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말투도 짚고 넘어가자.

세이아는 선생을 '자네, 그대' 등으로 해석되는 '키미(君)'라고 부른다.

어미에도 '한가, 하지 않은가' 등으로 대응되는 말투인 '다이, 카이(だい、かい)'를 쓴다.

전체적으로 상대를 내려다보는 노인스러운 말투이고 이는 예언자라는 컨셉에 부합한다.

미카가 세이아랑 대화하는것 자체로 화가났던 것도 이 말투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엄있고 현명한 포지션의 캐릭터가 사실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진실도 이 말투 덕분에 더 깊게 꽂힌다.




 




또 다른 문제는 작문 퀄리티.

짧은 시간 내에 벌써 '말하자면'이 세 번이나 나왔다.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배치하는건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전달력도 떨어뜨린다.

일본어로는 이 부분이 각각 순서대로 

'말하자면', '(없음)', '더 쉽게 이야기 해볼까?' 로 되어있다.

같은 뜻이라도 때로는 생략하거나 동의어로 대체해서 가독성을 훨씬 늘릴 수 있다는 거다.







일판은 "존재하지 않는 자의 진실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한판은 "즉,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여기서 '자(者)'라고 표현된 것은 영어의 'The(그)'와 비슷한 용법으로

이전에 언급되었던 '낙원에 도달했으나 그걸 전달하러 나온 자'를 뜻한다.

그런데 이걸 '사람'이라고 쓰면 이게 누굴 뜻하는 건지 알기 어렵다.

엄밀히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또 다른 문제는 대사의 생략.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그대와 같은 사람에겐 적합하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네."

얼핏 같은 뜻으로 보여도 엄밀히 따지면 '적합하다'와 '어울리다'는 다른 의미기 때문에 생략하지 않는 쪽이 더 깊이 전달된다고 본다.

선생의 능력에 '적합'하지 않으면서 선생의 성향 면에서도 '어울리지'않는 일이기 때문.











"그것이, 선생.. '이 앞길'을 선택한, 그대의 의무일세."


왜 이게 선생의 의무인지 알려줘야 하는거 아니야?

선생이 왜 이런 씁쓸하고 뒷맛이 구린 이야기를 봐야만 하는지를 모르잖아.

선생이 계속해서 '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의무인건데

그걸 생략하면 선생은 영문도 모르고 전란에 휘말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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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메인스토리에서 이렇게 번역을 졷박았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설마 이것도 한국어로 먼저 써놓은게 원본인 거라고 한다면 솔직히 실망스러울 것 같다.

이후의 전개를 봐서도 세이아는 더 깊이있고 위엄있는 캐릭터인 편이 어울리니까.

캐릭터의 성격이 고상하고 점잖다는 것이 꼭 존대말을 쓴다는 뜻은 아니잖아.

지금대로라면 한국 유저들은 세이아란 캐릭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대사 축약문제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이 대사는 아리스가 진심으로 게임에 빠져있고 현실까지 그걸 적용하려 하는 캐릭터란걸 잘 보여주는 역할을 했음.

근데 이걸 한국판에서는

"고백입니다. 꼬마 메이드님은 아리스에게 반했습니다."로 줄여버렸어.

이 대사에는 게임에 관련된 요소가 하나도 안 들어가있지.

겜창 주인공들을 겜창 유저들이 바라보는데 이렇게까지 줄여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무슨무슨부에서 게임중독 예방을 위해 게임 관련 대사를 줄이라고 협박이라도 했나?

* 이 부분은 한섭 오리지널이 원래 이렇다고 한다.

일섭에서 보강된 스크립트를 역적용하지 않고 원본을 그대로 사용한듯.


용하형, 번역 앞으로 잘하겠다고 했잖아..

가장 중요한 때니까 제발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