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빌리기가 존재하지 않았음

즉, 모든 캐릭터를 자기가 다 키워야 했음


빌리기는 수히나 픽업과 함께 찾아온 첫 카이텐저에서 나온 시스템인데, 정작 카이텐저 특성상 2파티클에 히비키를 2번 쓰는게 정석이라서, 카이텐저 역시 모든 캐릭을 키워야 했음



또한, 모든 캐릭터를 자기가 키워야 하지만, 극도로 제한된 재화량으로 인해 선택적으로 키워야 했음


기본적으로 현상수배 특임이 H까지만 있었고, 게임 초반에는 제대로 된 파밍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


스케줄도 밀트 다 없었음


총력전의 종합 점수 보상도 지금보다 훨씬 낮아서 크레딧 보상이 낮았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감



1. 분재ㅇ게임으로 유명해진 전설의 첫 시가지 시로쿠로 - 하루나, 이즈나 픽업




일배들이 이즈나 뽑고 하코 클만 해도 플래감... 이라고 했지만

719층까지 침수되면서 지게에 태우고 K-총력전의 첫 시작을 알렸음


우선 하루나+이즈나를 필요로 했으며, 거기에 치뎀 토템으로 히비키가 필요했고 코타마를 썼음


히비키가 없거나 스펙이 딸렸다면 힐비키로 불렸던 하나에를 썼음


당시의 시대상은 하루나님 기분에 따라 총력전 침수가 되고 대항전에서 연패하는 등, 모든 것이 하루나님으로부터 정해졌음


지금도 그렇지만 시로쿠로 총력전 핵심은 하루나님이 크리를 띄워주느냐인데, 정작 침수각 보일때 쳐맞는건 하루나가 아니라 이즈나였음


왜냐면 하루나님은 이미 대항전에서 입장권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이즈나는 뽑으면 플래 간다는 할배 말을 믿고 천장쳤더니 오줌각에 시로쿠로 원툴 소리를 쳐 들었기 때문임



범인은 하루나인데 이즈나가 쳐맞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음


아무튼 당시의 대항전은 츠바키 1탱에 하루나 슌 이오리 / 히비키 세리나가 무조건적인 국룰이었고, 따라서 하루나가 먼저 쏴서 츠바키한테 미스를 안 띄우면 이겼고 양쪽 하루나가 서로 슌한테 맞아 죽었다면 강제 3분판이 됐음



하루나는 SR이라 블루아카이브에서 가장 명중률이 높은 무기류지만, 츠바키는 그런거 상관 없어서 하루나는 명중률이 낮다는 음해가 생기기도 했고 저런 콘이 나왔음


참고로, 첫 총력전 시로쿠로에서는 신비 총력전임에도 서버 초기에는 신비 캐릭풀이 딸려서 이오리를 채용했음


하루나, 이오리, 히비키를 채용했다는 것을 잘 기억하면 됨



별개로 당시 유즈단이 새벽마다 이상성욕글을 써대며 바이럴을 했고, 아리스 역시 스토리와 대사, 그리고 일섭에 나온 페로로질라로 바이럴을 했으나...


쓰이는 시점은 저~ 뒤에서나 쓰였고

바이럴 한 센세들 절반은 폐사했음





2. 전설의 야외 좆세드 정공리트 시작 - 모모이 미도리 픽업



시로쿠로 총력전을 보고 아 한섭 센세들은 다 플래티넘에 미친 새끼들이구나 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노힐러 비틀기 또는 단순 크리리트에 가까웠던 시로쿠로와 달리 제대로 된 택틱과 랜덤한 요소로 인한 좆같은 리트가 시작됐음


우선 체리노 출시 이전이기 때문에 덱은 이오리 노노미 미도리 모모이 / 히비키 코타마로 고정이 됐음


시로쿠로 총력전에 이어서 이오리와 히비키가 또 쓰임


여기서는 시로쿠로 총력전의 토템 기능인 하나에와 다르게 광역딜 히비키를 대체할 수가 없었음


또한 이오리를 걸렀다면 바로 ㅈㅈ를 치거나, 하스미를 키워야 했는데


여기서 하스미를 키운 사람들은 안 좋은 최후를 맞이했음

하스미는 트리니티 재화를 먹고, 이 시점에서는 트리니티 재화가 따로 필요한 곳이 없었으나...


