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피폐장르





















글자수 20014자

원제목 楽園はあったよ

원본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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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를 마녀로 만들어 줘.』

사람을 죽여버린 미카와 미카를 구원하고 싶은 선생님의 이야기

- 작가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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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 살인을 저질러버린 것 같아."


어둠이 하늘에 펼쳐진 시각.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정적의 시간.

무기질적이고 사무적인 샬레의 사무실에서 자료더미나 내용물 없는 캔의 음료가 여기저기 보이는 인간적인 장소에서 선생님에게 나는 말했다.

일의 중대성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아니였다.

아직도 스스로도 당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살인했다는 말의 무게에 맞지않게, 나는 조금 히죽히죽 웃었고 뺨을 긁적였다.

선생님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내 말을 들은 후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멈추고 시선이 나를 향한 뒤 중력을 따라 아래로 이동하며 차가운 침묵이 찾아오고, 나는 그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 무슨 소리야?"


충분히 생각하고나서 쥐어짜낸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갑작스러운 고백, 그것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라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든 이해하는 데 시간을 갖고 마음 속으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나, 아까 사람을 죽였어."

"그러니까... 어쩌다 그랬어?"


"농담 아니야?"라는 확인이 없는 것은 내 표정을 보았기 때문일까.

힐끔 옆에 있는 전신거울을 보자, 이미 나는 모든 것을 깨닫고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포자기한 듯 비웃음을 머금고, 반항하는 듯 시선을 비스듬히 아래로 향하고 있고, 어깨의 힘은 조금 빠져서... 아아, 지쳤구나, 라고 무언가 알아버렸다.


"...... 니까."

"... 뭐?"


"선생님을 바보취급하는 놈이 있었으니까!"


... 하지만, 그런 피로도 분노라고 하는 연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그것을 더듬자 머릿속의 광경은 선명해지고, 냉정함은 지우고 아드레날린은 분비시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를 죽였을 뿐이야!"


입에 담기는 커녕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조차 꺼려지는 추악함을 분노에 맡겨 토로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선생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냉정하도록... 아니, 선생님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어리석은 존재지만, 선생님을 바보취급한 정도로 사람을 죽인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비록 화가 나더라도, 회피주의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끝나기 일쑤다.

하지만, 무엇이든 사물에 있어 허용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무슨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 선생님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꽤 오래 전부터 따돌림이 매우 과격해졌어."


괴롭힘을 당하고도 아무 말 않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반응을 보니 더 해도 괜찮다고 느꼈는지는 몰라도, 날이 갈수록 괴롭힘은 빈도, 내용, 규모 등 모든 면에서 격화되어갔다.

처음에는 뒷담화를 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물건을 숨기거나 물을 뿌리기도 하고, 특히 선생님이 사 주신 수영복을 찢겼을 때는 잊을 수 없었다.

그 때는 참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켰다가 이후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참아왔지만, 마침내 그것도 한계가 찾아왔다.

완전히 일상이 되어버린 나의 괴롭힘은 바깥 시선을 신경쓰기는 해도 당당해졌고,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괴롭힘은 내 허용량을 가볍게 초월하는 것이였기에 지금 생각해도 정서가 불안해지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 여러가지로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려서."


내가 선생님과 자주 다니는 것은 꽤 유명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괴롭힘 후에, "나도 샬레의 선생님이 이것저것 해줬으면 좋겠다~"나 "선생님에게 미카가 괴롭혔다고 신고해버릴까."라는 식으로.

화살의 초점이 내게서 선생님으로 돌려졌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을 뺏길까봐, 선생님에게 미움받을까봐.

냉정하게 생각하면 선생님은 타인의 옳고 그름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허위 신고도 증거 없이는 믿지 않을 것이다.

뭣하면 그 때는 아무 일 없이 넘기고 나중에 선생님에게 말하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1%라도 선생님을 빼앗기거나 미움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어떨까.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보니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후회하지 않았다.

머리에 피가 쏠려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냉정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실실 웃으며 넘어가는 나로 있고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리였다, 참을 수 없었다.

저런 놈한테 선생님을 뺏긴다고 상상만 해도 미칠 것 같았다.

이 살인은 도덕적으로는 틀려도 윤리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다,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강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여러 괴롭힘을 당하고도 반골정신으로 굴복하지 않고 태연했지만, 끝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인 선생님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어리석도 유치한 행동일지라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분노는 한계를 뚫고 죽이는 판단에 이르게 했다.

때리고, 때리고, 지금까지의 괴로움을 극한까지 보여주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목을 조르고 서서히 죽였다... 라고, 내 목을 양손으로 잡으면서 선생님에게 일의 경과를 설명하며, 속마음을 은폐했다.

그것은 설명하는 나의 영혼의 목을 조르는 행위의 비유이자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부연 설명이기도 했다.


"... 미안해요."


나는 누구의 목을 졸랐을까?

선생님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선생님에게 미움받을수도 있는 요소의 목을 졸랐지만, 그 결과 이렇게 된다면 결국 선생님에게 미움받을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의 목을 졸랐을까?

나는 나 말고 다른 누군가의 목을 졸랐다고 생각했지만, 거울에 비치는 나는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미안, 해요..."


사람을 죽인 나는 내 무기를 회수하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나로서는 그 살인에 정당성이 얼마나 있을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보면 금기나 다름없는 짓이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탓할까봐 두려웠고,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추궁당하는 책임이 두려워서 어쨌든 멀리 도망쳤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도망한 곳은 아무도 없는 폐허도 아니고, 나 이외에도 여러 범죄자들이 난무하는 블랙마켓도 아니었다.

숨을 헐떡이며 내가 도망친 곳은 범죄라는 것과는 반대 극에 존재하는 듯한 선생님이 있는 샬레였다.


"미안, 해, 요...!"


선생님을 위해서, 선생님을 생각해서 계속 행동해왔는데, 결국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고, 눈이 흐릿해지고 아프고, 앞이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었다.

