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지나치리만치 아름다워 꿈이라는 것을 알만도 한 그런 꿈을.


"청명아."

"... 치사하게 혼자 가버린 인간들이랑 대화 안 하는데."


매화는 만개했고 화산을 덮었다. 늘 그렇듯 연분홍빛이 하늘을 뒤덮은 광경이었다.

여전한 화산의 봄.

다만 청명의 봄.

그에게 만큼은 다시는 오지 않을 아름다운 날.


꿈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외려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람마저 사랑할 것이다. 스쳐가도 눈물을 흘리겠지만, 또한.

봄을 싣고 지나쳐가는 바람마저 그의 계절을 환기시킬테니까. 


하지만 그는 끝없는 밤을 거슬러갔다.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여전히 지닌 채로. 

아마 아무도 알지 못 할 것이고, 알게 하지도 않을 터였다.


잡념이었다. 유여하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새벽이 찾아와 닭이 우는 것은 금방이다.


하늘을 수놓는 별들이 광명에 스르륵 모습을 감추는 아침이 온다.


유여하지 않았다.


"급하게 하지 말래도."

"많이 고친겁니다, 이래봬도."

"나도 안다."


청문이 웃음을 지었다. 초조한 그의 모습을 알아챈 듯, 타박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청명은 문득, 아니. 늘상 느끼고 있던 그리움을 또 다시 느꼈다.


"사형, 외롭습니다."

"... 나도 안다."

"알기만 하면 뭐합니까. 좀 도와주지. 치사한 양반같으니."

"너는 항상 내 앞에서만 응석이더냐. 조금 철이라도 들었는가 했는데."

"사형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응석을 부립니까. 저 시퍼렇게 어린 놈들한테?"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청문이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청명도 따라 웃었다.


청문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진 것을 알자 청명은 더욱 크게 웃었다. 

그리고 웃지 못했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으로.


그의 화산이 아닌 화산으로 돌아간다. 

봄이 와도 겨울만이 존재하는 화산으로.


"애쓰지 마라."

"..."

"넌 애쓰면 일을 그르치잖냐."


청명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꿈은 끝이 났다.

청문의 웃음소리와 표정이 잔상이 되어 남아있었다.


여전히 옅은 꿈에 잠긴 느낌이 청명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