜 이런 면에서는 영 시원찮은 걸까. 크론슈타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더 지적해봤자 괜한 감정 소모만 있을 것이라 판단한 그녀는 빠르게 주의를 돌렸고, 이내 비서함의 업무를 시작했다.
어지럽게 놓아진 책상과 달리, 그의 업무 능력은 참으로 꼼꼼하고 성실한 탓에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크론슈타트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지휘관 동지, 실례할게.”
이튿날,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지휘관실에 들어온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출격 전 지휘관을 찾기 위함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에게 사적인 이유 반, 공적인 이유 반으로 얼굴을 비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사적인 이유가 더 압도적이었다.
“지휘……하아…….”
하지만 지휘관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녀를 반겨주는 것은 지휘관이 아닌 어지럽게 널브러진 지휘관의 물건, 크론슈타트의 고운 눈썹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이전과 똑같은 상황에 그녀는 조용히 이마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감정 표현을 대신했다. 대체 사람 말을 뭐로 듣는 걸까. 이쯤 되니 약간 서운할 지경이었다.
“……아.”
그 때 번쩍,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기회에 지휘관의 나쁜 버릇을 고쳐줄 수 있는, 하나의 계획이 생각난 것이다.
계획은 참으로 간단했다. 지휘관의 물건을 숨긴 뒤, 그가 당황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숨겨놓은 물건을 돌려주는 것.
단순하지만, 효과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지휘관은 물건 관리의 소중함을 알 게 될 테고, 곧 깔끔한 정리정돈으로 이어질 게 확실하다.
사고를 마친 크론슈타트는 지휘관의 물건을 챙겨 자신의 방에 옮겼다. 당연하지만 물욕이나 다른 생각이 있어서가 아닌, 그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흐음…….”
물론 약간의 고민이 일긴 했다. 너무 심한 짓이 아닌가. 과하게 놀라면 어떡하지, 따위의 생각이.
하지만 열심히 고개를 내저으며 억지로라도 지워버렸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그의 나쁜 버릇이 고쳐지기를 바라며, 그녀는 해역으로 나섰다.
***
“크론슈타트? 어디 가?”
“지휘관실,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해역에서 돌아온 크론슈타트는 차파예프의 의문에 적당히 응해준 후 가장 먼저 지휘관실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를 보기 위함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눈치챘겠지, 놀라고 있으려나, 빨리 가서 확인하고 적당히 반성하는 것 같으면 돌려줘야겠다.
생각하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이번 기회에 지휘관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그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들어오지 마세요! 여기는 사건 현장입니다!”
“……아침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없어졌더라고, 찾을 수 있으려나.”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주인님, 이런 몹쓸 짓을 벌인 작자에게는, 꼭 응당한 처벌을 내리도록 하죠.”
“많이 속상한데…….”
“……?”
허나 그녀를 반기는 것은 허둥지둥 움직이는 지휘관이 아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만쥬, 지휘관실 출입을 통제하는 벨파스트, 그리고 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하는 지휘관.
또 당황의 목소리, 그리고 이 사태를 보며 멍하니 서 있는 그녀,
“아, 크론슈타트.”
와중, 그녀의 존재를 인식한 지휘관이 표정을 풀고 크론슈타트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물론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큰일 났어, 잠시 지휘관실을 비운 사이에 물건이 좀 없어졌네.”
“어……?”
“심각한 일이야, 우선 만쥬들을 불러서 지휘관실 출입을 통제했어, 지금부터 차례로 수사하려고, 좁으니까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아……누가 이런 짓을 한 건지.’ 지휘관이 착잡한 목소리와 함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중요한 상황에나 보여주는 진지한 모습,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암시했다.
“혹시 뭐 아는 거 없어? 첩보원의 감이라던지.”
그리고 슬쩍,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어색한 미소를 덧그렸다.
“아……그,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럼 어쩔 수 없지, 힘들게 찾아온 사람한테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은 좀 바쁘니까 이따 만나자, 아, 그리고 오늘도 수고했어.”
툭툭, 그녀의 고생을 치하하듯, 가볍게 어깨를 두드린 지휘관은 그대로 사라졌다. 크론슈타트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 남은 건 만쥬, 혹시나 오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벨파스트, 그리고 가만히 지휘관실을 바라보는 크론슈타트.
“……으에?”
정확히는 사건의 범인.
어디서 본 거 같으면 마음의 소리 맞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