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어둑어둑 해진 거리를 걷고 있던 나타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고민의 이유는 예의 그 특수 잔해 때문이다.
'벌처스가 그 차원종의 잔해를 가지고서 무언가 이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건 확실한데......그걸로 뭘 만들 셈이지? 일단 무기로 만든다면 강력한 무기가 되기야 하겠지만......단순히 그걸로 끝나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지 않을 정답에 얽매이는 것 같아 초조함을 느낄 즈음이었다.
"아얏......!"
"......?!"
누군가와 부딪힌 순간, 나타는 반사적으로 쿠크리의 칼날을 뽑아든다.
"넌......뭐야."
"아, 아아......위험, 했네."
쿠크리의 칼날은 여우를 연상시키는 츄리닝 상의를 입은 여성의 목 바로 앞에서 정지했다.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이었기에 그 짧은 틈 사이에 부딪힌 대상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너......분위기나 복장으로 보니, 클로저. 맞지?"
"......네가 누구인지나 말해."
여기는 민간인들의 통행이 적은 지역이다. 특경대가 통제하고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한 번 차원종이 출현한 이상 여기도 당분간은 안전한 거리라고 확신할 수 없기에 시민들을 이웃 마을로 대피해 있거나, 저녁이 되면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아, 난 포장마차 여우네의 주인인 소영이라고 해."
"......"
나타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즉, 일반인이다.
처리부대원은 일반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 나타는 쿠크리를 집어넣고, 말 없이 지나가려고 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뭐야......붙잡지 말라고."
소영이 그의 손을 붙잡아 멈춘다.
"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고, 방금 전의 반응도......그, 긴장했다가 확 놀라서 그런 모양인데. 클로저 업무, 많이 힘들지?"
"......당신이 알 바 아니잖아."
처리부대에게 중요한 건 은밀기동. 일반인에게 보인다면, 처리부대가 아니라 클로저라는 신분으로 위장해야 한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유니온의 이미지에 흠집을 낼 수 있으니까.
"아니, 그래도 말이지......우리 같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고생하는 거니까. 조금 서비스를 하고 싶어서. 괜찮다면, 뭐라도 좀 먹고 가."
"어린 나이라니. 댁도 나이 많아 보이는 편은 아닌데......그보다, 먹고 가라니......"
여자는 나타의 손을 잡고 끌었다. 이걸 쳐내고 그냥 갈 길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포장마차까지 끌려왔다.
"이거, 음식 맞아?"
나타는 포장마차라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먹고 가─라는 단어에서 그 안에 있던 잡다한 내용물들이 '음식'이라는 건 인식할 수 있었지만, 전부 생전 처음 보는 것들 뿐이라 의심이 간다.
여태까지 그가 먹은 음식이라고는 깡통죽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 어......? 포장마차 음식. 처음 보는 거야?"
"지,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모르면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무지(無知)에 대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나타. 절로 언성이 높아진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화내지 말라고......음, 그럼 이 기회에 하나 한 번 시식해 봐. 내가 만든 거라 생색내는 것처럼 들리지도 모르지만, 아주 맛있다구? 너랑 동료인 것 같은 아가씨도 그렇게 말했어."
소영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동료인 것 같은 아가씨란 말에 바이올렛을 떠올린다.
이미 누가 먼저 왔다 갔다면, 상관없겠지.
나무 꼬챙이에 찔려있는 노리끼리한 어묵을 집어드는 나타.
"......되게 이상하게 생겼는데, 이게 정말 먹는 건가......"
설마 독이 들어있다 해도 자신에겐 통하지 않는다며, 한 번 먹어보는 나타.
우물우물 씹히는 어묵에서 배어나오는 육즙에 나타는 눈을 크게 뜬다.
"뭐, 뭐야......이게? 이렇게 맛있는 건......난생 처음 먹어 봐!"
"그렇지? 이건 어묵이라고 하는 거야. 생선 살이랑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거지."
