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해가 한가득
“하아…….”
최근 아카기는 기분이 나빴다. 몹시, 매우, 그것도 아주 많이.
온화한 그녀를 화나게 만든 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가진 것을 두 개만 추려보자면 우선 3일 전 함순이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
[작성자: ㅇㅇ (001.25)]
[제목: 무과금으로 먹었는데 혹시 이거 좋은 건가요?]
(대충 지휘관이랑 알몸으로 이불만 덮고 찍은 사진)
그냥 평소처럼 지휘관실? 갔는데 ㅠㅠ 어쩌다가 주인님 아1다? 먹어버렸네요 ㅠㅠㅠㅠ 더 노력하신 분한테 갔어야 하는데 ㅠㅠㅠ 근데 이거 좋은 건가요?
[추천: 1개] [비추천 1296개]
[블랙 드래곤 : 야이 개씨발년아]
[ 긴털 모후모후: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
[가스라이팅 메이드 : 축하드려요. 어쩜, 그렇게 몸부터 쓰실 생각 하시는 걸 보니 평소에 몸을 얼마나 험하게 쓰시는지 알 거 같네요^^]
ㄴ[ㅇㅇ (001.25) :아! 칭찬 감사드립니다. 근데 주인님 물건은 정말……네. 굉장하더라고요. 꼭 드셔보셨으면 좋겠네요. 부디, 가능하다면.]
[하드메탈요조숙녀: 완장 뭐하냐? 비틱 안 짜르냐?]
ㄴ [녹색 단또: 글에 방화벽 걸려있다냥…….]
ㄴ [하드메탈요조숙녀: 진짜 미친년인가]
[머봉: 혹시 글 쓴 사람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급해요, 당장, 빨리.]
ㄴ[어린이 애호가: 포기해라……너 쟤 못 이긴다.…….]
ㄴ[머봉: 글 쓴 사람 누군지 아세요? 저 정말 급해서 그래요.]
[누나! : ……정말로?]
[지휘관 딸 아님 : …….]
[레몬 싫어요: 지휘관……? 이게 무슨…….]
[인싸: ?]
[녹색 단또: 세상에]
[조센징 죽어: 하…….]
ㄴ [ㅇㅇ: 정통파 츤데레 히로인 커어어엇 ㅋㅋㅋㅋ]
정확히는 함순이 갤러리 최다 비추천 기록을 경신한, 보기만 해도 한숨이 올라오는 기만글, 그것이 아카기의 마음을 꿰뚫었다.
"저도 아직 못 해봤는데……."
차라리 그냥 관계를 맺은 거라면 물론 화는 조금, 아니 꽤 많이 나겠지만, 본인도 하면 해결되는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덮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리고……지휘관님도 원래 못 해봤던 거였는데……."
하지만 지휘관의 하나뿐인 순결을 가져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아니 모항 모두에게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장 범인을 찾겠다며 날뛰는 이도 적잖게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열받는, 그녀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아, 지휘관님."
“아……그, 아카기……응, 안녕.”
'우연히' 마주친 지휘관을 보며 밝게 웃어 보이며 인사했지만, 그는 눈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도망칠 뿐이었다. 남은 건 고요한 정적, 씁쓸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대단했다. 억지로 덮쳐졌는데 격한 거부반응 없이 저 정도 선에서 끝나는 건 되려 당황스러울 지경.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이해한 거지, 가슴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저번에 마주친 그 망할 메이드년이 승자의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때는 정말 살아생전 처음 겪는 수준의 울화통이 치밀었다.
참아낸 게 대단할 지경이다. 아마 지휘관이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더라면 참지 않았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배출하지 못하고 인내만을 반복한 결과,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건 당연했다. 때문에 아카기는 오늘 끝장을 볼 예정이었다.
지휘관이 한동안은 혼자서 일하고 싶다고 한사코 거부했지만 '조금' 힘을 써서 비서함 자리를 따낸 것이다. 그것도 야간으로.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오후 4시 30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는 웃었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
.
.
“아카기? 조금 일찍 왔네?”
대체로 모항의 야간 업무는 10시 이후에 시작한다. 허나 아카기는 그것보다 한참이나 이른 시간부터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단순히 일찍 왔다기엔 너무나 일렀다. 현재 시각은 8시, 아직 업무 시작은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으니까.
