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나이 제각각이겠지만 보통 나랑 비슷한 나이대라 치면 현재 부모님들 나이대도 50대쯤 됐을거임. 흔히 우리가 말하는 기성세대라고 하는 세대지.


이번 일 관련해서 ㅈ86이다 뭐다 하면서 기성세대 욕하는데 난 차마 거기에 거들지 못하겠더라. 내 부모님은 저 위에 자리잡고 앉아서 입으로 똥이나 싸재기는 분들이 아니시거든.


특히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진짜 특별한 거 없으신 한 가정의 가장이시다. 낮에는 출근해서 일하시고 저녁에야 온 가족이 만나고 가끔씩 술드시고 늦게 들어와 어머니께 한소리 들으시는, 진짜 평범한 아버지시다.


그럼에도 나에게 아버지는 참 특별한 존재다. 물론 그 어떤 자식이 안 그러겠냐만은, 우리 아버지와 비숫한 나이대의 분들과는 확실히 다르시다는 걸 느끼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가끔씩 이런 말을 꼭 하신다.


'친구 같은 사이였으면 좋겠다.'


아버지와의 나의 나이차는 거의 30년이나 난다. 그런데 저런 말을 꼭 하신다. 그리고 실제로도 매번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최근 관심사에 대해서도 물으신다. 심지어 무슨 게임 하냐고도 물으신다. 물론 대부분의 부자관계가 그렇듯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무얼하든 크게 관여하시지도 않는다. 뭐든 하고 싶은게 있다면, 필요한게 있다면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모두 허락해주신다.


'아빤 어렸을때 할아버지랑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었거든.'

'아빠같이 (부족하게) 살지말라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신다. 어릴 적 딱히 풍족하지도 않은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께선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일터로 뛰어들었다. 축구를 좋아하던 꿈을 접고. 가족을 위해서 바로 사회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물여덟, 또 하나 책임져야할 가족이 생겼다. 가족이 생기자 부득이하게 집은 반지하로 이사가게 되었다. 어둡고 습하고 비가 오면 들이치는 빗물을 걱정해야했지만 단 한번도 불행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는 친한 친구들을 두고 왜 이사를 가야했는지 몰랐지만 전보다 넓은 집과 내 방이 생겼다는 것에 참 감사했다. 비룩 주변에 그 흔한 편의점도 없는 동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참 좋았다.


이사를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된건 내가 대학생이 됐을 쯤이었다. 반지하에 살 당시 친구들을 우리집에 초대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당시 난 반지하인 우리집이 마치 우리들만의 작은 아지트 같아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집이 지하기지 같지 않냐는 자랑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게 아버지 마음에 크게 걸리신 모양이었다. 평생을 반지하에 살 생각은 당연히 아니였지만 그 말을 듣고는 얼른 이 반지하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때부터였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헌신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 게. 대학에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을때도 아버진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하지 않겠니?'


난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처럼 사는게 어때서?' 난 그런 의문만 들었다. 하지만 곰곰히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자신이라는 색깔 위에 가족이라는 색깔을 덧칠하고 계셨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자신의 색을 완전히 잊고 사시고 계셨다. 이따금씩 주말마다 한 채널만 보지 못하고 계속 채널을 돌리시는 것도, 그러다 끝내 지루해 잠들어버리시는 것도, 어쩌면 자신이 뭘 좋아했는지 너무 오랫동안 잊어버리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대가 끝나감을 잘 알고 계셨다. 언제나 뉴스를 보면서도 젊은 세대가 활약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씀하셨고, 언제까지고 아버지와 같은 세대가 자리를 꿰차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셨다. 더 젊고 유능한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본래 생소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생소한 것으로의 변화는 더더욱 경계한다. 변화의 흐름은 젊은 세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흐름은 그 윗세대들에도 전해진다. 당연히 기성 세대들은 이러한 변화를 경계한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인 것도 있고 자신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못하면 뒤쳐지고 만다. 실제로도 요즘 패스트푸드점을 가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앉아 햄버거를 드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분들은 변화에 뒤쳐지지 않고 당당히 두려움을 극복하신 분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기관 및 정부 부처들의 인사들은 대부분이 기성세대에 해당한다. 국가란 집단은 대부분 버수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러한 변화에 잘 움직이지 않으려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게임중독이라는 말도 안되는 명분을 앞세워서 셧다운제를 거한 똥을 싸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은 시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계속 흐른다. 10여년전 셧다운제가 생겼을 당시의 게이머들이 유권자가 되고, 사회의 주계층이 되었으며, 게임을 즐기는 부모가 자식과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도 생겨났다. 이렇게되자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변화는 셧다운제를 부수고 계속 나아가게 됐다.


이번 일도 그와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게관위의 허접한 대처도 결국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한들, 결국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다. 머리가 텅빈 상태로 그냥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그런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만들어온 건 우리 아버지와 같이 자신의 시대가 끝나감을 인정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깨끗하세 비켜주는 사람들이다. 난 그런 기성세대를 존경하고 존중한다. 변화를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괜히 심술만 내면서 변화에 어떻게든 저항하고 방해나 하는 똥싸개들한테는 기성세대라는 말은 과분하기 그지없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었는데 난 솔직히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저 ㅆ새기들이랑 같이 묶여서 욕먹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더라. 한편으로는 우리 아버지 같은 분도 같이 욕먹게 만든 게관위 윗대가리들 다 찢어 죽여버리고 싶거든. 지들도 쫄리겠지. 지들이 생각한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하니까. 한탕 땡기고 조용히 연명이나 하자는 생각 같은데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