"아, 알았으니까. 하나 더 줘봐."
조급하게 다음 어묵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가, 부탁이라는 걸 해보는 나타.
소영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그에게 어묵을 하나 더 건네준다.
"응응. 여기 있어. 체하지 않게, 국물도 같이 마셔가면서 먹어."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다주며 건네는 소영. 따뜻하면서도 짭짤한 국물의 맛은 이제껏 나타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
지금 이 순간, 나타는 소영에게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제대로 된 호의를 받았다.
생전 처음 먹어본 맛있는 음식. 생전 처음 경험해 본 인간다운 호의.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나타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음식이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야. 앞으로도 배가 고파지만 찾아와."
"아, 아......그래."
나타가 어묵을 다 먹었을 즈음, 소영은 포장마차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장사는 다 끝난 모양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다음에 또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고 멀어져가는 소영. 나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물쭈물 거리다가, 어색하고 작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러다가 소영은 다시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 뭐야......볼 일,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저기 말이야......너도 이제 퇴근할 시간일지도 몰라서 미안한데......"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소영은 말한다.
"집까지......바래다 주지 않을래?"
나타는 힐끗, 시선을 다른 쪽에 한 번 돌린 뒤,
"집 근처까지 다 오면 돌아갈 거야."
"아, 그래! 고마워!"
소영과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소영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 쪽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뒤를 슬쩍 들어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린다.
그 시선 끝에는 '뻐꾸기'가 있었다.
***
나타가 다시 늑대개 팀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타는 그 위에 떠 있는 '뻐꾸기'를 슬쩍 올려다 본 뒤,
"그래. 이 빌어먹을 개목걸이 조일 거라면 알아서 하라고."
"자기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뻔뻔하네요, 나타. 처리부대원은 일반인과의 접촉을 삼가라 했을 텐데요?"
"그쪽에서 먼저 끈덕지게 붙어온 거라고. 일반인에게 들킬 때는 클로저라고 위장하는게 철칙일 텐데? 왜, 클로저는 시민에게 친절해야 하잖아? 공무원이니까 말이지."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나타.]
'뻐꾸기'에서 트레이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나타는 그걸 강하게 응시하고,
"아니요. 그의 의견도 틀리진 않아요. 저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훌륭한 셰프인 동시에 인격자였지요. 그 사람이라면, 먼저 다가갔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예상 외로, 바이올렛이 나타의 편을 들었다. 아니, 나타를 두둔하기 보다는 소영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일반인과 접촉한 것으로 징계를 내린다면 저에게도 마찬가지겠죠? 일단 저도 늑대개 팀의 임시 대원이니까요. 안 그런가요, 대장님."
[......이번에는 경고 정도로 끝내지. 다만, 나타. 다음 기회는 없다. 그걸 명심해 두도록.]
"흥......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차마 바이올렛에게까지 징계를 내릴 수 없는지 트레이너가 한 발 물러섰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바이올렛은 속이 쓰렸다.
결국 모두에게 있어, 이 상황은 벌처스 영애의 처리부대원 흉내 놀이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건지, 홍시영은 손뼉을 짝짝 치며 이목을 모은다.
"어찌되었든, 오늘 임무는 수고했어요.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날 오전 9시 즈음, 여기서 다시 만나 일을 재개하도록 하죠. 그럼, 갈까요. 하피."
"네, 감시관님."
그들은 그들만을 위한 숙소를 미리 잡아둔 건지 어딘가로 향하려 한다.
"칫. 이번에도 차 안에서 자는 건가?"
[독방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
"시끄러워. 그래도 침대가 더 편하다고."
[그럼 티나의 냉장고도 함께 실어서 타라. 침대 대신으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투덜거리는 나타를 조용히 내려다보던 트레이너는 이윽고 레비아에게 말을 돌린다.
[초커를 통해 상황은 보고 있었다.]
"......아, 네......"
