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옛날 사진임 / 지금은 강화인간C4621로 닉네임만 바뀜


"따라서, 현제 밀레니엄 기술 진보의 침체기를 깨기 위해 대형 경진대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의견이에요."


세미나의 회의실에 간만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회동은 지난번 붉은 하늘 아래에서 절박하게 모인 것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주제와 이성적인 토의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밀레니엄의 상황은 침체기 비슷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재난 복구는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지만 붉은 탑이 내리꽂힌 그 사건 이후로 당장의 복구에 온 힘을 쏟는 바람에 신규 특허나 발명의 등록이 68%나 감소했으며 학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낮아져 있었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노아가 제안한 것이 '대형 경진대회'였다.


"입학한 이후로 대형 경진대회를 보신 분이 없을 수도 있으니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대형 경진대회란 문자 그대로 대형, 즉 밀레니엄이 가진 모든 기술력을 동원함과 동시에 외부 기업들까지 초빙해서 진행하는 경진대회입니다."


원래는 최소 2년, 평균적으로 3년마다 대형 경진대회를 여는 것이 밀레니엄의 전통이었으나 총학생회장의 실종 이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는 과정 속에서 마지막 개최 이후 4년째가 된 상황이었으니 1학년들은 이런 규모의 경진대회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리라. 그러나 이런 규모의 대회를 포함해서 아무튼 큰 돈이 깨지는 일을 진행시키려면 항상 넘어서야 하는 마왕이 있었으니.


"노아, 이거 계산기로 두드려본 거는 맞지? R&D 비용에 생산 외주를 맡길 외부 기업까지 초빙할 자금력이 되는 상황일지는 모르겠는데."


냉혹한 회계의 마왕. 하야세 유우카. 지금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실시간으로 복잡한 계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의 전반적인 인프라 및 시설 복구 비용만으로도 예산이 벅찬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대회까지 감당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계산들 말이다.


"기술의 진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예산에도 한도라는 게 있으니까.."


회의실의 분위기는 반신반의. 노아가 말한 대로 기술의 진보도 중요하지만 유우카의 말대로 예산의 한계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최소 2급 이상의 보안이 필요한 세미나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서는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리죠."


"어머나, 히마리 부장?"


전 베리타스의 부장이자 현 초현상특무부의 부장, 아케보시 히마리였다.


"뭐야,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베리타스한테 2급 이상의 보안 패스가 있던 건가?"


"유우카 쨩, 지금은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히마리가 들어온 타이밍은 예산 문제를 운운하던 타이밍. 히마리 정도 되는 사람이면 괜히 회의를 방해하러 들어온 것은 아닐테고, 분명 뭔가 수가 있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들어왔으리라. 하고 노아는 생각했다.


"최근에 고민하던 것 중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석이조를 노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저같은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의 솔루션은 굉장하단 말이죠."


"본론만 말해, 본론만."


히마리는 반사적으로 유우카가 건 태클에 반응하려다가 자신의 목적을 다시 한번 되뇌이는 듯 하더니 이번만 넘어가겠다는 분위기로 별 말 없이 자신의 플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에리두에요. 정확히 말하면 에리두의 폐쇄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들이죠."


유우카는 무슨 이야기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위기였으나 노아는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지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았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띄고 있었다.


"에리두? 폐자재? 물론 그 도시가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는 거는 알고 있지만, 그걸로 뭘 하려고?"


그러나 유우카의 의문은 히마리의 다음 말 덕분에 금세 해결되었다. 겸사겸사 일종의 경악도 함께 오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 에리두를 해체하면서 나온 폐자재들이 마땅한 처리 방법도 없이 쌓여가는 상황인데, 혹시나 싶어 이 폐자재들을 조사해 보니 아무래도 그 오물은 이 도시를 지을 때 최고급 중에서도 최고급 소재들만 이용한 것 같더라고요. 개중에는 건물의 H빔과 같은 정말 사소한 물건임에도 밀레니엄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것들도 있고요. 이 자재들을 별 생각 없이 전부 재활용 센터에 팔아치운다고 쳐도 최소 몇백억 원 이상은 나올 거에요."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니지?"


그러나 히마리의 플랜은 그 자재들을 팔아치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정도에서 멈춘다면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 실격이니까.


"하지만 그냥 팔아치우는 것은 효율이 너무 떨어지니 제안을 하나 하자면, 너무 위험한 기술이 유출되지 않는 선에서 에리두에 들어간 기술력을 외부 기업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쓰자는 거에요. 여전히 자재 중 일부는 개최 비용의 문제로 그냥 팔아버려야 하겠지만 말이죠."


