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스토리에서 등장한 '에덴 조약 기구(Eden Treaty Organization)'의 모티브에 대해 추측해보려고 함. 



나는 일섭에 공개된 향후 스토리 전개를 정확히 모르고, 그에 대해 당장 언급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음.


이번 글에서는 오직 '트리니티 회장 나기사가 스토리상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에 근거해서만 추측해볼 것이므로,

향후 전개에 따라 내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틀렸을 수도 있음. 




0. 에덴 조약 기구에 대하여



우선 스토리에서 '에덴 조약 기구'가 언급되는 부분을 다시 살펴보면서, 내가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알리고자 한다. 








에덴 조약 기구란, 끊임없이 충돌하는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중립 기구를 말한다. 




나는 이미 이 시점에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이런 기구가 왜 필요할까?? 





1. 에덴 조약 기구는, 자체적으로 불안정한 구조이며,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지나치게 거추장스럽다. 



두 국가 간 분쟁을 막기 위한 외교적 해결책은 무수히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외교 공관을 설치해서 대사, 공사, 영사 등의 상주 외교관을 파견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 다음 방법으로는, 특히 냉전 시대에 봤던 것처럼, 양국 간 핫라인을 설치하는 것이다. 


또는 판문점의 중립국감시위원회에서 볼 수 있듯,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제3국들이 중재 기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에덴 조약 기구를 살펴보자. 


'양국 간 분쟁을 막는다'는 이유로 '양국의 권한과 책임을 절반씩 쪼갠 중립 위원회'를 결성한다. 



나기사는 "두 학원의 전면전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지만, 그냥 생각해봐도, 전쟁 발발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 


어떤 이유로 전면전을 일으키려 하면, 에덴 조약 기구에서 그냥 탈퇴하기만 하면 된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과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그냥 쿨하게 국제 연맹에서 탈퇴해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에덴 조약 기구가 어떤 '신비'를 동원해서 어느 일방이 '탈퇴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면야 반박할 말은 없지만, 


'탈퇴'는 불가능하더라도, 에덴 조약 기구 안에서 의도적으로 태업과 사보타주를 벌인다든지, 


정보를 속인다든지, 정보를 훔친다든지, 아무튼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악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탁이나 저주에도 여러 가지 '우회로'가 있는 법인데, 제아무리 '신비'를 동원해봤자, 마음만 먹으면 '우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대사관을 짓는 것처럼, 값싸고, 실현하기 쉽고, 효과도 확실한 선행 단계들을 전부 생략하고, 


권한이 너무 약하면 무기력하고 불안정해질 것이고, 권한이 너무 강하면 악용될 수 있는 중립 기구 같은 걸 왜 만드는 것일까? 





2. 에덴 조약 기구(ETO)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는, 설립 목적도 형태 구조도, 너무 다르다. 



우선 문제를 인식했다면, 가설을 세울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에덴 조약 기구(Eden Treaty Organization, 이하 ETO)'라는 용어에 관심이 갔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보려 한다. 



'조약 기구(Treaty Organization)'라는 표현은, 오늘날 세계 각지의 집단방위조약 기구들에 붙는 이름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대서양 조약기구,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줄여서 NATO이지만, 


그 외에도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집단안보 조약기구(CSTO), 동남아시아 조약기구(SEATO), 중앙 조약기구(CENTO) 등등, 


수많은 집단방위조약들이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1. ETO는 트리니티와 게헨나 오직 두 학원을 당사국으로 하므로, 지역 단위의 국가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집단방위조약이 아니다. 


2. ETO의 출범 목적(두 학원의 평화)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교기구를 만들어야지, 군사동맹을 만들 이유가 없다. 


3. 집단방위조약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트리니티와 게헨나 두 학원의 공개적인 가상 적국은 없다. 


4. 에덴 조약을 주도한 총학생회장 입장에서, 초거대 군사동맹을 만들어 키보토스의 힘의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릴 이유가 없다. 



따라서 ETO의 모티브는 NATO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ETO의 모티브를 찾아보자. 



'조약 기구(Treaty Organization)'라는 명칭을 쓰면서도, 


군사동맹으로서의 성격만큼이나 국제정치적 성격까지 강하게 갖고 있는 기구를 찾으면 된다. 