움찔, 하고 놀란 반응을 보이며 '뻐꾸기'를 올려다보는 레비아. 트레이너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연다.
[전과 달리 폭주의 낌새는 줄었군. 그 상태로 지속해라.]
"네, 넷......!"
칭찬을 듣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개처럼 레비아는 밝게 대답한다.
처음으로 들은 칭찬 탓이었을까. 그녀는 그만 '선'을 넘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트레이너님, 예의 특수 잔해 말인데요. 저, 거기서 굉장히 익숙한──."
[누가 네게 질문하는 걸 허락했지?]
냉장고에 들어간 티나를 제외한 모두가 레비아를 돌아보았다.
아직 목소리가 들릴 위치 정도로 걸어간 홍시영과 하피도 그녀를 돌아본다.
"아......아, 그, 죄, 죄송합니다......"
자신을 포위하는 형태로 들이밀어지는 시선에 위축된 레비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통신을 종료한다.]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뻐꾸기'. 나타는 허망한 표정으로 땅바닥만 응시하는 레비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티나가 들어 있는 냉장고를 번쩍 들어서 이동하려 할 때였다.
"소영 씨는 잘 보내주셨나요?"
"어차피 네 비서 녀석 시켜 감시했을 거 아니야."
바이올렛은 미간을 찡그린다. 설마 눈치채고 있었을 줄이야.
흥, 하고 조소를 흘리며, 나타는 말한다.
"이미 날 강간범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서 묻는 거지? 만약 그 비서를 붙이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걸 믿을 수 있겠어?"
"......편견으로 가득했다는 건 인정하죠."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는 바이올렛.
"그러니, 당당하게 다시 묻겠어요. 그녀는 잘 바래다 주었나요?"
"......당연하잖아. 그 여자는 앞으로도 내게 어묵을 가져다 바칠 거야. 그런 녀석을 죽이거나 어떻게 할 리 없잖아. 내가 바보인 줄 아냐."
투덜거리며 차 안에 들어가는 나타. 바이올렛도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도 호텔로 돌아가죠, 하이드."
"네. 인근에 5성 호텔은 붕괴해서 없기에, 그나마 좋은 곳으로 하나 잡아두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아, 그리고......"
모두에게 관심 받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 레비아를 돌아보는 바이올렛. 그녀는 여전히 침묵한 채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
"......레비아."
"......아, 넷!"
갑작스러운 불림에 퍼뜩 하고 정신을 차린 레비아가 바이올렛을 돌아본다.
"날 따라오도록 하세요."
"......네?"
"차원종이라고 해도 여자. 나타 같은 남자와 함께 밤을 지새우게 할 수는 없죠. 티나는 사이보그니까 괜찮겠지만서도. 따라오도록 해요."
어버버버 하는 레비아의 뒤에서 하이드가 등을 떠민다.
"그......하, 이드......씨?"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가씨의 호의를 무시하는 거라면, 이 하이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 네......"
부담스럽지만, 바이올렛과 함께 리무진에 탑승하는 레비아. 하이드가 리무진의 운전석에 탑승한다.
이윽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리무진의 안에서, 레비아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었다.
"계속 이리저리 둘러보지 마세요. 정신 사나우니까."
"네, 넷!"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는 레비아. 그래도 호기심은 막을 수 없는지 힐끗힐끗 바이올렛을 훔쳐본다.
바이올렛은 답답함을 느껴 한숨을 내쉬고,
"물어볼 게 있으면 당당히 물어보세요. 저는 비겁한 자를 싫어하니까요."
"......그럼, 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자신을 혐오하고 있을 거라 여겼던 레비아는 지금 이 친절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불안하기만 했다. 바이올렛은 시선을 돌려 레비아를 돌아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연약한 여자아이. 저게 사실은 (구)늑대개 팀을 도륙낸 차원종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은 한 남자의 주검을 앞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린 작은 아이를 연상시켜서──.