왜 나는 항상 이럴까, 누군가에게 폐만 끼치고, 누군가에게 버팀목이나 희망이 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딱히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당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하지만 그 평범한 생활조차 서투른 나로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에덴조약이 맺어져 갈 때부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까지 가고 게헨나를 끌어들여 트리니티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렇게 눈에 띈 내가 아직 트리니티에서 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왠지 이상한 이야기였고, 좋은 박해의 대상이었다.

에덴조약의 소동이 끝난 후, 나를 박해하고 싶은 사람은 나를 공격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생'이 이미 되어있었다.

당연하다, 그 정도의 일을 이미 저질렀다.

나 자신도 그것을 절대 부정할 수는 없고, 거기서 반격한다면 나는 또다시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이미 끝났다.

내게 남겨진 길은 평생 괴롭힘당하는 절망의 길이거나, 다시 악인이 되는 어리석은 자의 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은 자의 길을 택했을 뿐이다.

나는 어떻게 보면 순리대로 된 것이다.


"흐윽..."


눈물을 닦으면 닦을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쁜 것은 전부 나지만, 선택한 것도 전부 나지만, 그래도 인생이라는 녀석은 나에게 어려운 환경을 줬다.

내가 게헨나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은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의 복선이었다.

나에게 남다른 무력이 있던 것은 그것을 선동하는 무대장치일 뿐이었다.

현실과 사회 앞에서 개인의 힘과 마음은 먼지와도 같았고, 압도적인 숫자와 선생님 앞에서는 자랑하던 무력도 공허와 같았다.

그렇게 여러가지 일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게헨나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순순히 게헨나를 싫어했고, 공주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어떻게 보면 돋보이는 문제아였다.

깔려있는 레일 위를 유유히 걸어간 끝에 도달한 것은 티파티라는 권력의 덩어리.

거기서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진 나의 말로가 이것이었다.

쌓이디 쌓인 원망과 지나친 자신감을 낳을만큼 뛰어난 무력은 남겨진 나의 단점이었다.

미웠다.

이런 비상식적인 현실이, 이런 쓸데없는 것만을 주는 삶이, 이런 화풀이같은 생각을 하게되는 나 자신이 미웠다.


"... 도망치자, 미카."


"... 뭐?"

"지금 당장 도망치자,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있을 때 갑자기 범죄의 한 가운데 중심지로 가는 길이 보였다.

지금부터?

어디로?

예상하지 못한 미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을 조력하는 것이 선생님이라는 엄청난 사실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카, 휴대전화는 가지고 있어?"

"... 어, 응."

"그럼 휴대전화는 여기 두고 가자. 귀중한 정보망을 잃는 건 뼈아프지만 내 것도 두고 갈게."


일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나는 그저 말이 나오지 않고 눈만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 어째서?"

"응? 그야 휴대전화를 가져가면 위치 정보로 들킬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왜 나를 돕는거야?"


넌지시 그건 범죄에 조력하는 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나쁜 일이다.

거기다 그것과는 별개로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가담하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와 선생님은 짊어진 것도 잃을 것도 월등히 다르고, 모든 것을 잃은 상태인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거의 아무것도 변치 않는다.

내 평가치를 0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악행을 거듭해도 그 0이 0인채로 있거나 -1이 되는, 그런 사소한 부분밖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르다, 여러 지역 학생들의 두터운 인망과, 역경이 닥쳐와도 뒤집을 정도의 힘이 있다.

그만큼 막강하고 고귀한 존재가 단 한명의 어쩔 수 없는 범죄자에게 가담해 스스로도 범죄자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그저 좋다고 할 정도로 나는 자만하지 않았고 이유를 물었다.


"... 딱히 깊은 이유는 없어. 단지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미카가 이대로 붙잡혀 단죄당하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을 뿐. 미카가 아무리 반성해도 이 길을 걷는 미카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힘껏 반항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의연한 태도로 선생님이 일어섰다.


"그리고, 공주를 지키는 기사 역할도 해보고 싶었거든."


나이에 맞지 않는 대사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눈물이 또 흘러나왔다.


"자, 울고있을 겨를은 없어. 빨리 여기서 나가자."


그 말을 듣고 내 몸에는 맞지않는 헐렁한 후드티를 건네받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내 머리는 눈에 띄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기 위해 후드를 쓰라고 하는 것 같았다.


"... 선생님 냄새."


그것을 입고나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체형보다 큰 소매부분에 얼굴을 갖다대면 참을 수 없을만큼 뇌를 미치게 하는 냄새가 코를 지나갔다.

게다가 너덜너덜해진 내 옷을 벗고 거주구에 있던 누구 것인지 모를 치마를 빌려 즉흥적인 코디를 선생님에게 선보이니 기분은 마치 데이트같았다.

"선생님, 어때?라고 물으면 "좋은 느낌"이라는 무엇에 대해서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 분명 그것은 변장에 대한 것이겠지만.


"여러 생각을 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하고싶지 않아, 공범 관계가 되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트리니티에서 먼 곳으로 가자."


그 말과 함께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절대 빠르지 않은, 서로가 지치지 않으려는 위로와 오래 달릴 것을 내다본 체력관리가 섞인 달리기.

소매 나머지 부분에서 연결되는 손과 손의 힘은 강하고, 앞을 달리는 조금 큰 가방을 든 선생님의 의지도 강해보였다.


아아, 구제할 길이 없네.


누구를 향한 말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이 나를 도와도 결말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을 죽인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아무리 선생님이 나를 지키는 성명을 내도, 살인을 뒤집을만한 힘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된다.

그것이 올바른 윤리관이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용서한다면 그것은 암묵적으로 살인을 용서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규칙도 윤리도 의미없어진다.

하지만 의미가 아예 없는것은 아니다.

선생님이 나를 도우면서, 거의 정해져있던 최후에 이르는 과정이 많이 달라졌다.

최후의 만찬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비슷한 최후의 저항의 데이트.

데이트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살벌하고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강하게 잡은 이 손은 틀림없는 낭만의 증거로, 우리는 지금 분명히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같은 마음을 품고 나아가고 있었다.

