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고도 느긋한 아침의 기상을 맛본다. 지저의 공기는 조금 텁텁하고 장기가 흐르기도 하니 토납은 하지 못하지만.

사토리도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푹 잠들어있기에 굳이 깨우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서 안부를 남겨두고 지상으로 

발을 옮긴다. 스키마 안쪽에 놓여있는 커다란 술항아리를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지옥의 물과, 오니의 뿔.

그리고 그것들을 술벌레로 아주 오래, 시간을 조작해서 숙성을 시킨다면 도대체 어떤 절품이 나오는 것일까?

그런 절품이라면 희석을 시키더라도 오니 고로시 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는 종류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술집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선물용이나, 오니들과의 교섭 같은 것에서도 훌륭하게 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모리야 신사로 발걸음을 향한다. 주운 복권 추첨권도 그렇지만...신사에서 흐르는 축복받은 물 같은 것을 더 부으면

도대체 어떤 수준의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일까? 적어도, 신주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이 나타나게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모리야 신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잠깐, 오늘도 사나에에게 여기저기 휘둘리는, 꽝 당첨을

뽑게 되는건 아니겠지? 그것이 있으면 반환으로 해두고, 적어도 고교생 이상으로 성장한 이후로 부탁해두자...


"모리야 신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복권을 뽑아보시려는 건가요? 아직 이 상자에는 특상 상품이 나오지

않은만큼 기대되네요. 자, 자. 그러면 어디...축하합니다ㅡ4등입니다-! 카나코 님 비장의 술 비교 세트입니다.

최근에는 술 가뭄이 들어온 시기이니만큼 정말 탐나는 상품이네요. 여기 감주와 청주와 오니고로시입니다"

이 비교 세트가 있다면, 자신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술과 어떤 맛의 차이가 있을지 비교하기 쉬울것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끼며 복권 판매원과 인사를 나누고, 물을 떠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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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앉아서, 문을 걸어잠그고 스키마에서 항아리를 꺼낸다. 팔을 가득 벌려 한아름 껴안아도 절반이 남는, 그야말로

꼬마라면 둘도 들어갈 법한 항아리를 꺼내어 탁한 것들이 올라온 윗물을 떠내고, 살살 저으면서 신사의 물을 붓는다.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주걱을 저어가며 묵직하게 걸리는 느낌이 들 때까지 젓고, 또 가끔씩 채집하기도 했던 버섯과

상약초, 특약초도 넣으면서 천천히 스며들수 있도록 항아리 안의 시간을 조작해간다. 


항아리 안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며, 물에서 점차 주향이 풍기고 또 침전되어 있거나 떠오르던 불순물마저도 녹아

술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인지 이젠 떠내려고 해도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이전 TSP 가 있던 시기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오랫동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해 술의 시간을 조작한다.


점차 독하디 독한 주향은 가라앉고, 오히려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이는 것에 재료를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고 

고려인삼과 눈의 영초, 얼음의 비늘을 넣어 다시금 저어간다. 이미 들어간 재료들만 하여도 하나하나가 최상의

조제 재료이고, 고작 술에 넣는 것은 엄청난 낭비일지도 모르지만 이 술은 완벽해질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슬슬 팔이 저리고, 시간 조작도 간헐적으로 끊길 정도가 되었지만...술의 색은 계속해서 영롱하게 변해간다. 

단순히 투명한 청주도, 독한 증류주의 향기도, 탁주의 유백색도 아니지만 약간의 빛이 닿을 때마다 그 빛을

산란시키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의 액체가 완성된 것에 괜스레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술을 마신 오니가 과연 다른 술로 만족할 수 있을까? 환상향에 마약을 만들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다시금 항아리를 스키마 안에 조심스레 넣는다, 집중력이 회복되고 나면 또 다시, 또 다시, 저 술이 거르고

걸러져서 그 어떤 향도 나지 않는 순간이 될 때까지 시간을 조작해가기로 마음먹었다. 잘못하면 앞으로는

채집을 해서 파는게 아니라 술을 빚는 말술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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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며칠이 지나간다. 때로는 아큐의 심부름을, 때로는 향림당에서의 시간을, 때로는 앨리스와 파츄리와의 회의를.

때로는 홍마관 재건 현장에서 사쿠야와 함께 정리를, 때로는 카센과의 수련을...집중력이 유지되는 한계까지 며칠간

항아리 안의 시간을 조작한 결과물을 오늘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항아리 안의 시간을 조작한 끝에 뚜껑을 열자 가득 차 있던 항아리는 반으로 내용물이 줄어들어 출렁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걸리는 불순물은 없다. 그 단단한 오니의 뿔이라고 해도 전부 녹아들어버린 끝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천천히 손을 집어넣어 항아리 가장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몇 개의 결정을 꺼내든다. 분명 나중에 쓸 곳이 있겠지.