"힘을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저의 모토 중 하나입니다. 차원종이라고 해도, 일단 똑같은 늑대개 팀의 임시대원인 이상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 거에요."
"그치만, 바이올렛 님......저는, 인간이 아니고......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바이올렛은 싸늘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죽인 사람들은 사람의 껍질을 쓴 짐승과 오물들의 집합체입니다. 실제 사람들의 사회에서도 격리나 사형 판결을 받은 낙오자들의 집단. 죽어도 울어줄 이 하나 없고, 그게 당연한 이들이에요. 제가 당신을 혐오하거나 경계한다면, 그건 당신의 종족이 차원종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또 언제 폭주할지도 모른다는 과거의 전적도 있겠고."
움찔 하고 몸을 떠는 레비아. 더 이상 폭주하지 않는다고 입을 열려던 그녀에게 손을 뻗어, 바이올렛이 막는다.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폭주하지 않는다, 라는 건 같이 싸우면 잘 알았으니까. 오히려, 힘의 격차를 실감한 지금, 어떻게 당신이 폭주했나 싶군요."
"......아, 감사합니다."
"딱히 칭찬한 게 아닌데 말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순백의 도화지. 레비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런 인상만이 남는다.
오히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레비아.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보세요."
"네? 과거, 라니요?"
"당신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왔는지를 말해보라는 거에요.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겠지만, 무조건적인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라서요. 그만한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 네......그렇네요."
그리고 천천히, 레비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어나면서 자라온 연구소와 그 안에서 자행된 실험, 몰살된 연구원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피바다 속에서 자신 홀로 남아있었고 그 앞에 트레이너가 있었다는 것까지.
레비아는 자세한 사건배경을 모르는 듯 했지만, 바이올렛은 대충 짐작이 갔다.
쓸만하다 싶어 키웠는데 점점 강해져가니 통제하기 어렵다 싶어 연구원들과 함께 살인멸구 하려던 모양인데, 역으로 당해버렸다.
그 상황을 또다시 이용해 트레이너의 영향력을 줄여버린 걸 보면, 벌처스 사장은 역시 만만치 않은 수완가다.
"즉, 당신은 복수를 한 거로군요."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저는 사람들을......"
"──복수를 부정하지 마. 적어도 내 앞에서는."
"......! 아, 알겠습니다. 기분 상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바이올렛의 강한 어조에 레비아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바이올렛은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후 도착한 호텔에서, 레비아의 방을 따로 하나 잡아 주고 그 안에 밀어넣었다.
"......여기가, 호텔이라는 곳이구나......"
경험해 본 적 없는 고급 호텔이라는 것에 감탄하며, 레비아는 침대 위에 몸을 눕힌다. 그리고 커다란 침대에 어울리지 않게, 왜소한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서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저 혼자 쓰기에는......너무 넓어요.'
그게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감정인 것도 모르는 채, 레비아는 조용히 수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작은 눈물 방울 하나가 콧잔등을 스치고 이불보 위에 떨어졌다.
***
차 안의 3인용 좌석에 몸을 눕히고 있던 나타는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러던 중, 딸칵 하고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퍼뜩 일어났다.
"여전히 반응이 빠르군. 독방에 갇혀있는 동안 실력이 녹슬지 않아 안심했다, 나타."
"이 깡통이......지금이 몇 시인데 일어나는 거야?"
"오전 7시다. 보통의 사람들이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움직이는 최소 시간대이지."
"또 뭔 소리를......우리가 보통 사람인 줄 아냐?"
집합 시간은 9시였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독방에 갇혀 있느라 잊은 모양이군. 늑대개 팀은 언제나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훈련을 했었다."
"......빌어먹을......"
매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듯 트레이너와 싸우며 억지로 기상하던 걸 떠올리고서 인상을 찡그리는 나타. 그러다가 문득, 소영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지금 이 시간부터 포장마차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나서 나오지 않았을까.