그것으로 냉혹한 회계의 마왕은 반박할 능력을 잃었고, 그 뒤의 일처리는 일사천리였다. 




"모모이, 미도리, 유즈! 드디어 이 게임도 클리어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R&D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게임개발부 부실. 참고로 여기서 R&D 활동이란 좋게 말해서 게임에 대한 조사, 나쁘게 말하면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을 말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이 게임사가 어렵게 만드는 게 주특기라고 해도 이건 난이도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유즈 부장은 어땠어?"


"3년만에 신작을 출시한 시리즈답게 힘을 주고 만든 게 느껴졌어..물론 '복합장갑 코어: 판정일'이나 '해답을 찾아서' 계열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해, 모모이."


최근 게임개발부가 꽂힌 게임은 '복합장갑 코어 VI' 라는 메카 게임이었다. 시리즈 3년만의 신작이었고 그만큼 굉장한 기대를 받은 게임이었으며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게임. 그러나 이 게임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한 가지 있었으니,


"..하지만 부족해. 몸이 투쟁을 원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인간 투쟁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게임의 특성상, 이 게임에 맛을 들리게 되면 중증의 투쟁 중독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상 공간의 PVP 투쟁을 원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하여튼 유즈는 이 게임 시리즈를 중학생 때부터 플레이했던 사람이다. 3년 동안 잊고 지냈던 투쟁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복합장갑 코어 시리즈의 구작을 돌릴 수 있는 옛날 콘솔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모두의 핸드폰에 밀레니엄 학원 명의로 문자가 하나 왔다.


"대형 경진 대회? 이게 뭐야? 미도리, 아는 거 있어?"


"언니, 우리가 같은 1학년이라는 건 기억하고 있는 거지? 유즈 부장은 혹시 아는 게 있어?"


유즈는 아무런 말 없이 문자를 읽고 있었다. 방에는 정적과 함께 싸늘한 기운을 넘어서 살기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이거라면..이거라면 투쟁을 원하는 내 몸을..정신울,,!"


그러나 그 정적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혹시 아리스 안에 있어?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에, 엣? 이 목소리는, 우타하 선배? 아리스라면 여기 있는데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우타하가 급하게 아리스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부실 문을 열고는 굉장히 급한 목소리로 아리스를 불렀다.


"아리스,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잠깐 엔지니어부 부실까지 와줄 수 있을까?"


아리스야 뭐, 그 부탁에 평소대로의 반응을 보였고 말이다.


"이것은 흡사 새로운 퀘스트 라인의 시작이군요! 모모이, 미도리, 유즈!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서 아리스를 왜 부른 걸까?"


아리스가 엔지니어부와 볼일을 보러 나간 뒤 게임개발부는 갑자기 우타하 부장이 직접 아리스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추측하고 있었다. 모모이와 미도리는 그냥 간단한 검사나 작업 정도로 생각했지만, 유즈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까 대형 경진대회라고 문자 왔던 거, 그거 아닐까?"


"에? 그렇지만 우리는 공학적 지식도 별로 없는걸?"


유즈는 핸드폰을 꺼낸 뒤 밀레니엄 대형 경진 대회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잘 읽어 보면, 이번 밀레니엄 대형 경진 대회의 주제는 메카 배틀이라고 하던데..혹시 파일럿이 필요해서 데려간 거 아닐까?"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이번 밀레니엄 대형 경진 대회의 주제는 최대 16개 팀이 전투용 메카를 만들어서 배틀로얄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대회였고, 그렇다면 전투용 메카를 조종할 인원도 필요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가정은 또다른 의문점이 하나 남게 된다.


"단순히 양질의 파일럿이 필요한 거라면 유즈 부장을 데려가는 게 더 좋은 선택지 아닐까?"


미도리의 날카로운 지적. 그 말대로 단순히 최강의 파일럿이 필요한 거라면 아방가르드 군까지 조종해본 경험이 있는 유즈가 제격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리스를 데려간 걸까?




엔지니어부 부실.


여러 가지 공구와 자재들이 난잡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급한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업 공간 중앙의 메인 게스트로는 무언가 거대한- 마치 반응로나 동력로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아리스, 너를 부른 건..이번 대형 경진대회에서 우리 메카의 파일럿을 맡아줬으면 해서야. 그 전에, 너의 동의를 얻고 싶어."


"그런 일이라면 아리스는 대환영입니다! 최근에 메카 게임도 플레이-"


평소라면 이러지 않겠지만, 우타하는 아리스의 말을 굳이 끊고는 걱정 섞인 경고의 한 마디를 했다."


"이건 훨씬 위험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저 동력로를 우리 메카에 넣을 건데, 저건 무명 사제의 기술력이 들어간 물건이야. 이걸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리스, 너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