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스파이트! 어서! 빨리!”

 

다급하다 못해 긴박한 목소리, 방에서 가만히 책을 읽던 워스파이트는 당황할 새도 없이 지휘관의 손에 이끌렸다. 쓰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떨어트린 건 덤이다.

 

, , 무슨 일인가?”

 

빨리! 급해!”

 

이상할 정도로 다급한 모습이렇게나 급한 지휘관은 처음 보는 입장의 그녀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품고 말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이 긴장감은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다.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한 표정의 그가 이끄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워스파이트는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혹시나 모항에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세이렌이 무언가 사건을 쳤다거나, 어쩌면 폐하에게 큰 위기가……아니,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워스파이트는 고개를 내저으며 의지를 다졌다. 긴장감을 각오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문 앞에 도착한다. 지휘관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워스파이트는 눈앞에 벌어진 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난잡하다. 이어서는 초록이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물건에 워스파이트는 시선을 옮겨 지휘관의 동공을 바라보았다.

 

일절의 흔들림 없는, 오로지 확신만이 가득한 얼굴, 워스파이트는 다시금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똑같았다.

 

……?”

 

배추였다.

 

워스파이트.”

 

……저게 뭐지.”

 

지휘관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워스파이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역으로 되물었다. 단순히 언짢아서 그런 거지, 절대 눈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다.

 

보면 알잖아.”

 

그러니까! 갑자기 배추 무더기로 날 부른 이유를 묻고 있는 거다!”


……뭐라고?”


버럭, 그녀가 소리치고. 지휘관의 얼굴에 경악이 깃든다. 지휘관은 망설임 없이 얼굴을 들이밀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너무나도 당당한 행동에 되려 워스파이트가 움츠러들었다.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게 약간이지만 부끄러웠던 까닭도 있다.

 

……잠깐! , 일단 떨어져! 난 지금 저 배추에 대한 설명을…….”

 

너 이 자식 지금 배추라고…….”

 

허나 그 말이 역린을 찌른 걸까. 지휘관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워스파이트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것도 바로 이때였다.

 

스스럼없는 스킨십, 그녀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물론 지휘관은 그렇지 못했다. 광기와 같았다.

 

제기랄, 또 배추야…….”

 

알 수 없는 말은 덤.

 

지휘관?”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걸 깨달은 워스파이트가 그를 불러보지만닿지 못했다이미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지휘관은 워스파이트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즉시 들어서.”

 

끼야앗지금 뭐 하는 거야!”

 

답지 않게 여린 목소리워스파이트가 소리쳤다얼굴은 이미 토마토가 되어있었다부끄러움이라는 말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저항하려 했으나어째서인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워스파이트는 그대로 지휘관에게 들린 꼴이 되어 배추 틈새로 옮겨졌다.

 

잠깐만이게 무슨……!”

 

썩 부끄러운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계속해서 붉어지고목소리는 그에 맞춰 가녀려진다치욕과 부끄러움이 대부분이었다.

 

아아……완벽한 개추야숭배해야 해.”

 

천천히또 조심스레배추 무더기 한 가운데에 워스파이트를 내려놓은 지휘관이 그대로 머리를 조아렸다경건하기 짝이 없었다.

 

부끄럽다부끄럽기 짝이 없다부끄러워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다.

 

달아오른 얼굴로 배추 무더기에 앉아있는 워스파이트의 생각이었다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이해하기도 싫었다그냥 이 정신 나간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제발…….”

 

 


***

 

 

…….”

 

한 번만 봐줘.”

 

상황이 끝나고마침내 정신을 차린 지휘관은 열심히 워스파이트를 달래고 있었다괴상한 짓거리에 끌어들인 것부터갑작스레 겨드랑이에 손을 넣은 것까지 전부 다.

 

워스파이트는 아무 말 않았지만그만큼 감정이 치밀었다는 뜻이었다하아그녀의 한숨에 지휘관이 움찔했다.

 

숙녀에게 그런 짓은 실례라고 생각한 적 없나?”

 

있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지휘관의 것이었다.

 

현재 세상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은 지휘관을 보면 아까 보여준 행동은 정말 귀신이 들린 게 아닐까 착각한 수준이었다분명 평소에는 멀쩡한데 왜 그런 짓을.

 

답답한 워스파이트가 마른세수를 하며 생각했다그래평소에는 멀쩡한 사람이니다시는 그럴 일 없겠지.

 

평소 지휘관의 행실이 워낙 건실했기에, 워스파이트는 단지 오늘의 일을 사고라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용서의 말을 꺼내기로 한 것이다.

 

그래이번만 넘어가지다시는 그런 같잖은 이유로 날 부르지 마특히나 배추는…….”

 

……?”

 

바로 그때 쿵탁자에 주먹을 내리치는 소리그녀의 입에서 특정한 단어가 튀어나오기 무섭게 지휘관이 움직였다.

 

……지휘관?”

 

아까와 똑같은 눈빛워스파이트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허나 이미 늦어버렸다. ‘그 단어를 입에 담아버린 이상지휘관을 막을 순 없었다.

 

광기에 물든 초록색 눈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너 이 자식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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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가 뭘 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