작은 잔의 밑바닥만을 채울 정도로 항아리에서 퍼내어 향을 맡는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수면의 흔들림이 없다면

무언가 액체가 들어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한 색이 된 그것에 물을 섞고 목으로 넘긴다.


...! 이건 위험하다, 취기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고, 향과 맛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희노애락' 이라는 감정이 모두 녹아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작은 잔이라 하여도 넘어가는 기분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목구멍에서 빠르게 사라져버린 것에

자신도 모르게 또 손이 가버릴뻔 했지만 안된다. 물을 가득 섞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그대로 원액을 마신다면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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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액을 자기로 된 병 두 개에 나누어 담는다. 그리고 비싼 밀랍을 어떻게던 융통해 술병의 뚜껑을 완전하게 막아버리고

선인 저택으로 향한다. 말도 없이 선인 저택에 들른 자신을 향하는 카센과 스이카의 의아한 표정 앞에 병을 내놓는다.

"...헤에, 그 술이 완성된건가. 들고 도망쳐서 다른 곳에 팔아버리는걸까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네. 그럼 어디..."


천천히 밀랍이 작은 칼로 개봉되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하던 스이카였지만. 병을 입에 대고 목울대가 한 번 울리는 순간

자신이 언제나 들고 있는 이부키효를 떨어뜨리고. 어미의 젖을 처음으로 빠는 아이마냥 병을 손으로 붙잡고 정신없이

기울여간다. 목울대가 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병이 빈 것은 자명한 일임에도 계속해서 병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희노애락의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본 카센은 슬그머니 자신의 병을 뒤쪽으로 숨기고 있다. 솔직한 스승님. 


"...하아. 이런 술은 단 한번도 맛본적 없다고, 무거운듯 하면서 한없이 가볍고, 꽉 들어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데,

향이 느껴지는 것 같으면 이미 사라져있고, 혀 끝에 남은 감정의 맛을 느끼기에는 혀가 너무 무딘 것만 같은 술이야.

...이런 술을 더 맛보게 된다면 앞으로 이부키효에 있는 술로는 만족할 수 없겠지. 난 이걸로 충분하니까 됐어."


의외로 절제심이 있어보이는 스이카의 발언에 상당히 놀란 감정을 감추는 것이 힘들었다. 오니들은 욕망에 충실하고,

좋은 술에 대한 욕심이 넘치는줄 알았는데 저런 식으로 평안한 미소를. ...일종의 현자 타임 같은 걸지도 모른다.

슬쩍 뒤로 숨겼던 병을 다시 앞으로 내어놓고 언제 마실지를 고민중인 카센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상당한 시간 동안 이런 공을 들여서 완성한 것이 오니에게 저런 평가를 받는 것은,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상쾌한 기분에 휘파람을 불면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오늘도 액을 모으고 흘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히나가 보인다.

히나라 해도 술은 좋아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환상소녀들이 그렇듯이 술을 좋아한다면 조금. 선물이라도 전달할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뒤에서 톡톡, 어깨를 건드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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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남자다. ...분명히 액에 계속해서 접하고 있지만 액은 그 남자의 몸으로 파고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설령 끄트머리를

들이민다고 해도 다시금 튕겨나오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 저 남자는 혹시, 다른 액신인 것이 아닐까. 스스로가 계속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동료. ...적어도 같은 능력을 가진 이라면 대화라도 계속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기야마 히나, 너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함께할 수도 없어. 괜한 기대감을, 기대감...


서스럼없이 다가오지 말아줘. 이미 그렇게 다가온 이들이 액을 이기지 못하고 횡액을 맞고 죽어버리는 것도 보았고,

그들이 나에게 남기는 원망도 아직 단 하나도 잊지 못했어. 그리고 조교전이란 것을 들고 온 남자마저도. ...전부.

그 어떤 것으로도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이제야 겨우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축제에 같이 갈 방법을 찾아보고, 그게 안된다면 축제 날이라도 같이 보내자고 권유해오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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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입력이 약간 부족해서 일상계 이벤트가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히나 쪽은 대화 형태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 히나의 독백이나 생각 서술쪽이 나아보이더라고요.

약간 분량이 적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까가 1만자를 넘겼을 뿐입니다. 이번 화는 일상계 내용이기도 했고요.

이번 화도 재미있게 읽어주실 수 있었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빚어라, 최고의 술을. 그 어떤 것도 아끼지 말고.


평소에 열심히 성욕만 쌓으면서 대충 배출하다가, 인생 야동을 찾아서 허탈해진 스이카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면서

그 야동을 영구삭제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원래 인생이란게 그런거잖아요.


이번에는 입력이 추가적으로 있으면 조금 더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텍붕이 TS 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개그 이벤트 계열로 시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그 이벤트가 아니면 야스 이벤트인데, TS 야스는

취향의 호불호가 극히 갈리는지라 스토리 내부에 연결되는 정사로 쓰기가 어렵지 않나 싶네요.