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특정 성별 사용자가 많은 게임" 이라며 쟁점을 잘못 잡고 있는 문서이다. 이 문장을 바르게 쓰면 이렇게 써야된다:
"특정 성별 사용자가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다뤄지는 게임"
이건 더쿠처럼 익명 기반의 "여초커뮤" 라고 알려진 커뮤니티 사이트들과, 비슷하게 익명 기반이지만 작성자와 작성글이 공개되어 있는 "남초커뮤" 사이의 차이점에서 발생한다. 남초커뮤 이용자라면 이 문장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여초커뮤는 다중계정을 방지할 수 없다"
공적인 문서나 기사 보도에서 이걸 직접적으로 언급할 순 없다. 그래서, 10-30대에선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여초커뮤는 여성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여론몰이가 가능하다"
이는 남초커뮤에서 이런 문제로 돌아온다:
"설거지론", "우영우론" 처럼, 같은 세대의 여성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10-30대의 "젠더갈등" 이 격화될수록 누가 이득을 보는지는, 명확해진다.

<큐라레: 마법도서관>이 검열당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덕" 과 "여덕" 은 하나였다.
경쟁형 멀티플레이어 게임, 구기 스포츠 종목, 접대와 밤문화처럼 대한민국에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주류문화" 가 이어지던 가운데, "하위문화" 라고 불리며 "덕후" 들을 사로잡은 일련의 문화적 흐름이 있었다. 그것이 하위문화를 그대로 옮긴 서브컬쳐(sub-culture)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용하 PD가 아직 머리숱이 상당부분 남아있던 그 시절, 한눈에 봐도 알겠지만 큐라레는 개발자도 이용자도 여성 비율이 상당하던 게임이었다.
https://www.hungryapp.co.kr/bbs/bbs_view.php?bcode=qurare&pid=101718


2015년 유저간담회의 이름인 팬☆티파티를 지은 사람부터 (아마도)팀내 최연소 여덕이었으니, 당시 큐라레를 플레이하던 여성 사서분들의 기상이 어떠했을지는 간담회 이름에서 별을 빼고 다시 소리내어 읽어보면 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블루 아카이브>의 한국서버 초기 운영 중 문제시된 사건들 대부분이 유저와의 소통 문제였고, 공식 커뮤니티 관리자이자 팬☆티파티의 명명자가 있던 시절의 <큐라레: 마법도서관>이 유저와의 소통으로 위기를 버티던 것을 생각하면, 7년 사이에 한국 서브컬처계가 잃어버린 여덕들의 빈 자리가 굉장히 크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다.
예로부터 남덕보다 여덕이 진짜 광기를 보여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 광기에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함께 울다가 웃으며 덕질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그게 한낱 추억으로 버려지기 전까진, 덕후들은 함께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팬☆티파티라니,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말버릇에 별☆이 들어가는 캐릭터라면...


메인스토리 3부, 에덴 조약 편은 프롤로그에서 이어진 총학생회장의 유산 "에덴 조약"을 둘러싸고 "티파티"가 파멸하는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 선 미카는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보다 강하지만 무력하게 감옥에 갇혀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에덴 조약 1~3장 이후의 이야기를 아는 선생님이라면, 이제 에덴 조약 4장의 <잊혀진 신들을 위한 키리에>가 누구를 위한 노래이고 무엇을 바라는 노래인지 깨달을 것이다.





미카는 과거 <큐라레: 마법도서관> 시절의 "소통" 에서 단절되어버린 여사서이자 여선생님들을 그려낸 캐릭터인 셈이다.
그래서 <블루 아카이브>가 벡델테스트 7에서 나머지 문항은 모두 통과해도 4번 문항은 선뜻 통과한다고 대답하기 애매한 데 반해, <큐라레: 마법도서관>은 커뮤니티의 얼굴부터 여성이던 것처럼 7개 문항 전부를 가볍게 통과한다. 그리고 <큐라레: 마법도서관>의 공식 굿즈 또한 2022년의 <블루 아카이브> 선생님들이 보면 긴장할 정도로 비범했는데,

예를 들어 컨베이어 벨트의 그 헨리 포드에 대한 일화를 재해석하며 탄생한 캐릭터 "포드" 는 공식 굿즈에서 마우스패드로 등장했다.