"......야, 나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
"탈주하려는 건 아니겠지."
"해봤자 이 빌이먹을 초커 때문에 바로 위치 추적 당할 거 아니야. 그런 바보 짓은 하지 않아."
이 놈의 초커는 어떻게 된 건지, 뭘 해도 끊어지거나 떨어지지를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습관적으로 초커를 붙잡고 끊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네가 갈 곳이 있다고?"
"그래. 네년의 말대로 아침 훈련 삼아서 차원종의 잔당이라도 썰고 올 생각이야. 그 쇼핑몰이면 충분하잖아."
"......흐음. 알겠다. 팀의 규칙을 어기는 행동은 삼가도록 해라."
"그놈의 잔소리는 진짜......"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차 안에서 나가는 나타. 티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여전히 거짓말이 서투르군. 나조차도 속일 수 없는데, 어떻게 교관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정말 저 녀석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다."
즉시 트레이너에게 고발하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티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와 교관을 제외하면......유일한 (구)늑대개 팀의 대원. 어쩔 수 없군. 싸우다 죽기 전까지는 눈 감아 주도록 할까."
감정의 표현이 희박해서 그렇지, 원래는 잔정이 많은 성격인지라, 티나는 잠시 눈을 감아주기로 하였다.
말려도 듣지 않을 테고, 어차피 얼마 못 가 트레이너에게 발각될 게 뻔하니까.
***
"......하긴, 아직 7시 10분 정도 밖에 안 되었으니까."
뭘 기대하고 왔던 거냐고, 스스로에게 투덜거리며 등을 돌릴 때였다.
"어라, 나타. 거기서 뭐해?"
"......어, 뭐야......왔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소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젯밤, 헤어지기 직전에 이름을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난다.
"머리도 완전히 떡진 상태네......안 씻고 온 거야?"
"이, 이따가 근처의 공원에 들러서 씻고 올 거라고! 그보다도......지금부터, 그 장사......시작하는 거냐?"
"응? 그렇지.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 둬야, 출근 시간대인 사람들에게 팔 수 있고."
포장마차를 감싼 덮개를 풀며, 소영이 말한다.
"차원종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까. 아침이면 여전히 출근하기 위해 이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일각에서는 안전불감증이라고도 하지만......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생활은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데다가, 이제껏 큰 사상자가 나온 적도 없는걸. 그리고──."
씨익 웃으며 나타를 돌아보고는,
"나타 같은 클로저들이, 우리들을 지켜줄 테니까 말이야."
"────."
멍하니 그녀를 응시하던 나타의 입가가 곧 느슨해진다.
".....흥, 그러면 그만큼 이 나타님에게 어묵을 바치라고, 여우 여자."
"여우 여자가 아니라 소영이라니깐......뭐, 그러도록 할게. 그 정도는 서비스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작게 키득거리며 웃는 소영. 나타도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뻐꾸기'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
"정말이지 곤란하네요. 당신은 스스로 머리를 정돈할 수도 없는 건가요?"
"죄송해요, 바이올렛 님......괜히 손이 가게 만들어서......"
레비아의 긴 백발을 빗으로 쓸어넘기며 엄하게 말하는 바이올렛과 사과하는 레비아.
"집어치워요. 사과만 하지 말고, 앞으로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배우세요."
"배운......다고요?"
"네.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따라하면서 배우도록 해요. 저는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걸 선호하니까."
바이올렛의 입장에서는 비유였지만, 레비아에게는 정말로 물고기를 잡는 걸 떠올리게 된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의 인형 놀이를 떠올리며 변덕을 부리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이 친절함 자체가 나쁘지는 않아서,
"감사합니다, 바이올렛 님."
"......뭐, 마음껏 감사하도록 하세요."
거울에 비춰지는 레비아의 밝은 미소에, 어쩐지 쑥스러워진 바이올렛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곁에서, 하이드는 『아가씨께서 한층 더 성장하셨다!』라며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