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건...!!」

한산한 가게 안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외쳤다. 오늘도 나 말고는 손님이 보이지 않는 편의점 『엔젤24』의 계산대에서 나는 몸을 움찔거리게 만든 「물건」과 마주보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코르크 마개, 라벨이 붙어 있는 병. 그리고 그 안에는 붉은 검은색 액체.

그렇다, 와인이다..

「이, 이거, 왠일로...?」

「오늘 도착한 상품중에, 왠진 몰라도 섞여있었어요... 주문한 기억이 없는데... 아마 이건 안 팔릴 것 같으니, 선생님이 받아주세요.」

카운터 너머로 엔젤24의 점원 소라가 내게 말한다. 금발, 파란 눈, 넓은 이마가 특징인 그녀는 이제 신의 사자처럼 보였다.

「저, 정말...?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

병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선다. 지금이라도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다.

왜 나는 와인 한 병에 이토록 기뻐하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이곳 키보토스에서는 술을 거의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키보토스의 주민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반강제적으로 술을 끊는 생활은 힘들었다. 술을 사다가 마실까도 생각해봤지만, 샬레에서의 일이 너무 바빴고, 함께 마실 수 있는 상대라 해봤자 검은 양복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검은 양복과 술 한잔을 한다는 건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오늘은 일도 적겠다, 일찍 퇴근해서 저녁에 술 한잔 마시면서 멋좀 부려볼까!)

순식간에 샬레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손에 든 병은 일단 책상 한쪽에 놓아두었다.

와인은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업무에 대한 의욕이 샘솟는다.

「좋아, 열심히 하자!!」

양손으로 뺨을 두드리면서 기합을 준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시계바늘이 빠르게 돌아가고, 사무실에도 붉게 물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할 때쯤.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거의 다 끝날 무렵...

「선생님,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급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모모톡의 알림음이 조용한 방에 울려 퍼진다. 발신자는 티파티의 호스트인 키리후지 나기사였다.

솔직히 별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 내 머릿속은 이미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사온 안주와 함께 코르크 마개를 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다.

무엇보다 학생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내 대응이 늦어져서 치명적인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모모톡을 열어 나가사에게 바로 갈 것임을 알린다. 그리고 재빨리 외출 준비를 하고 샬레 사무실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 끝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난 충격으로 책상에 있던 메모가 와인병 쪽으로 나풀거리고 있던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메모에는, 책상에 정리한 서류를 보낼 곳을 나타내는 「유우카, 노아에게」라는 글자.

이것이, 비극의 방아쇠였다.


「선생님, 계세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 어디 가신건가요...?」

「후훗, 유우카짱, 유감이네요.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서♪」

「따, 딱히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나와 노아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샬레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목적은 세미나 업무상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한 것이지 결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선생님이 이 시간에 안 계신 건 드문 일이네요. 보통 이 시간에는 일을 하고 계실텐데...」

「맞아, 계산 밖이었어... 어쩌지, 서류는 오늘 중으로 받고 싶은데... 여기서 기다릴까.」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하며 노아를 바라보니, 노아는 선생님의 책상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노아가 보여준 것은 라벨이 붙은 병이었다. 실물을 본 경험이 부족한 나라도 왠지 모르게 그것이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거 와인이잖아?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닌데.」

「하지만, 우리한테 보내는 거라고 적혀 있잖아요?」

노아의 시선 끝에 있는,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확실히 「유우카, 노아에게」라고 적힌 메모가 있었다. 아무리 삐뚤어진 부분이 있는 선생님이라도 미성년자인 우리에게 술을 권하는 일은 안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선생님께서 「다음에 주고 싶은게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아마 이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을까. 마음대로 마셔버리는건」

「괜찮아요, 우리한테 주는 거니까요. 선생님이 돌아오기 전에 조금만 마시면 돼요♪」

아무리 우리한테 주는 거라지만, 마음대로 마신다는 것은 조금 꺼림칙하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노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렇게 물었다.

「유우카짱은 이거 신경 쓰이지 않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오히려 꽤 신경이 쓰인다. 다만, 죄책감과 노아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면, 저 혼자 마셔야겠네요...」

「잠깐, 잠깐만! 이제 알겠으니까, 나도 마실게! 그걸로 된거지!?」

「그래야 유우카짱이죠♪」

한 번 브레이크가 풀리면 더 이상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원래 나 역시 신경이 쓰이고 있었으니까.

노아와 둘이서 준비를 한다. 코르크 마개를 여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선생님이 기구를 준비해 주셨기 때문에 어떻게든 열 수 있었다.

「냄새는... 포도 향일까요? 왠지 이상한 향이 나네요.」

병에 있던 조금 세련된 유리잔에 두 사람 분량을 부어 넣었다. 술은 아니지만 분위기상으로는 어른이 된 기분이다.

「그러면 노아, 건배」

「네, 건배, 네요.」

'짠'하는 기분 좋은 소리. 잔에 담긴 액체를 나는 한숨에 마셨다.

(새, 생각보다 쓰다.... 근데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그리고, 머리가, 둥실둥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내 의식은 거기서 끊어졌다.


(시간이 늦었네...)

나기사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는 빨리 샬레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기사의 용건은 에덴 조약과 얽힌 아리우스 관련 뒷처리 문제였고, 나로서도 중요도가 높은 안건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는 길에 붉게 물들었던 하늘도 이제는 완전히 검게 물들어 버렸다.

(드디어 도착이다... 아, 전기가....)

나갈 때 끄고 왔을터인 전기가 켜져 있는 것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샬레의 사무실에는 기본적으로 나 혼자만 있다. 따라서 전기가 켜져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방에 있다는 뜻이다. 학생중에 누군가가 찾아온 것일까?