한편 포드는 아이돌 포드의 일러스트가 공개되며 "큐라레의 아이돌은 포드다!" 라는 인기를 끌고, 아서 C. 클라크 원작의 SF소설이자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악역 HAL9000을 기반으로 탄생한 캐릭터 HAAL9000의 수영복 일러스트까지 공개되었을 때, 20세기의 물질과 문화를 대표하며 미래로 앞서간 헨리 포드/아서 C. 클라크처럼 포드/HAAL9000은 선구자적인 인기를 끌며... 여사서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남사서들은 상식을 넘어서는 둘의 모습에 오히려 어색함을 느꼈지만, 여사서들은 일러스트레이터 POPQN 특유의 눈매에 "치여버린" 바람에 덕심으로 코스프레에 도전했다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어 좌절하면서도, 그만큼 존나예쁘단거니까 괜찮아!!! 등의 반응을 보였다.
말 그대로 그땐 그랬다. 해녀복이 찾아오기 전까진.


그 해연갤에서도 그리워할 정도로 예뻐하지만, 예외없이 "한남 죽어", "뇌절하는 개병신", "븅신", "우욱씹" 이라는 반응처럼 여초커뮤니티에 여덕이 발을 들일 자리는 없다. 이는 큐라레가 불명예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들 중 하나, 익명의 제 3자들이 제기한 일러스트 표절시비가 있었고, 얼마 후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게 된 일러스트레이터가 지지를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상대편 일러스트레이터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선 "프리즘 기법의 창안자가 따로 있는가?" 를 둘러싸고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몰아세우고 매장시킬 필요가 있었느냐며, 여초커뮤니티의 사이버불링 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느껴 커뮤니티 자체를 거부하는 작가들이 있을 정도다.
2015년, 여성시대 "대란" 이라 불리는 사건을 시작으로 여초커뮤니티의 지형도는 적극적으로 사이버불링을 감행하며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매장시켜버리는 일이 반복되어 아주 기형적인 구도가 되었다. 익명의 제 3자들, 또는 익명의 더쿠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분명 둘 다 "벗기는 게임" 인데 한쪽은 "빻겜", "빻취" 이며 다른 한쪽은 "여성들의 욕망을 존중한다" 라고 편파적인 인식을 강제받게 된다. 이런 패턴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르의 게임들에서 특정한 취향을 제외하면 모조리 검열당해버린 것처럼, 여초커뮤니티의 사이버불링은 남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을 목표로 익명의 제 3자들이 몰아세우며 사회적 매장과 검열로 끝나게 된다.
그렇게 해연갤과 더쿠처럼 사이트 형태와 리트윗으로 직접 사이버불링을 가하는 트위터리안 형태로, 매사에 사사건건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정작 해온 일은 여성 창작자들을 매장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는 맥락이 손에 잡히게 된다. 익명의 제 3자들이 겨냥한 여성 창작자는 페미니즘을 지지했다면 "아갈페미", 그렇지 않다면 "흉자" 라고 불리며 실제로는 페미니즘은 핑계고, 그래서 페미니스트까지 매장했던거다.
그들이 익명성 뒤에 숨은 특정한 이해관계와 특정한 취향을 공유하는 집단이라면?

마담(madame).
기혼 여성, 또는 성매매알선업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도대체 누가 실제 현실에서 성범죄를 묵인하고, 그로인해 피해입은 여성들을 돕는 데 쓰여야 했을 예산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취했고, 그 모든 과정에 "여성을 위하여" 라는 구호로 증오를 심었는가?


프로젝트mx 팀의 옷을 입고 "강한 마음을 다지러" 나온 용하PD는, <큐라레: 마법도서관> 시절을 회상하며 온몸으로 미장센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미끄러지는 게의 등으로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는 이제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더 전하려는 메세지, 공개된 창구로는 전할 수 없는 성격의 메세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을 사람들은 찾을 수 없는, 게임 안의 이야기에 단서가 있다는 걸지도 모른다.
우연이 겹쳐서 이제야 주목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나, 일본서버에서 에덴 조약의 결말과 클라이언트 파일에 한국어로 남겨진 메세지를 안다면, 에덴 조약이 이사쿠상과 용하PD가 떠나보낸 작은 꿈에 대한 이야기이자, 플레이어 선생님들에게 잊혀진 무언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얼마든지 무엇이라 해석하건 자유지만, 반드시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을 골콩트에게,