이럴 때 생각날 것이 아니고, 이럴 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럴 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과 함께 나쁜 짓을 하고 도망치는 이 배덕감은 무척 두근거렸다.

세계를 적으로 돌린 절망이 세계가 적이여도 좋다는 희망으로 바뀌는 이 전능감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선생님이 범죄자가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만을 마주하고 있었다.

독점이다, 모두의 선생님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만의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아아, 나, 살인하길 잘한 것 같아.


선생님에게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분명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둘만의 위험한 비밀의 공유... 이런 일을 하고 설레지 않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전능감 앞에서 모든 것이 빛나보였다.

물론 도망치는 것에는 필사적이다.

하지만 그것에 퇴폐적인 유흥이 섞여, 좋지 않은 감정을 누리고 만다.


"아, 역시... 아니다, 됐어."


마음 속에서 말로 꺼내기도 귀찮을 정도로 당연했다.

새삼스레 재확인할 수준도 아니였다.


"나, 마녀가 맞구나..."


그 말은 선생님에게 닿기도 전에 살며시 사라졌다.

다만, 내가 무슨 말을 한 줄 알고 뒤돌아본 선생님의 그 알 수 없는 얼굴은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다.






"아하하... 역시 노숙이 되어버렸네."

"... 그러게, 어디 호텔같은 데 묵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 밤, 우리는 폐허의 한 방에서 달빛을 받으며 빵을 먹었다.

여기 오기 전 선생님은 편의점에서 대량의 식량을 사서 가방에 넣고 있었다.

분명 선생님은 오랫동안 투쟁할 생각이겠지, 그러니까 나는 군말없이 선생님을 따른다.


"어디에 남의 눈이 있을 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지."


호텔에 묵으려면 쉽게 묵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네트워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으로 호텔에 묵는다는 행위는 그 네트워크에 관련된 리스크가 너무 높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사람을 죽인 나는 이제 트리니티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다지 의지가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발키리에서도 수사할 것이고, 트리니티에는 우수한 아이들이 많다.

도망친 나를 찾기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보망을 넓혀 감시의 눈을 좁힐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투숙객의 기록이 남는 호텔이나 여관 등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이용한 것을 눈치채고 발자취를 밟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 그래도, 선생님도 알고 있었지? 이런 랜턴같은 것까지도 가져왔고."

"조금은... 그래도 미카가 좀 더 불편함 없는 생활을 해줬으면 했어."


우리 앞에 놓인 손잡이를 돌리면 충전이 되는 라이트로 눈을 돌렸다.

랜턴처럼 360도 빛을 비춰주는 훌륭한 물건으로, 이것이 있기 때문에 밤의 폐허여도 캄캄하지 않았다.

원래는 전력을 어떤 식으로든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비상용으로 갖고있던 것 같은데, 설마 선생님도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는데?"


바닥에 앉아 랜턴형 라이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선생님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살인의 책임에서 도망친 그 순간부터 앞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의미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

무려 그 선생님이 나를 따라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디든 만족한다.


"정들면 고향이지."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선생님이 들고있는 빵을 가르켰다.


"그것 좀 줄래?"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지금을 즐길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 아~"


선생님도 특별히 신경쓰는 기색없이 내 입에 빵을 가까이 가져다줘서 기분이 좋았다.

굳이 베어물은 부분을 한 입 먹으면 퍼지는 왠지 그리는 크림의 맛에 살짝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트리니티에 있을때도 롤케이크를 싫어할 정도로 먹었기 때문에 이 단맛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왠지 '그 때'가 그리워져서 눈물이 뚝뚝 흘렸다.


"... 미카?"

"응? 왜?"


선생님에게는 이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고 태연한 척 했다.

이 눈물은 형체가 남은 추억으로, 나에게 트리니티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눈물은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 눈물이 난다는 것은 역시 나는 후회하고 있다고, 잃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역시 잃을 것이 있다고, 선생님과의 이 시간이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빵도 궁금해? 자, 아~"


눈물 이야기를 시작해도 곤란했기 때문에, 나는 억지로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간접키스로 쑥쓰러워한다던지 하는 반응은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었다.



"잘 자, 선생님."

"응, 잘 자."


폐허에 와서 지은 텐트 안에서 등을 돌리고 말을 나눴다.

시각은 딱 0시가 넘은 정도.

선생님과의 수다도 적당히 끝내고 슬슬 자야할 시간이 왔다.

여기서는 딱히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자는 시간은 대부분 이 근처.

그래서 그에 따라 우리도 누웠다.


"... 저기, 선생님."


단지 그렇다고 쉽게 잠들 수 있을리도 없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 후회하지 않아? 나랑 같이 도망친 거."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선생님이 따라와 주어서 기뻤고, 선생님의 마음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선생님에게 폐를 끼친 것이나 다름없고, 선생님의 이 행동도 반쯤은 충동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후회해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계속 불편하게 생활해야 하고, 앞으로 계속 범죄자 신분이고, 앞으로 계속 나와 둘이서만 지내야 한다.

선생님에게는 마이너스 요소밖에 없었다.


"후회하지 않아."


"!"

"후회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선생님은 즉답했다.

속이려는 기색 없는 태도와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나는 내 의지로 미카와 도망쳤어, 그러니까 괜찮아. 세계가 미카를 이해해줄 때까지, 계속 도망치자."


정말... 선생님의 그런 부분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착각하게 되어버리잖아.

그런 말을 들으면 참을 수 없어질 것만 같잖아.


"... 미카?"

"... 부탁이야. 오늘은 이대로 있게 해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선생님의 등을 껴안았다.

지금이라면 된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는다.

아플 정도로 껴안고, 선생님의 냄새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묻고 그대로 꾹꾹 눌러댔다.

나는 행복했다.

그런 감정을 느낄수록 살인의 책임이 무서워졌다.

누군가에게 붙잡히는 순간 나는 지옥행이고, 이 행복과도 평생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싫다.