내가 낸 답은 '브뤼셀 조약 기구(Brussels Treaty Organization)'이다. 





3. 브뤼셀 조약 기구, 군사동맹이 아닌 것 같은 군사동맹



1945년, 2차 대전이 끝났다. 나치 독일은 일단 좆망했지만, 이제 유럽에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독일은 1차 대전에서 패망한 뒤로도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프랑스를 좆집으로 삼고 소련마저 반쯤 따먹기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독일이 또 부활할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기존의 군사동맹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47년에 맺어진 것이 됭케르크 조약, 정식 명칭은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 및 상호 지원 조약'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아래와 같다. 


1조. 독일이 또 재군비하겠다고 지랄하면, 우리 둘이 반드시 족쳐버린다.
2조. 우리 둘 중 하나가 독일이랑 전쟁하면, 다른 한쪽도 즉시 참전해서 조져버린다.
3조. 독일에게 부과된 경제적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 우리 중 한쪽이 불이익을 받으면, 다른 한쪽이 즉시 협력해서 조져버린다.
4조. 우리 둘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우리끼리 지속적으로 합의할 거임.
5조. 우리 둘이 서로 통수 때리지 말자.
6조. 이 약속은 50년 동안 유효함. 절교하고 싶으면 1년 전에 미리 서면으로 통지해야 함. 


가상 적국을 '독일'이라고 명시해놓은 상호방위조약이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만 손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때마다, 웬만하면 벨기에를 과속방지턱 삼아 밟으면서 넘어왔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에, 


더 이상 독일군의 과속방지턱이 되기 싫었던 베네룩스 3개국도 포함시켜서 '상호방위조약'을 '집단방위조약'으로 확장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됭케르크 조약의 확장판'이 바로 브뤼셀 조약, 


정식 명칭은 '경제, 사회, 문화 협력 및 집단 자위에 관한 조약'이다. 



그런데 됭케르크 조약과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 대충 아래와 같다. 


1조. 국가 간 경제 정책상의 여러 가지 갈등을 없앰으로써, 유럽의 경제 회복을 촉진시키고 단결한다.
2조.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종 사회 서비스 개발에 최대한 협력한다.
3조. 국가 간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4조. 우리들 중 하나가 유럽에서 무력 공격의 대상이 되면, 이 조약의 모든 참여국들이 원조에 나선다.
5조. 4조로 인해 취해진 조치는 즉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되며, 안보리가 행동에 나서면 즉시 멈춰야 한다.
6조. 우리끼리 서로 통수 때리지 말자.
7조. 이 조약의 모든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이사회를 구성하며, 특히 독일이 또 지랄하면 즉시 이사회가 소집되어야 한다.
8조. (분쟁 조정 과정에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언제 회부할지에 대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항)
9조. 다른 국가도 이 조약에 초대될 수 있으며,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벨기에 정부에 가입서를 제출하도록 하세염.
10조. 이 약속은 50년 간 유효함. 탈퇴하고 싶으면 1년 전에 벨기에 정부에 탈퇴서를 미리 제출해야 됨. 


1년 전에 맺어진 됭케르크 조약은 "독일이 지랄하면 일단 조져버린다"는 존나 살벌한 내용이었는데, 


정작 벨기에에서 맺어진 브뤼셀 조약은 첫 줄에서부터 경제, 사회복지, 문화 교류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물론 조약의 근본적인 성격은 결국 군사동맹이니만큼, 4조 내용이 이 조약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7조 조항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이사회는 단순한 '군사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 최고 선진국인 5개국 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까지 담당하는 존나게 중요한 이사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서측동맹(Western Union), 또는 브뤼셀 조약기구(BTO)라고 불리는 것이다. 



서측동맹 산하에는 서측동맹방위기구(WUDO)라는 군사위원회(위원장은 몽고메리 영국 육군 원수)가 퐁텐블로에 설치되었지만, 


1949년에 북대서양 조약이 체결되면서, 1951년에는 WUDO 전체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로 통합되었다. 