에덴 조약 3장의 끝에서 "예술가의 실패에 동의하지 않는 게마트리아가 있다" 라는 단서는 마에스트로에게,













Mr.니콜라이는 페로로지라와 맞서 싸우는 캐릭터이자, 이사쿠상처럼 "애니메이션에 철학을 녹여내려는" 이들의 자화상이자, <선악의 저편>에서 나이 차이를 넘어서서 덕후들이 하나될 수 있게 해준 "진리" 의 상징, 독단주의자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미성년자 여성들의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캐릭터이다. 히후미가 이 얘기를 블랙마켓에서 처음 꺼내고, 대책위원회에서 호시노의 과거 모습을 직접 언급한 캐릭터 노노미의 "최애" 가 바로 Mr.니콜라이라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블루 아카이브>는 프롤로그부터 "이 게임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라는 의문을 이끌어내는 게임이다.
플레이어 "선생님" 은 우리가 아는 권위적이고 지시하는 교사가 아니라, 선생(先生)이란 이름처럼 그저 몇 년 더 일찍 태어난 "인생선배" 에 불과하고, 초인적인 힘과 지성으로 살아가는 "여고생" 과 달리 총 한방도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런 약자라서, "여고생" 들은 약자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처음 만난 사이에도 기꺼이 선생님을 지키러 총을 든다. 이 세계는 약자를 지켜주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라는 사실을 시작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고생" 들이 사는 세계가, 기억하진 못해도 한때 플레이어 "선생님" 이 살았던 세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선생님" 에게 부탁을 건네는 의문의 캐릭터는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지만, 그 뒤로 떠오르는 햇빛처럼 누구보다 당당한 미성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프롤로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는, 총알쯤은 거뜬히 버티는 것이 이 세계의 "여고생" 이란 사실은 프롤로그에서 만난 그 캐릭터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전개로 구성되어 있다.
<블루 아카이브>는 프롤로그에서 현실에 사는 플레이어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으며,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부를 정도로 막역했던 사이인 누군가의 부탁을 이뤄주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 존재로 플레이어의 위치를 설정한다. "일곱 개의 통곡", "뒤틀리고 일그러진 종착지" 등의 지문은 이 과정이 슬프고 괴로운 세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임을 암시하며, 배경음의 분위기와 성우의 연기는 그렇게 뛰어드는 이들을 위한 희망찬 헌사처럼 느껴진다.




현장에서 검거된 현행범이지만?
의대생 + 연대생 + 사회적 유대관계 + 깊이 반성 = 징역 1년
"몰카" 라는 표현부터 "아로나의 깜짝선물 비디오" 도 아니고 불법촬영 불법촬영 평소에 잘만 쓰다가 뜬금없이 왜 "몰카" 인가?
그런 나라에서
"음란물", "청소년유해매체", "왜곡된 성관념", "아.청법 위반"



이거야말로 "사회적 유대관계" 인연스토리 아닌가?
여고생한테 "문어" 에게 착취당하지 말고 거꾸로 잡아먹어라! 라고 하는 게임이 정말로 왜곡된 성 관념을 심어주는가?
애들이 게임하느라 의대도 못가고 연대도 못가게 만들어서 인생 망쳐놓는다! 라는 핑계로 청소년유해매체라 볼 수 있는가?
현실에 없는 여성을 그리면 과중처벌 받아야 하는데?
현실에 있는 여성을 불법촬영하면 훈방조치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미성년 여성들이 여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과연 누구의 논리를 따라야 검열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는가?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공존하고, 모두에게 즐겁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 상식인 세계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시되어 온 미성년 여성들의 서사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아닌가?


블루 아카이브에서 "문어" 를 자기네 로고에 그려둔 기업은 카이저 코퍼레이션 한 곳 뿐이다.
1부 대책위원회 편처럼 "소녀" 들이 싸워야 하는 "바다" 는 현대사회의 자본과 권력을 상징하며,


평범과 비범을 정하듯 건전함과 불건전함도 이들이 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힘은 사실 허위이다.