실제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확신하는 것.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이, 붙잡은 유일한 빛줄기가, 그 끝에 달린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나는 믿고 나아가야 했다.

그 곳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어떤 적이 있어도, 나는... 아니, '우리'의 길을 가야 했다.


... 예를 들어, 윤리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볼 일은 거의 없고 도피생활을 한 지 며칠 지났는지 세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해서 일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아마 일주일은 조금 넘었을 것 같았다.


"흥흐~응"


그리고 나는 지금 폐허에서 우리가 쓰는 방의 청소를 하고 있었다.

트리니티 봉사활동으로 청소를 하던 것은 멋이 아니라 괜히 익숙했고, 그것이 매일 계속되면 즐거움 같은 것도 생겼다.

요즘은 방이 깨끗해지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아서, 지금은 이 방도 완전히 깨끗하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았다.


"하아~ 한가하네."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역시 도피생활은 한가했다.

행동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오락 시설 같은 것도 이용할 수 없고, 휴대전화도 두고와서 쓸 수 없다.

폐허 속을 탐색해봤자 별 것도 없고, 방 청소도 곧 끝난다.

딱히 다른 것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한가한 건 한가한 거다.

선생님이 있다면 그것도 해결이지만, 정작 선생님이 지금 잠깐 외출한 상태라서 어떻게 할 지 고민이었다.


"... 카! 미카!"

"아, 선생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 복도로 뛰쳐나갔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선생님에게 향했다.


"미카, 무사해?!"


... 라고 필사적인 얼굴로 내 안부를 확인하고 있어서 짐작했다.

지루한 날들은, 아무래도 끝나버린 것 같았다.



"그렇... 구나..."

"미안해..."


"내가 선생님을 납치했다... 라는 건가."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세간에서는, 샬레의 선생님은 실종 상태에 있고 샬레의 사무실에는 최근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내 물건이나 너덜너덜한 옷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선생님을 납치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우리의 행방을 수색중이라고 했던가.


"그래, 올 것이 왔네..."


나는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반투명 게시판에서의 영상을 본 것 같았다.

내 안에서는, 앞으로 조금만 더 숨어있으면 아리우스 애들처럼 시간이 흘러 나를 잊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언제까지나 나를 쫓지는 않을 것이고, 쫓는다 해도 대수롭지 않을 줄 알았다.

격심한 기간은 처음뿐이고, 그 기간을 극복하면 나중에는 어떻게든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내가 조금 더 냉정한 판단을 했더라면..."

"선생님은 나쁘지 않아,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걸."


선생님이 말하기로는, 드론 등 감시의 눈이 굉장히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밖을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였다.

선생님이 뉴스를 확인한 바로는, 나라는 트리니티의 관계자가 주범이기 때문에 티파티, 정의실현부, 시스터후드가 행방을 찾기 위해 수색 참여를 표명했다.

그 밖에 사태를 중대하게 본 게헨나의 선도부나 밀레니엄의 C&C 등도 수색한다고 했다.


"게다가 저 드론의 기동... 본 기억이 있어. 아마 히마리의 소행일 거야."

"히마리가 그 밀레니엄의 전지야?"

"응, 그 히마리야. 그래서 뉴스에서 표명하지 않았어도 나와 미카를 찾고있는 아이들도 아마 있을거야. 내가 아니더라도, 아비도스나 게임개발부의 아이들은 누군가 사라졌을 때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라 생각해."

"... 사면초가네."


중과부적이라고 할까,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오리무중이라고 할까.

어쨌든 도망이라는 부분에 있어 절망적인 상황인 것은 확실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딱히 납득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머뭇거렸다.

우리를 찾는 사람들을 '적'이라고 말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적은 많고, 무엇보다 만만하지 않다.

지금 우리로서는 어느 조직이나 단체 하나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고, 둘 이상의 조직이라면 조금도 버티지 못할 테고, 무엇보다 정보전에서 매우 불리하다.

스마트폰은 두고왔고 밀레니엄 학생들은 그런 정보전에 강하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밀레니엄이 다른 학교와 제휴해서 수색한다면 우리가 있는 곳은 움직이면 곧바로 알게 된다.


"... 선생님은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있는 곳으로."


나는 혼자서 멀리, 그리고 선생님은 혼자서 가까이 가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을 유괴했다는 부당한 죄와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살인이라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큰 금기를 범한 나에게는 모든 악행이 동등했다.

새삼스럽게 유괴니 강도니 하는 죄를 추가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 아닐까... 역시 선생님과 함께할 수는 없어."


처음에는 선생님을 독점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봤더니 지쳐버렸다.

선도부나 밀레니엄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티파티든 정의실현부든 시스터후드든 내가 관여했는지는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선생님을 찾으려 할 것임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내가 관여하고 있다면 트리니티의 상층부에서는 나를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라는 건 대부분 표면적인 이유고, 선생님을 빨리 돕고싶다는 것이 진심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고 안부가 걱정된다거나 큰 은혜에 보답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더 단순하고 복잡한 '연모'라는 열정적인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학생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전지도 이런 밀레니엄에서 가깝지 않은 곳에 일부러 드론 따위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손톱이라도 물어뜯어가며 필사적으로 찾고 있겠지.


"... 그래서 미카는 구원받을 수 있어?"


"... 으음."


어떨까, 어떻게 돌려줄 지 곤란해서 생각했다.


"확실히 나는 돌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앞으로의 미카는 어떻게 될까? 나는 미카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돌아가도 미카의 정보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돌아가면 당분간은 절대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미카를 도울 수 없게 돼."

"그건... 괜찮겠지."

"... 아직 불안은 남았어. 내가 돌아오면 밀레니엄이나 게헨나의 아이들은 수색을 그만두겠지. 그렇지만 트리니티의 아이들은 미카를 찾을 거야. 딱히 실감나지는 않지만, 내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키보토스의 전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 레벨의 사건을 일으킨 미카를 잡지 않으면 트리니티는 체면을 유지할 수 없어. 트리니티는 얼마 전에도 에덴 조약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으니까, 모두가 기억하는 한 오늘로 두 번째의 큰 사건을 일으킨 트리니티는 이번에는 제대로 청산하려고 할 거야. 거기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어?"

