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이 정설이 된 지금,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천동설은 그저 폐기된 가설임.


그런데, 이 천동설을 인간 중심적, 종교적 이유로 인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옛날 사람의 미신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음.


하지만, 천동설은 그 당시로는 매우 과학적인 가설이었음.





천동설의 시작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아니라, 관찰자인 나를 기준으로 직관적인 이론을 세우는 것이었음.


허구헌 날 하늘만 보던 고대 천문학자들은 이미 태양과 행성의 움직임을 이미 '보이는 대로' 관측하는 데에 성공했음.




이미 고대에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을 도입했으며


경로가 복잡하긴 해도 보이는 움직임에 대한 설명이 되니 합리적인 가설이었음. 




나중에는 관찰 기술이 더 좋아져, 기존의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가설에 오류가 생기자

"달과 태양만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나머지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절충안까지 나왔음.


그런데 이 절충안을 내놓은 티코 브라헤는 천공설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이런 절충안을 내놓은 게 아님.

이 절충안에서도 천구의 별은 고정되어 있으니, 이 별까지 움직이면 천동설을 폐기하고 지동설을 주장할 셈이었지만


티코 브라헤는 지구가 공전해서 생기는 별의 겉보기 움직임인 '연주시차'를 관찰하는 데에 실패하고 절충안을 내놓음.

왜냐하면 망원경도 없이 16세기에 살던 이 양반이 19세기에나 발견된 연주시차를 관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


즉, 천공설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관찰의 한계, 무지(無知)상태에서의 합리에서 나온 가설이었고,

이 또한 지속적인 관찰과 가설에 대한 피드백은 끊임없이 이어졌음.



그리고 이를 타파한 지동설은

케플러의 대량의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한 케플러의 법칙과 뉴턴의 고전 역학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으로써 세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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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것은 현상을 관찰하고 이에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해 지식을 축적하는 일임.


이런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설을 세우는 합리도 

가설로 세워진 지식의 축적도 

가설을 피드백하는 연산도 아닌



바로 사실을 관찰하는 데에 있음.


관찰된 사실과 확립된 법칙은 서로 순환논증이 될 수밖에 없으며, 사실에 오류나 무지가 있다면 법칙도 틀릴 수밖에 없음.

과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전지(全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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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 앞으로 히마리가 팩트로 리오 발라먹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