서류에 서명해서 결재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한테 시장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주체인 소비자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큰 권리인 "불복종" 을 시장경제 안에서 합법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소비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소비하므로, 오히려 권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어른의 카드다.
그래서 자본과 권력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위해 소비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불건전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이런 뻔한 눈속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이해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눈물 흘렸던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1997년에 어른들이 방치해둔 아이들이다.
자본의 논리로 국가의 권력이 붉은 딱지를 붙인 바로 그 집에서, 무력하게 울면서 쫓겨날 수 밖에 없던 아이들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던 밤에 우릴 지켜준 것은 서브컬처였다.
현실이 가르쳐주지 않은 사랑과 정의,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과 자기 능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세상. 동화 속 마법의 세계였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꿈이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달의 요정" 이자 "17살 예비숙녀" 라고 검열해온 세일러문이 사실 자유분방한 중학교 2학년이었음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한 사랑을 추구하며 부조리에 맞서 싸우던 "미소녀 전사" 였음을 우리는 안다. 어른들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숨기려고 했던 가치가 바로 사랑임을 안다.


이 장면을 보라. 선정적인가? 그렇다. 이것은 중학교 2학년 여성의 목욕 장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그림이다. 애니메이션이란 만화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현실에선 그려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수면" 을 그려내어, 이 장면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주는 미장센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 세일러문을 봐온 아이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이 장면은 세라가 "다이어트는 괴로운 일이다" 를 깨닫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사랑하게 되는 장면이다. 학교에선 가르쳐줄 수 없는 사랑을 전해주는 세라의 미소는, 세라가 학생이기 때문에 아이러니를 가지며, 사랑받을 수 없던 시대의 아이들에게 크나큰 희망이 되어주었다.



20여년이 지나도록 현실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악착같이 나라를 살린 엄마아빠는 여전히 가난하고, 손윗누이, 손위형제는 전세난민이고, 어른들은 여전히 어른들이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 못 가진 자는 여전히 같았다. 그저 못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다가 점차 줄어들 뿐이었다. 아직은, 어른들 앞에 서서 꿈꾸는 소녀들이 자길 뽑아달라고 노래하고, 그와 대조적으로 오늘 밤의 주인공은 나라는 소년들의 세상이다. 대한민국의 자랑, K컬쳐의 선두주자를 육성하는 학교에서 부조리가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그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런 세상은 싫어해도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고 존중받듯이, 현실에는 범죄자가 아닌 남성들도 존재하며, 커뮤니티 밖으로 내몰려 사라진 것 같지만 한때 분명히 우리 곁에 있었던 여성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현실을 바꾸는 세상이니까.

서브컬쳐 속의 미성년 여성들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캐릭터" 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꿈",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게 이끌어주었다.
경쟁이 불필요한 세상. 경쟁하더라도 부담없이 웃을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의 눈치도, 어른들이 숨기는 범죄도,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아이들이 나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이들은 미성년 여성들이었고, 1997년의 어른들이 "달의 요정" 이라며 몸을 가리고 조신하게 만들었던 그 여성들의 진짜 이름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은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달려가던 교복 차림의 소녀들이었고,



"미소녀" 라고 해봤자 남성들의 뒤틀린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것 아니냐던 당시의 어른들에게
보란듯이 여성 작가가 여성 캐릭터로 욕망에 충실한 서사를 보여주며, 어른들의 편견조차 과장과 왜곡이라는 만화만의 특징으로 승화시켜 유쾌하게 부숴버리는 캐릭터이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 숭고하게 싸워온 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펜끝에서 다시 그려진 "미소녀 전사" 들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억이, 이 꿈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존나☆아름답잖아요 시발!!!






흩어진 과거의 소중함을 다시 모아 복원하는 이야기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린 마법사와 초인적인 힘만큼 누구보다 넓은 마음의 자매님이 하나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변태적이고 공개된 자리에서 꺼내들기도 부끄러운 <카마수트라>가 경전을 대신하는 것으로 시작된 <덜렁대는 수녀님과 고서관의 마술사>는, 고대어를 읽지 못하는 덕분에 과거의 기록에서부터 자유로운 히나타에게 선생님이 "건네주는" 것으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무시받고, 꺼려지던 존재에게 모두가 터부시한 사랑을 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닮은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먼저 도움을 건네고 그걸 받아들인 덕분에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이야기이다.

<블루 아카이브>는 남성향 게임인가? 아니다. 이 게임은 남성향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조차 유쾌하게 부숴버릴 게임이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큐라레: 마법도서관>이 그랬던 것처럼 <블루 아카이브> 또한 서브컬처의 유구한 맥락을 이어받은 "교복 차림의 미소녀 전사" 들이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여초커뮤에선 더이상 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진리는 잠들어 있을 뿐, 곧 다시 깨어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