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지저귀는 조용한 아침.


나는 사무실 책상에 엎드린 상태로 눈을 떴다.


분명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가 잠시 책상에 엎드렸던 것 같은데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더 밀리기 전에 남은 업무를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짧게 기지개를 켰다.




냉장고에 있는 냉수를 꺼내 마시고 정신을 차린 다음, 업무로 돌아가려던 나는


문득 사무실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에 찍힌 시간은 9시 24분.


그제야 나는 이미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당번 학생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의 당번 학생은 히비키.


히비키는 현상수배, 전술 대항전은 물론


이번에 트리니티 지역의 오래된 성당 유적 지하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존재를 물리치는 데에도 투입될 예정인 재능 있는 학생이다.


오늘 그에 관해 여러가지로 논의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시간이 부족할까 늦지 않게 올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히비키가 시간에 맞춰 오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열차가 지연되거나 차가 막히는 거겠지.


아니면 아침에 조금 늦잠을 잤다거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일이 있는 거니까.


그렇게 나는 히비키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히비키는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히비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아니면 오다가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히비키는 무단 결석을 할 학생이 아니니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리라.


한번 시작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다.


히비키에게 연락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모모톡에서도 전화에서도 히비키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를 차단해버린 모양이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어서 될 일이 아니겠구만"




밀려드는 걱정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나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의자에 걸쳐 놓은 겉옷을 집어 들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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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은 이미 점심시간이 시작된 듯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학생들의 인사를 받느라 잠시 발걸음이 더뎌졌던 나는


다행히 곧 내가 만나고자 했던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 선생님. 밀레니엄엔 갑자기 무슨 일로 왔어?"


"오오, 우타하 마침 잘 만났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혹시 히비키 봤어? 오늘 샬레 당번 학생으로 불렀는데 이 시간까지 안와서 말이야."


"같은 동아리니까 혹시라도 뭔가 알고 있을까해서."



내 말을 끝까지 묵묵히 들어주던 우타하는 내 말이 끝나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응? 잠을 좀 못 자긴 했지만 괜찮아, 멀쩡해!"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는 거야...?"


"우리 엔지니어부에... 히비키라는 학생은 없어."




우타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엔지니어부에 히비키가 없다니.


그럼 도대체 어디에 히비키가 있다는 말인가.




"에이, 장난치지 말고. 왜 그 있잖아. 소심하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고 마음 따뜻한 박격포 소녀!"


"또, 수인이라서 밀레니엄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성을 가진 걔!"


"너랑 코토리랑 같이 말도 안되는 발명품들에 열정을 쏟는 걔!"


"에, 그리고 또..."


"선생님."




히비키에 대해 열정적으로 묘사하던 나는 우타하의 차가운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우타하는 오랜만에 만나 이상한 소리만 하는 내게 조금 화가 난 듯 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그만 돌아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




말을 마친 우타하는 금세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같은 엔지니어부인 우타하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미궁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학생들이 전부 짜고 몰래 카메라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도 잔뜩 있지 않은가.


다시 의지를 다진 나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히비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히비키라는 이름은 들은 기억이 없는데? 새로 들어온 녀석인가?"


"히비키라는 사람은 몰라! 근데 설정 되게 괜찮다. 각색해서 우리 게임에 써먹어야지~"


"히비키라는 사람이 밀레니엄 학생이라고요...? 안타깝지만 저희 세미나의 정보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밀레니엄에 재학하고 있지 않아요 선생님."


"히비키...는 새로운 캐릭터인가요? 하지만 제겐 페로로님이 있어서... 죄송해요!"


"히비키라니... 비키니와 어감이 비슷해서 왠지 마음에 드네요. 후훗"


"사람 찾는 거라면 또 우리 흥신소 68의 전문 분야지! 누군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맡겨줘!"


"응...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잡아올게.




히비키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히비키와 함께 전술 대항전에 출전했던 학생들,


히비키와 현상수배범들을 잡으러 다녔던 학생들까지.


나는 히비키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었던 학생들을 모두 찾아 다니며 히비키에 대해 물었고,


나중에는 히비키와 관련이 전혀 없는 학생들까지 붙들고 히비키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히비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중에는 나를 도와 히비키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그 쪽도 별 소득은 없는 듯 했다.




나는 잠시 길가에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히비키는 당번 학생임에도 샬레에 오지 않았다.


내가 히비키를 찾아 나섰지만 아무도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다.


뿐만 아니라 히비키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거짓말 같은 일이라.


나는 이렇게 불가능한 것 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다니는 집단을 하나 알고 있었다.


게마트리아.


놈들이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것이다.




"히비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나는 히비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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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선생이여."


"내 학생을 구하러 왔다. 히비키는 어디에 있지?"




나는 검은 양복이 정중하게 건네는 인사를 무시하고 물었다.


이런 기괴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이 녀석들 밖에 없다.


그러므로 범인은 이 녀석들일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군요."


"히비키라는 학생이 저희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시치미 떼지마.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히비키에 대해 한순간에 잊어버렸어."


"이런 이상한 짓을 할 사람은 네 놈들 밖에 없잖아!!"




검은 양복은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이여, 타카나시 호시노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 때 저희 게마트리아는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걸어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저희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처럼, 저희는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만약 그 히비키라는 학생이 사라진 것이 저희 게마트리아의 계획이었다면,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관측자이자 탐구자이자 연구자일 뿐, 신이 아닙니다."


"모든 학생들의 기억에서 히비키라는 학생의 기억 하나만을 지우는 일은 저희에게도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너희가 아니면 누가 그런 거냐고!!!"


"선생이여, 답은 이미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검은 양복은 답을 찾는 나의 외침에 조용히 답했다.


검은 양복의 말은 의미심장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내 히비키를 찾을 방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히비키를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품 속에서 싯딤의 상자를 꺼냈다.


이곳에 모든 답이 있을 것이다.




"이제 진실을 마주하시지요."




혹시라도 저 녀석들의 짓인 게 밝혀진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검은 양복의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싯딤의 상자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진실을 마주했다.




"참 재밌지 않습니까? 모두가 잘못됐다고 한다면 자신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텐데."


"당연히 남들이 잘못된 것이고, 상황이 잘못된 것이고, 나아가 모든 것이 꾸며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히비키라는 학생이 존재할 지도 모르지만, 당신에게는 아닌가 보군요."


"현실이 잔혹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생."




검은 양복이 즐겁다는 듯 말을 뱉어냈지만 이미 나는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아무런 대답 없이 우뚝 서서 싯딤의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히비키가 누군가에게 납치 당하는 일 따윈 없었다.


모두가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 곁에 히비키라는 학생은 없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나는 겨우 생각을 추슬렀다.


다른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천천히 몸을 돌려 검은 양복의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선생이여, 돌아가는 길은 부디 평안하길.




검은 양복의 정중한 인사만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조용히 메아리 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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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 기반입니다.

싯딤의 상자를 켜서 학생 리스트를 본 것...

재밌을 줄 알고 썼는데 쓰고 보니 이게 뭔지 싶네요.

부족한 글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