(몽고메리도 NATO 부사령관 자리로 옮겨간다)



결국 군사위원회가 빠져버린 BTO(WU)는, 사회, 보건, 산업, 문화, 교육, 여행 분야에서의 협력과 통합 작업에 앞장서기 시작했는데, 


자세한 사항은 이 1952년 보고서를 참조하면 될 것 같음. 



이후로도 유럽경제협력기구(현재의 OECD), 유럽평의회(지금도 있음),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를 거쳐 현재의 EU가 됨) 등등, 


온갖 국제기구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유럽 통합이 점점 가속화되었고, 


1954년에는 브뤼셀 조약이 수정되어 (옛 전범이었던) 서독과 이탈리아까지 가입하면서, 


서측동맹(브뤼셀 조약기구)은 서유럽 연합(Western European Union, 줄여서 WEU)으로 재편성되었음. 



하지만 서유럽 연합(WEU)에 남아있던 사회, 보건, 문화 위원회 등마저 1960년에 유럽평의회로 이관되면서 사실상 폐쇄 상태였다가,


1984년이 되면, 경제 공동체에서 출발했던 EC와 별개로,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의 통합도 필요로 했기 때문에, 


NATO에 의존하느라 사실상 사문화되어있던 브뤼셀 조약을 로마 선언으로 개같이 부활시켜서, 갑자기 뒤늦은 전성시대를 맞이함. 



1992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유럽 공동체(EC)가 유럽 연합(EU)으로 확대 출범되면서, 


1999년부터는 WEU마저 EU로 점점 흡수 통합되기 시작하더니, 2011년에는 WEU 자체가 완전히 해산되었다. 




영문위키에 있는 유럽연합 역사 타임라인 그림이, 유럽 통합 과정을 가장 깔끔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유럽연합이라는 정치기구 자체의 기원이 '경제기구'였고, '안보기구'는 사실상 NATO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만의 안보기구'였던 WU(BTO)와 WEU의 존재감은 EU와 NATO에게 밀려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진 상황이지만, 


군사동맹에서부터 출발했음에도 정작 사회, 문화 제도 통합에 더 열을 올렸던 특이한 국제기구였다고 할 수 있겠다. 





4. 총학생회장이 만들고자 했던 '에덴'이 '통합된 유럽'이라면



브뤼셀 조약기구가 어떻게 유럽연합으로까지 흡수통합되었는지를 알아보았으니, 


이를 통해서 에덴 조약 기구(ETO)의 성격에 대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겠다. 



만약 ETO의 모티브가 NATO라면, 


트리니티(영국)와 게헨나(독일)가 협력해서 붉은겨울 연방학원(소련)의 침략에 대비하는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체리노 서기장의 잼민성을 볼 때... 그게 과연 개연성이 될까? 



그런데 ETO의 모티브를 BTO라고 생각해보면, 에덴 조약의 체결을 주도한 총학생회장의 원래 의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상 적국에 대한 양대 강대국 간의 적극적인 안보 공조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수천 년 동안 존나게 으르렁대며 싸워왔던 유럽 각국의 제도적 차이를 조정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유럽 국민들의 삶의 질을 동등하게 향상시키고자 노력한 BTO의 사례에서처럼,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사회 문화 교류를 증진시키고,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통합으로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총학생회장의 야망이 단순한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나 군사동맹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트리니티와 게헨나처럼 서로 전혀 닮지 않은 두 정치체를 완전히 화합시키는 것이었다면, 


ETO라는 중립 기구의 존재는 그야말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의도를 나기사도 공유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물론 세이아가 언급한 것처럼, 트리니티와 게헨나가 하루아침에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쩌면 몽상가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유럽 재정 위기와 브렉시트 사태로 알 수 있듯, '통합된 유럽' 또한 결국 몽상가의 허상에 불과할 것일지도 모른다. 



낙원을 실현시키는 방법은 뭘까? 세이아의 말처럼, '최대한의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어야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에덴 조약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앞서 '책임지는 어른상'을 내세웠던 선생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전적으로 저에 순수한 뇌피셜에 100% 근거한 뇌절 급발진 급전개 과대해석 과대망상 글이었읍니다. 


일섭 스포일러는 하지 말아주셧으면 함니다. 



그럼 안뇽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