(이런, 술을 두고 왔는데... 뭐, 괜찮겠지...)

서둘러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나 왔어-, 으, 으와악!?」

문을 여는 순간, 복부에 충격이 온다. 순간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한 걸로 착각했지만, 습격자는 해를 가해오지 않고 내 등 쪽에 손을 돌려 안아주었다.

「서-언-생-님, 어디 가셨던거에요!!」

「어레, 잠깐, 유우카!? 뭐야, 무슨일!?」

「지금 질문하고 있는건 저에요~! 대답하지 않으면 더 껴안고 있을거니까요-!」

「잠깐만, 가까워, 가깝다고!」

습격범의 정체는 유우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고, 얼굴도 붉은데다가, 발음도 제대로 안된다.

왠지 낯익은 증상에 뇌 속에서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혹시 유우카... 내 술을 마신거야!?」

「...에?」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유우카. 평소보다 힘이 빠진 표정이었지만, 평소보다 더 붉어진 얼굴과 함께 유난히 매혹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은, 떨어져...!」

억지로 유우카를 떼어낸다. 뭐랄까, 지금의 유우카는 위험하다.

「어라,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시네요...?」

유우카는 고개를 흔들며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틀림없이, 유우카는 그 술을 마신거다. 설마 유우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위에 두고 나간 나한테도 잘못이 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겠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어라, 노아도 있었구나...?」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의자에 앉아 잔에 담긴 와인을 마시고 있는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노아도 와인을 마셨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다행이네. 노아는 괜찮아 보이고...」

「당연하죠, 뭐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건 저니까요. 취한 상태의 유우카짱도 귀엽지 않나요?」

「그, 그건... 잠깐, 지금 뭐라고!?」

왠지 귀에 거슬리는 대사가 들린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질문하기 전에 노아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선생님, 아까 유우카짱에게 설렜었죠. 이건 안 돼요. 그러니 저한테도 포옹을 요구할게요.」

「어라, 혹시 노아도 술에 취한걸까, 이건!」

구원의 천사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오히려 파멸을 가져오는 작은 악마였다. 게다가 자신이 함께 파멸하는 타입.

「일단 물부터...」

「서-언-생-님-, 어디로 가시는 거에요~? 놓치지 않을거니까요~?」

「안 돼요 선생님, 도망치시다니. 어서, 빨리 안아주세요.」

「놔줘...랄까, 힘 세네!?」

슬프게도, 헤일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힘으로 두 사람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허리와 어깨를 잡힌채 억지로 방 한가운데로, 취객의 세계로 끌려간다. 그렇지만 노아가 조금 무섭다.

「음후후, 선생님, 좋은 냄새-」

「이게 선생님의 등... 튼튼하고, 왠지...」

배에는 유우카, 등에는 노아가 달라붙어 셋이서 풍댕이 상태. 뭐랄까, 매우 심장에 좋지 않다. 떨쳐내려고 해도 두 사람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어서, 움직일 수 없다.

여자 특유의 달콤한 향기와, 술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미쳐버릴 것 같다.

(어, 어떻게든 해야만...)

머리를 굴려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유우카짱, 손 좀 치워주세요. 제가 선생님에게 달라붙을 수가 없잖아요.」

「안 돼, 선생님은 내 거니까. 노아에게도 주지 않을거야.」

어느새 두 사람의 사이도 험악해지는데... 랄까, 이거다!

「후, 둘이서 가위바위보를 해가지고 이긴 쪽을 안아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좋아요.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드릴게요.」

「흠흠, 내가 질 리가 없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튀는 불꽃을 뒤로하고 서둘러 물을 준비한다. 돌아왔을 때 이미 승부는 주먹다짐이 되어 있었다. 뭐, 따끈따끈이라는 의성어가 어울릴 정도로 귀여운 싸움이었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내 거니까~!」

「선생님은, 제 거에요...! 유우카짱한테도 주지 않을 거에요...!」

그 후, 두 사람을 달래서 요구대로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평소의 활약을 칭찬해주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 잠이 들었다. 그토록 싸웠던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잠든 모습은 정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천진난만한 잠든 모습만 봐서는 방금 전의 폭풍 같은 시간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아-. 피곤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토록 기대했던 술은, 거의 다 비어 있었다. 더 이상 화를 낼 힘도 나지 않는다.

「이정도는, 용서해주라...」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누가 묻지도 않은 변명을 중얼거리며 행복하게 잠든 두 사람의 잠든 얼굴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다음날 아침. 샬레의 낮잠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렇게 샬레의 낮잠실에서 자고 있었을까...?」

「어제는 분명히,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가, 그리고...?」

「내가 돌아왔을 때는, 둘 다 소파에서 자고 있었어. 아마 피곤했나봐.」

두 사람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굳이 상기시킬 필요도 없다. 어제 찍은 사진과 함께 그 사건은 무덤까지 가져가자.

여기 온 목적이라는 서류를 건네고 두 사람을 돌려보낸다. 어제는 거의 잠도 못 잤으니 이제부터 낮잠이라도 잘까. 술은 결국 마시지 못했지만, 뭐, 그 사진 한 장과 맞바꿀 수 있다면 싸게 먹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

「,,,저기, 노아.」

「네, 무슨 일인가요, 유우카짱.」

「어제 일 말이야...」

「어제 일, 말인가요」

「...왜 그래 노아, 얼굴 빨개지고는.」

「그런 유우카짱이야말로」

「.........」

「.........」

「「하아...」」

「술은, 아직 우리한테는 이른 것(같네요)같아…」


원본

번역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