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불공평한 거야.


시대가 흐르면서 여러 대륙,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만

어떤 곳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고는 하지.



가령, 왕궁의 수석 요리사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한

비전의 요리책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혁명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로든

왕조가 무너지게 되면, 왕의 이름으로 보호받던 이 요리책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지.




가령

외세에 철저히 수탈되어 요리책 같은 걸 보존할 처지가 아니었다던가




아니면

천재지변 같은 국가 단위의 뻘짓에 어이없이 깡그리 불타버렸다던가




그도 아니면

애초에 제대로 된 요리책도 아닌 쓰레기 같은 음식물을 만드는 서적이

이미 널리 팔리고 있었다던가!


인류 역사에 통탄할 만 한 폭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런 재난을 피한 케이스가 있기는 있어.



전통적 왕조에 끝을 알린 프랑스의 대혁명 이후

당연하게도 이 왕조와 관련된 몇몇 집단들도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구역 내에서의 상품의 유통과 사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공인 조합인

길드(guild)가 부르주아지들의 대두와 함께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게 돼.


이 길드의 배타적 이권 추구는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가령 고기를 파는 정육업자 길드에 가입한 사람은 

자기 가게에서 고기 이외의 다른 메뉴를 팔 수 없었어.



스테이크는 되지만, 제빵 길드의 영역인 빵이 들어가는 햄버거는 못 팔았다는 얘기.



반대로 제빵 길드의 빵집에서는 햄이 들어가는 샌드위치는 못 팔고.

실제로는 좀 더 복잡했지만

대충 이런 그지같은 시스템이 무려 18세기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



그 와중에 여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꼼수를 쓴 식당도 생겨났는데

고기와 버섯을 함께 푹 끓인 다음 빵을 곁들여 내는 수프를

'환자들을 위한 보양식'이라는 간판을 걸고 파는 식당이 생겨났어.



대충 한국에서 보신탕이나 염소탕 파는 '건강원'처럼

허약한 환자들을 위한 회복음식(restorative)을 파는 식당이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된 거야.



무슈 블랑제(Monsieur Boulanger)가 최초의 레스토랑을 열고 불과 20년.

혁명이 일어나고, 왕족이나 귀족들이 싸그리 숙청당해 버린 탓에

그 집에서 요리를 만들던 요리사들은 살아남더라도

모조리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되었지.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했던 요리사들은 

귀족들을 위한 고급 요리 기술을 썩히는 대신

득세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지들에게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자기들만의 가게를 차리기 시작했어.




길드의 입김을 피해 자유 식당의 이름으로 내걸었던 레스토랑(Restaurant)이

궁중요리를 조리하던 요리사들의 고급 식당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파리로 시작해 각지에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고



기존에는 높으신 분들만 비밀스럽게 먹었던 호화 요리들을

이제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구체제와 함께 불타버릴 뻔한 미식은 오히려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가 있었던 것이지.









자, 그럼

이제 산 넘고 물 건너 멀고 먼 동쪽으로 가자.


조금 뜬금없지만

불교에서 가장 엄히 배척하는 죄악이 무엇일까?


살생? 아니

탐욕이야.



어떤 더러운 죄악도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지.

그런 이유로 멀쩡한 불교도들은 예외 없이 검소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어.


근데 수행하는 스님들 레벨로 가면 이게 좀 많이 빡세지는데

곡기까지 끊어 가며 참선을 하는 중에 허기가 정신을 어지럽히자

그것을 잊고자 따뜻한 돌(温石)을 데워 품에 안고 그것으로 허기를 잊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여기서 따와 또한 불교에서 중요한 다도(茶道) 중간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정말 간단히만 곁들이는 음식을

돌을 품는다는 의미의 가이세키(懐石)라고 불렀어.



그런데

불교가 사무라이로 이루어진 일본 지배층의 주류 이념이 되면서

간단하고 정갈한 가이세키 요리도 다이묘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조금씩 비용과 무게가 더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식사와 차 정도만 하다가 거기에 술이 곁들여지고

술에는 안주가 필요하니까 또 요리가 추가되고.

다이묘 씩이나 되는데 적당한 요리를 낼 수 있나?

그 지방의 특산물을 최고의 요리사가 잡은 호화 요리가 상에 오르게 된 거지.



그렇게 나중에는 가이세키란 이름 자체가 술과 함께 뻑적지근하게 즐기는

호화로운 주안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어 버린 거야.



훗날 다른 곳처럼 이런 봉건 구체제가 무너지고 난 뒤

무가(武家)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요리들을 고급 요정(料亭)이나 료칸(旅館)에서 팔기 시작했어.


이것을 주머니 사정이 풍족한 일본인들이 회식 메뉴로 소비하면서

가이세키(懐石)에서 분리된 가이세키(会席)라는 별개의 요리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거야.





비슷한 것으로 오세치 요리가 있는데

본래는 일본 궁중에서 일 년에 다섯 번(五節) 신에게 제사를 봉헌하던 행사인 오세치쿠(御節供)를

민간에서 따라하면서 장식 공간인 도코노마(床の間)에 음식을 올려놓던 것에서 시작됐어.


 


애니 보다보면 이런 걸 본 적이 있을 텐데

여기서 올려놓는 음식이 신에게 바치는 떡인 카가미모찌(鏡餅)야.




그 생김새 덕에

이렇게 써먹기도 하고.


아무튼 이게 에도시대 무렵부터 이어지던 세시풍속 중 하나였는데

이것마저도 간소화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대량으로 조리해 팔기 시작한 오세치(御節) 요리를 사다가 나눠먹는 것으로

번거로운 세시풍속을 간단하게 때우기도 했지.




전에 다뤘던 율 로그와 뷔슈 드 노엘의 관계를 생각하면 알기 쉬울 거야.


결국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함께 융성한 미식의 문화는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중 일부는 후세에 전해져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거야.


가이세키 요리는 본래 차에 곁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간단한 음식.

오세치 요리는 도시화로 인해 상품화가 된 세시풍속 요리. 


그러니까 의외로




얘네가 내놓는 것이 두 요리의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거지.




근데 뭐 어때,

맛있으면 됐지.

터뜨리지만 않는다면......


요약하자


1. 군주제 시대에 발전했던 요리 기술이 일부 서민층으로 전수됨.

2. 이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이 증가하며 미식의 시대를 엶.

3. 일본에서도 비슷한 원리로 가이세키와 오세치 요리가 탄생했다고 보여짐.



이건 저번에 쓴 거.


롤케이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