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점심, 지휘관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상 일종의 선언과 가까운 행동, 크론슈타트가 의문을 그렸다.

 

보통 지휘관 동지 끼니는 메이드대가 해결하는 거 아니었어?”

 

의심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지휘관의 식사는 대체로 메이드대의 관할이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 식사 담당이 시리우스거든, 정말 미안한데……, 못 먹겠어.”

 

.”

 

크론슈타트는 마음 깊이 납득했다.

 

 

 

 

***

 

 

 

익숙한 재료네. 설마 노린 거야?”

 

크론슈타트의 눈 앞에 펼쳐진 식자재는 그녀 입장에서 참 익숙한 것이었다. 양배추, 당근, 감자, 그리고 양파와 방울토마토 등, 여러 야채와 홀로 고고히 서 있는 비트.

 

화룡점정은 소고기와 옆에 있는 빵, 반드시는 아니어도 보통 러시아 전통 음식인 보르시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였다. 지휘관이 슬쩍 웃었다.

 

오늘은 국물 있는 요리가 먹고 싶어서 말이야. 내가 해줄게.”

 

정말 그래도 돼?”

 

, 오늘은 쉬어.”

 

싱글싱글 웃어 보인 그가 감자를 주워들었다. 언제 봐도 참으로 인상적인 미소, 따듯하고 인자하기에.

 

그녀가 비슷한 미소를 짓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근데 감자를 이렇게 깎는 게 맞나? 헷갈리네.”

 

…….”

 

, 손 베일 뻔했네.”

 

…….”

 

귀찮은데 그냥 한꺼번에 볶아야겠다.”

 

딱 5분 동안만.

 

시시각각, 크론슈타트의 표정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웃음에서 불안으로, 하나하나, 계단을 내려가듯, 아주 느리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한 그녀였던 만큼, 전통 요리를 적당히 대충 만드는 건 두 눈 뜨고 못 볼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큰 문제 없었다지만, 무언가 쐐기를 박는 일이 생긴다면 그녀의 심기는 분명…….

 

크론슈타트, 나 월계수 잎이 없어서 그런데 그냥 깻잎 넣어도…….”

 

절대 안 돼!”

 

이런 식으로.

 

거친 목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크론슈타트가 우선 감자를 집어 들었다. 큼지막하게 잘린 게 반드시 나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보르시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선 감자는 네모나게 썰어야 해, 당근도 마찬가지고, 또 기다려봐, 월계수 잎이 없으면 일단…….”

 

결국 제대로 발동 걸린 크론슈타트에 의해 지휘관은 어느새 뒷방으로 물러났다. 어느새 자연스레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

 

물론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었다. 기왕 먹을 거면 그래도 현지인 손맛으로 먹는 게 낫지 않나.

 

 

 

 

 

***

 

 

 

 

 

와 붉은색.”

 

완성된 보르시를 보고 내뱉은 지휘관의 감상이었다말 그대로 심히 붉었다순간 지휘관은 그녀의 사상과 연관 짓는 나쁜 상상을 하고 말았을 정도로.

 

이 빈틈 없는 붉은색역시 마음에 든단 말이야.”

 

지휘관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소리를 겨우 참아냈다.

 

큼큼헛기침과 함께 각설하고수저를 집으려 했다그의 행동이 시도에서 그친 것은 우선 음식을 만들어준 이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떠올린 까닭이다.

 

잘 먹을게고마워.”

 

……일단 먹어봐맛이 중요한 거니까.”

 

싱긋웃으며 말했다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크론슈타트는 맛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지휘관은 이 음식에 맛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사람이 정성이 담긴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던 까닭이다.

 

시리우스는 논외로 하고.

 

얼른빨리 먹어봐.”

 

답지 않은 급한 목소리약간이지만 무언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요리를 해주었다면 그것을 맛있게 먹어줘야 하는 것도 의무지휘관은 망설임 없이 한 입크게 넣었다.

 

……맛있어.”

 

작금의 그녀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한마디이는 단순히 그녀를 배려해 주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라단전에서부터 필터링 없이 올라온 그의 감상이었다.

 

정말이지?”

 

때문에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아주 조금이지만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으니.

 

너도 먹어봐진짜 맛있어.”

 

신나서 기뻐하던 크론슈타트도 지휘관의 종용에 한 입크게 넣었다웃음이 나왔다조금 전과는 다른약간 은은하면서도 수수한 미소.

 

맛있네.”

 

그것을 기점으로 식사는 쭉 이어졌다중간에 몇 마디 오갔지만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식사 중에는 말을 많이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어느새 둘은 접시를 거의 다 비워버린 채였다.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 지휘관은 기분이 좋아졌다때문에 말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이런 거 먹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


다분히 의도가 느껴지는 발언찰나지만 그것을 이해한 크론슈타트의 귀까지 빨개졌다본인은 티 내지 않으려 애쓴다만이미 손은 멈춰있었다.

 

그러니까그만큼 내 요리가 맛있다는 거지?”

 

허나 그녀는 유능한 첩보원이럴 때일수록 감정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어떻게든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지휘관에게 되물었으나사내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너랑 결혼하면 이런 거 매일 먹을 수 있는 거야?”

 

…….”

 

우뚝하고그녀의 동작이 멈추는 순간쐐기가 박혀버린 크론슈타트는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결혼식매일 아침첫날밤의 거사그와 자신을 닮은 자식…….

 

무슨 소리야!”


부끄러움이 치사량을 돌파한 순간그녀가 빼액 소리쳤다싫은 건 절대 아니었고그저 부끄러웠던 까닭이었다.

 

싫어?”

 

그건…….”

 

때문에 그의 질문에 크론슈타트는 답할 수 없었다이미 한계까지 붉어진 얼굴은 머리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아닐까 착각이 일 정도였다.

 

다 먹었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이미 행동 불능이 되어버린 그녀가 더 이상 식사를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지휘관은 자연스레 그녀의 접시까지 가져가 닦기 시작했다크론슈타트는 여전히 굳어 있었다.

 

쏴아아물소리뽀득뽀득접시 닦는 소리그것을 배경으로크론슈타트는 아까 하던 상상을 지속하기로 했다.

 

…….”

 

분명 행복할 것이라단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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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성희롱만 하는 거 같아서, 오늘은 순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