아즈사 - 코하루 - 트리니티 수영복 연타에 의해 폐사함



또한 미도리를 걸렀다면 지금도 쓰는 2오리 택틱을 못 써서 답이 없었음


이제 캐릭으로 플래가 다 걸러졌다면 진짜 정공리트의 시작임



우선 보병은 높은 체력과 함께 높은 회피율을 가졌는데

노노미는 낮은 타수와 함께 낮은 명중률을 가졌음


3타격인 체리노보다 리트가 훨씬 더 심함



그리고 오픈 할배들은 지금 와서도 발작할만한 짤임


현상수배 아트폴리싱 마감사수 짜안 이라고 검색해보면 좆같다는 글 많이 나올거임


아무튼 거른 캐릭 없이 정공리트를 성공해서 플래를 챙겼다면, 이제 다시 좆로쿠로 차례임




3. 이즈나 관짝과 이오리 떡상 실내 시로쿠로 - 유즈 아리스 픽업



이즈나는 시로쿠로 원툴이라고 했지만, 한가지 함정이 숨어있음


시로쿠로는 시가지와 실내 지형이 있으며, 이즈나의 시가지는 S지만 실내는 최악인 D임


한섭 센세들은 분명 할배들이 이즈나는 시로쿠로 원툴이라고 해서 뽑았는데, 이오리라는 미친년이 실내지형 가더니 이즈나를 가볍게 찍어누르고 하루나 옆에 서서 딜 2위를 찍어버리는거임


아니 지금은 실내여도 이오리 안쓰고 이즈나 쓰지 않음? 라고 할 수도 있음


근데 이게 지금과는 살짝 거리감이 있는게, 전무 패치 이전의 이오리는 밸런스 붕괴 상태였고 전무 패치로 밸런스를 조절한거임


당장 생각해봐도 이즈나는 전무 중에서 매우 좋은 효율인 치뎀을 받아왔고, 이오리는 총력전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명중률을 받았으며, 거기에 전무 자체 공격력은 특별취급으로 칼질해서 받았음


반대로 말해서 이 밸런스 패치 이전의 이오리의 공격속성은 이중 속성이다, 신비해졌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배딜 박히는 신비맵임에도 불구하고 죄다 썼음


그리고 위에서 설명을 안 했는데, 이로하도 없던 당시에 신비 지역을 밀려면 필요한 캐릭터는 정작 관통캐릭인 이오리였음


자, 이오리를 거르고 하스미를 키운 사람의 최후가 여기서 다시 꼬와짐




그리고 당연히 치뎀 토템 1위인 히비키도 씀



히비키와 이오리는 지역 밀기, 대항전, 첫 시로쿠로, 헤세드, 두번째 시로쿠로 이거 모든 곳에서 다 썼음



그리고 이 시점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시기쯤 게헨나 보라색 BD 8개가 정상적으로 모여서, 게헨나 캐릭터중 하나를 EX5렙 찍어줄 수 있다는 거였음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대상은 하루나였음




애초에 진행되고 있는 총력전이 신비인 시로쿠로이기도 하고, 하루나가 딜량 1위였으며, 무엇보다도 하루나의 EX5렙은 코스트가 4->3으로 줄어들어서 대항전과 총력전 택틱에 변화를 일으켰음


때문에 게헨나 BD를 모아두지 않은 사람은 존나게 비틀거나 오줌으로 떨어지는 최후를 맛봤음


특히 금색 BD 하나가 없어서 념글 가는 사람들은 정말로 보기가 좋았음




4. 그리고 다시 찾아온 야외 헤세드 - 체리노 픽업과 이반쿠팔라



지금도 손꼽히는 혜자 이벤인 이반쿠팔라가 열리면서, 거의 처음으로 오파츠 파밍이 열렸음


보라색 철을 캐느냐, 아니면 한동안 목말라왔던 크레딧을 1억 넘게 캐느냐, 이 둘을 선택해야 했는데


대부분은 당장 급하고 혜자스러웠던 크레딧을 선택했고, 그 대부분은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됨



왜냐면 당장 이즈나 히비키 카린정도 대충 스작할 것만 캤더니, 사키 마리나 이로하 보라색 철을 먹고 나와버림


그리고 보라색 철 파밍은 이반쿠팔라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로하 출시 당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철좀 더 캘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음


이벤트에 관한 내용은 뒤로 하고, 총력전을 보겠음



이 당시 총력전에는 체리노가 나왔지만 체리노가 플래 필수 픽이 아니었는데, 이유는 체리노의 EX레벨을 제대로 올릴 수 없었고, 따라서 코스트가 굉장히 무거웠음


그래서 노노미를 쓰거나 히후미를 써도 무방했음


히후미의 경우 보병 상대로도 명중률이 100%라서 노노미의 상위호환이자 리트 적게 해서 써먹을 수 있었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 총력전 역시

그들이 지배했음




그리고 체리노 애새끼 혐성 논란이 생기면서, 체리노 역바이럴이 나왔고 체리노를 거른다고 하는 센세 무리들이 등장했으나...