"그건..."


무리는 아니지만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것이 뻔했다.

시스터후드는 티파티도 위협할 만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고, 정의실현부는 단순 전투력으로 압도적, 티파티는... 아니, 엄밀히 말해서 나기쨩은 고개를 숙여서라도 밀레니엄 따위의 다른 학교에 협력을 구할 것이 틀림없고, 세이아쨩은 뭘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끝없는 공포심이 있다.

그렇게 이미 보이는 적조차 강력한데 여기서 구호기사단이나 다른 학교까지 가세한다면 끝이 없다.


"미카, 여기를 떠나 멀리 가자. 이 근처에 히마리의 드론이 있다면 이 폐허에도 감시의 눈이 닿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면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 독 안에 든 쥐가 될 게 분명해. 그렇다면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멀리 도망치는 것이 좋아."

"그래도... 선생님은 괜찮아?"


지겹도록 했던 말이지만 최종 확인같은 것이었다.

사실 선생님은 범죄자에게 협조를 한 공범자다.

하지만 지금 돌아간다면 선생님은 유괴당한 피해자로 돌아갈 수 있다.

한 번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돌진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면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는 미래가 없어도 선생님에게는 제대로 된 미래가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 미래를 나 하나만을 위해 멸시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미카를 따르고 싶어. 나 혼자서 모든 걸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미카에게 도움이 될 테니 제발 나를 데려가 줘."

"... 부탁하는 건 내 쪽이야."


선생님만 있어도 나는 도움을 받고 있어, 그렇게 속으로 상냥하게 중얼거리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의 의지는 역시 올곧고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역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나아갈 방향은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다.

나침반이 없는 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고른 선택지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니까.


"그러면, 갈까."

"... 응!"


나아가기로 결정한 순간, 우리는 이동할 준비를 마쳤고 폐허를 떠났다.






"하아... 하아..."

"... 하아."


폐허를 나온지 12시간 정도가 지났다.

감시의 눈을 의식하며 달리고 달리다 보니 지금은 모래로 뒤덮인 아비도스 자치구의 폐옥에 있었다.

도망갈 때 별다른 전투는 없었지만 뭔가 추적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특정되는 등 어쨌든 위치가 포착되는 것을 경계하며 정신을 혹사시켰다.

그 결과 아직 아무도 우리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대대적으로 쳐들어오기 위해 집결 중인지, 잘 때를 덮치기 위해 대기 중인지, 라는 가능성들을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동할 수 있었네..."


선생님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돌렸다.

오늘 하루만에 감시의 눈이 있는데도 어떻게든 이곳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을 보낼까?"

"응, 그러자."


주위의 안전을 확보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는 잠에 들었다.

텐트를 세울 공간은 아쉽지만 없기 때문에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땅은 모래라서 눕는 것은 말도 안되고, 분명히 여기 환경은 최악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이 옆에 있어준다면 그것도 괜찮았다.

의식을 놓기 전 선생님의 어깨에 기대 마음껏 어리광 부렸다.

어리광을 부리고, 조금 대화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축적된 피로를 느끼기 쉬워져서 그대로...


"저, 정말로 봤어...?"


"!!"


앞으로 몇 초만 더 있었다면 잠들었을 미수 상황에서,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려 번쩍 눈을 떴다.


"..."


반사적으로 옆을 보니 선생님도 각성해서 나랑 눈이 마주쳤다.


"응, 그건 틀림없이 선생님. 단언할 수 있어."

"그치만 이런 장소에서 왜..."

"당연히 노숙. 미카가 선생님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으니 숙박시설은 이용할 수 없어."

"그렇다고 이렇게 자는 것도 고생인 곳으로 오는 거야?"


다가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분명히 우리를 알고 행동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짐작이 가는지, 험악한 얼굴로 숨죽이고 있었다.


"그런 곳이니까 가치가 있어. 노숙할 만한 곳에서 노숙하면 추격자에게 들킬 테니까."

"왜 시로코 선배는 그런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거야..."

"은행강도의 기본이니까 기억하고 있어. 은행강도는 은행을 얼마나 잘 습격하느냐가 전부가 아니야."


"... 칫."


그리고 나도 숨죽인 채 이후 어떻게 할 지 즉석으로 생각했다.

도망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소리내면 들킬텐데?

그냥 넘어갈까? 지금도 목소리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싸울까? 상대는 선생님의 소중한 학생인데?

곧 마주칠텐데? 수단을 가릴 시간이 없는데?


"... 하아."


머릿속에서 여러 명의 내가 의견을 서로 밀어붙이다보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발 밑에 있던 나무조각을 집고...


"응, 우왓?!"

"시, 시로코 선배?!"


먼저 폐옥에 들어온 은빛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에게 던졌다.


"아하하, 둘 다 움직이지 마?"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일어나 선생님의 목을 팔로 조르듯 구속하고 총을 두 사람에게 겨누었다.


"선생님?!"

"드디어 찾았어."


우리를 발견하고 놀라기는 했지만 곧바로 총을 겨누고 임전태세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싸움에 익숙해 보였다.


"저기, 듣긴 했어?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선생님이 어떻게 되어도 괜찮아?"


다만 선생님을 구속한 내 앞에서는 무력하다, 무력할 것이다.


"... 미카는 선생님을 죽일 수 없어."

"그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금방이라도 죽일 수 있어? 왜냐하면 선생님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니까☆"

"그, 그게 뭐야..."


그동안 계속 잠잠하던 거짓된 내가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아, 또 나는 저질렀구나.

내가 이 얼굴을 보일 때는 항상 변변찮은 짓을 할 때였다.

대사와 얼굴과 속마음이 별로 맞지 않아서, 쏟아지는 미소는 역겹게 변해갔다.

상대의 선의와 약점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다루며 희미하게 웃는 듯한... 그 모습은 마치...


