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들었던 한 마디가 유독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었다. 발언자는 지휘관이었고, 그것을 듣는 이는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아였다.
반쯤 농으로 말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휘관의 발언은 참이었다. 검은 양말을 신은 날에는 검은 팬티를 입었고, 하얀 양말을 신은 날에는 하얀 팬티를 입었다.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비밀이고, 하여튼.
중요한 건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로 팬티와 양말을 맞춰서 입었다.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적어도 벨로루시아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의 비서함인 벨로루시아는 무언가 오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발언을 들었다면 자리에 누가 왔더라도 그럴 게 분명했다.
“……지휘관 동지.”
“응? 불렀어?”
벨로루시아의 낮은 목소리에 지휘관이 명랑하게 답한다. 주저하는 듯 입술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느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황하는 눈동자는 그녀의 주저요, 흔들리는 감정이었다. 우왕좌왕하던 동공의 종착지는 다름 아닌 아래쪽, 정확히는 그의 발이었다.
“오늘은……양말을 신지 않은 건가?”
오늘의 지휘관은, 양말을 신고 있지 않았으니까.
우선 정장에 발목이 드러나는 것부터 이상하지만, 고작 그런 사실은 더 이상 벨로루시아에게 닿지 않았다. 대체, 왜, 어떤 이유로, 늘 양말을 신던 그가 오늘은 맨발로 나타난 걸까.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응, 그게 왜?”
혹시나 페이크 삭스일까. 하는 희망을 품고 던진 말은 순식간에 산산조각났다. 벨로루시아는 총 세 단계를 거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벨로루시아? 표정이 왜 그래?”
그것을 바라본 지휘관이 걱정의 한 마디를 꺼냈지만, 벨로루시아는 적당히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상상해 버린 탓이다. 저 바지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움찔,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말한 순간부터 지휘관은 그녀의 사적인 무언가에 개입하지 않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 말없이 서류로 눈을 옮겼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휘관 동지, 지난번에 했던 말 기억하나?”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응? 어떤 거?”
평소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던 그였기에, 특별히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되묻는 게 최선이었다.
“……그. 그러니까.”
그리고 벨로루시아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그녀의 입으로, 그 말을 직접 꺼내기에는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으니까.
눈을 감고 심호흡, 망설였지만, 반드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지금의 의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분명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매듭짓고 가는 게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난번, 지휘관 동지가 팬티와 양말을 맞춰 입는다고 말한 그거.”
답지 않게 망설이는 목소리, 지휘관이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팬티와 양말을 맞춰 입는…….”
“아! 그거? 맞아, 생각났어.”
되레 당황해 언성을 높인 그녀를 보고, 지휘관은 머리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눈동자도 커져 있었다.
“근데 그게 왜?”
악의 없는 순수한 눈동자, 벨로루시아는 또다시 설명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미간의 주름이 하나 늘어났다.
“……방금 떠올린 그 말을 생각하며 지금 지휘관 동지의 발목과 구두를 번갈아 바라봐라.”
“아하.”
최대한 점잖게 말하기 위해 애쓰던 그녀의 노고와 달리, 지휘관의 반응은 상큼하기 짝이 없었다. 여러모로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팬티 안 입었냐고 물어보는 거지?”
“……그래.”
꽉 찬 직구,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던 벨로루시아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로는 최선을 다했다. 이젠 답변을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과연, 어떻게 된 걸까. 입은 걸까? 입지 않은 걸까. 혹시나 다른 함선소녀들에게 팬티를 빼앗겨 이렇게 된 게 아닐까? 그럼 나도 하나 갖고 싶긴 한데……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입술을 움직이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벨로루시아의 심장이 뛰고,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리면.
“오늘 시리우스가 내 옷장에 커피를 쏟았거든, 공교롭게도 그 안에 들어있던 게 전부 양말이라, 그냥 나온 거야.”
허무한 답변이 날아온다.
잠깐의 정적, 어색하진 않았다. 지휘관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고, 당황한 건 오직 한 명,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아.
“그럼 팬티는…….”
“당연히 입었지, 저번에 말한 건 그냥 농담이었고, 그냥 우연히 몇 번 맞은 거지, 굳이 팬티까지 신경 써서 입지는 않아.”
……하, 벨로루시아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순도 100%의 기쁨은 아니었고, 허탈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우스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의문이 해소되었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었다. 이마에 얹었던 손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어리석었던 거군, 이런 바보 같은 일에 당황하며 마음 졸인 건 또 처음이야.”
“재밌었으니 된 거 아니야?”
“……그것도 맞는 말이지.”
큭큭, 다시 한번 웃어 보인 그녀를 시작으로 둘 사이에는 다시금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까의 어색함은 모조리 증발한 지 오래였다.
자연스레, 지휘관은 다시금 서류를 집어 들며 업무를 시작했다. 벨로루시아 역시 조용히 그의 업무를 돕기 시작했다. 비서함이었으니까.
고요는 이어졌다. 참으로 안정적인 분위기였다.
“아, 그런데 벨로루시아는 오늘 팬티 뭐 입었어?”
“안 입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말이지.”
디폴트가 노팬티 언더붑인 미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