그 센세들은 픽뚫 운좋게 한 거 아니면 폐사했을거임


대충 이반쿠팔라쯤 센세들이 70 만렙을 찍어갔고, 60레벨부터 급격하게 늘어나는 학생 경험치에 의해 보고서 부족에 시달렸음


특히 이반쿠팔라로 인해 크레딧은 넘치는데 보고서는 부족했으니 이 차이 때문에 대비가 더 컸을거임



아무튼 총력전이 시로쿠로 - 헤세드 - 시로쿠로 - 헤세드로 반복되자, 또로쿠로 또세드라는 말이 생기고 총력전에 염증을 느낀 센세들에게 한 가지 시련이 내려왔음.




5. 첫 익스트림이자 하코도 좆되는 히에로니무스 - 아즈사, 히비키 픽업



당시에는 예로니무스보단 히에로니무스라는 말로 불렸고, 뉴비들은 당시의 시스템과 지금은 크게 달랐음을 인지해야함


1) 총력전이 신비 - 관통 - 신비 - 관통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폭발 풀의 육성은 당연하게도 기피됐고 성장이 딸렸음


2) 빌리기가 없어서 모든 캐릭을 키워야 하는데


3) 현상수배 후진비틱했다간 1년 차단먹을 정도로 BD가 중요한 시기임. 그만큼 재화가 부족했음

그리고 그 재화는 당연하게도 1)에 따라 하루나 이오리 코타마같은 캐릭에게 들어감


4) 코하루가 존재하지 않았음


5) 여기서 힐러를 키우면 현상수배 스케줄 3갱신 서버주가 아닌 한 미래가 없음



당연히 힐러 육성도 안 됐고 폭발캐 육성도 안 됐고 보고서는 딸리니 하코조차도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고 취급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익스를 깬 지고의 97명이 존재했음


우선 하코의 경우 슌이 필수로 쓰였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고 일배를 원망했음



아니 분명 할배들이 슌은 대항전 전용이고 대항전 버릴거면 상관 없다고 했는데


왜 총력전 필수픽이냐고 ㅋㅋㅋ 라면서 슌 없는 택틱을 찾아다녔음


당연히 폭발 총력전인 만큼



히비키와 함께 아즈사가 인권이었고

원래 미래시에서는 히비키가 이때 올 픽업이 아니었는데 히비키가 없는 짐승을을 위해 용하가 크게 땡겨왔음


아무튼 하코조차도 많은 센세들이 이새끼 왤케 쎔 하면서 세리나 스작 이것도 되냐고 물어보고


슌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함? 이라고 물었으나 

받는 답변은 "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음?" 이거였음





자, 그리고 지고의 97명

지금으로 따지면 코하루 수노미 수시노 아코 온도카에 아리우스 스쿼드 빼고 인세인 클 해보면 됨 ㅇㅇ


아니 그게 뭔 개소리냐, 인세인인데 경장딜러가 버티겠냐 싶겠지만

당시의 익스트림 딜이 딱 그랬음


익스트림에서 버티려면 서브 탱커도 아니고 순수 메인 탱커를 파티마다 최소 1명씩 박고, 광역 힐러와 등불 전용 단일 힐러를 구분해서 육성해서 스페셜 두명을 힐러 자리로 채우고, 코스트 많으면 힐 돌아오는 시간이 딸려서 뒤져버리니 파티마다 코스트 분배도 필요했음


근데 다시 말하지만 이 시점의 일반적인 유저들은 당장 하코 파티에 쓸 보고서도 꽤 딸렸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힐러는 트리니티와 게헨나고 여기서 힐러에 재화를 써버리면 이후 오는 한정 인권캐 4명 수영복 트리니티와 게헨나를 감당할 수 없었음


또한 첫 예로니무스가 열리던 주에 5T 시계가 풀렸는데, 이때의 2배 이벤트는 특임이었음


즉, 익스를 깰 사람들은 보고서가 부족한 상황에서 특임 2배도 버리고 9충씩 하면서 이벤 없는 5T시계를 캐는 광기짓을 했어야 했음


익스를 깨면 념글 확정이었음




이후 내용은 나중에 시간 나면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