"... 세리카, 총 내려놔."

"그, 그치만!"

"미카는 진심인 것 같아. 여기서 섣불리 자극해도 소용없어."


"아핫, 알아줘서 기쁘네☆"


... '마녀'같지 않아?


"두 사람은 선생님을 인질로 잡은 나와 싸우고 싶지 않을 거고, 나는 소모하기 싫어서 싸우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는 서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으로 할까, 그럼 안녕♪"


그렇게 말하고 나는 선생님에게 가방을 들게 하고 두 사람과 마주보며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한걸음, 또 한걸음,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벌렸고, 충분하다고 판단한 직후 선생님의 구속을 풀고 선생님과 달렸다.


"... 미안해, 선생님. 조금만 더 달려줘."

"응, 알았어."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게 총구를 겨누며 뒤에서 달렸다.

이렇게라면 나와 선생님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인 것처럼 보여주면서 도망칠 수 있고, 게다가 그 둘과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도망치면서 선생님의 뒤에 있으면 맞을 걱정도 없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 응, 내가 생각해도 완벽하다고 생각해.

여기서 둘이 같이 도망치면 저 둘은 선생님의 입장을 잘 모를 것이다.

선생님에게는 언제든지 돌아가도 괜찮은 환경을 계속 남겨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그것을 포기해버리면 나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으니까.



"여기라면... 괜찮겠지?"

"... 미안, 미카. 그런 일을 하게 해버려서. 이러면 마치..."

"선생님, 됐어."

"!"


"나는 선생님을 유괴했어, 그건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살인에 선생님의 유괴인가...

드디어 나도 감당 불가능한 대죄인이라는 느낌일까?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살인을 했을 때부터 그랬지만 더는 돌아갈 수 없다.

옛날을 아무리 그리워해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이제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이제, 여기까지 왔다면 나에겐 희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미안해, 미안해... 선생님...!"


순간적인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선생님에게 상처를 입힌 것, 선생님의 의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의 미래를 엉망으로 망가트린 것, 선생님이 있더라도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나의 미래, 여러 요인들이 겹쳐 눈물이 멈추지 않게 되었다.

이대로 계속 도망친다고 해도 뭐가 될까, 나는 이제 밑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이대로 도망간다고 뭘 할 수 있을까.

선생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이대로 선생님과 평생 도망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으로 선생님이 있어서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그건 바뀐게 아니라 미뤄졌을 뿐이다.

저항한 만큼 수명이 연장되고, 저항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알고 있었잖아?


나는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하지만, 선생님과의 행복을 맛본 순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마약같은 감각으로, 한때의 달콤함을 맛본 탓에 그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이 시간이 매일 계속되기를 바라는 나는...


"..."


선생님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말로 할 수는 없었다.

가버리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 내 감정이 전해질까봐 두려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너는 성가신 여자인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는거야?

그런데 아무 말도 안하면 버려질 텐데?

말로 전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을 텐데?

이런 긍정과 부정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쳤고 내 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 괜찮아, 괜찮으니까 일단 오늘은 자자? 오늘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피곤하니까."


추운 사막의 밤에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몸을 녹였다.

이 공간에 방해가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고, 내일이 있기를 바라며.

나와 선생님의 미래에 행복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감았다.






요란한 총성과 고막을 찢는 듯한 도탄 소리가 울려퍼지는 녹슨 실내.


"으윽...!"


최악이었다.

그 때로부터 아마 보름 정도 지났다.

싸운 횟수는 기억나지 않고, 소비한 탄약도 수없이 많다.

살인에 유괴까지 저지른 악명높은 나에게 싸움을 주저할 이유는 이제 없었고, 결국 선생님의 소중한 학생들이라도 총격전 따위로 죽지는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세 번째 전투 즈음부터는 익숙해진건지 달관한건지 딱히 표정을 바꾸지 않게 되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비밀리에 지시까지 내리기도 했다.

다만 싸움이라는 것은 숫자의 승부.

한 사람 상대라면 실력 승부, 두 사람 상대라면 경험 승부, 세 사람 상대라면 운의 승부로 상대의 수가 늘어날 수록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이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아비도스의 호시노라는 아이나 선도부의 히나와 대면했을 때는 역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둘 다 근처에 있던 것을 폭발시켜 전투를 흐지부지 끝내고 도망쳤다.

처음 만난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나를 원망하고 있는 듯 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있는거야...?!"


가혹한 현실과 다가오는 책임에 필사적으로 맞서 도망쳐, 트리니티의 한 부대를 철수할 때까지 몰아넣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녹슨 공장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래도 어딘가의 불량배인지 양아치인지 집합소였던 것 같고, 서로 실내에서 마주치고 도망칠 틈도 없이 전투로 발전했다.

상대는 나와 선생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기세좋게 로켓 런처로 환영을 받는 바람에 폭발이 일어나는 전장에서 탄막같은 총알을 피하고 속공으로 당하지 않으려고 포지션을 잡고 하다보니 선생님과 떨어져버렸다.

게다가 운나쁘게도 여기 집단은 상당히 규모가 큰 듯 해서 아까부터 쓰러트려도 수가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았다.


타이밍을 봐서 도망칠 수 밖에 없다.


아까부터 계속 싸우는 바람에 선생님이 무사한지 전혀 확인을 못하고 있다.

폭발 후 어떻게 된거지?

설마 잔해에 파묻혔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 아니."


그럴 일은 없다고 강하게 부정할 자신이 있다.

상대에게 우리를 포박하는 이점은 있어도 죽일 이점은 없다.

아무리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고 해도 죽여버리면 본말전도, 살인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키보토스의 일상다반사적으로 공격하고 있을 뿐이다... 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있던 탓에 나는 어떤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앗?!"


탄창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왜 이런 곳에서..."


나는 유괴범이 되었을 때부터 줄곧 싸워왔다.

그것 때문에 보급할 겨를이 없었고 우리도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잔탄이라는 초보적인 것을 간과하다가 우리가 현실적으로 계속 도망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가 드디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싸우지?