“그냥, 미리 준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물론 아카기는 그에 걸맞은 핑계를 준비한 지 오래, 슬며시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아카기가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벌써부터 하면 힘들잖아, 조금만 있다 오면 안 될……."
"우후후……괜찮아요. 지휘관님, 이 아카기는 지휘관님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아니 내가……."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지휘관님. 괜찮아요."
“그게 아니라, 내가 힘들…….”
“정말로요?”
“……아니요. 일찍 시작하면 좋겠죠.”
결국 아카기의 다정한 설득에 지휘관은 백기를 들었다. 일찍 시작한 것과 더불어 여러모로 집중력도 최고조에 이른지라 새벽에 끝날 일을 12시에 끝내는 결과를 낳았다. 후아, 지휘관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일찍 하니까 일정보다 빨리 끝났네, 도와줘서 고마워 아카기, 이제 들어가도 좋아.”
지휘관이 웃었다. 최근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따듯함을 잃지 않은 인품에 또 한 번 반했고, 자신의 계획을 강행하기로 다짐했다. 싱긋, 마찬가지로 그녀가 웃었다.
"그럼 지휘관님. 일정보다 빨리 끝났다는 건 오늘 시간이 남는다는 소리죠?"
“어……그런 셈이지?”
“그렇다면……후후, 네.”
그녀가 조용히 가방에서 와인을 꺼내며 지휘관에게 건넸다. 척 보아도 고급품,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그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자, 아카기는 친절히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러면 그 남는 시간을 제게 써주시는 건 어떤가요."
“응……?”
"설마, 안되나요?"
“아, 아니, 안되는 건 아닌데.”
당황의 목소리는 되물음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시무룩한 모습을 보며 당황한 것에 가까웠다. 동물귀가 축 처져 있었다.
그의 착한 성정을 이용하는 거 같아 아카기는 가슴이 약간 아렸지만, 그럼에도 둘 모두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빠르게 넘길 수 있었다.
“근데 나 술 잘 못 마시는 거 알잖아.”
"괜찮습니다. 도수가 낮은 걸 가져왔으니까요."
"그래……그럼 뭐 오랜만에 한잔해 보자."
물론 도수는 낮지 않았고, 아카기 본인이 마실 것은 무알콜로 준비했다. 계획은 따로 있었으니까.
.
.
.
"으응……그러니까……요즘 애들이 이상해……자꾸 나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단 말이야……."
"고생이 많으시네요. 여기 별난 분들이 좀 많기는 하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미 잔뜩 취해버린 지휘관은 평소와 다르게 풀린 모습으로 아카기에게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썩 귀엽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다. 아카기의 생각이었다.
"우리 애들이 착하긴 한데……요즘은 뭔가 특히 이상하단 말야……."
"……네. 그러게요. 다들 친절하긴 하더라고요."
물론 그 친절 아래 깔린 끔찍한 진실, 함순이 갤러리에 나타나는 그들의 실체를 말해줄 수는 없기에 적당히 호응만 해줬다. 당장 그녀도 오늘 아침 벨파스트의 기만 글에 쌍욕을 박고 나온 마당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우는 소리를 낸 바로 이 순간, 아카기는 지금이 바로 적기라 판단했다. 계획대로 조심스레, 그의 양손을 곱게 포개어 눈을 마주했다.
"지휘관님, 우선 사과드릴게요. 오늘 제 억지에 어울려주신 것, 너무나 감사드려요."
“으, 응?”
갑작스러운 사과와 더불어 이어진 스킨쉽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마주하는 건 우수에 찬 눈동자를 가진 미인, 뭇 남자라면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지휘관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자 한 이유는……어쩌면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네.”
아카기는 미리 머릿속에 그려둔 말을 꺼내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예상 그대로였다.
“지휘관님이 너무나 걱정되어, 그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랬어요…….”
"내가?"
"네……요즘 지휘관님이 저희를 마주하기를 자꾸 꺼리시는 게 많이 티가 나더라고요."
"아……티 났어?"
"엄청요. 마치……네. 커다란 고민이 있는 것처럼……"
"하하……."
티 나다 못해 온몸으로 발산하는 수준이었지만, 본인만 몰랐다. 사내는 이런 쪽에서 유독 눈치가 없었으니까.
