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법이었다. 노인이 다시 어려지는 일 또한 있거니와, 그보다 유별난 일이 어디에 있겠나.

그러나 그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 단면적인 것만 묘사한다면 별천지라 할 수도 있을 곳. 그 별천지가 통용되는 의미의 별천지는 아닐테지만, 그것이 세상이었다.



 청명은 인상을 찌푸리며 침상에서 일어섰다. 전과 달리 늦잠을 잔 것은 둘째치고, 이불이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단순히 늦잠을 잔 탓의 비몽사몽한 상태의 이유라 할 정도가 아니었다. 이것들이 무슨 장난질을 했나 싶을 정도로 이불이 무거웠다. 그러나 팔을 딛고 몸을 세우던 청명은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시야가 평소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팔 또한 짧아져 있었다.

 청명은 짜리몽땅한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몇년 전의 거지 아이의 팔보다도 더 짧았다. 참으로 지랄 맞게도 이불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몸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문제였다.


"이런 미친..."


 침상에서 내려온 청명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짧다란 몸으로는 이불을 걷는 것조차도 힘겹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것과 진배없이 짧은 몸이 되니 어울리지 않게 길다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꼭 여든 넘은 노인이 한숨을 쉬는 것 마냥 말이다. 알멩이는 여든을 넘은 지 오래니 어울리지 않는 것은 보기에 한해서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웬 어린애가 한숨을 그리 쉬냐며 타박을 들을 꼴이었다.

 근육도 없고, 내력도 없는 완벽한 어린아이의 몸이다. 답도 없다 하기에는 입만 아프다.

 청명은 풀린 옷끈으로 상의를 감았다. 흘러내린 탓에 하의 역할도 대신 하긴 한다만 더이상 흘러내린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 뻔했다. 이마에 내 천(川)자가 깊게 파인 청명의 손에서 끈이 종잇장마냥 구겨졌다. 옷을 구겨가며 끈을 묶자, 문의 창호지가 두들겨지며 익숙한 그림자가 문에 드리워졌다.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숨을 만한 곳이 한 군데 정도는 있었다. 짧다란 어린 아이의 몸으로도 충분히 숨을 수 있을만한 장소가.


"청명아, 아직도 자는거냐?"


 문을 열고 들어온 윤종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청명은 보이지 않아, 윤종은 눈을 가늘게 홉떴다. 이 개망나니 놈이 늦잠을 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사라진 듯 보이지 않은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윤종은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천장에는 없었고, 남은 곳은 침상의 아래와 장롱. 다른 곳을 수색하다 도주할 가능성은 침상의 아래가 더 높았다.

 윤종은 침상의 아래를 살폈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그 놈이 작정하고 숨는다면 찾을 수는 없다만, 최소한 시도라도 해야했다. 가는 시선이 침상의 아래를 흝는다. 반대편으로 향한 시선에 닿은 것은....어린 아이였다.


"...저기 꼬마야? 여긴 어떻게...."


 윤종은 입을 다물었다. 어린 아이가 있을 리 없는 곳이라는 것뿐만은 아니다. 어린 아이가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이다. 든든하게 여겨지던 등이 아이의 작고 부드러운 등과 같을 리는 없었으나, 직감이 기묘한 확신을 만들어냈다. 아이의 눈과 윤종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어색한 흐름이 방 안을 감돈다.


"...안녕하떼요?"

"청명이냐?"

"제기랄."


 청명은 욕설을 읊조렸다. 그러나 여덟도 채 되지 않은 몸으로는, 그조차 귀엽게만 보일 뿐이다.


+제목 저따구라서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