무기를 주우려 해도 주위에 무기 따위는 떨어져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적의 진지 안이다.

그런 곳에 갈 수 있을리도 없고 여전히 나는 무방비 상태.


그렇다면 역시 도망칠 수 밖에...


"크윽...?!"


돌발 상황에 약했던 탓인지, 아니면 점점 더 조급해지는 초조함 때문인지, 잔탄이 없어어 당황하면서 모습을 노출한 그 짧은 시간에 날카로운 총알이 내 이마에 박혔다.

충격으로 몸이 크게 뒤로 젖혀지고 의식이 몽롱했다.


"칫...!"


... 하지만 거기서 끝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가라앉아가는 의식이 '여기서 끝낼거냐'고 경종을 울렸고, 나는 '그럴리가'라고 되받아치듯 힘껏 버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향한 시선의 끝에는 내 다리와 이상하게 긴 총알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무심코 앞쪽을 오니의 형상으로 노려봤는데 다음 순간 아까와 같은 충격이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큭..."


한 손으로 들고있던 애총이 손을 떠나 뒤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자각했다.

다시 의식이 몽롱해졌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어깨를 날카로운 것으로 잘린 듯한 격통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그보다 먼저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져나가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런 데서 끝이라고...?!


절대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만약 말할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의지를 다지며 일심동체, 일련탁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둘이 필사적으로 도망쳐 왔는데 이런 바라지도 않은 장소에서 죽는다고?

잡히는 거야?

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걸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총은 내 손을 떠났고 적의 수는 아직 많다.

이것이 진짜 우리 싸움의 현실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만큼 절망적인 싸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아프다.

역시 여기가 종착점인가?

이제 더 이상 뭘 해도 변할 것 같지 않다.


"..."


"미카!"


"...!"


모든 것을 포기하고 쓰러지기 직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가 귀에 닿아 급히 바닥에 손을 짚고 네 발로 기는 자세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 눈부신 섬광과 날카로운 소리가 작렬하고 공격이 멈췄다.

섬광탄이다, 그렇게 이해한 순간 나는 뒤돌며 일어나 거침없이 선생님 쪽으로 달려나가 뻗은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좋아, 가자!"


손과 손이 연결된 순간 잡아당겨지며 선생님 쪽으로 굉장히 세게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즉시 인력의 관성으로 그대로 달려나가 가속도를 받고 빨라졌다.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난잡하고 정신없이 보조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겠다고 서로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끌며 뛰느라 안간힘을 쓰고, 나는 따라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윽!"


뒤에서 날아오는 무수한 총알이 등에 맞는다.

아파, 아프다.

너무 아프다.

아까 나를 기절 직전까지 몰아넣은 그 불법탄만큼 상대가 쏘는 총알은 위력이 일반적으로 지정된 총알보다 강하기 때문에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컸다.

이런 것들을 몇 발만 더 제대로 맞는다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의식이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달려야 했다.


"선생님...?!"


이쪽으로 향하는 무수한 총알 중 하나가 선생님의 옆구리를 관통했을 때는 핏기가 가셨다.

너덜너덜한 흰색 티셔츠에서 스며나오는 붉은 피가 정신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달릴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적어도 선생님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선생님 바로 뒤로 위치를 옮겼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등에 맞는 총알들로부터 선생님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런 총알도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으..."

"하아, 하."


간신히 도망쳐 도착한 방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뒤로 드러누운 채 흐릿한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추격자들은 뿌리쳤지만, 다 죽어가는 상황이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선생님... 괜찮아?"

"..."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숨은 쉬고 있고 의식도 있고, 그것은 거친 숨결로 알 수 있었다.


"..."


어두컴컴한 방에서 침묵은 계속되었다.

들려오는 것은 서로의 숨소리 뿐, 그 이외의 소리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 나,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다만 느닷없이 세계가 소리를 되찾았다.

힘없이 아주 조금 선생님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선생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응?"


왜일까,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갑자기 덧없어 보였다.


"여기서 죽기살기로 살아가도 지금의 우리들로는 도망칠 수 없고, 거기서 잡히면 미카는 모든 책임을 지고 단죄당하고 말 것이고, 내가 필사적으로 변명해도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겠지."


선생님은 말하다가, 한 번 오열하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갔을 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야. 미카가 단죄당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미카가 단죄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거나, 그렇다면 이젠... 돌아가고 싶지 않네."


옅은 미소가 일변하여 서글픈 얼굴이 되며 선생님은 말을 마쳤다.


"...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나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한 뒤 우리는 이 방에서 처음 눈이 마주쳤다.

새삼스럽게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시선을 그대로 아래로 돌리자 선생님의 옆구리와 그 부근 땅은 새빨갛게 바뀌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제 나는 사과밖에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항상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서투를까?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기만 한다.


"미안해요...!"


솔직하게 말하겠다.

내가 살인을 하고나서 선생님이 계신 샬레의 사무실로 도망친 이유, 그것은 선생님이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뻔뻔한 의도였다.

선생님이 항상 누군가를 돕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제법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거야, 그런 신용이나 소망같은 여러가지 욕망을 담아 나는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확실히 나는 선생님이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갔고 실제로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설마 "같이 도망가자"라는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예를 들면 숨겨준다거나, 예를 들면 변호해서 조금이라도 죄를 덜어준다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말은 에덴조약 때처럼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점점 변속해갔고, 나는 또 다시 선생님에게 어쩔 수 없이 폐를 끼쳤다.

뻔뻔하고, 구제할 수 없고, 최악이다.

듣기좋게 말하면 선생님을 믿었다는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은 선생님의 선의를 파고든 행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과밖에 할 수 없었다.

나에게만 잘못이 있고, 선생님은 어느새 말려들었다고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미안해요..."


지금의 나는 죄책감의 덩어리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쓰레기, 구제불능의 바보였다.


"미안해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그것을 강하게 실감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며 타인의 마음을 농락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뛰어내릴 수 밖에 없는 벼랑에 서 있었다.