때문에 아카기의 계획은 효과적으로 먹혔다. 아카기는 지금 이상 행동을 보이는 그를 걱정하는 한 명의 가련한 여인, 적어도 지휘관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지휘관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저는 항상 지휘관님의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지휘관님의 마음에 응어리진 부담감, 제게 조금 덜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아카기……."
그리고 쐐기박기, 지휘관은 감동받은 듯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카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반대로 지휘관의 마음을 흔든 걸까. 찰나의 침묵 후 지휘관은 입을 열었다. 썩 좋은 주제는 아니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괜찮을까?"
"네, 뭐든지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지휘관은 지난번 벨파스트와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실시간으로 글을 목격한 아카기가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직접 입으로 듣는 것과 단순히 글로만 보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이렇게 된 거야……."
"힘든 일을 겪으셨네요. 지휘관님."
"응……그래도 많이 힘들었었는데……아카기가 들어주니 한결 낫네."
"아뇨, 별말씀을요. 지휘관님이 힘드시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기대셔도 좋아요."
좋다. 아주 좋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계획은 성공할 것이다. 아카기가 생각했다.
그녀의 계획은 이러했다. 술의 힘을 빌려서 자연스럽게 지휘관과 가까워지고 그대로 만리장성까지 쌓는다.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실제로 거의 다 이뤄지고 있었으니까.
“그년이 어쩐지 요즘 기세등등하더라니……제가 반드시 저지른 죗값에 맞는 엄벌을…….”
때문에 아카기는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 그녀의 가슴에 구멍이 난 듯 아팠으니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근데 솔직히……응, 나쁘지 않았어."
"……뭐라고요?"
하지만 이런 반응은 도저히 예상하지 못했던 지라.
“아니……사실 강제로 한 것도 한 번만이지, 이후로는 벨파스트가 갑자기 죄송하다고,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못난 메이드에게 엄벌을 달라면서 그대로 엎드리는데…….”
아카기의 얼굴이, 몸짓이, 행동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슬픈 여우 대신 역정에 집어삼켜진 한 마리 여우만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술에 취한 그것을 보지 못하고 말을 끝맺었다.
“응, 그렇게 나쁘지는 않더라.”
“…….”
“아카기?”
서리가 맺힐 정도의 무거운 침묵,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 눈치챈 지휘관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를 향한 애정에 살랑살랑 흔들리던 꼬리는 이미 빳빳이 서 있었다. 분노를 나타내는 신체 표현, 지휘관의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또 눈동자는 어떠한가, 우수 대신 들어찬 진홍빛 감정은 이미 그를 잡아먹을 만큼 커져 있었다. 진하고, 진했다.
"하……그래요. 지휘관님 한번 먹어보겠다고 계획을 짠 제가 멍청한 거였어요."
"아카기? 그게 무슨……."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더 이상 진홍빛 감정을 참지 못한 아카기가 그의 턱을 붙잡고 키스 한 까닭이다.
구불구불, 뱀처럼 놀아난다. 지휘관은 그대로 주도권을 빼앗겼고, 아카기의 혀 놀림에 이리저리 능욕당했다.
당황해 눈을 떴으나, 마주하는 건 붉은 눈동자의 미녀, 하물며 싱긋 눈웃음 짓기까지 하니 그의 감정은 더더욱 짙어졌다.
“읏……아, 아카기?”
그렇게 진한 키스가 끝나고,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은 지휘관이 아카기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 멈추지 않았다. 톡, 톡, 손수 그의 단추를 벗기는 게 전부였다.
"하아……그냥……이렇게 해버리면 되는데……."
“자, 잠깐만, 아카기, 진정해 봐. 할 말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최후의 변론, 지금 이 말이 마지막이 될 거라 직감한 지휘관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마지막 한 마디.
“그……다정하게…….”
“……싫어요.”
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함순이 갤러리에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며칠 전 올라온 역대급 기만글에 이어, 비추천 1000개를 넘기는 또 하나의 글이었다.
[작성자: 긴털 모후모후]
[제목: 나도 이제 지휘관 쥬지 오우너 ㅋㅋ]
(대충 지휘관이 알몸으로 이불 덮고 자는 사진)
아직도 지휘관 쥬지 못 먹어본 아1다 없제? ㅋㅋ
[추천 1개] [비추천 1058개]
[ㅇㅇ(001.25) : 아 씨1발]
ㄴ [긴털 모후모후: ㅋㅋ 니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