그것이 내 전부였고, 내 인생의 구현이었다.

이렇게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는 지금조차 이미 늦어서, 나는... 아니, 우리는 이미 벼랑 위도 아니고 뛰어내려 떨어지는 중이었다.


"울지 마, 미카."


천천히, 상냥하게.

위로하는 듯한 갸날픈 목소리.

그렇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분명 거기에 있었다.


"확실히 미카는 문제아야, 내가 만난 학생 중 가장 큰 문제아일지도 몰라."


큭큭, 하고 선생님은 웃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아와 여기까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면... 선생으로서 과분하기 그지없어."


한 번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래서 말할 수 있어. 미카는 내가 만난 최고의 학생이야. 솔직하지 못하고 조금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착하고 자신이 이루고싶은 것을 형상화하려는 행동력도 있어. 미카는 배려심이 많고 좋은 아이야."


선생님이 상냥하게 말을 마치자, 나는 더욱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때 까지도 그런 감언을 하고, 차라리 비난을 하기를 바랬다.

...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분좋은 체념이 가슴에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나는 웃고 있었다.

울고 있지만 미소를 지으며,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까 생각했다.

알 수 없었다.


"... 저기, 그러면 부탁 하나 해도 될까?"

"... 갑작스럽네. 무슨 일인데?"

"나는 좋은 아이잖아, 그렇다면 조금 정도는 괜찮지?"

"... 응, 좋아."


하지만 선생님이 긍정해 준다면, 나는 마음을 다잡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울지 말라고 하면 눈물을 필사적으로 멈추는 것처럼, 최고라고 긍정해 준다면 나는 최고로 있으려고 하면 된다.


"그렇다면 선생님. 나를 마녀로 만들어 줘."


시작과 끝의 신호는 나로부터.

이것은 내가 시작한 이야기.

그러니까 끝도 내가 마무리짓는 것이다.


"... 응, 알겠어."

"에헤헤, 고마워..."


그 말을 들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미카, 이제..."

"... 응, 알았어."


내 손을 잡는 그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짐작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들어줄래?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야."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을 계속했다.


"저, 미소노 미카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와 사귀어 주세요."


아아, 말해버렸다.

사실은 다른 상황에서 하고 싶었던 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하고 싶었던 말.

...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시간이라서 좋았을지도 모른다.


"..."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후'에 나를 잡는 손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껴서 기뻤다.

이것이 차인 건가, 아니면 받아진 건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기뻤다.


"... 아하하."


끝나버렸다, 그것이 어이없어서 나는 자조했다.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협조하든, 필사적으로 저항하든, 역시나 결말은 예상대로였다.

이것이 마녀와 그 마녀에게 협력한 어리석은 자의 말로.

이야기 속 악당들에게는 모두 똑같이 제재가 기다리고 있고, 그것은 이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다.


"... 해피 엔드구나, 분명히."


하지만 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나를 괴롭힌 그놈들에게, 이런 염세적인 삶에, 그리고 선생님을 열렬히 좋아했던 학생들에게 조롱하고 비웃었다.

선생님은 먼저 떠났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 부조리에 맞서 저항해 보였다.

어때, 굉장하지.

어때, 억울하지.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유일무이한 명예.

그것을 내가, 이런 내가 원하는 대로 쟁취한 것이다.


"아아... 나기 쨩, 세이아 쨩, 낙원은 있었어."


연중 흐렸던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구름 사이로 비쳤다.

그 앞에서 나는 분명히 낙원을 보았다.

낙원은 있어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은 트리니티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온 것이다.

그런 것이다, 낙원이란, 진정으로 낙원에 도달한 자는 바깥에서 관측할 수 없고, 진정으로 낙원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낙원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없다.

낙원은 찾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는 낙원을 본 몇 안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더 이상 없네..."


엄밀히 말하자면 낙원을 증명할 방법이 나에게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내가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낙원의 증명이 될 것이다.

... 하지만, 과연 그것을 낙원이라고 인지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낙원을 모르는 자는 낙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답은 뻔하다.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낙원의 증명을 하러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옛부터 전해진 대로, 낙원을 발견해도 낙원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낙원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그에 따라 나는 낙원에서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케흑..."


기침을 조금 하고나서 나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수류탄을 지금까지 쓸쓸했던 다른 한 손으로 잡았다.

수류탄의 출처는 선생님의 주머니, 이런 것을 갖고 있었다.

그 때 사용한 것이 섬광탄이 아니라 이 수류탄이었다면... 더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선생님은 너무 상냥해서 살상력이 없는 섬광탄을 쓴 것이다.


"후훗."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마녀가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마녀다.

선생님을 유괴한 끝에 선생님을 죽여버린 키보토스 최대의 범죄자.

그저 그걸로 된 거다.

분명 내 이름은 앞으로 역사에서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선생님의 이름도 함께 회자된다.

앞으로 누군가 이야기할 '나와 선생님의 이야기'에 있는 나와 선생님의 관계는 분명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해자, 선생님이 피해자.

그 '설정'은 내 예상대로라면 절대 뒤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야?


낙원은 낙원을 아는 자만이 인지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낙원을 아는 자는 나와 선생님밖에 없었다, 단지 그 뿐인 이야기다.

누가 뭐래도 나와 선생님은 원해서 이 결말을 택한 것이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도 없고, 견문을 넓힐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마녀로 있으면 된다.

그저 내가 선생님을 죽인 마녀로 있으면 된다.

그 사실이야말로 나와 선생님이 함께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 사실이야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결과가 된다.

나는 마녀다, 그렇다면 마녀답게 악행을 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 여한이 없어진 나는 수류탄의 핀을 입으로 뽑아 핀이 뽑힌 수류탄을 조용히 가슴에 밀어붙였다.

아플 정도로, 심장에 박힐 정도로.


그렇게 해서 나는 마녀가 된다.


수류탄 너머로 느껴지는 나의 심장은, 꽤 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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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20014자

원제목 楽園はあった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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